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한기 - 상처입은 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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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클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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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5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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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8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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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수사(3)

역사적 사실에서 모티브를 따왔으나 실제 역사와는 지명, 인물 등은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DUMMY

"생각보다 빨리 왔구만"


차가운 겨울공기도 무색할 정도의 열기가 끓어오른다. 좁은 공방과 연결된 거대한 화로에서 뿜어대는 열기가 사방에 출렁이는 가운데 상외국 최고 대장장이 무톤은 숯검댕이가 된 얼굴로 반갑게 아연을 맞았다.


"천 가리개와 간밤에 혈투를 벌였다는 소식은 들었내만...멀쩡해 보이니 다행이야"

"무톤 아저씨의 개소리를 들으니 뭔가 구수하고 좋네요"


아연은 심드렁한 얼굴로 공방의 구석에 놓여진 작은 의자를 끌어와 앉았다. 뒤를 따라 준로가 들어오자 무톤은 눈쌀을 찌푸렸다.


"도대체 저 도련님은 왜 데리고 다니는 거야? 별로 도움이 되는것 같지 않던데"

"...다 들립니다. 그나마 제가 있으니 조가 최소한의 운영이 되는 거라고요"


준로가 능글맞게 아연의 옆에 서자 무톤은 헛기침을 한 후 뒤를 돌아봤다. 역시 숯검댕이를 한 소년이 후다닥 달려와 천에 덮힌 쟁반을 들고왔다. 어디서 많이보던 천의 태양문양. 무톤은 짖궂게 웃었다.


"이런 문양을 좋아하는것 같아 준비해봤지"

"역시 지나치게 구수하시구만"


아연은 짜증난다는 얼굴로 한숨을 내쉬고는 쟁반을 덮은 천을 바닥에 내버렸다. 은제쟁반에 담긴 산산조각이 난 장권총이 보인다. 산산조각. 아연이 얼굴이 싹 굳었다.


"뭐야, 실력도 구수한 편이었어요? 이거 고쳐달라고 부른거잖아요"

"일단 내 말을 들어보라고"


무톤은 입맛을 다시며 아연의 맞은편에 앉았다. 웃통을 벗은 그의 우락부락한 덩치가 오늘따라 왠지 초라해 보인다. 그는 50이 넘은 사람치고는 박력있는 남자다. 신분도 귀족에 준할 정도로 높은 대장장이의 우두머리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소심한 소년같은 얼굴이다.


그의 변명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이 장권총은 구하기 어려운 대진제국 남부형 장권총을 무려 보름간 떼우고 연결한 걸작이라고. 장권총 특유의 중장거리 공방은 물론 근접전투에서도 활용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모든 내구성을 극대화시킨 미친 무기야. 이런건 신지도 구하기 어려울거다. 알지? 내가 진짜 자네에게 빚진 것만 없으면 절대 이런거 안하는거. 그런데...그런데 도대체 뭐에 당한건지 모르겠지만 아주 박살이 났어. 대진제국에서 막 건너온 신형 총기에서 동시에 총알을 퍼부어대도 이렇게 박살나지는 않아. 마치 마귀의 이빨이 물어 뜯은 것 같더라고. 정말 오랫동안 이녀석만 지켜봤다고"

"...그래서요?"


아연은 그러나 심드렁했다. 통하지 않네. 무톤은 잠시 뜸을 들이고는 짧게 말했다.


"그러니까..이건 못고친다는 뜻이지"


침묵이 흘렀다. 싸늘한 적막. 아연이 고개를 푹 숙이자 무톤은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그..그게 파..파괴된 단면이 매끄럽게 잘린것도 아니고 무슨 화약이 가까이서 터진것처럼 산산조각이 났어. 강선과 총신은 물론 격발장치까지 다 박살났다고. 이런건 마한 어디를 가도 고칠 수 없을거야. 아니지. 북방의 대국 조선? 부여? 대진제국 대장장이 할애비가 와도 복구할 수 없다는 것에 내 공방 전체를 걸지. 아마 아진의선께서 백일밤낮을 기도해도 무리일거다"

"돌아버리겠네. 진짜 5년전에 죽게 내버려 두는건데"

"...그, 그 대신"


절망에 빠진 아연이 땅속 깊숙히 꺼져들어갈 표정으로 입술을 파르르 떨 때였다. 무톤이 다급히 신호를 보내자 멀찍이 떨어졌던 소년이 다시 천을 덮은 쟁반을 가져왔다. 이번에는 아무런 문양도 없는 천이다.


"이건 뭐에요?"

"뭐랄까...걸작을 넘어 예술 그 자체지"


목소리가 간신히 진정된다. 무톤은 자신만만한 얼굴로 손수 천을 걷어냈다. 동시에 그의 뿌듯한 얼굴 아래로 기존 아연이 가지고 있던 장권총과 비슷한 형태와 크기의 총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만 특이한 점은 있었다. 총구가 두개였다.


"요놈은 아마 마한 전체에서도 본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총기가 발달한 상외국 정도나 되니까 어찌어찌 구해지는 물건이지. 대석국 상인들한테 정말 어렵게 구한걸 자네의 몸과 버릇에 맡게 개조한거야. 쌍구형 장권총이네"


무톤은 새로운 장권총을 집어들고는 그 묵직한 무게에 흐뭇해했다.


"무게는 좀 나가지만 여자의 한계를 뛰어넘는 자네의 괴력으로 충분할거고. 무엇보다 비밀무기가 마음에 들지 않나? 바로 아래쪽 달린 총구지. 이제 막 전장식 장총에 익숙해지는 놈들과는 차원이 다른 세상을 보게될걸?"

"총구가...두개?"

"백문이 불여일견이지"


무톤은 그제야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아연의 앞을 지나쳐 뒷쪽의 작은 공터로 향했다.


공방안의 화로와는 비교할 수 없는 커다란 대형 고로가 뜨거운 열기를 내뿜으며 요동친다. 눈을 가리는 수증기와 사방에서 덜그럭거리는 철제 소음에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다. 당연히 총기 연습에는 최적화된 곳. 무택은 새로운 장권총을 100보 거리의 항아리 무더기로 겨눴다.


"연속 6연속 격발이 가능하네"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총구에서 연속으로 불이 뿜어져 나왔다. 물론 연속이라 부르기는 애매한 간격이지만 새로운 장전이 없어도 총알이 나가는 것은 처음보는 장면이다.


그 직후 100보 거리의 항아리 무더기가 펑펑 소리를 내며 터져 나갔다. 준로가 선체로 박수를 쳤고, 무톤은 아직 끝이 아니라는 듯 씩 웃었다.


"그리고 마지막 한발"


6연속 격발이 끝난 직후 무톤은 두터운 장갑을 쓴 왼손으로 아래위 총구의 자리를 바꿨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표정. 둔탁한 기계음과 함께 방금 6연속 격발을 끝낸 가는 총구가 아래로 내려가고 이번에는 두배는 넓은 총구가 위로 올라왔다.


"이 놈이 진짜 물건이지"


무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6연속 격발과는 차원이 다른 굉음이 울렸다. 방심한 얼굴로 무톤을 쳐다보던 아연이 깜짝 놀라 한발 물러날 지경이다. 동시애 매캐한 검은 연기가 폭발적으로 풍기고 사라졌다.


"이럴수가"


시계가 걷혔다. 그리고 아연은 믿기 어려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당연했다. 항아리들이 모두 사라졌다! 방금까지 항아리 파편들이 있던 곳은 마치 거인이 다가와 큰 주먹을 내리 꽂은것처럼 움푹 패어져 있었다. 무톤은 위풍당당하게 말했다.


"....왠만한 작은 초가집 하나는 눈 깜짝할 사이에 날려버릴걸? 탄착지점 근방 10보는 말 그대로 증발할거다. 그래서 난 이 특별한 탄알을 증발탄이라 부르기로 했지"

"증발탄..."

"물론 소소한 약점은 있어. 예를들어 증발탄을 쏘려면 6발의 일반 총알을 모두 쓴 후 뜨거워진 총신을 손으로 잡고 바로 뒤집어야 한다는 것과 증발탄 한발을 쏘면 총알을 채워도 반각은 식기를 기다려야 하고, 또 어마어마하게 고장이 쉽게 나는 뭐 그런...소소함?"


무톤이 재빨리 장갑을 낀 손으로 장권총을 잡고는 흙바닥에 던지자 소년이 물수건을 들고와 덮었다. 치이익 소리가 나며 총 전체에서 수증기가 피어나기 시작한다.


그러면 그렇지. 준로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그러나 아연은 이미 홀린 얼굴이었다. 왠지 잡으면 화상을 입을 것 같은 장권총을 멍하니 바라보며 무톤에게 말했다.


".....얼마에요?"

"파괴된 자네 총의 잔해를 준다면 별감직 네달 월급으로 퉁치지. 실전에서 사용해보고 어땠는지 자세히 이야기 해준다면 두달치. 단 비밀이야. 소문나면 골치 아프다고. 알지?"

"거래를 받아들이죠"

"좋아"


두 사람은 서로 만족스러운 얼굴로 악수했다. 그러나 준로는 입맛을 다실 뿐이었다.


"이거 실전에서 쓸 수 있는건지 모르겠네. 내구도는 좋아서 근접총투술에는 괜찮아 보이지만 너무 무겁고 무엇보다...손 다 타버릴것 같아요"


그러나 준로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결국 절래절래 고개를 흔들며 몸을 일으켰고, 눈치를 보던 소년은 커다란 쇠집게로 여전히 수증기를 내뿜는 장권총을 조심스럽게 들어 어디론가 가져갔다. 그러는 사이 몸을 돌려 잠시 고로를 살피던 무톤이 입을 열었다.


"아, 그 무뚝뚝하고 차가운 별감 나으리 동생도 방금 다녀갔어. 저번에 샀던 연습용 검이 벌써 부러졌던걸? 그 대단하다는 석성준로의 비풍대에 들어가더니 정말 온 힘을 다해 수련하는것 같더군. 소문에 석성준로 대단주가 직접 훈련시킨다는 말도 있어"

"아청이가 다녀갔어요?"

"그래도 유일한 남매인데 서로 교류는 좀 하고 지내지 그러나. 얼굴이 아주 핼쓱해졌어"


무톤은 심드렁한 얼굴로 고로에서 막 꺼낸 쇠뭉텅이를 아래로 꺼냈다. 그리고는 커다란 망치로 연신 두들기기 시작했다.


"철도 사람도 다 같아. 지나치게 두드리면 부러지는 법이지. 별감 자네는 그래도 저 실없는 놈 덕분에 많이 식혀진 것 같지만...아청은 아닌것 같아. 뭔가 독기가 서려있다고 할까"

"석성가문에 대한 원한이 깊을 테니까요"


바로 그때 잠자코 듣던 준로가 희미하게 웃었다. 그는 잠시 숨을 고르고는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아연과 무톤을 향해 말했다.


"저야 별볼일없는 놈이라 별감께서 거두어주셨지요. 별감께서 가문의 일은 잊고 아껴주시는 별감이 계시니 전 이대로 만족합니다. 그러나 아청은 다르겠지요. 무슨 기분일지 상상도 가지 않아요. 그 누구보다 석성가문을 증오하면서도...그 가문의 후계자 밑에서 피를 토하며 수련하는 마음을"


준로의 말에 무톤은 헛기침을 하며 망치질에만 몰두하기 시작했다. 괜한말을 했다는 얼굴. 그때 아연이 준로의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왔다. 그녀는 준로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빙그레 웃었다.


"...별감님"

"뭔가 오해하는 것 같군"

"네?"

"나 가문의 일 안잊었다"


아연은 무뚝뚝한 얼굴로 준로를 내려다 봤다. 손아귀의 힘이 강해진다.


"건국전쟁때 우리 가문 귀족으로 만들어준다고 약속하고 무려 15년간 피 빨아먹은 석성가문에 대한 원한은 나도 깊다고. 덕분에 가주이신 우리 아버지 지금도 중병이시잖냐"

"별감. 이럴때는 그냥 훈훈하게"

"엄청나게 부려먹고 뽑아먹을거야. 하여튼 이놈이 또 슬슬 판 흔들려고 하네. 하여튼 방심할 수 없는 놈"


아연의 말에 망치질을 하던 무톤이 킥하며 웃었다. 준로는 헛기침을 했고, 아연의 말이 이어졌다.


"어쨋든 무기도 얻었겠다. 저녁이 되면 사건현장으로 가자고. 그 전에 내 부관으로서 해줘야 할 일이 있다"

"뭡니까?"

"돈좀 빌려줘. 너 석성가문 서자주제에 돈은 많잖아"


그녀의 뻔뻔한 말에 준로는 발끈했다.


"잊으셨어요? 운영비도 없다고요!"

"내 넉달치 월급 빌려줘. 금방 갚을게"

"지금까지 빌려가신것만 2년치입니다 별감! 그리고 신형 장권총은 모종의 계약으로 두달 월급으로만 받겠다고 들은것 같은데요?"

"나머지 두달치 월급은 운영비 써야해"


아연은 황당한 표정을 짓는 준로의 어깨를 토닥이고는 씩 웃었다. 그러나 준로는 아연의 다음말에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이제 정보원 노파 이제 두명 고용할거거든"

"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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