횟집 알바가 소드마스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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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슬레이
작품등록일 :
2024.09.18 14:12
최근연재일 :
2024.09.20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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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20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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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좀 내주시죠.

DUMMY



숨어서 강혁을 지켜보고 있던 김구배는 처음부터 쭈욱- 모든 것을 지켜봤다.


‘미, 미친··· 저게 사람 맞나···?’


강혁에게 시비를 건 이정석이 미친 듯이 공격을 시작하고,

강혁은 그 모든 공격을 휙휙 여유롭게 피해내고,

이정석의 면상이 정육점 고기마냥 갈리고,

그의 팔이 돌아가서는 안 될 방향으로 돌아가고,

마지막엔 저 멀리 숨어 있던 다른 놈의 기습까지 역으로 조져버리고······


김구배는 몇 달 전 강혁을 본 이후 끊임없이 빨간 경고등을 울려대고 있는 자신의 ‘감’에게 또 한 번 감사를 보냈다.


‘안 건드리길 잘했다··· 근데 숨어 있는 건 어떻게 안 거지?’


아무튼 김구배는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려 저항 의사가 없다는 뜻을 적극 어필했다.


“일단 그 살벌한 물건은 좀 내려놓고 얘기하자.”

“음.”


분명 강혁은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데, 오금이 저려 온다. 조금 전 전투 장면을 보지 않았더라도, 강혁의 눈빛에는 방광을 자극하는 뭔가 그런 게 있다.


“알고 있겠지만··· 너와 싸우겠다고 온 거 아니다.”


당연히 아니다. 아니어야 한다. 앞으로도 싸울 일 없다.

······없어야만 한다.


푹.


이정석에 이어 쓰러진 남자, 박상덕의 눈앞에 검을 박아 넣고 자리에서 일어난 강혁.


저벅-


김구배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강혁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칠 뻔했지만, 어떻게든 본능을 억제하며 입을 열었다.


“얘기가 길어질 거 같은데··· 저, 전화 한 통만 하자.”



***



김구배의 전화에 영등포 연합 조직원들이 출동했다.


“피 잘 안 지워진다. 확실히 닦아.”


당연히 강혁을 조질 생각은 아니었고, 현장 정리를 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혁아! 음? 김구배? 당신이 왜 우리 혁이랑 같이-”


삼무횟집으로 왔다.


강혁은 많이 다치긴 했지만, 그래도 치명상은 없는 사장, 정안수의 모습을 보며 안도했다.

역시나 그의 머리통을 깼다는 이정석의 말은 거짓이었다.

시간상 앞뒤가 맞지 않았던 것이다.


정안수가 김구배를 보며 혐오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왜 온 거요? 내가 이 꼴 된 거 보고 싶어서?”

“크흠··· 거 말을 왜 그렇게···.”


김구배와 동년배쯤으로 보이는 사십 대의 정안수.

선하지만 옹골찬 사람이다.

이곳이 영등포 연합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는 조폭 새끼들의 구역이라고는 하지만, 이유 없이 졸지는 않는다.


그것은 김구배도 비슷한 것이.

조폭 건달이긴 하지만, 어찌 되었든 정도는 지킨다는 게 그의 신념이다.

깡패의 정도라는 게 어느 선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간단한 술상이 차려지고 정안수, 강혁, 김구배 세 사람이 둘러 않았다.


자리가 만들어지자 김구배가 복잡한 듯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일단 결론부터 얘기하지. 아까 그놈들. 한신 무역 소속이다.”

“으음···.”


한신 무역. 한신 그룹의 산하 회사로 범죄 조직이 근간이 되어 성장한 대한민국 굴지의 초거대 기업이다.


탁-


목이 타는 듯, 소주를 단숨에 들이킨 김구배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러니까··· 너나 할 거 없이, 우리 다 좆됐다고.”



***



좆됐음을 선언한 영등포 영세 조폭 두목 김구배와 삼무횟집 사장 정안수의 대화는 언성 높여질 일 없이 차분하고 순조로웠다.

사실 당연했다.

조금 전 엘리트 킬러 두 명을 숨 쉬듯 쉽게 갈아버린 강혁이 바로 옆에서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으니.

김구배는 빡칠 포인트가 있더라도 전혀 화내지 않고 분노를 잘 조절하는 중이다.


강혁의 동의 하에, 김구배는 몇 달 전 강혁과 얽혔던 스토리를 풀었다.


정안수가 강혁에게 소주를 따라주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영등포 연합이 지랄병을 떨던 개인 보호비 얘기가 쏙 들어가고 여태껏 잠잠했던 게, 혁이 네가 쳐들어가서 이 인간들을 개박살 낸 거 때문이라고?”

“멋대로 행동해서 죄송합니다.”

“거, 개박살까지는···.”

“당신은 좀 가만히 있지?”

“큼···.”


정안수는 생각지도 못했다. 영등포 연합 놈들의 괴롭힘이 강혁에 의해 멈춰진 것도, 유순해 보이는 강혁이 그렇게나 싸움을 잘하는지도. 전혀 몰랐다.


‘이상하게도 처음부터 칼을 잘 쓴다 했더니, 그런 거였나.’


1년 전쯤.


정안수는 강혁과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



정안수에게 한 통의 전화가 왔다.


-형님.

“민철이 이놈아. 연락 좀 자주 해라.”

-하하. 사는 게 바쁘다 보니. 죄송합니다.

“임마. 너만 바쁘냐? 세상일 너 혼자 다 해?”

-자주 연락드릴게요.


공무원을 하는 친동생, 정민철였다.


두 사람은 우애가 아주 깊었다.


“횟집 한번 와. 요새 제철이다.”

-조만간 들를게요.

“그래. 또 뭐 부탁하려고?”

-하하··· 그게.


정민철이 말하기를, 어릴 적 사고를 많이 친 젊은 녀석이 있는데, 서른이 넘어서야 정신을 차리고 제대로 살아가고 싶단다.

그래서 일자리를 찾고 있는데 형님네 횟집 알바로 써주실 수 있겠냐고.

나름 손기술(칼질)도 좋고, 경력(킬러)도 있으니까 일에 방해되지는 않을 거라고(아마도).


정민철을 업어 키운 정안수는 동생의 부탁을 거절해 본 적이 없었다.


영등포 횟집 거리에 위치한 삼무횟집 사장 정안수는 다른 말 없이 강혁을 받아들였다.


정안수는 강혁이 무슨 일을 했는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그 어떤 것도 묻지 않았다.


그저 첫 만남에.


“동생 놈한테 들었다. 혁이라고 했지? 형이 말 편하게 한다?”

“예.”

“술은 좀 하지?”

“···.”


강혁은 단 한 번도 술을 마셔본 적이 없었다.


30년간 늘 긴장을 유지하며 살았다.


언제 어디서 목이 떨어질지 모르는 삶이었다.


어찌 술을 입에 댈 수 있겠는가.


강혁이 머뭇대자 정안수가 그의 어깨 위에 손을 얹었다.


움찔-


‘······목을 찌를 뻔했다.’


아직 은퇴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


이 영역 안에 다른 사람이 발을 딛고 있는 것 자체가 어색하고, 불편하다.


정안수가 강혁의 어깨를 주무르며 말했다.


“뭘 그리 멍하니 있어? 자자. 어차피 마감 시간 다 됐으니까, 셔터 내리고 한잔하자고.”


그리고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어디서 이런 복덩이가 굴러들어왔는지.’


정안수의 표정에 햇살이 들었다.


순식간에 자리를 잡아 벌써 횟감을 손질하고 있는 강혁을 바라보는 정안수의 심정이었다.


우럭이든 도미든 참치든 무슨 스윽- 슥- 하면 이미 손질 끝.

예쁘게 포가 떠져 있다.

게다가 가지런하기까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당연히 회의 신선도.

포 떠진 녀석이 얼마나 팔딱팔딱 뛰어놀고 있느냐다.

이것은, 더할 나위 없다는 말이 적당할까.

마치 당장이라도 살아서 뻐끔뻐끔 숨을 쉴 것만 같은 횟감들이다.


‘흐흐. 우리 복덩이.’


회의 신선도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칼질을 할 때 생선의 신경을 어떻게 잘라내고 손질해내느냐인데.

인정한다.

솔직히 스무 살 이후 20년 넘게 횟집 외길을 걸어온 자신보다도 낫다.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웃긴 것은.

강혁이 휘두르는 사시미질, 즉 칼질.

누가 보면 제대로 칼 잡는 법도 모르는 놈에게 생선 손질을 맡겼냐고 욕먹을 정도로 어설픈, 아니 어설프다기보다는 특이한 칼질을 해댄다.


사시미를 잡는 그립, 포를 뜨는 팔의 각도, 서 있는 자세, 내려다보는 시선 등.

아무리 봐도, 여러모로 봐도, 이리저리 봐도 횟감 손질하는 칼질은 아니다.


정안수는 강혁의 칼질을 볼 때마다 생각했다. 혁이 녀석의 손에 걸리는 생선 놈들은 운이 좋은 거라고. 아마 숨통이 끊어지는 것도 몰랐을 거라고.


‘무슨 소드마스터도 아니고.’


힘도 별로 들이지 않는다. 그저 푹- 슥- 서걱 도마 위에 스르륵- 끝이다.

요리왕 비룡이냐? 마법을 보는 것 같기도.


강혁이 사삭- 삭- 하는 것을 홀린 듯이 멍하니 보고 있자면, 사실 섬뜩함을 느낄 때도 있었다.

피 냄새, 살기-라고 해야 하나.

그리 예민하지 않은 성격임에도 본능적으로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때론 생선이 아닌 사람을 썰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은 멍청한 생각도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누구라도 강혁 저 녀석이 사시미를 쑤시고- 아니, 이리저리 휘두르는 모습을 보면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정안수는 횟감 손질을 끝내고 칼을 닦고 있는 강혁을 불렀다.


“혁아.”

“예. 사장님.”

“새해 아니냐. 약속은 없고?”

“딱히 없네요.”

“거, 인마. 내가 니 얼굴이었으면 당장만 해도 애인 다섯은 사귀고 있었을 거다.”


정안수는 강혁에게 지폐 다발을 쥐여줬다.

무려 5만 원권 20장.

100만 원이었다.


“연말 보너스. 일만 해도 안 좋아. 바람 좀 쐬고 와.”

“·····너무 많은데.”

“야. 네가 벌어 준 돈이 이거 100배도 넘어.”


정안수 자신도 꽤나 자부심이 있지만, 인정한다. 강혁의 손놀림은 달랐다. 원샷 원킬. 삼무횟집에 한번 오기만 하면 즉시 단골이 됐다. 썰어 놓은 회가 입안에 들어오면 혀를 휘감고 펄떡펄떡 살아 숨 쉰단다.


-너 진짜 요리 프로그램 한번 나가보자.

-하하. 제가 낯을 좀 가려서요.


평생 해 온 일이 좀 있다 보니 원한을 맺은 사람들이 (전 세계에) 많이 있다. 아주 많이.


아무튼.


“나가! 친구 불러서 헌팅 포차를 가든! 나이트를 가든! 길거리에서 꼬시든! 일단 나가!”

“사, 사장님.”

“훠이 훠이-”


정안수는 어색하게 문을 나서는 강혁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어떻게 저리 민철이 놈과 똑같은지.’


강혁을 알바로 써달라고 했던 동생 정민철.

어릴 적부터 싸움박질만 하고 다니던 그 망나니 동생 녀석과 참 닮았다.


‘그런 놈이 공무원이 될 줄이야.’


이것이 다른 누군가를 소개시켜 주기까지.


여러 부탁을 들어주었지만, 누군가를 받아 달라는 부탁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강혁에게 더 마음이 쓰이고 정이 갔다.


어떤 때는 세상 다 산 듯한 노인네 같은 모습이 보이기도,

어떤 때는 이상하리만치 어설픈 모습을 보이기도,

쉽게 어떤 사람이라 단정 지을 수 없는, 종잡을 수 없는 녀석.

하지만 묘하게도 정감이 가는 녀석.


강혁을 보는 정안수의 시선이었고, 그들이 함께 보낸 지난 1년의 일부였고,


정안수과 강혁.


두 사람의 인연이 이어진 경과였다.



***




삼무횟집 사장 정안수.

은퇴한 전직 킬러 강혁.

영등포 연합 지부장(조폭 두목) 김구배.


“한신 그 새끼들··· 진짜 무서운 놈들이다.”


세 사람의 술자리가 조금은 허심탄회하게 이어지는 가운데, 김구배가 조금은 억울한 듯이 말했다.


“나도 내가 연합을 맡기 전에 있던 병신들이 싸지른 똥 치운다고 개고생했다고.”


성공을 위해 상경한 시골 건달 김구배.

지킬 건 지키자는 게 그의 행동 방침이었다.


“전임 지부장 그 새끼······ 어휴.”


한신 그룹과 연이 닿아 있던 영세 건달 조직 영등포 연합.

출세 욕심이 많았던 전임 지부장은 상인들에게 보호세와 개인 상납세를 미친 듯이 지독하게 뜯어내는 것으로 한신의 눈에 들고자 했다.

당시 간부였던 김구배는 분명 탈이 날 거라고 반대했지만, 전임 지부장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고, 그렇게 찾아온 강혁을 맞이하여 처참하게 박살 난 것이다.


김구배가 자조적으로 말했다.


“나도 강혁 네 덕을 봤지.”


어린놈에게 그대로 박살이 나 개쪽 당한 전임 지부장은, 타이밍을 노린 김구배의 쿠데타에 그대로 쓸려 사라지고 김구배가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내가 지부장이 되고 나서는, 그 병신이 싸지른 똥 다 치워버리고 우리 식구들이 먹고살 만큼만 수금했다.”


김구배도 할 말이 많았다. 상인들에게 그냥 삥 뜯는 게 아니다. 술 취해서 난동 부리는 놈들 주기적으로 치워주지, 이쪽 영역을 넘보는 다른 조직들에게서 보호해주지, 어쭙잖은 새끼들이 상인들 건드리는 거 알아서 처리해주지.


“후···.”


술잔이 건배 없이 조용히 오간다.


정안수를 소주를 목구멍에 소주를 털어 넣으며 생각했다.


‘그랬군.’


어쩐지 강혁이 들어 온 이후, 그리고 영등포 일대를 지독히도 털어먹던 지부장이 바뀐 뒤부터 사는 게 조금 나아졌다고 느낀 바 있었는데.


하지만 강혁이 홀로 쳐들어가 저들을 전부 조져버린 비화 같은 게 있을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정안수가 전임 지부장 그 악마 같은 돼지의 면상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럼 당신한테 밀린 그놈은 어떻게 됐지?”


상인들을 그야말로 쥐어짜듯 괴롭히던 놈이다.


“···.”


잠시 뜸을 들인 김구배가 또 한잔을 넘기며 입을 열었다.


“죽었다.”

“···뭐?”


정안수는 잠시 벙쪘다. 죽었다고? 갑자기···?


“정확하게는, 죽였다.”

“누가···? 당신이?”

“미쳤냐? 한신이지.”


살인, 살인이라고···?


김구배는 놀란 듯한 정안수의 표정을 보고 실소를 흘리며 말했다.


“한신은 그런 곳이다. 죽음이 우스운 놈들이지.”

오성회.

대한민국의 정·재계를 장악하고 있는 다섯 개의 별.

그 병 중 하나가 한신 그룹이다.


“이유는 별거 아냐. 우리 영등포 연합이 한신 무역에 발가락 때 정도의 인연은 있는데.”


산하라고 할 정도는 아니다.


“아무튼. 전임 그 멍청한 놈이 한신이 저지른 비리 몇 개를 알고 있었나 봐.”


놈이 죽고 나서 발견한 비밀 장부를 통해서 본 건데, 좆도 아닌 건수였다. 누가 누구한테 돈을 받아먹었네- 저기 높으신 분 누구한테 돈을 먹였네- 하는, 그런 흔하디흔한 거 말이다.


“자기가 나한테 밀려 쫓겨날 거 같은데 한신이 뒤를 안 봐주니까 삔또가 상했나 보더라고. 그대로 증거 몇 개 가지고 세한 그룹으로 쌔앵~ 병신.”


세한 또한 한신과 마찬가지로 오성회의 일원이다.


“그럼 세한이 놈을 보호할 텐데 한신이 죽인 게 아닐 수도 있잖아?”


김구배가 피식 웃었다. 어느새 그의 얼굴을 불콰하게 열이 올라 있었다.


“사실 그 정도까지 확실하게는 몰라. 놈을 죽인 게 한신이든 세한이든.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김구배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고작 그딴 거 가지고 파리 새끼마냥 사람이 툭 뒤졌다는 거다. 소리소문없이, 쥐도 새도 모르게.”

“······사인은?”

“뭐겠어?”


자살.


“그 세상 끝날 때까지 돈 돈 거리면서 뒤질 거 같지 않던 놈이 자살했단다. 흐흐······ 근데 이거 말이다.”


잔을 채우는 김구배의 손끝이 떨리고 있다.


“남 일이 아니게 될 수 있다.”

“···.”


정안수의 표정도 딱딱하게 굳었다. 김구배의 말뜻을 이해한 것이다.


“아까 그 양아치들. 한신에서 키우는 애들이다. 세종 졸업생을 비싼 돈 주고 분양받은 거지. 강혁 넌 알 거다. 그 괴물 놈들의 몸값이 얼만지.”


김구배는 강혁과 이정석이 나누는 대화를 들었다. 강혁도 세종 출신이라고. 그의 강함이 이해 가는 순간이었다.


“···.”

“세종? 세종대왕? 그게 뭐냐?”


어리둥절한 듯한 정안수의 말에 김구배가 화들짝 놀라 강혁의 눈치를 봤다.


“어, 그, 그···.”


강혁이 덤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조금만 있다가···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런 순간이 올 거라 예상은 했지만, 너무 빨리 왔다. 강혁은 소주의 씁쓸함으로 속을 채우고는 말했다.


“지부장님.”

“네? 어, 응···?”

“계속 말씀하시죠.”

“아, 그, 그래···큼.”


순간 취기가 확 달아났지만, 김구배는 해야 할 말을 잊지는 않았다.


“어찌 되었든, 일개 양아치가 아닌 한신을 건드린 거다. 한신 그놈들. 근본이 깡패인 거 알지? 잔인하고, 집요한 놈들이다. 집요한 걸 넘어서 괴물의 똥꼬를 쑤진 거지.”


정안수가 더럽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니, 거 비유를 해도 더럽게 하네.”

“그만큼 좆같은 상황이라고!”


강혁의 쓰린 속에 불편함도 더해졌다.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사장님이···.”


정안수가 단호하게 강혁의 말을 끊었다.


“혁아. 그런 말 말아라. 네가 아니었더라도 어떻게든 다른 형태로든 터졌을 거다. 일어날 일은 일어나는 법이다.”


김구배가 그의 말을 거들었다.


“맞는 말이긴 해. 약 빨면서 피를 보고 싶어 하는 놈들이었으니까. 애초에 어떻게든 시빗거리를 찾았을 거다. 뒷일은 한신이 책임져 줄 거고, 무서울 게 없는 진짜 미친놈들이었지. 네가 조지지 않았다면, 피해보는 건 거리의 상인들이었을 수도 있다.”

“···.”


정안수가 강혁의 잔을 채워주며 말했다.


“너 때문이 아니다. 자책 마라. 아까 그놈들··· 눈빛을 보니 맛탱이가 가 있더라고. 누구 하나 죽거나 크게 다칠 사고를 혁이 네가 막은 거다. 잘했어. 잘한 거다.”

“···.”


정안수가 가볍게 웃으며 안현의 팔뚝을 주물렀다.


“근데 혁이 너 언제부터 그렇게 싸움을 잘했냐? 새끼. 갈궜으면 큰일 날 뻔했네. 혹시 형이 뭐 잘 못 한 거 없지?”


김구배는 정안수가 강혁의 기분을 풀어주려 잡소리 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술잔을 기울였다.


‘어찌한다···.’


그의 속내를 읽은 듯, 정안수가 김구배의 빈 잔에 술을 따라주며 말했다.


“그럼 당신은 앞으로 어떻게 할 거지?”


눈치 빠른 새끼···.


김구배는 식도를 열고 훌쩍 알콜을 넘겼다.


“크으······ 씨발! 어떡하긴 뭘 어째. 튀어야지.”

“한신 그룹의 눈을 벗어나 튈 수는 있고?”

“하··· 몰라. 시팔거······.”


순간, 정안수가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혹시나 우리 혁이 이름 팔아먹고 혼자 살 생각하지 마쇼.”

“······뭔 소리야. 당신이나 잘해.”

“우린 한배를 탄 거야. 당신이 딴 생각하면 내가 먼저 뒤통수칠 거니 그리 알고.”


김구배는 왠지 뜨끔해져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거! 진짜! 못 할 말이 없어!”

“나라고 아는 사람 하나 없을까. 나도 이 바닥에서 수십 년을 굴러먹은 놈이다- 이거야. 그러니까! 우리 서로 잘 해보자고 하는 얘기지.”


김구배는 구렁이 담 넘어가듯 유들유들대는 정안수를 보며 기가 찼다. 습관처럼 쌍욕이 한 다발 튀어나오려 했지만, 참았다. 옆에는 미친 싸이코 패스 사시미 강혁이 있었기에, 분노를 조절할 수 있었다.


“하··· 아! 아으으으! 씨발! 한신··· 몰라! 세한도! 좆같은 양아치 새끼들······.”


개씨발! 욕도 마음대로 못하고. 상황은 지옥같이 좆같고. 술도 오르고. 김구배는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하···.”


사실 정안수가 말하지 않았더라도 한신은 자신 같은 시골 건달의 사정 따위 신경도 쓰지 않을 것이다.

강혁의 손에 그 양아치 놈들이 결딴 난 순간부터 이미 한배를 탄 거나 마찬가지였다.


정안수, 김구배, 강혁.

서로 다른 생각을 품고 있는 세 사람 사이를 오가는 술잔 속에, 포근한 새벽의 어둠이 담겨 반짝였다.


마치.


지금과 같이 한가롭게 여유를 부릴 순간은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은, 묘하게 따스하고도, 아릿한 정경이었다.



***



다음 날.


숙취를 뒤로한 채 영등포 사무실로 출근한 김구배는 평소에 볼 수 없었던 분위기의 손님 하나를 맞이했다.


“김구배 지부장님?”


한순간에 상황을 짐작한 김구배는 빠르게 좆됐음을 짐작했다. 그래도 확인은 해봐야겠지···.


확인 사살을 위해 김구배가 덤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제가 김구배입니다.”

“반갑습니다.”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품속에 손을 넣어 명함 한 장을 꺼냈다.


힐끔-


이름은 됐고, 명함에 적힌 소속을 확인한 김구배는··· 역시나 예상이 틀리지 않았음에 속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한신 무역에서 나왔습니다. 시간 좀 내주시죠.”


······진짜 좆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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