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라탄이 에고를 안 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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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쓸
작품등록일 :
2024.09.14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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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8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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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 수 싸움.

DUMMY

‘··· 젠장! 쪽팔리게.’


멍하니 있던 메테는 즐라탄의 포효에 뒤늦게 정신을 부여잡곤 묵묵하게 수비 진영에 합류했다.


콘차, 타만디, 로젠베리 세 명의 트리오 역시 그런 메테를 따라갔다.


메테는 토니 앞에 도착하곤 그에게 넌지시 물었다.


“토니, 이브라가 나한테 돌진했을 때 넌 어떻게 걔가 페인팅을 시도할 거란 걸 알아차린 거야?”


메테의 물음에 토니는 약간 침묵하더니 조심히 입을 열었다.


“···나라도 그렇게 했을 테니깐.”

“정말로? 설마 이브라 녀석이 널 보고 배운 거였어?”

“아니. 그렇진 않아.”

“응? 그럼 대체 언제 이브라 녀석이 어떻게 너처럼 기본기 탄탄한 드리블을 연습한 거야?”

“내가 어떻게 알겠냐. 너도 알겠지만 이브라가 기절해서 쓰러지고 의식을 되찾았을 때부터 뭔가 이상해진 것 같더니 갑자기 축구 실력이 수직상승 했어. 이걸 뭐라 설명해야 할지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고.”

“그게 참! 머리를 다치면 축구 실력이 오르는 병이 존재한다고는 살면서 들어본 적이 없는데···.”

“그런 게 존재했다면 지금쯤 너랑 나랑 맨땅에 두개골이 박살 날 정도로 헤딩을 쳐댔을 거다.”

“···그렇지.”


메테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곤 뒤돌아서자 토니가 조심스레 물었다.


“이봐 메테··· 혹시 너말야 방금 즐라탄을 상대했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어?”

“으··· 응? 그건 왜? 그냥 뽀록 한번 터져서 운···!”


토니는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메테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흠칫 놀란 메테는 말문이 막히고 토니의 눈치를 살피는 기색이 역력했다.


토니는 진지하고 무거운 톤으로 메테에게 다시 물었다.


“메테. 나한테만 솔직하게 얘기해줬으면 좋겠어. 네가 방금 이브라··· 아니 즐라탄을 상대했을 때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정말 토니 널 속일 순 없겠다. 그래 맞아 사실 난 즐라탄 녀석한테 완전히 쫄아버리고 말았어.”

“그거 말고도 뭔가 느낀 게 있을 것 같은데?”

“아으··· 정말 다른 애들한텐 내가 이렇게까지 말했다는 건 비밀이다?”


토니가 고개를 끄덕이자 메테는 푹 한숨을 쉬며 어쩔 수 없다는 듯 그의 귀에 입을 대 속삭이기 시작했다.


“···!”


집중해서 듣던 토니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믿을 수 없다는 듯 즐라탄을 다시 바라보았다.


“정말 그 정도로?”

“그래··· 정말 나도 처음 느껴본 기분이었어. 마치 환각을 보는 것만 같았다고.”

“그래 솔직하게 말해줘서 정말 고맙다 메테.”

“너한테만 말해준 거니까 진짜 비밀이다!”

“걱정마 메테! 네 말을 들으니까 이번엔 정말 즐라탄이 원하는 대로 전원이 상대해야 할 것 같아. 얼른 준비하자고.”

“좋아 토니. 너까지 협력한다면 즐라탄 녀석도 더 이상 객기를 부리진 못할 거야.”

“···.”


토니는 메테의 말에 딱히 대답하지 않고 떳떳한 모습으로 수비 진영의 최전방으로 향했다.


겉으로는 떳떳해 보였던 토니였지만, 사실 그의 머릿속엔 방금 메테가 자신에게 속삭여준 말들이 잊히지 않고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었다.


‘메테가 그렇게 말할 정도라··· 이브라 아니 즐라탄을 정말 만만히 봐선 안 되겠어.’


그들의 모습을 멀리서 곁눈질하며 주시하던 즐라탄이었다.


‘토니 녀석 메테에게 대체 뭔 소릴 들었길래 저리 진지한 거야?’


즐라탄은 그런 토니를 보며 다시 한번 회상에 빠져들었다.



***



그 시절 토니는 단순 공격뿐 아니라 수비, 패스에도 능통한 육각형의 천재였지.


토니는 사실 스트라이커보단 전형적인 플레이 메이커로 중원을 지배하는 코트 위의 마에스트로였다고 보는 게 옳은 표현일 테니까.


그런데도 감독은 항상 토니를 나와 함께 투톱으로 내세웠지, 그가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얼마나 대단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르던 형편없는 놈이었으니깐.


뭐··· 그 덕에 난 토니와 함께 투톱으로 팀에서 활약할 수 있었지만.


토니는 나와 투톱으로 활약하면서도 언제나 가짜 공격수, 즉 펄스 나인처럼 활동하며 내가 골을 넣을 수 있게 도와준 큰 조력자 역할을 자처했었다.


물론 감독이나 다른 유소년 새끼들은 토니가 나에게 패스를 뿌릴 때마다 깊은 한숨과 짜증을 내며 싫어했지만···.


어쨌든 만약 프로가 되고 나서 즐라탄, 토니 듀오 라인이 재결합했었다면 나는 빅이어뿐만 아니라 월드컵 우승 ···어쩌면 발롱도르까지 노려봤을지도 모르지.



***



“이봐 즐라탄. 이번엔 정말 한꺼번에 덤벼줄 게 그게 니가 원했던 거잖아?”


즐라탄은 토니의 말에 묵묵히 공을 저글링하다가 뒤늦게 능청스러운 말투로 답했다.


“아니. 즐라탄은 갑자기 너랑 일대일이 하고 싶어졌다.”

“··· 뭐라고?”

“쫄?”


즐라탄의 도발에 토니의 얼굴은 한껏 일그러지며 두 주먹을 불끈 쥐더니 붉게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왜? 혹시 핸디캡 때문에 자신 없어진 거야 즐라탄?”


즐라탄은 토니가 맞받아치는 도발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계속해서 공에만 관심을 가지며 답했다.


“그냥.”

“··· 메테가 나보다 수비를 훨씬 잘하는 걸 알잖아? 그런데도 왜 굳이 나랑 일대일을 붙어보고 싶다는 거야?”


즐라탄은 공을 하늘로 족히 10미터는 넘게 높이 차올리곤 다시 발등에 공을 올려놓고는 답했다.


“그래서 할 거야 안 할 거야?”

“···!”


토니는 즐라탄의 트래핑 실력에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저런 트래핑은 분명 마라도나가 몸을 풀 때 장난치듯 보여주는··· 축구의 최고 경지에 도달한 사람이 아니고선 도저히 불가능한 트래핑이었다.


하지만 토니는 전혀 두려움 없는 기색으로 즐라탄에게 답했다.


“그래 좋아.”

“잘했어. 너무 걱정은 하지 말라고. 내가 공을 한 번이라도 떨어트리면 너의 승리니깐.”


토니는 자신 앞에 재롱떠는 즐라탄 앞에 수비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시작한다 즐라탄?”

“난 이미 한참 전에 시작했다고.”


토니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마치 사냥감을 숨죽이고 조준하는 사냥꾼처럼 즐라탄을 스캔하기 시작했다.


유소년들은 뒤에서 그들의 모습을 숨죽이고 바라볼 뿐이었다.


마치 오랫동안 우두머리로 군림한 수컷 사자에게 도전하는 젊은 사자를 지켜보는 암사자들처럼.


새로운 우두머리가 탄생할 수 있는 지금 순간을 개입하지 않고 지켜볼 뿐이었다.


-타다다닥!


토니는 빠르게 어깨에 공을 올리고 있던 즐라탄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30센티 정도 간격을 뒀을 즘 토니는 갑자기 속도를 줄이더니 빠르게 백스텝을 밟으며 한걸음 물러섰다.


그 모습에 즐라탄은 기특한 듯 토니를 그윽하게 바라보았다.


‘토니 녀석··· 보면 볼수록 재밌다니까.’


즐라탄은 그가 만약 한 스텝만 더 다가왔더라도 곧바로 어깨의 공을 왼쪽으로 튕겨 피해버릴 심산이었다.


사실 공격수 입장에선 무식하게 달려오는 수비수만큼 돌파하기 쉬운 상대가 없다.


가속이 붙은 터라 공을 옆으로 살짝 치기만 해도 관성에 의해 역동작에 걸려 수비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길을 열어주는 꼴이었다.

내가 상대했던 월드 클래스 수비수들은 절대 그런 수비를 범하지 않았다.


축구란 무릇 공을 가진 선수만이 상대를 속이는 페인팅 동작을 시전 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실 수비수 역시 공격수에게 페인팅 기술을 사용한다.


공격수들은 보통 돌파할 대상의 발 위치, 시선, 무게 중심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돌파를 시도한다.


반대로 수비수들은 그런 공격수에 발재간에 이끌려 다닐 거라 생각하겠지만.


수비에 재능을 가진 선수라면.

그들은 역으로 나 같이 뛰어난 공격수들에게 먼저 페이크를 걸어왔다.


왼쪽 공간에 빈틈을 잔뜩 보여주고는 내가 그곳으로 돌파하는 시도를 하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반 박자 빠르게 앞서 내 공을 커트해내거나, 자신들이 무슨 공을 소유한 것 마냥 잔발을 쳐가며 자신이 어디를 중점으로 수비를 하고 있는지 혼란을 주곤 했다.


즉 경지에 오른 선수들과의 일대일 상황은 남들이 보기엔 그저 공에 따라 몸이 반응하는 본능적 움직임으로 보이겠지만, 우린 서로 수십 수백 가지의 경우의 수를 머릿속에서 싸워가며 보이지 않는 수 싸움을 해왔고.


그 결과물이 관중들의 눈을 즐겁게 하는 하나의 퍼포먼스로 보여졌을 뿐이었다.


말이 길었지만, 내가 이렇게까지 길게 설명한 까닭은 지금 토니라는 루키 녀석이 겁도 없이 즐라탄에게 먼저 수 싸움을 걸어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실 난 토니의 그런 모습이 너무나 기특했다.

이 녀석의 그릇이 얼마나 클지 더욱더 재어보고 싶어졌다.


‘빅이어··· 아니 월드컵, 발롱도르까지. 어쩌면 불가능한 얘기가 아닐 수도 있겠어.’


나는 지금 내 축구 인생을 더 화려하게 장식해줄 내 영혼의 파트너를 눈앞에서 처음 마주한 그런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정말 대단해 토니 정말로 말이야!”


토니 녀석과 난 분명 방금 보이지 않는 머릿속의 영역에서 정확히 32가지의 공을 뺏고 뺏기는 수 싸움을 벌였다.


물론 그중 토니가 내 공을 빼앗은 경우의 수는 없었다.


하지만, 과연 토니가 무의식적으로 내 머릿속에 들어와 교감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지. 또한 그 속에서 자신이 공을 뺏는다는 경우의 수는 절대 존재하지 않았다는 걸 느끼고 있는지에 대해선 확실하지 않았다.


즐라탄이 광기 어린 미소로 섬뜩하게 토니를 쳐다보자 토니는 섬뜩한 표정을 지으며 즐라탄을 올려다보았다.


분명 자신보다 키가 작아 분명 내려다보았어야 할 즐라탄이었는데도 말이다.


토니가 위를 올려다본 이유는.


지금 토니의 눈앞에 보이는 허상.

꽁지머리를 한 신(神)의 형상이.


자신보다 아득히 높은 곳에서.

마치 자신의 역량을 시험하려는 듯.

사자의 눈빛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이게 대체?’


토니는 문득 신으로 보이는 형상이 즐라탄이라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화들짝 놀란 토니는 환각을 마주한 자신의 정신상태를 부여잡기 위해 고개를 빠르게 휙휙 저으며 다시 한번 즐라탄을 바라보았다.


방금 보였던 신의 형상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져있었고 토니의 눈앞엔 자신을 기특하다는 듯 바라보는 작은 즐라탄의 웃음만이 보일 뿐이었다.


토니는 방금 자신이 겪은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메테가 보았다던 환각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째선지 토니는 자기가 다음에 어떤 수비 경합을 시도하더라도 도저히 즐라탄의 공을 뺏어낼 수 없을 거라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즐라탄은 지금··· 최선의 수로 나를 상대하려는 게 아니야.’


토니는 침을 꼴깍 삼키며 계속해서 생각했다.


‘그렇다고··· 최강의 수로 날 상대하려는 것도 아니야.’


토니의 이마엔 어느새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지금 즐라탄은 날 시험하고 있어.’

.

.

.

‘나랑은 비교할 수 없는 아득히 높은 레벨에서.’


토니의 떨리는 눈동자를 바라보던 즐라탄은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혹시 내 공을 뺏을 수 있을 가능성은 발견했어?”


즐라탄이 자신에게 터프하게 말투로 물어보자, 토니는 방금 전까지 보여주던 떠는 모습은 온 데 간 데 사라지고 오직 자신감만이 남아있는 말투로 답할 뿐이었다.


“물론.”

“··· 뭐?”


즐라탄은 토니의 그런 답변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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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4화 : 팀의 에이스. 24.09.17 29 2 12쪽
3 3화 : 마이티 마우스(mighty mouse) 필립 람. 24.09.16 33 2 12쪽
2 2화 : 로센고드 출신. 24.09.15 49 2 11쪽
1 1화 : "즐라탄." +2 24.09.14 80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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