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잘 잡는 예쁜 여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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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채가
작품등록일 :
2024.09.15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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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5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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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장난(01)

DUMMY

불편한 몸뚱이였다.


포동포동한 허벅지. 말랑한 팔뚝. 얇고 투명한 피부. 가녀린 뼛골.


가슴이 큰 건 똑같았다. 단지 근육이냐, 지방이냐의 차이일 뿐.


가슴 빼고는 모든 것이 작았다.


채 155cm도 안 되는 작은 신장. 조막만 한 얼굴. 어린 아이 같은 손과 발. 오밀조밀한 이목구비.


일명 ‘숏스택’. 유행 지난 말로는 ‘베이글녀’. 천박한 말로는 <로리 거유>일까.


그럼에도 나는 꽤 잘 싸웠다.


그야··· 나는 파병과 특전사, 기갑수색대를 거친 베테랑이었으니까.



***



나에게 게임은 인생의 낙이었다.


머리에 총을 맞기 전까지는.


사격장 보수 공사를 한답시고 철판을 덧댄 게 문제였다.


태양이 끓던 더운 여름. 사격 훈련이 있었다.


나는 언제나 만발을 꽂았다.


그 날도 똑같았다. 내 총알은 정확히 표적을 때렸다.


단지 도탄되어 내게 돌아왔을 뿐.


오발 사고였다. 내 총으로 내 머리를 쏜 어처구니 없는 상황.


조각난 납탄이 뇌에 틀어박혔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심정지 상태.


군의관이 나에게 사망을 선고했다.


작달막한 30대 초반의 나이. 그렇게 나는 어이 없이 죽었다.


하지만 죽음이 곧 끝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나는 게임 속에서 부활했으니까.


심지어는 직접 플레이하던 캐릭터로 다시 태어났다.


기뻐할 일이냐고? 아니···.


최악의 환생이었다.


<하드코어 좀비아포칼립스 생존 게임>.


일명 <PZ 좀비>.


게임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내 캐릭터였다.


<로리 거유 트윈테일 바니걸수트 퇴역 군인> 여자 캐릭터.


이 정도면 그냥 천벌이 아닐까?


나는 왜 이리도 천박한 캐릭터를 만들고 말았단 말인가.


요컨대 게임에서까지 남자를 보기는 싫었다. 군대에는 수컷들이 아주 넘치도록 많았으니까.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나의 ‘예쁜 여캐’.


이왕 만드는 거··· 내 취향을 듬뿍 담아 만들었다.


그 취향이 <로리 거유 트윈테일 바니걸수트 퇴역 군인>이었을 뿐.


그 죄를 물어 <로리 거유 트윈테일 바니걸수트 퇴역 군인>으로 <하드코어 좀비아포칼립스 생존 게임>에서 살아가야 한다면 그건 너무 가혹한 형벌이 아닐까.


한 가지 다행인 점은··· 내가 캐릭터 특성으로 <퇴역 군인>을 찍었다는 점.


게다가 나는 실제로도 육군 기갑수색대 출신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생존은 몰라도 총질에는 아주 자신이 있었다.



***



환생 후 첫 날.

강변 마을. 감염 최초 지점.



“뒈져라! 좀! 제바알···!!”


야구 배트에 피가 잔뜩 묻었다.


바닥에 뻐드러진 시체를 후드려 팼다. 썩은 혈액이 온 사방에 휘날렸다.


커다랗기만 한 젖탱이에도. 새하얀 뺨에도 시뻘건 핏물이 마구 튀었다.


“후! 씨발!”


사람 한 명을 처죽였다. 정확히는 사람이 아니라 시체. 더 정확히는 걸어다니는 시체였다.


<이하루>. 별명은 원투데이.


항상 ‘군생활 원투데이하냐’며 지긋지긋하게 놀려먹히던 바로 그 이름.


그 본명이 이제는 <로리 거유 트윈테일 바니걸수트 퇴역 군인>의 닉네임이 되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나는 내 실명을 그대로 닉네임에 박아넣었으니까.


“후우···”


하루가 입에 담배를 물었다.


말보로 비스타 포레스트 미스트.


‘핑크색 말보로’라고 하면 이해하기가 쉬울까. 여캐라고 집에 있는 담배도 죄다 이 모양이었다.


하루가 성냥으로 담뱃불을 붙였다.


집 안을 온종일 수색했다. 그런데 하필 라이터만 없었다.


그 대신에 찾은 게 이 방풍성냥이었다.


다시 태어나서 가장 먼저 시작한 짓은 ‘루팅’.


서랍과 선반을 뒤졌다. 통조림, 생수, 공구, 무기, 기타 등등···. 생존에 필요한 물건은 모조리 쓸어담았다.


퇴역 군인 캐릭터였기 때문일까. 군용 더플백과 필드 자켓이 굴러다녔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군인 다운 물건이 있었으니.


COLT M1911A1 권총. 군에서는 ‘45구경 피스톨’이라고 불리는 그것.


‘모든 인류를 평등하게 만든 사뮤엘 콜트의 걸작’


나는 집에서 권총을 주웠다.


횡재였다. 나는 곧장 이 철덩어리를 바지춤에 집어 넣었다.


아니··· 정확히는 집어 넣고 싶었다.


문제는··· 바지가 없었다···.


“하···. 씨발···.”


내 캐릭터는 바니걸 수트를 입고 있었다.


매끈한 레오타드. 뿅뿅거리는 토끼귀. 귀여운 넥칼라와 리본타이. 섹시한 스타킹과 가터링.


그리고 존나 큰 젖탱이!


바지는 커녕 치마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레오타드의 엉덩이춤에 권총을 찔러넣었다.


탄력 좋은 레오타드. 귀여운 토끼 꼬리 너머로 살벌한 권총이 불뚝 솟았다.


“으하···!”


엉덩이살에 차가운 권총이 맞붙었다. 그 불쾌한 감각. 딱딱한 무게감.


기분이 바로 비참해졌다. 이렇게까지 해서 살아야 할까.


하지만 이 험난한 좀비 아포칼립스 세상에서 젖탱이만 큰 나의 작은 여캐가 살아남으려면···


아마도 권총은 필수겠지.


하루가 옷장에서 얻은 필드 자켓을 걸쳤다. 그리고 등 뒤에 더플 백을 둘러 멨다.


바니걸 수트와는 썩 어울리지 않는 기묘한 조합.


그럴 듯한 전투화를 꺼내 신고 택티컬 글러브를 착용했다. 피 묻은 야구 배트를 손에 쥔 내 모습은 단연코 기상천외.


하지만 예쁜 얼굴과 커다란 젖탱이가 있으니 그럭저럭 봐줄 만했다.


특히 이 바니걸 수트···. 작은 체구와 대비되는 언밸런스한 볼륨감. 폭력적인 바스트와 음란한 엉덩이가 매치되어 아주 천박했다.


좀비 잡기에는 부적절한 복장. 하지만 원래 예쁜 아바타가 성능도 좋은 법.


이 바니걸 수트에는 숨겨진 ‘치트키’가 있었다.



***



타앙!


“이 씨발 새끼가···!!”


사람을 죽였다.


이번에는 진짜 사람이었다.


걸어 다니는 시체가 아니라 진짜 사람. 목숨이 붙어있는 인간. 심장이 펄떡거리는 따끈따끈한 생명체.


좀비가 아니라 진짜 사람을 죽였단 말이다!


최초의 살인이었다.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고양감. 심장이 마구 뛰었다. 호흡이 가팔랐다.


좀비를 처죽일 때와는 느낌이 달랐다. 아드레날린의 과분비. 중독될 것만 같았다.


고작 방아쇠를 단 한 번 당겼을 뿐이다. 그걸로 목숨 하나를 갈취했다.


전지전능한 살인의 감촉. 혈액의 냄새에 취한 듯했다.


“후아아···.”


하루가 쓰러진 시체를 걷어냈다.


바스라진 뇌의 찌꺼기. 조각난 두개골. 벌컥벌컥 쏟아지는 핏물이 온 몸을 더럽혔다.


대충 한 번 망한 세상. 좀비들이 기어다니는 미친 마을.


이곳에서 젖탱이만 큰 작은 여캐로 살아가는 건 악몽 그 자체였다.


그래. 방금도 나는 좆될 뻔했다.


너무 안일했다. 좀비만 때려잡으면 어떻게든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가장 위험한 건··· 역시 좀비가 아니라 인간이었다.


<밴디트 플레이어>.


직역하자면 ‘강도 새끼들’.


하지만 내가 죽인 놈은 강도보다 더 심각한 악질 쓰레기였다.


이 새끼는 강도가 아니라 ‘강간마’였다.


좀비로 가득 찬 미친 세상. 바니걸 수트를 입고 다니는 기상천외한 여자아이가 눈에 띄었겠지.


“이, 있잖아···! 호, 혼자야···?”


비만한 신체. 기름진 면상. 지저분한 언행. 강간마에게 샘플이 있다면 이런 것일까.


손에는 기묘한 토끼탈을 들었다. 분홍색 털뭉치에 바보 같은 뻐드렁니. 우스꽝스런 토끼탈이었다.


“으엥? 저요?”


내 대응은 순진함을 넘어서 얼빵했다.


상대는 아무리 봐도 수상한 놈.


하지만 내게는 권총이 있었다. 믿는 구석이 있었단 말씀.


“여, 여자애 혼자··· 다, 다니면··· 위험해···. 아, 안전한 곳이 이, 있어··· 흐흐흐···”


놈이 토끼탈을 내려놓고 내게 다가왔다. 그럴 듯한 셸터가 있다며 나를 꼬드겼다.


순수한 선의일 수도 있지 않은가?


“와! 진짜요?”


원래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되는 법. 애초에 ‘생존주의자’란 것들은 좀 별났다.


게다가 내 알맹이는 본디 남자. 애초에 ‘강간당한다’는 가정은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순순히 그 돼지 새끼를 따라나섰다.


걸어서 약 5분. 셸터는 가까웠다.


“실례합니다···.”


외간 남자를 따라 발을 들였다. 어두침침하고 음습한 공간. 쿰쿰한 냄새가 코를 때렸다.


셸터는 꽤 그럴 듯했다. 잘 틀어막은 창문. 철로 박은 문짝. 지하실과 비상구. 잔뜩 쌓아놓은 식량과 식수까지···.


“와아! 여기서 평생 살 수도 있겠는데요?”


하루가 방글방글 웃었다. 그녀가 남자를 마주봤다.


그러자 이 강간마 새끼가 대뜸 문을 걸어잠갔다.


철컥.


“어, 어라···?”


그제서야 하루는 무언가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흐흐흐···. 마, 맞아···. 여기서 너는··· 나랑 평생 가, 같이 사는 거야···. 내 ‘부인’으로 말이야···.”


두개골이 울리는 듯했다. 부인···? 내가 잘못 들었나···?


“뭐, 뭐라고···?”


놈이 실실 쪼개면서 다가왔다.


‘이하루’ 인생 최초로 찾아온 정조의 위기.


“가, 가만히 있어···. 우흐흐···. 내가 영원히 해, 행복하게··· 해줄 테니까···.”

“자, 잠깐만···!”


이 강간마 씹새끼가 내 젖탱이에 손을 집어넣었다.


“으아···!”


깜짝 놀란 내가 뒷걸음질쳤다. 그러다가 그만 문턱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아야야야···.”

“스, 스스로 다리를··· 벌리다니···. 으흐흐흐···! 이 음란한 년···!”


나보다 2배는 큰 남자. 나는 놀란 병아리처럼 강간마를 올려다봤다.


“으윽···! 으와앗···! 씨발···! 이게 무슨 짓이야···!!”


놈이 그대로 나를 덮쳤다···!


“처, 천박한 몸뚱이에 음탕한 옷! 따, 따먹어달라고 다, 다리까지 벌렸잖아···!! 네년 소원대로 해주는 거야···!!”


놈이 내 레오타드를 벗기려 들었다. 두껍고 거친 손아귀가 내 허벅지를 붙잡았다.


멍이 들 정도로 강한 악력. 그 상태로 내 사타구니를 찢으려 들었다.


“으앗···! 그, 그만해···! 안 돼애!!”


이대로 있다간 진짜 강간당한다···!


아찔한 위기감. 등골이 서늘했다. 놈이 내 손목을 붙잡았다.


힘으로는 결코 저항할 수 없다는 절망감. 심장을 죄는 공포감이 호흡을 틀어막았다.


하지만 이 강간마 새끼가 간과한 사실이 있었으니···


내 토끼 꼬리 안에는 권총이 있거든···!!


“이 씨발 새끼가아아···!!!”


타앙!


단 한 발이면 충분했다.


목숨을 잘라버렸다. 턱밑에 총구를 처박고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두개골을 깨부쉈다. 0.45인치짜리 ACP 권총탄. 둥그런 납조각이 강간마의 뇌에 틀어박혔다.


성대한 살인. 신선한 핏물이 온 사방을 뒤덮었다. 죗값을 치른 무거운 시체가 내 몸을 짓눌렀다.


“우으윽···. 후윽···. 흐아아악···.”


답답했다. 아무래도 커다란 젖탱이 때문에 숨이 막힐 것 같았다. 그 위에 고도 비만 시체 한 구가 쌓였으니 폐가 짜부라질 지경이었다.


“아우욱···!”


간신히 시체를 걷어냈다. 나보다 족히 두 배는 커다란 체구. 하지만 총탄 한 발에 ‘평등한’ 죽음을 맞이한 강간마 새끼.


‘신은 인간을 창조했고, 링컨은 인간을 자유롭게 했으며, 콜트는 인간을 평등하게 만들었다.’


나는 콜트 권총의 슬로건을 되뇌었다.


한 동안 머리 속이 멍했다. 처음 해본 살인. 게다가 처음 당할 뻔한 강간.


···아직도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아우으으···! 개새끼···!!”


언제까지나 충격에 빠져있을 수는 없었다.


퇴역 군인 캐릭터의 특성은 ‘무덤덤함’. 웬만하면 정신적 충격에 빠지지 않았다.


게다가 하루는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이었다. 공수강하에 천리행군까지 전부 버텨냈다.


물론 강간은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다행히도 진짜로 당하기 직전에 놈을 죽여버렸다.


“우으···”


하루가 흙먼지와 피를 털었다. 아까 부딪힌 상처가 제법 뻐근했다.


하루가 겨우 정신을 차렸다. 숨을 고른 그녀가 셸터를 살폈다.


정조의 위기와 살인의 대가로 얻은 전리품···.


“나쁘지 않은데···?”


셸터는 꽤 그럴 듯했다. 이 정도면 여기서 족히 몇 달은 버틸 수 있을 것이다.


무슨 자연재해라도 일어나지 않는 이상···.


“후우!”


하루가 마음을 다잡았다.


우선 이 시체부터 치우고··· 집안을 청소해야겠다.


그나저나 이 웃긴 토끼탈은 도대체 뭐지? 먼저 납치당한 사람이라도 있는 건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쾅! 콰앙! 콰광!


···자연재해가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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