즐라탄이 에고를 안 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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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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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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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7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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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 팀의 에이스.

DUMMY

“흐이익!”


팀에서 최고의 수비수였던 메테가 즐라탄과의 일기토에서 단 일합(一合)에 패배하자.


유소년들의 모습은 마치.

목이 댕강 잘려 날아가는 장수의 목을 바라보며, 다가오는 적장을 마주한 채 잔뜩 겁에 질린 졸병들 같았다.


“다들 뭐 하고 있어? 다들 정신 차려 이브라는 한 명이고. 우린 10명이야. 고작 메테 한 명 뚫었다고 잔뜩 겁먹긴!”


멀리서 유일하게 즐라탄의 상체 페인팅을 간파했던 토니는 팀의 사기를 북돋우려는 듯 크게 소리쳤다.


팀의 에이스로 늘 발군의 실력으로 팀을 지휘했던 주장의 외침이 그들을 자극한 걸까.


유소년들은 그의 말에 맞춰 전열을 가다듬고 침착하게 수비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그중 세 명의 유소년들은 지시도 없이 동시에 재수 없는 이브라 녀석에게 달려들었다.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메테 만큼은 아니었지만 팀에서 준수한 수비 실력을 뽐내던 콘차가 입을 열었다.


“내가 정면에서 막을 테니 타만디, 로젠베리 너희는 양옆에서 즐라탄을 밀어버리라고.”

“알았어 콘차.”


호기롭게 적장에게 달려드는 그들을 보며 즐라탄은 분노로 일그러진 표정을 지으며 소리쳤다.


“고작 세 명이라고? 장난치는 거냐? 한꺼번에 덤비라고!”


고작 세 명 따위로 자신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유소년들을 바라보며 즐라탄은 정말로 화가 났다.


“다섯 명 여섯 명 이런 헛짓거리는 하지 말고 그냥 다 덤벼!”

“뭐라는 거야 X신 같은 촌놈이.”

“이브라 넌 정말 뒈졌다!”


주제도 모르고 즐라탄에게 욕설해가며 다가오던 그들이었다.


토니의 옆에 서 있던 유소년은 토니에게 물었다.


“즐라탄 녀석 선을 심하게 넘는데 정말 우리가 무자비하게 한꺼번에 협력수비를 해볼까?”


토니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그런 건 정말 프로급의 선수가 아니라면 절대 불가능한 얘기야. 그런데 고작 즐라탄을 막는데 우리가 한꺼번에 덤벼서 공을 뺏어봤자 우리 체면이 안 서잖아?”


토니는 즐라탄의 도발에 이끌리려는 유소년들은 진정시키고 묵묵히 콘차, 타만디, 로젠베리 트리오의 협력수비를 지켜볼 뿐이었다.


‘젠장! 토니 녀석 때문에 내 아까운 시간만 허비하는 것 같군.’


고작 세 명으로 즐라탄을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


···뭐 지금의 난 즐라탄이지만 즐라탄이 아니란 건가.


신을 제외하고 즐라탄의 명성과 위대함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거군.


즐라탄은 트리오를 바라보며 문득 과거 말뫼 유소년팀에서의 기억을 떠올렸다.


‘생각해보니 저 세 명··· 실력은 그리 뛰어나진 않았지만, 윌렌셰 코치가 고안한 상대 팀 에이스를 확실히 막았던 최고의 합을 보여줬던 놈들이잖아?’



***



유소년 레벨에선 특출난 실력을 보이는 녀석들이 상대 팀에 꼭 한 명 이상 존재했는데.


그런 놈들은 흔히 말하는 천재, 축구 선수로서의 재능을 타고난 녀석들로 마치 학교에서 선출이 축구 하는 것처럼, 남들과는 다른 레벨로 평범한 재능을 가진 유소년들을 상대로 장난치듯 쉽게 모조리 제치곤 골을 넣곤 했다.


물론 프로 레벨에선 한 선수가 해트트릭만 기록해도 다음 날 스포츠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할 정도의 이슈였지만.


유소년 레벨의 공식경기에선 한 선수가 8골 10골은 매 경기 넣어야 특출난 재능으로 인정받을 정도로 에이스 한 명의 존재는 승패를 좌우했다.


즉 유소년 경기는 쉽게 말해 에이스 놀음.

특출한 재능을 보유한 각 팀 에이스들에게 자연스레 모든 패스가 뿌려졌고 그들이 몇 골을 넣느냐에 따라 쉽게 경기에서 이기는 날이 있었고 끔찍한 패배를 맞기도 했다.



그래서 유소년팀의 감독, 코치들은 에이스 위주로 공격 전술을 구성하되 상대 에이스를 막을 수비 전술을 고안하는 것으로 감독과 코치는 그 역량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윌렌셰 코치가 고안해낸 것이 바로 트리오 협력수비.


콘차, 타만디, 로젠베리는 팀에서 딱히 수비 재능을 보이던 녀석들은 아니었지만, 윌렌셰 코치는 미드필더 포지션의 그들에게 늘 협력수비 위주로 그들을 훈련 시켰다.


물론 처음엔 전술에 불만을 가졌던 그들이었지만, 주전을 보장받았을 뿐만 아니라 막상 연습하며 늘어난 체력, 상대 에이스를 막아낼 때의 희열과 그로 인한 승리의 도파민에 중독된 그들은 훈련이 끝나고 집에 갈 시간에도 운동장에 남아 자기들끼리 연습할 정도로 만족하는 모습이었다.


즉 트리오의 협력수비는 분명 유소년 레벨을 넘어선 수준이었다.


그러니까 자신들 셋으로 즐라탄을 막기에 충분하다 생각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겠지··· 난 이 당시 에이스도 아니었으니깐.


경기에서 패배하는 날엔 어김없이 라커룸에서 날 둘러싸 무섭게 내려보곤 협박했던 놈들이었다.


팀의 에이스는 토니인데 왜 넌 항상 토니에게 패스를 뿌리지 않고 마치 네가 에이스인 것마냥 단독 드리블을 하는 거냐며 늘 나의 존재를 불쾌해했다.


물론 내가 한 경기에서 8골을 넣으며 승리할 땐 군말 없이 돌아가던 녀석들이었지만, 난 기복이 매우 심해 한 골도 넣지 못한 적도 많았으니 그들과 자주 싸웠었다.



***



‘···그때마다 내 편을 들어주며 위로해준 게 토니였지.’


회상에 잠겼던 즐라탄은 다시 한번 트리오를 스윽 쳐다보았다.


정면 돌파를 막기 위해 즐라탄 앞에 서 있는 콘차, 즐라탄이 왼쪽으로 꺾는 것을 막기 위해 서 있는 타만디, 마찬가지로 오른쪽에서 서 있는 로젠베리가 오랫동안 갈고닦았던 수비 포메이션을 펼치고 있었다.


“한번 들어와 보라고 이브라!”

“···.”


즐라탄은 어째선지 돌파를 시도하지 않고 뜬금없이 몸을 돌려 그들을 등졌다.


그 모습에 당황한 콘차가 즐라탄에게 물었다.


“뭐··· 뭐 하는 거야?”

“이제 내 앞엔 아무도 없네?”

“니가 암만 뒤로 가봤자 앞으로 돌파하지 않는다면 네 패배야. 알고 있지?”

“물론. 근데 비겁하게 세 명이 붙어놓곤 마치 내가 들어오기만을 기다리는 게 영 꼴불견이군. 너희들 내 공 안 뺏을 거야?”

“그럴 리가 있겠냐?”


콘차는 자신들을 등지고 서 있는 즐라탄의 모습이 너무나도 빈틈투성이처럼 보였다.


뒤통수에 눈이 달린 것도 아니고, 대체 무슨 꿍꿍이인지 알 순 없었지만.

콘차는 그런 즐라탄이 어떤 개인기를 보여줄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이브라 녀석 설마 내가 붙어버리면 스쿱턴 같은 개인기로 내 가랑이로 공을 통과시켜 뚫을 속셈인가?’


콘차가 보기엔 즐라탄이 유일하게 자신들을 뚫을 수 있다면 수비 자세를 취하면 자연스레 발생하는 가랑이 사이의 구멍으로 공을 빼내는 것이 유일하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든 일단 공을 멀리 치고 달리는 일명 치달 같은 꼼수를 쓰는 법밖에 없다고 판단을 내린 콘차였다.


콘차는 즐라탄의 의도를 파악했다는 듯 몰래 미소를 지으며 가랑이 사이를 좁히더니 그의 뒤로 몰래 접근하기 시작했다.


타만디와 로젠베리 역시 콘차가 공을 뺏기 위해 다리를 뻗는다면 그와 동시에 양옆에서 몸을 부딪혀 공을 향해 발을 뻗을 심산이었다.


그렇게 한다면 즐라탄이 갑자기 뒤로 공을 툭 쳐 치달하는 것뿐만 아니라 스쿱턴을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뺏기는 게 당연하다 생각했다.


공간 자체를 조여 들어오는 자신들의 합공(合攻)은 분명 일절 빈틈이 없다고 생각하는 그들이었다.


하지만.


-투툭!


그들의 계획대로 먼저 콘차가 뒤에서 발을 뻗음과 동시에 타만디와 로젠베리의 발이 덫처럼 공을 향해 한 점으로 빠르게 조여 들어왔지만.


“···공이!”


그들의 발이 도착한 곳에 분명 존재해야 할 공은 사라지고 없었다.


“없어!?”


그들의 발소리에 맞춰 분명 즐라탄은 제자리에서 뭔가 꿈틀대는 움직임이 보이긴 했지만, 그 가동범위가 워낙 작았던 탓에 그 짧은 순간 즐라탄이 무언가를 했으리라 전혀 생각할 수 없었다.


하지만 즐라탄은 무슨 마법을 부린 듯 순식간에 지면에서 공을 사라지게 만들곤 반드시 공이 존재했어야 할 위치로 셋의 발을 뻗음과 동시에 등지고 서 있던 몸을 재빨리 앞으로 돌려 콘차의 옆 공간을 지나쳐갔다.


트리오는 아직도 공이 어딨는지 양옆을 두리번거릴 뿐이었다.


“와 이브라 대체 뭐야!”

“바보들아 위야 위!”


뒤에서 그들을 지켜보던 유소년들이 황급히 트리오에게 소리치자, 그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식은땀을 흘리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위라고?”

“···!”


즐라탄은 이미 자신들을 빠져나간 지 오래였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머리 위로 무지개의 궤적을 그리며 즐라탄을 향해 떨어지고 있는 공을 멍하니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건 분명!’

‘솜··· 솜브레로 플릭?’


즐라탄은 자신에게 떨어지는 공을 여유롭게 순두부 같은 트래핑으로 받아내며 공을 계속해서 자신 발 위로 통통 치면서 말했다.


“즐라탄을 막으려면 위도 막아야지.”


공을 툭 어깨로 옮기곤 다시 어깨를 살짝 튕기듯 흔들자 공은 즐라탄의 이마위로 올라왔다.


즐라탄은 물개가 묘기를 부리듯 계속해서 컨트롤 해 가며 말을 이었다.


“이제 즐라탄이 세 명으론 턱도 없다는 걸 너희도 잘 알겠지? 뭐 물론 백 명이 몰려와도 똑같은 결과겠지만··· 솔직히 너무 재미없으니깐 특별히 핸디캡을 주지.”

“···핸디캡이라고?”


토니는 즐라탄의 기술에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 핸디캡을 준다는 즐라탄에 궁금한 듯 물었다.


“대체 무슨 핸디캡인데?”

“아 그게 말야. 이대로라면 너무 싱겁게 끝날 것 같아서 말이지. 내가 지금부터 이 공을 단 한 번이라도 지면에 떨어트린다면 그와 동시에 내 패배를 인정하고 팀을 떠나주지.”

“···!”


자신을 향해 한꺼번에 덤벼드는 것도 모자라선 이젠 공중에서 공을 트래핑하는 자신이 단 한 번이라도 지면에 공을 떨어트리면 졌다고 인정한다는 즐라탄의 말에 유소년을 비롯해 코치는 경악했다.


“코치님은 이브라가 원래 저런 녀석이란걸 알고 원래라면 계약도 못 했을 즐라탄을 위해 구단을 설득한 거였어요?”

“···아니 절대.”

“네? 그럼 하루아침에 이브라가 완전 다른 사람이 된 걸 코치님도 이해할 수 없다는 거죠?”

“그렇구나.”



윌렌셰 코치는 평소 즐라탄의 잠재력을 인정하곤 눈여겨보고 있었지만, 그가 이렇게까지 포텐이 넘쳐났을 거라곤 전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분명··· 브라질 선수들이나 보여줄 수 있는 섬세하고도 완벽한 솜브레로 플릭이였어. 물론 조금만 연습하면 다른 유소년들도 할 수 있는 거지만 보통 그럴 경우엔 공이 어디로 떨어질지도 몰라 자신 역시 떠 있는 공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지. 그렇게 되면 수비수가 다시 따라붙는 걸 알아차리는 게 힘들 뿐 아니라 공의 낙하 지점에 맞춰 몸을 옮기느라 연계적으로 물 흐르듯 이어져야 할 다음 동작까지 크게 지연되지. 하지만 이브라는 공에 눈도 마주치지 않고 정확히 자신이 원하던 곳에 정확히 떨어트리며 성공해냈어. 프로 축구선수들도 하기 힘든 공과 자신의 물아일체를 이브라가 대체 어떻게 습득한 거야?’


코치는 은근슬쩍 토니를 쳐다보았다.


‘토니 녀석도 나랑 똑같은 생각을 하는가 보군.’


윌렌셰 코치에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번지기 시작하더니 무언가 생각에 잠긴 모습이었다.


‘어쩌면 미니게임이 끝나고 우리 팀 전술을 처음부터 끝까지 싸그리 뒤바꿔야 할지도 모르겠어.’


모든 신체 부위로 묘기를 부려가던 즐라탄은 자신에게 농락당해 얼 타 있던 메테, 콘차, 타만디, 로젠베리에게 들리게 소리쳤다.


“뭣 하고 있어? 얼른 즐라탄을 상대하지 않고.”


즐라탄의 말에 그들은 침을 꼴깍 삼키며 굳어 있던 몸의 긴장을 풀어보려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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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화 : 로센고드 출신. 24.09.15 48 2 11쪽
1 1화 : "즐라탄." +2 24.09.14 79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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