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급 길드장이 선대의 공략집을 손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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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0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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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0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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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20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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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DUMMY

지금으로부터 천 년 전. 평화로웠던 세상은 종말을 맞이했다.


이건 처음 그 순간을 기록했던 역사서 일부를 발췌한 내용이다.


[종말이 내려올 적에 괴이한 눈동자가 지상을 비추고, 난생처음 보는 잔혹한 짐승들이 동공에서 빠져나와 사람들을 해치니. 그야말로 아비규환이더라.]


지금에 와서는 그 눈동자가 게이트(GATE)라는 던전과 현실을 이어주는 입구며, 넓은 의미의 짐승이라는 말을 몬스터라고 명명하게 되었으나.


그걸 정하기까지 많은 희생이 있었음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야말로 아비규환(阿鼻叫喚)이었다.


십억 명에 이르렀던 제국민의 90%가 줄어들었으며 사람이 사는 곳보다 무덤의 개수가 더 많아 발 디딜 곳도 부족할 정도였다.


서로 힘을 합쳐 그것들을 몰아내려 해도 역부족. 오히려 제국민 대부분을 모아 벌였던 전투에서 패배하여 인류의 멸망이 얼마 남지 않게 되었다.


순식간에 모든 땅을 빼앗기고 남은 건 오직 제국의 수도뿐.


멸망을 앞둔 황궁에선 각종 대신이 여제에게 조언하고 있었다.


“전하, 지금이라도 도망가셔야 합니다!”

“도망치면 어디로 도망간다는 말이냐. 나는 이곳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겠다.”


여전히 높은 자리에 앉아 좌중을 두리번거리던 루시엘 1세는 고개를 저었다.


이곳도 안전하지 않은데 어디가 안전하겠는가.


창문 밖에선 가고일 한 마리가 날아다니며 사람들을 공중으로 들어 올리고 떨어뜨리는 장난을 치는 중이었다.


끔찍한 비명 이후 무언가가 터지는 소리가 황궁 안까지 들려오자 대신들은 어깨를 움츠렸다.


하지만 그 누구도 제국민들을 구하러 가지 않았다. 아니, 이미 구하러 간 이들은 모조리 죽었기에 그럴지도 모르겠다.

겁쟁이 녀석들.


여기 남아있는 모두는 겁쟁이었다. 어쩌면 자신 역시도 마찬가지일지 모르겠다.


상황이 터진 직후부터 안전한 이곳에 숨어 사태를 방관했을 뿐이니까.


“얼른 도망가셔야 합니다. 만약 여제님께서 여기 계시겠다면 저희끼리라도 가겠습니다.”


루시엘은 기세등등한 태도로 권유하는 듀크 대공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저 건방진 태도를 보고도 나서는 이 하나 없었다. 오히려 왜 말을 안 따르냐고 무언의 압박을 주고 있었다.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저들이 도망치려는 곳은 어디일까?


‘아마도 듀크 대공의 자택이겠지.’


강력한 사병을 바탕으로 짐승들에게도 큰 피해를 보지 않았던 그의 정원이었기에 어쩌면 그곳이 이곳보다는 나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후는?


살아있는 꼭두각시가 된 채 훗날 저 늙은 야심가 듀크에게 모든 권력을 이양할 수밖에 없겠지.


그는 내 목숨을 구해줬다는 명분이 있고, 본좌는 많은 사람을 지키지 못했다는 명분이 있으니.


물론 살아있었을 때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루시엘은 그렇게 해서까지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제국을 이끌만한 인물이 아니었기에 예전 제국이 다섯 개로 쪼개졌을 때처럼,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세상에 혼란을 일으킬만한 인물이었기에.


“아니, 본좌는 여기서 그를 기다릴 것이다.”


루시엘은 한 가지 믿는 구석이 있었다.


그것은 현재 그가 황궁에서 활동 중이라는 소문이었다.


눈동자에서 살아 돌아온 뒤 짐승들을 잡으며 인류의 구원자로 불리는 남자.


“혹시 아직도 그걸 믿으시는 겁니까. 그건 우매한 대중들이 지어낸 뜬 소문일 뿐입니다.”


눈뜬장님인 대신들은 그 소문을 믿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자신들의 입지가 줄어들까 봐 일부러 귀를 막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절체절명의 순간, 황실의 위기를 구하고 평생 지속될 영광을 누리고자 하는데 어디서 굴러먹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공을 가로챈다고 생각해서겠지.


루시엘은 계속 자신을 이동시키려는 대신들을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아니, 본좌는 여기서 그를 기다릴 것이다.”


황좌에 등을 기댄 채 자신을 구해주러 올 남자를 기다렸다.


“분명 후회할 겁니다.”


그 완강한 태도에 감히 혀를 찬 대신들은 여제를 두고 듀크의 정원으로 거처를 옮겼다.


루시엘은 눈을 감고 밖에서 들려오는 비명을 들었다.


자신을 위해 목숨까지 바칠 수 있다고 했던 황실 근위대들이 창문으로 날아와 바닥에 피를 흩뿌린다.


[께에에에엑!]


창문 너머에서 기괴한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그녀를 구해주려는 발걸음은 들리지 않았다.


지금까지 소식이 없다는 건 그도 짐승들의 침공에 당한 게 분명한 듯했다.


아무리 그라고 하더라도 이 많은 짐승을 처리하기엔 역부족이었던 걸까.


이제 인류는 끝이 났다. 그것도 자신의 차례에.


‘이게 다 본좌가 부덕한 탓이다.’


이제 모든 걸 포기한 루시엘은 눈을 감고 자신의 최후를 기다렸다.


[끼에에엑!]


깨진 창문을 통해 들어온 가고일이 루시엘에게 달려들던 그때. 문밖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터벅터벅.


이런 상황에도 힘 있는 그 발소리에 루시엘은 눈을 떴다. 어느새 지척까지 와있는 가고일. 하지만 그녀의 눈은 전혀 두려움이 깃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황녀님, 제가 늦었군요.”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 지금 막 모습을 드러낸 참이니까. 그리고 그가 있다면 짐승들은 불을 본 것처럼 도망가고 말 테니까.


단 한 번의 휘두름이 지나갔다. 사선으로 뿜어져 나오는 초승달 모양의 검기에 가고일의 목이 바닥에 떨어지고 황녀의 몸이 붉은 피범벅이 되었다.


못 보던 사이에 실력이 더 늘었다. 혹시 어디선가 수행이라도 한 걸까.


루시엘이 멍하니 남자를 보고 있으니 남자는 황급히 한쪽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


“황녀님의 고귀한 몸에 실례를 범했습니다. 이 죄는 죽음으로···.”


죽음이라니!

루시엘은 서둘러 손을 뻗어 그를 제지했다.


그는 이렇게 죽을 사람이 아니었다. 만약에 그가 죽는다면 자신은 역사상 최악의 폭군으로 기억될 테고, 그 전에 인류는 멸망하게 될 것이기에.


“그런 말은 하지 말아요! 당신이 없으면 저희는 안된다고요!”


평소답지 않게 목소리를 높여 화를 내고 말았다.


그러자 낮게 웃음을 터뜨리는 남자.


“농담입니다. 농담. 제가 황녀님에게 잘못을 범했으니 죽음을 무릅쓰고 꼭 이 제국에 평화를 가져오겠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농담이 나오는 걸까.


긴장이 풀리면서도 어이가 없어서 루시엘은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 그러면 당신의 소원을 하나 들어드리겠어요!”


평소답지 않게 목소리를 떨며 손가락을 뻗은 루시엘. 하나는 뭔가 적은 거 같고 세 개는 많은 거 같아서 두 개를 펼친 채였다.


“··· 굳이 두 개씩이나 필요 없는데.”


남자의 작은 중얼거림. 그걸 들은 루시엘은 속으로 생각했다.


‘혹시 나 하나만 있으면 된다는 걸까. 아이참, 생각보다 엉큼한 면이 있으시네.’


괜히 심장이 빨리 뛰고 얼굴이 붉어지는 기분에 루시엘은 얼른 축객령을 내렸다.


*


일 년 하고도 반년이 지났다.


남자는 제국을 침입한 짐승들을 몰아낸 뒤 각성자라고 불리는 그룹을 육성하기 시작했다.


훗날 최초의 길드로 불리게 되는 이 집단은 남자의 가르침을 받아 점점 강해졌고, 인류는 이들의 도움으로 빼앗겼던 땅을 점점 되찾았다.


그들의 여정은 인류에게 많은 가르침을 선사했다.


눈동자에 들어가 가장 강한 짐승을 잡으면 당분간은 짐승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됐고, 다시 나타난 짐승들은 약한 상태로 등장한다는 것도 알아냈다.


짐승들을 죽여 만든 도구는 튼튼함이 광석과 겨룰 수 있었고, 가끔 특수한 능력이 붙기에.


그들은 빠르게 세상의 모든 눈동자를 닫고 평화를 되찾을 수 있었다.


눈동자가 세상에 나타난 지 약 삼 년째 되던 날의 일이었다.


“그래서 소원은 뭐로 비시겠어요?”


다시 돌아온 황궁.


어느새 소녀 티를 벗어난 고혹스러운 여인. 루시엘이 남자를 내려보며 말했다.


남자는 오랜 시간 전장에서 살아왔음에도 이전과 같은 태도였다.


귀찮다는 듯이 귀를 파다가 이내 왕건을 파내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짓는 모습.


그 건방진 모습에 도망쳤다가 돌아온 듀크 대공이 소리쳤다.


“어디 황녀님의 앞에서 더러운 짓을 벌이느냐! 네놈, 여기가 아직도 네가 날뛰던 전쟁터인 줄 아는 거냐?”

“아, 정말 시끄럽네. 살려주지 말 걸 그랬나?”


루시엘은 자신이 말리기도 전에 구시렁거리는 남자를 보며 미소 지었다.


역시 자신이 알던 모습 그대로였다.


모든 게 많이 변했음에도 늘 같은 모습을 유지하는 남자를 보며 루시엘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예전처럼 나 하나면 충분하다고 하면 어떡하지?’


시간이 일으킨 기억의 왜곡. 어느새 자신만 바라보는 순정남이 되어있는 남자에게 루시엘은 사근사근한 말투로 재촉했다.


“듀크 대공은 밖에 나가계시고, asd123 님은 얼른 소원을 빌어주세요.”

“··· 그래, 그런 이름이었지.”


남자는 자신의 이름이 들리자마자 몸을 흠칫하더니 중얼거렸다.


“최소한 좀 그럴듯한 이름을 적을 걸 그랬어.”

“··· 네? 그게 무슨 소리인가요?”


갑자기 이상한 말을 내뱉는 남자를 보며 황궁의 사람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순간, 남자는 소원을 빌었다.


“내 소원은 원래 있는 곳으로 돌아가는 거야.”

“원래 있는 곳이요? 고향을 말하시는 건가요?”


소원이 자신이 아니라는 사실에 내심 섭섭하면서도 그걸 들어주기 위해 계속해서 정보를 물었다.


하지만 남자는 그녀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녀에게 질문한 게 아닌 듯 고개를 끄덕이던 남자는 손가락을 뻗었다.


“삼 일 뒤에 내가 살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대.”


환한 표정의 브이. 그걸 본 루시엘의 마음엔 뭔가 부서지는 게 느껴졌다.


돌아간다고? 어디로? 나를 두고?


황제라는 위치에서 체통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던 루시엘은 늦은 밤 남자의 침소에 들어갔다.


“어, 어? 왜, 왜 그러세요. 으아아악! 거기 누구 없··· 읍읍!”

“에이, 좋으시면서.”


삼 일. 정확히 삼 일이 지난 후의 남자는 지쳐있었다. 어쩌면 여행을 떠났던 때보다 훨씬 더.


피골이 상접하는 얼굴로 손을 흔들던 그가 떠나고 홀로 남겨진 루시엘은 배를 두드렸다.


그 안에는 남자의 피가 흐르는 생명이 잉태되고 있었다.


남자가 사라지고 떠오른 무지개.


“여제님, 인수인계 절차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용사께서 이끄시던 병력의 명칭을 뭐라고 할까요?”

“···무지개로 하죠.”


훗날, 루시엘의 배에서 태어난 남자아이는 제국의 멸망을 지켜보며 자신만의 길드를 만들었다.


어머니가 애지중지하시던, 제국에서 마지막까지 남아 싸웠던. 가족 같은 분위기를 모방하여 만든 무지개 길드.


그것이 천년의 시간을 건너 나에게 다가왔다.


“이번 달까지 이자를 내지 못하면 무지개 길드는 경매에 넘어갑니다.”


완전히 망해가는 모습으로.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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