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X용사X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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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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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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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8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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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DUMMY

1화.


작은 창밖으로 보이는 것이라고는 온통 해바라기뿐인 평원의 한 가운데.

평원의 지평선 끝에 상아색 벽돌을 쌓아 지어진 푸른 지붕의 저택이 있다.


“네로 도련님. 아침이에요. 일어나세요.”


“콜록... 벌써 아침인 건가...”


햇살을 가리는 커튼을 거두며 아침을 밝혀주는 시녀로 인해 잠에서 깨어난 소년.

네로 폰 그레이라는 이름을 부여받고 태어난 소년은 대륙 변방의 작은 귀족 가문인 그레이가(家)의 막내아들로 어려서부터 몸이 약했던 탓에 늘 방안에 틀어박혀 책을 읽는 것이 전부였던.

말 그대로 온실 속 화초의 삶을 살았다.


‘나가고 싶다...’


그레이 가문의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농사를 가업으로 삼았다. 그렇기에 건강한 육체와 강인한 체력은 그들이 선천적으로 갖춰야 했던 기본 소양이었지만 애석하게도 네로에게 주어진 육체는 그와는 거리가 멀었다. 남들처럼 자유로이 달릴 수 없는 왼쪽 다리와 피를 원활하게 전신에 공급하지 못할 정도로 선천적으로 약했던 심장을 지니고 있었고 햇빛을 받으면 살갗이 타들어가는 고통에 자유로이 밖을 돌아다닐 수도 없었다.


마력을 동력으로 심장의 순환을 보조하는 기구와 목발 없이는 집안을 돌아다니기도 힘든 몸.

그렇기에 소년은 그 누구보다 자유를 갈망했고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했다.


“나는 언제쯤 형님, 누님들처럼 될 수 있을까? 내 몸이 낫는 날이 올까?”


방안에 놓인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본 그는 우울함에 나지막이 읊조렸다.

하얗다 못해 창백한 피부는 까무잡잡한 피부색의 형제들과 같이 있으면 더더욱 창백하게 보였고 작고 왜소하고 한없이 연약한 자신의 육체와는 달리 건장하고 건강한 육체의 형제들과 같이 있으면 더욱더 초라해 보이는 자신의 몸뚱어리가 너무도 싫었다.

소년에게 있어 가문의 일원으로서 남은 것이라고는 잿빛의 머리카락뿐이었다.


“도련님. 너무 괘념치 마세요. 언젠가는 꼭 나을 거예요.”


하루의 대부분을 자신의 방안에 틀어박혀 있는 네로를 위로하는 것은 그의 시녀인 사니였다. 네로가 태어나 살아온 13년간 언제나 그의 곁에서 그를 돌봐주는 시녀 사니는 자유로이 움직이지 못하는 네로를 위해 바깥의 정취를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도록 저택 평원의 해바라기 한 송이를 꺾어오곤 했다.


“고마워, 사니.”


그녀가 해바라기를 건네줄 때면 마치 그녀의 주홍빛 머리칼로 인해 타오르는 석양 앞에 홀로 피어난 해바라기처럼 보였다.

언젠가는 자신도 밖으로 나가 마음껏 태양을 보고 싶다는 소망을 담아 건네받은 해바라기를 화병에 꽂아 소중히 보관하는 네로였다.


“이것은 그저 그런 해바라기가 아니에요.”


그녀가 건네준 해바라기는 여타 해바라기와는 달리 수술이 도톰하고 폭신했으며 중앙에서부터 피어오르는 담백한 냄새는 꽃향기라고 하기에는 조금 이질적인, 금방이라도 허기가 지게 만드는 맛있는 냄새를 풍겼다.


“가문의 상징이자 도련님의 정체성입니다.”


사니가 네로의 손을 잡고 그의 손바닥에 해바라기를 흔들어 털어내자 씨앗 대신 쌀이 떨어져 나왔다.

네로의 손바닥에서 튕겨져 나온 쌀은 바닥 이리저리로 흩어졌다.


“알고 있어.”


한없이 가벼운 쌀이었지만 손안에 수북이 쌓인 쌀은 어째서인지 가볍게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쌀 한 톨, 한 톨에게서 느껴지는 무게는 가문이 일궈낸 시간의 무게와도 같았기에.

언젠가는 다른 형제들처럼 가업을 이어가겠노라 소년은 다짐했다.


***


멈출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 거센 눈보라는 지면 위에 두텁게 쌓인 눈을 걷어내고 쌓기를 반복하고 풀 한 포기 자라기 힘든 황량한 환경 속 새하얀 눈 속에 무언가가 파묻혀있다.

거센 바람이 두껍게 쌓인 눈을 조금 걷어내자 눈 위로 형태를 보였다.

그것은 누군가의 팔이었다.

동상에 걸려 빨갛다 못해 점점 색이 파래지고 있는 상태의 팔.


이런 날씨에 눈에 파묻혀 있는 그런 것은 보통 시체로 통일해서 불렀다.

하지만 그것은 악몽을 꾸기라도 하듯 조금씩 몸을 움찔거렸고 점차 움직임이 커지며 자신은 살아있다고 외치는 것처럼 격한 생명활동의 징후를 보였다.


“커헉...!”


이윽고 파묻혀 있던 얼굴이 막혀있던 숨을 트며 드러냈다.

눈 속에 묻혀 있던 것은 다름 아닌 잿빛 머리의 소년. 네로였다.

팔에 힘을 주어 일으키자 파묻혀있던 그의 앙상한 몸이 모습을 드러냈고 눈 위에 앉아 그간 마시지 못했던 공기들을 가쁘게 들이 마시고 내쉬었다.


“사... 살아있는 건가?”


차디찬 공기가 폐 속으로 깊이 들어갔다. 코와 입안에 눈과 함께 머금은 공기들로 하여금 소년은 자신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깨달았다.

황급히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본 그는 자신의 시야에 들어오는 광경을 넋이 나간 채로 보았다.


“여긴...”


방금까지 꾸었던 꿈과는 다르게 해바라기는커녕 풀 한 포기도 보이지 않는. 눈앞에 보이는 것은 새하얗게 펼쳐져 있는 광활한 눈밭뿐이었다.

참새가 지저귀는 소리도, 열심히 밭을 매며 땀을 흘리는 농부들의 힘찬 노동요도 없었다. 들리는 것이라고는 매섭게 휘몰아치는 칼바람들이 멍하니 서 있는 자신을 스쳐 지나가는 소리뿐이었다.


살을 에는 차가운 냉기가 피부 곳곳에 스며들자 이곳이 대설원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어디에 있지?”


네로가 쓰러지기 직전까지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처형자들의 감시와 인도 하에 매서운 눈보라가 몰아치는 대설원을 줄지어 걸어가던 죄수들의 행렬. 그들과 함께 네로는 그 행렬 속에서 불편한 다리를 이끌며 간신히 발을 맞춰가며 걷고 있었다.


왜 자신이 그들 틈에 있었고 쓰러진 이유에 대해서는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탓인지 기억들이 산산이 부서져 희뿌연 조각이 되었기 때문에 명확하게 알 수는 없었다.


“사니...!”


하지만 흩어진 기억 속에서 유일하게 떠오른 것은 다름 아닌 자신과 함께 대설원으로 끌려오게 된 시녀 사니였다.

해바라기로 시작된 따뜻한 꿈의 첫 장면 속 보였던 그녀는 네로에게 있어서 가장 없어서는 안될 존재였다.

그리고 서서히 기억들이 제자리를 되찾아가며 네로는 자신과 함께 있던 사람들을 찾기 시작했다.


“분명 흔적이 남아 있을 거야.”


살아있다면 이동한 흔적을 남겼을 것이고 만약 죽어있다면... 네로는 좋지 않은 생각은 뒤로 미루고 살아있는 이를 찾기 위해 눈 위를 둘러보며 그들의 흔적에 집중하였다.


“발자국...!”


다행히도 눈보라가 완전히 지우지 못한 앞서나갔던 사람들의 흔적들이 희미하게 남아있었다. 네로는 누더기에 가까운 옷을 부여잡고 추위를 헤치고 나가며 발자국을 따라 걸어가기 시작했다.


***


얼마나 걸었을까. 불편한 다리를 이끌며 걷는 걸음은 점점 굳어오기 시작했고 심장의 보조기 또한 추위에 삐걱거리며 가슴을 죄어왔다.


“다행히도 햇빛은 안보이네.”


남들보다 느린 걸음 속도와 짧은 보폭을 지니고 있었기에 더 많은 걸음을 걸어야 했다.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심장 때문에 더 자주 쉬어줘야 했다. 활동하는데에 있어서 불리한 조건과 제약아 있었지만 그 모든 역경을 딛고 지금처럼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사니가 없었다면 하지 못했을 것들이었다.

그래서 네로는 자신의 소중한, 그리고 유일하게 남은 자신의 편을 찾기 위해 애썼다.


“...피 냄새!”


그때 바람을 타고 미세하게 섞여 흘러오는 냄새에 네로는 고개를 돌려 냄새가 나는 방향으로 황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무릎까지 잠기는 눈밭을 힘겹게 해치고 나가며 강렬해지는 피 냄새와 점점 가까워지자 눈 위의 발자국들은 점차 선명해졌다. 일렬로 일정한 자국을 남기던 그것들은 어느 순간 이리저리 얽히더니 이내 뿔뿔이 흩어진 양상을 보였다.

그리고 흰 눈 위에는 마치 어린 날 맛보았던 빙수 위에 뿌려진 딸기 시럽처럼 선홍색의 핏물들이 사방으로 흩뿌려져 있었다.


“이럴 수가...”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어지럽게 널브러진 시체들이 있었다.


“처형자들이 모두 죽어있어.”


그 시체들은 자신을 끌고 대설원을 걸어가던 처형자들의 것이었다. 그들이 모두 죽어있다는 것은 비극적인 결말을 생각하기에 충분한 증거가 되었다.

더욱이 시체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떨어져 나간 부위들의 살점은 늘어지며 뜯겨져 나간 흔적을 보였고 일부 팔과 다리는 팔꿈치나 무릎부터 살점 하나 없이 뼈째로 뽑힌 흔적이 있었다. 그 어느 것 하나 칼이나 날붙이에 베여 깔끔하게 잘려나간 흔적 하나 없이 무언가에 의해 강제적으로 찢겨나간 것들로 난잡하게 어지럽혀져 있었다.

네로는 걱정을 안고 죽어있는 시체들을 살폈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죄수들의 것은 보이지 않았다. 눈 위에 있는 시체들이라고는 오로지 처형자들의 것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인건가...”


하지만 안심하기에는 일렀다.

죄수들은 네로 자신과 같이 낡은 천 옷가지와 그나마 체온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살기 위해 걸친 얇은 싸구려 가죽 옷 외에는 걸친 것이 없었다. 이 황량한 눈밭에 스스로의 목숨을 위협으로부터 지킬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았다.

때문에 네로는 한시라도 빨리 그들을 찾아나서야 했다. 비록 자신이 무언가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좋아. 이걸로 체온은 유지할 수 있겠다.”


네로는 시체를 뒤적이며 그들이 착용하고 있던 장비들을 모두 벗겨 자신에게로 옮겼다.

이곳에서 죽음을 맞이할 죄수들과는 다르게 무사히 집으로 복귀해야 했기 때문에 체온 유지는 필수였음에 죄수들이 입은 거적때기와는 비교도 안 될 두꺼운 가죽옷과 털로 된 외투를 걸치고 있었다.

불편한 마음으로 그들의 옷을 벗기던 네로는 더욱 불길한 점을 발견했다.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았어...”


비록 이제는 시체가 된 이들이었지만 시체 상태로 보았을 때 상처에서 흐르고 있는 피와 아직은 피부에 보이는 생기, 그리고 시체를 만졌을 때 점차 사라지기 시작하지만 아직은 미약하게나마 남아 있는 온기가 느껴졌다.


처형자들은 혹시나 있을 죄수들의 갑작스러운 도망으로 그들을 놓치는 일이 없도록 허리춤에는 투척용 포박 사슬을 달고 있고 만에 하나의 폭동과 같이 그들의 공격을 방지하고 손쉽게 제압하기 위해 칼과 창으로 무장한 상태다.

더욱이 혹시 모를 습격에 자신들의 목숨을 지키기 위한 가볍지만 단단한 흉갑과 각반까지 두르고 있었다.

하지만 무장 따위는 그들의 목숨을 지켜주지 못했다. 나무 손잡이로 만들어진 창은 부러져 있었고 흉갑과 각반에는 무언가가 긁고 간 흔적이 깊이 남아 있었다.


“습격인가...?”


그럼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즉에 굳어버리고 이제는 차갑게 얼어붙기 시작하는 시체가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면면들은 서로가 서로를 죽이기 위한 분노에 사로잡힌 그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눈빛에는 오롯이 공포만이 서려있었다. 차마 감지 못하고 크게 부릅뜬 두 눈과 미처 다물지 못하고 마지막 숨을 내뱉어버린. 그들의 핏기 가신 얼굴에 드러난 압도적인 공포는 죽음 직전 숨이 다할 때까지 짓눌려 있던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대체 누가 이런 짓을...”


이 설원에서 무장한 병사들의 목숨을 이리도 무참히 앗아간 자는 누구란 말인가.

그들의 팔과 다리를, 신체를 자비 없이 처참하게 도륙한 자는 누구란 말인가.

네로가 숨을 참아가며 고약한 냄새를 맡았고 그 진원지를 찾아 다시금 더 깊숙이 걸어가기 시작했다.


“가까이에 있어.”


한걸음씩 옮기자 처참하게 찢겨져 나간 처형자들의 시체들 틈에 자신과 같은 복장을 한 죄수들도 몇몇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제발...”


네로는 떨리는 손으로 쓰러진 그들의 몸을 돌려 확인했고 다행히도 네로에게 있어서 가장 친했던 존재는 그들 틈에 파묻혀 있지는 않았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네로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눈의 언덕 너머.

그곳에는 일반적인 짐승의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거대한 발자국이 희생자들의 피로 물든 눈밭 위에 길게 나 있었고 그 끝에는 거대한 무언가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젠장... ”


마수(魔獸)였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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