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D-day

무료웹소설 > 자유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새글

ju081934
그림/삽화
메에에
작품등록일 :
2024.09.21 00:46
최근연재일 :
2024.09.21 01:21
연재수 :
1 회
조회수 :
1
추천수 :
0
글자수 :
3,208

작성
24.09.21 01:21
조회
1
추천
0
글자
7쪽

기억 조각

DUMMY

(※소설은 소설일 뿐 현실과 무관합니다.)


솔직히,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날들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갔는지.


짙고 끈질겼던 고통들을 잊어버려서, 잊고 싶어서, 백지처럼 하얗게 바래놓은 그 시간에 유일하게 물들어있는 그리움이 혼자 눈에 띄어, 아직도 잊지 못했다.


아직도 숨을 들이켜면 그날들의 기억들이 폐 속 깊이 파고들어버려서. 진하게 물들어버린 그날들이 떠올라, 목 끝에서부터 무수한 감정들이 떨려온다.


그 감정들이 후회인지, 그리움인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


"응?"


엄마와 손을 잡고 시장길을 걷던 소녀는 그대로 멈춰 서 주위를 둘러본다. 시장 담장 너머 수없이 높인 건물들 뒤로 오랜만에 뭉게구름이 떠 있다.


하늘을 한 번도 올려다보지 않는 누군가에게는 어제와 똑같은 오늘이겠지만. 내가 바라본 하늘은, 항상 똑같았던 파란 하늘의 변덕은, 오늘을 기적으로 만들어준다.


빨간 고무장갑을 쥐고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는 생선가게 아줌마,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유모차에 타있던 아기에게 막대사탕을 건네주는 무뚝뚝한 정육점 아저씨, 평범한 일상 속 내 옆을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과 전봇대 줄에 매달려서 옷매무새를 정리는 참새들까지. 익숙한 것들 천지. 그러나 어째서인지 그리움의 향기가 느껴진다.


"···아."


누군가가 나의 세계에 살며시 문을 두드렸다.


나는 왜 그러냐고 묻는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든다. 햇빛이 너무 강해서일까. 그리 곱던 엄마의 얼굴이 빛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아무것도 아니야!"


빛에 가려진 엄마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나는 방긋 웃으며 다시 앞으로 걸어나간다.


"저기에 잠시 앉았다 갈까?"


엄마가 가리키는 손가락 끝엔 자그마한 공터에 벤치 하나가 놓여있고 그 옆엔 나와 키가 비슷해 보이는 거대한 강아지가 낮잠을 자고 있다.


"응, 좋아!"


내가 자리에 앉자, 엄마는 내 옆에 장을 본 것들을 올려둔다.


"엄마는 안 앉아? 나, 다리 안 아픈데···."


나의 권유에도 엄마는 애써 괜찮다고 말하며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던 귀밑 3센티 단발머리를 헝클어트려 놓는다. 나는 그러한 엄마의 손길에 기분이 좋아져 개구쟁이처럼 배시시 웃는다.


매미의 노랫소리를 몇 번이나 흘겼을 때쯤이었을까. 어느 순간부터 흥겨운 노랫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시장길을 장악했고 하늘엔 거대한 광고 스피커가 지나가는 게 보였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에 익숙한 듯 관심조차 주지 않고 지나간다.


스피커가 지나가며 뿌렸던 전단지가 어느샌가 나의 신발 앞에 살며시 떨어진다.


큐브라고 적혀져 있는 이 포스터 속 기계는 무거운 핸드폰이 사라지면서 등장한 훨씬 싸고 가벼우며 큐브 안에 칩만 고장 나지 않으면 충분히 충전 없이도 쓸 수 있는 최고의 기계이다. 아직 예약판매 기간이라 출시 예정이지만 말이다.


"엄마 갔다 올 데가 생겼는데. 여기에 잠깐만 있어줄 수 있어?"


"왜?"


"비밀이야."


"치사해, 궁금한데!"


"그럼, 금방 갔다 올게?"


"갔다 와."


양볼을 잔뜩 부풀린 나는 콧바람을 뀌며 의자에 몸을 늘어뜨린다. 엄마와의 거리가 꽤나 멀어지자, 의자 옆 구석에 웅크려 앉아있던 백구 한 마리가 나에게 다가온다.


"왕-!"


경쾌하게 짓은 후에 내 앞에 앉은 백구는 날 뚫어져라 쳐다본다.


"응?"


내가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백구는 나의 발에 손을 올리며 혀를 내민 채 해맑게 웃는다. 녀석의 머리 뒤로 살랑살랑 흔들리는 꼬리가 보인다. 녀석의 웃는 얼굴이 아빠의 웃는 얼굴과 똑같아서 이상한 기분이 든다.


"안녕 멍멍아."


"헥-헥-"


"음, 아빠?"


검고 짙지만 호수처럼 맑은 두 눈동자가 말없이 날 빤히 바라본다.


"역시, 그럴 리 없지···."


꼬리의 살랑임이 잦아든다.


"아무리 그래도 걱정 마, 네 주인도 금방 돌아올 거야. 가족은 싸우더라도 마음이 이어져있으니까. 그 마음만 끊기지 않으면 언젠가 다시 한곳에 모이게 돼있다고 너랑 똑닮은 아빠가 그랬거든."


"왕!"


"엄마를 찾으러 가고 싶지만, 여기 있으라고 했어. 난 착한 아이니까, 여기서 기다릴 거야."


내 동생 하율이에게 모범이 돼 보이고 싶다는 말은 끝끝내 생략했다. 녀석이 갑자기 고자질을 해버리면 나는 분명 얼굴이 토마토가 되어선 아무 말도 못 할 테니까.


백구와 일방적인 대화를 나누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슬슬 노곤해져 잠이 오는 나의 눈엔 자리에서 일어나 두리번거리는 녀석의 모습이 들어왔다.


"뭐해?"


앉아있던 의자 위로 올라선 나는 양손으로 망원경 모양을 맍들며 주위를 둘러본다. 멀리서 서둘러 걸어오는 엄마의 모습이 보인다.


"엄마다!"


"기다려줘서 고마워 우리 딸. 그리고 선물!"


"선물?"


"우리 딸, 생일이 6월 22일이니까, 이제 곧 있으면 생일이잖아? 한번 열어봐!"


"아직 생일까지 멀었는데···."


"그래서 싫으신가요?"


장난치듯 나의 코를 콕 찌르는 엄마를 뾰로통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나는 스르르 올라가는 입꼬리를 감추는 것도 까먹은 채 홀린 듯, 선물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아쉽네! 엄마는 이거랑 생일 선물이랑 따로 하고 싶어서 오늘 주려고 했는데!"


"앗, 그런 거면 받을래!"


"그래!"


종이 백 안을 들여다보자, 작고 하얀 상자가 있다. 상자의 뚜껑을 여니 익숙한 형태가 눈에 들어온다.


"큐브?"


나의 두 눈과 입꼬리는 번지듯 포물선이 되어간다.


"너무, 너무 좋아! 최고야! 엄마 최고!"


큐브를 발견한 순간부터 빠르게 모이던 기쁨이 터지듯 발산된다.


"그렇게 좋아?"


"응! 너무 좋아!"


"하하, 다행이다."


신이 나서 방방 뛰는 날 바라보곤 사랑스럽게 웃고 있는 엄마를 온몸으로 꽉 껴안으며 얼굴을 비빈다.


"엄마, 완전 사랑해."


"엄마도 우리 딸 엄청 사랑해."


"내가 더 사랑하는데?"


"아닌데, 엄마가 천 배는 더 사랑하는데?"


"내가 만 배 더 사랑하는데!"


나는 당당하게 말한 후에 엄마의 귀에 속삭인다.


"이럴 때는 엄마가 져주는 거야!"


나의 뻔뻔한 동그란 눈동자에 엄마는 입꼬리 사이로 웃음을 흘린다.


"그렇구나? 그런 거구나?"


"근데, 이거 사러 갔다 온 거였어? 예약 판매인데도? 이런 디자인이 있었나?"


"아빠가 우리 딸한테 주자고 얘기했던 거야."


이 큐브.


"아빠가 만들었으니까. 우리 딸이 언젠가 커서 큐브에 관심을 보이는 날이 온다면 꼭 전해주자고 약속했던 거야."


"정말? 아빠가?!"


"응, 아빠가. 아빠가 우리 딸이 다 크는 걸 보고 갔으면 좋았을 텐데."


"히히···."


"아무튼, 이제 채소만 사면 되니까 다시 가볼까?"


큐브가 들어있는 종이 백에 주름이 새겨질 정도로 꼭 껴 안은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종말D-day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 기억 조각 NEW 4시간 전 2 0 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