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부 헌터의 여행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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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부른콩
작품등록일 :
2024.09.17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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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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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7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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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성좌들의 스트리머

DUMMY

#1화



“이미 손 쓰기에는 늦은 것 같습니다.”


꿈 앞에서 모든 게 무너진 경험이 있는가. 나는 지금 그 경험을 생생하게 하고 있다.


“헌터로 활동하시는 분들이 이런 경우가 많습니다. 아무래도 게이트 속 독소도 많고 환경 자체가 위험하니 몸을 혹사시킬 수 밖에 없잖아요? 아무리 헌터라고 해도 게이트에 매주 세 번 이상 들어간다면, 무리가 올 수 밖에 없습니다.”


의사가 길게 말했지만, 결국 결론은 내가 게이트에서 몸을 혹사하고 그곳의 나쁜 독소가 쌓여 병에 걸렸다는 것.


말 그대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마나 중독증이라는 말씀이시죠? 손 쓸 수 없을 만큼 전이됐고요.”

“그렇습니다. 환자님 경우는 조금 특이한 케이스로···고통이 아예 없는 중독증입니다. 가끔 이런 분들이 나오죠. 그래서 이렇게 손 쓸 수 없이 커진 것이고요.”


원래 마나 중독증은 조금만 시작돼도 고통이 퍼진다.

원래 병원에 가서 초기에 약물로 잡아야 하는데, 나는 특이한 사례라 고통을 못 느끼고 그 때문에 손 쓸 수가 없단다.


당장이라도 살려달라고 빌고 싶지만, 그렇게 한다고 이 병이 나아질 수 없다는 건 잘 알고 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얼마나 더 살 수 있는지 물어보는 것 뿐.


“사실 마나 중독증에 걸린 환자들이 사망하는 경우는 둘입니다. 상상하기 힘든 고통으로 오는 쇼크사, 아니면 천천히 전이되어 고통 없이 뇌가 터져 쇼크사. 둘 중 하나인데, 김진우 환자님은 후자이니···1년 정도는 남으셨습니다.”


그나마 하늘이 내린 은혜는 고통 없이 나를 보내주는 것일까?


“···선생님, 가망은 없겠죠?”


없다는 걸 알면서도 구질구질하게 물어보게 된다.


“현대 의학으로 약물이나 수술은 수명을 조금 늘릴 뿐, 완치는 안 됩니다. 죄송합니다.”


나는 이 현실에 수긍했다. 사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빚을 갚기 위해 C급 헌터로서 게이트를 전전했으니까.

몸을 돌보지 않고 돈만 쫓아온 결과였다.


나는 그 길로 눈물을 참은 채 병원에서 나왔다.

C급 헌터로서 그 누구보다 게이트를 토벌하러 다녔던 것 같다. 재능도 없는 놈이 죽을 위기 여러번 겪지 않았던가.

이게 마지막 위기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조금 편안한 느낌도 든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막상 병원 앞에 나오니 이렇게 눈물이 흐를 수가 없었다.


‘제기랄.’


나는 병원에서 조금 거리 있는 공원에 걸어가 앉았다. 왼손과 오른손에는 각각 소주가 한 병씩 들려있었다.


“풍경 하나 더럽게 예쁘네.”


대한민국의 사계절은 참 아름답다. 매일매일이 자연과 햇빛, 날씨를 통해 보여주는 풍경이 다르다. 마치 살아 움직이는 미디어 아트 같다.


오늘은 봄이었고, 벚꽃이 휘날리며 햇살이 구름 사이로 살짝 비친다. 마치 어린아이가 숨바꼭질하는 것처럼 햇살이 한번 덮쳤다가 사라지고, 시원한 바람이 분홍색 하얀색 등 다양한 색의 벚꽃을 길바닥에 뿌린다.


우울한 내 현실과 대비되는 길거리가 보기 좋았다.

물론 나는 곧 살아 움직이지 못하고 저 풍경도 못 보겠지만.


‘으으, 그런 생각 하니까 또 가슴이 아리네.’


나는 소주를 들이켰다.


쓰다.

평소보다 더 쓰다. 인생이 쓰다고 술이 단 건 아닌가 보다.

쓴맛이 싫지만은 않았다. 그나마 내 인생의 쓴맛을 위로해 주는 쓴맛이랄까. 뭐, 그냥 알코올이 돌아서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겠지만 어쨌든.


“후우···이제야 꿈을 이룰 수 있나 싶었는데.”


우리 집은 찢어지게 가난했다.

어릴 적 기억은 별 거 없다. 기초수급자 부모님이 나만 두고 도망가셨고, 중학생 때부터 고아로서 살았으니까.

성인이 되자마자 이 알바 저 알바를 전전하다가 사기 당해 빚도 생겼고, 헌터로 각성한 후에도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빚을 갚지 못해 몸을 혹사시켰다.


내 꿈은 그저 빚 다 갚고, 작은 음식점 하나 차리는 거였다. 처음에는 헌터로서 계속 활동할까도 생각해봤지만 재능 없는 C급 헌터가 헌터질 하면 얼마나 하겠는가?


그냥 빨리 빚 갚고, 작은 음식점 하나 차려서 가끔 여행 다니는 것.

나 버린 부모님 보란듯이 잘 사는 게 내 꿈이었다.


“이제는 그것도 못하게 생겼네, 헌터로 처음 각성했을 때만 해도 금방 행복해질 줄 알았는데.”

“짐꾼이여? 어쩐지 몸이 좋더라니.”


소주 한 병을 혼자 비웠을 무렵, 내 옆에 노인 한 분이 앉으셨다. 이분도 두 손 가득 막걸리를 들고 계신다.


“합석해도 되지?”


나는 다 포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내 성격이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게다가 이미 곧 죽는 마당에 할아버님께 인생 하소연 한 번쯤 해도 되지 않겠는가.


“젊은이가 무슨 이유로 그렇게 우는지 물어봐도 되는감?”

“하하- 좋죠.”


나는 내 인생을 마구 털어놓았다.

곧 이 세상에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창피함 같은 건 없었다. 그저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던 내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편했다.


지금껏 참은 부모 욕부터 힘들었다는 하소연 같은 걸 다 할 수 있어서 좋았다.


“고생 많이 했구먼.”


노인의 위로 한마디 한마디가 참 몸을 붕 뜨게 만드는 듯했다.


몸과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이다. 매일 불편했던 내 마음이 조금 편해지자, 별것 아닌 이야기들도 쏟아내게 된다.


“어르신, 제가 헌터로서 재능은 없었는데 근성 하나는 최고였습니다. 일주일에 한번 돌기도 어려운 게이트를 세번씩 돌았으니까요.”

“역시, 딱 몸 보니 그래 보이는구먼.”


나는 어린아이처럼 웃으며 주절주절 떠들었다.


“제가 요리를 잘하거든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식당 사장이 꿈이었으니까요. 그래서 매일 헌터들한테 웃으며 인사하고, 토벌 끝나면 같이 요리도 해 먹고 그랬어요. 그랬더니 보수도 빨리 벌리더라고요. 저 데려다니는 헌터들도 많이 생기고.”

“나라도 데리고 다녔을 거네!”


이런 간단한 호응에 내 입꼬리는 내려갈 줄도 모르고 계속 말을 이었다.


“끌끌, 목표가 있으면 그렇게 되지. 아끼며 돈 모으는 것도 재밌었을 게야. 나도 그런 경험이 있거든.”

“맞아요. 먹는 거 아끼고 옷 사는 돈 아끼고···그런데 재밌더라고요. 나중에 목표를 이룰 미래를 생각하니 그저 행복했어요.”


매일 밤, 자기 전 서울 번화가의 식당 사장이 된 나를 그리는 건 행복했다.


가난했기에 여유롭게 살고 싶었고, 작은 건물 하나 사서 식당을 해야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그래서 재능 없는 헌터 소리 들으면서도 억지로 헌터들과 친해지고 비위 맞추면서 게이트를 돌았던 거다.


이게 내 인생을 뺏어갈 악수가 될지 누가 알았겠는가.


“···참 불쌍하고 대단한 청년이구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심 이 노인이 조금 더 나를 위로해주길 바라고 있었다.


“···안타깝구만.”

“그나마 다행인 건, 죽기 전 마지막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거죠.”


식당 사장도 좋지만, 나중에 노후에는 혼자 여행 다니며 배낭여행을 하고 싶었다. 산길을 다니며 홀로 요리해서 밥 해 먹고 캠핑하는 건 나름 재미있을 것 같았기 때문.


“여유롭지 않고 노년도 아니지만···그래도 마지막 꿈은 이루고 행복하게 가고 싶어요. 살면서 여행 한번 가 본 적 없어서, 마지막은 정말 행복하게 원 없이 놀아보려고요. 흐흐.”


이 웃음만큼은 진심이었다.

나는 아직 떨어지는 벚꽃을 가만히 보았다.


“1년이면···그래도 나뭇잎 떨어지는 건 볼 수 있겠네요. 그럼 만족해요. 고통 없이 갈 수 있는 것도 축복이고···한 계절을 다 볼 수 있잖아요.”


물론 이걸 내년부터는 못 본다는 게 조금 아쉽지만.

벚꽃이 날리고 따스한 햇살이 있는 봄을 보낼 수 있다.


뜨거운 여름 낮 계곡에서 수영을 할 수 있고, 가을에 단풍잎이 쫙 깔린 거리를 걸을 수 있으며 잎이 떨어지는 걸 보고 위로받을 수 있다.


그래, 그러면 좋은 인생이겠지. 인생의 목표 하나만 달성해도 만족할 생각이다.

평소에는 거들떠 보지 않던 자연에 미련을 갖게 될 줄이야.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우···감사합니다. 어르신. 이렇게 말하니까 되게 편해지네요. 현실에 수긍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편해졌어요.”

“자네는 정말 이 시대에 보기 힘든 대단한 사람이야. 사실 나도 시한부라네. 나는 모든 걸 즐기고 성공도 해봤으니, 이제 죽는 것에 미련이 없지.”


그 말에 내가 어르신을 놀란 눈으로 보았다.

이런···똑같은 상황에서 내 긴 얘기를 들어주셨다니. 내가 어르신 이야기를 듣는 것도 바쁠 텐데.


“그렇게 미안하고 슬픈 눈 할 필요 없네. 자네와 대화하는 게 참 좋았어. 나는 정말 미련 없기도 하고.”


그는 나의 등을 두들겨주었다.


“내 행운을 몽땅 자네에게 주겠네. 내 힘, 행운, 모든 게 자네에게 깃들 거야.”


행운과 힘을 주겠다는 게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대충 의례적인 말이라고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하하.”

“그리고 꼭 자네의 여행을 영상으로 남겨. 내가 인생에서 가장 후회 안 하는 게 바로 기록을 남긴 거라네. 자네도 천천히 여행 다니는 걸 영상으로 남겨보게나. 녹화를 틀어놓고 혼자 주절주절 떠드는 거지. 미안했던 사람에게 한마디, 싫었던 사람에게 한마디. 그런 거 있지 않은가.”

“···진짜 좋을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


[성좌, 관망의 신이 생명력을 모두 소진한 후 곧 사망합니다.]


관망의 신. 그는 진우과 방금 전까지 이야기한 노인이었다. 관망의 신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다른 차원을 구경하고 이동할 수 있던 그는, 몇천년을 살고 자연스럽게 죽기 직전의 길까지 몰아졌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오랜만에 지구에 왔는데 석원을 만난 것이다.


‘꼭 살아라.’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 죽음을 맞이했다.

그는 마지막 순간에 석원에게 자신의 가호를 내렸고, 그 순간.


[성좌, 관망의 신의 가호를 받았습니다!]

[이레귤러로 각성했습니다!]

[이레귤러 - 성좌들의 스트리머.]


진우는 자신의 여행을 성좌들에게 방송으로 보여주는 스트리머가 되었다.


[방송이 곧 시작됩니다!]

[소수의 성좌들에게 방송 알림이 전송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의 앞에 방송이 곧 시작된다는 시스템 메시지가 떴다.


“아니 잠시만, 이게 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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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A급 게이트 NEW +1 10시간 전 18 2 12쪽
2 A급 게이트 24.09.18 39 2 12쪽
» 성좌들의 스트리머 +1 24.09.17 57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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