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더미의 고아는 최강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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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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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바부
작품등록일 :
2024.09.21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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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1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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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21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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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DUMMY

오물과 녹슨 금속, 망가진 기계들이 즐비한 쓰레기 더미 지대.


후즐근한 차림의 사람들이 여기저기 퍼져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누군가는 녹여서 다시 쓸 수 있는 고철을, 누군가는 입에 집어넣을 수 있는 것을 찾는다.


잔해 속에는 건들기만 해도 신체를 좀먹는 독성 물질이 있을 수도, 찔리면 답도 없는 녹슨 날붙이가 곳곳에 숨어 있을 수도 있다.


허나 대부분이 맨손이고 나름 보호장비를 갖췄다고 해도 낡고 헤진 장화, 장갑 따위가 전부였다.


분명 더 나은 삶을 위해 쓰레기 더미를 뒤지는데도 눈빛은 죽지 못해 사는 것마냥 퀭하다.


여긴 그런 곳이다.


시민권을 얻지 못한 벽 밖의 난민들이 살아가는 쓰레기 더미 지대, 혹은 난민촌.


이곳에서 주운 부품을 교환창구에서 돈과 교환하여, 100만 크랭을 모으면 시민권을 얻을 수 있다.


다들 벽 안으로 들어가 더 깨끗한 집과 안정적인 일자리, 먹을 것 등을 위해 오늘도 쓰레기 더미를 뒤진다.


허황된 이야기는 아니다.


그렇게 벽 안으로 들어간 사람이 제법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뙤약볕 아래에서 잔해를 뒤지던 그때 누군가 외쳤다.


“마력 압력 조절기다!”


탐욕에 깃든 눈빛들이 소리가 난 곳으로 모여들었다.


소리친 이는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았으나, 대신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었다.


손가락이 향한 곳에는 무언가 담긴 자루를 품에 꼭 앉은 채 잔해더미를 허둥지둥 내려가고 있는 소년이 있었다.


사람들의 반응은 둘로 나뉘었다.


시선을 거두고는 자신이 뒤지던 곳이나 마저 살피는 사람.


품에 무언가를 숨기고 소년에게 접근해오는 사람.


자신에게 시선이 쏠린 것을 눈치챈 소년은 더욱 급히 발을 놀렸다.


그는 접근하던 이들이 예상한 것보다 몇 배는 더 빠르게 내려올 수 있었다.


중간부터 굴러떨어져 내렸기에.


땅바닥에 다다랐을 때 소년은 벌떡 일어났다.


물론 몸 곳곳에 피멍이 들고 조잡한 천 옷 위로 스멀스멀 핏자국이 퍼져 갔지만 말이다.


잔해더미에서 굴렀는데 저 정도로 끝났다면 가히 마력 압력 조절기를 찾은 만큼 행운이 좋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이미 사방을 둘러싼 자들은 그가 운이 좋다는 것에 동의하지 못할 것이다.


가까운 미래에 물건을 빼앗기든지, 개처럼 두들겨 맞고 빼앗기든지.


그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두 개이기에.


소년을 둘러싼 것은 네 명.


다들 소년보다 한 뼘씩은 더 크고, 마른 근육이 탄탄하게 붙어 있었다.


그중에 모히칸 스타일을 한 남자가 소년을 위협해왔다.


“서로 힘 빼지 말자고. 자루에 든 것 내놔.”


이에 소년은 뜻밖의 제안을 해왔다.


“그럼 부탁 하나만 들어주세요.”


“뭐지?”


“저 녀석 좀 혼내주세요.”


소년은 방금 자신을 가리키며 외쳤던 남자를 역으로 가리켰다.


그 손끝에는 주둥이와 앞니가 돌출되어 쥐를 닮은 남자가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아, 쥐돌이 말이군.”


인근에서 얍삽하고 비겁하기로 유명한 녀석이다.


자신보다 덩치 큰 녀석들에게는 찍소리도 못하면서 노인과 아이에게는 한없이 강해지는 전형적인 양아치다.


헌데 모히칸 머리는 쥐돌이와 아는 사이인 듯했다.


“그런데 어쩌지. 저 쥐돌이한테 뭔가를 찾은 사람을 보면 알려달라고 한 게 나거든.”


“그럼 어쩔 수 없네요.”


소년은 순순히 자루를 펼쳤다.


이에 모히칸 머리의 남자가 자루 안을 들여다보기 위해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자루에서 나온 것은, 날카로운 쇠붙이였다.


푸욱!


소년은 손 한 뼘 길이의 날붙이를 모히칸 머리의 왼쪽 눈에 박아버리고는 다리 사이로 포위를 빠져나갔다.


“저 새끼 잡아!”


모히칸 남자 때문에 한 걸음 물러나 있던 사람들은 소년을 쫓았다.


그리고 일전에 원한이 있던 자들은 눈을 부여잡고 있는 남자를 마무리하기 위해 다가갔다.


그 이후에 벌어질 일은 더 이상 소년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저 있는 힘껏 쓰레기 더미 사이를 달릴 뿐.


말라비틀어진 청년들은 눈을 번들거리며 소년을 쫓았다.


소년은 인근의 지리가 훤하다는 듯 날랜 움직임으로 잔해 사이를 이리저리 누볐다.


쫓아오는 것은 여섯 정도.


중간에 더 늘어날지, 포기할지는 모르는 일이다.


잘 달리던 소년이 갑자기 쓰레기 더미를 기어 올라가더니 망가진 냉장고 문을 열었다.


문 뒤에는 더미 반대편까지 뚫린 통로가 만들어져 있었다.


더미 반대편으로 빠져나오니 체구가 작은 아이나 드나들 수 있는 원통형의 관 수십 개가 보였다.


어디로 이어져 있는지, 안에 뭐가 있는지 모를 관이었으나 소년은 자신 있게 그중 한 군데로 몸을 날렸다.


다시 반대편의 관으로 나왔을 때는 쓰레기 더미를 돌아서 쫓아오는 사람이 셋으로 줄어 있었다.


그렇게 다시 달리기를 10분.


뒤따라오던 이 중 두 명이 서로 시비가 붙어 저들끼리 싸우기 시작했다.


이제 남은 건 한 명.


까무잡잡한 피부 위로 붙은 마른 근육이 인상적인 청년이었다.


소년, 아펠은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이에 청년이 자존심 상한다는 투로 말했다.


“허, 나 한 명쯤은 해 볼 만하다는-”


순간 청년의 뇌리에 모히칸 녀석의 눈을 찔렀던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바로 옆에 있었기에 볼 수 있었다.


독기로 가득 찬 소년의 눈빛을.


허나 이렇게 빈손으로 돌아간다면 여기까지 쫓아온 게 뭐가 된다는 말인가.


게다가 자기보다 머리통 하나는 작은 꼬맹이에게 겁먹어 도망가기에는 이제껏 법 없이 살아온 난민으로서 자존심이 허용하지 않는다.


청년은 소년의 전신을 훑었다.


옷은 당장 찢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낡고 헤졌기에 날붙이 같은 것을 숨기기에는 불가능했다.


무언가 들어있는 듯 묵직한 자루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다만 아까도 그랬다시피 자루에서 날붙이를 꺼내 기습할 수도 있었기에, 자루를 조심해야 한다.


소년 또한 상대가 자신의 자루를 의식하는 것을 알았는지 자루 안에 손을 푹 찔러넣고는 상대를 노려봤다.


숨 막히는 대치를 먼저 깬 것은 청년이었다.


꽤나 지쳤는지, 긴장감을 이기지 못하고 먼저 달려든 것이다.


그리고 일방적인 구타가 이어졌다.


청년은 그래도, 중간까지는 소년을 경계했다.


숨겨둔 한 수가 있지 않을까.


헌데 이렇게 웅크려서 개처럼 처맞기만 할 것이면 아까 왜 멈춘 것일까.


구타는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애초에 청년도 제대로 먹지도 못해 몸은 바싹 말랐고, 여기까지 추격해오느라 체력이 거의 다 소모된 것이다.


청년은 웅크린 소년을 발로 차 버리고는 그의 품에 있던 자루를 차지했다.


“드디어...!”


그는 왠지 모를 성취감을 느끼며 자루를 들여다봤다.


헌데 잘못 본 것일까.


그가 이럴 리 없다는 표정으로 아예 자루를 뒤집어 쏟아봤으나 떨어지는 것은 돌덩어리 몇 개와 돌부스러기 뿐.


“어디다 숨긴 거야!”


이에 소년은 헐떡이면서도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원래부터 마력 압력...그딴건 나도 본 적 없어.”


“무슨...!”


“그 쥐같이 생긴 새끼가 날 골탕 먹이려고 그랬던 거야. 예전부터 날 싫어했거든.”


“거짓말인 것이 들통나면 모히칸 녀석에게 두들겨 맞을 텐데?”


“그 새끼 띨빵하게 생긴 거 봤을 거 아냐.”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다.


여긴 정상인보다도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인간들이 더 많고 증거는 쥐돌이의 말뿐이지 않은가.


허나 청년은 이를 믿고 싶지 않았다.


그도 조금만 더 크랭을 모으면 시민권을 얻을 수 있었고, 마력 압력 조절기를 가져다 팔면 벽 안쪽으로 들어가는 것도 더 앞당겨질 테니까.


하루라도 더 빨리 이곳을 뜨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추궁을 이어갔다.


“그럼 왜 도망간 건데. 그 자리에서 자루를 펼쳐서 보여줬으면 됐잖아!”


그렇게 했어도 쥐돌이는 마력 압력 조절기를 봤다고 우길 거고, 몰려든 이들은 어디다 숨겼냐며 소년을 개 잡듯이 패겠지.


허나 소년은 뒷말을 삼켰다.


그리고 잠시 뒤 힘없이 말했다.


“그냥, 너네가 마음에 안 들어서.”


“뭐?”


“남의 거나 빼앗으러 오는 너네들이 마음에 안 들어서.”


“이 쥐좆만한 새끼가!”


“너 같은 새끼들이 벽 안으로 들어가면 뭐 달라질 거 같냐? 또 약한 사람을 핍박하고 빼앗고 겁탈하고 살겠지.”


“...”


“그리고 얼마 안 가 감옥에 갇히거나 다시 난민촌으로 추방당하겠지. 너도 알잖아? 사후적으로 시민권을 취득한 이들은 범죄를 저질렀을 때 가중적 제재 처분을 받는다는 거.”


난민촌에서 시민권을 취득하여 벽 안으로 들어와도 이들은 난민촌 출신이라는 낙인이 찍힌다.


그래서 도시에서 무언가를 잘못해도 일반 시민보다 가중된 처벌을 받는다.


무언가를 깨달은 것인지, 아님 그저 반박할 힘도 남아있지 않은 건지, 청년은 그저 말없이 땅바닥을 쳐다봤다.


그렇게 정적이 흐르고, 청년은 욕지거리를 뱉으며 왔던 길로 돌아갔다.


중간중간 사람들이 기웃거렸으나 청년이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고는 관심을 끊었다.


그가 마력 압력 조절기를 빼앗았어도 과연 교환창구까지 안전하게 가져갔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아펠도 청년이 사라지자 핏물을 탁 뱉어내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날이 저물기 시작했고, 아펠은 무언가를 다시 찾기 시작했다.


허나 이번에는 돈이 될 만한 것을 찾는 게 아니었다.


사람, 쥐돌이를 찾는 것이다.


그러는 도중에, 아까 도망치던 소년임을 알아보는 이들이 있었으나 빈손인 것을 깨닫고는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


그 비싼 부품을 누군가에게 빼앗겼겠거니, 하고 말이다.


그렇게 쓰레기 더미를 누빈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얍삽하게 생긴 주둥이를 찾을 수 있었다.


깡통에 얼굴을 박고는 오물거리고 있었는데, 무언가를 먹고 있는 듯했다.


아펠은 묵직한 돌멩이와 날카로운 쇠붙이를 집어 들고는 은밀히 접근하였다.


녀석은 깡통에 든 뭔지 모를 건더기를 삼키느라 정신이 없었고 아펠의 접근을 알아채지 못했다.


바로 지척까지 접근한 아펠은 돌멩이를 높게 치켜들어 녀석의 정수리를 내려찍었다.


으적-!


“끄아아아아악!”


쥐돌이의 비명이 쓰레기 더미 일대에 울려 퍼졌다.


허나 그 누구도 이쪽으로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이곳에서 약탈과 살인은 흔한 것이기에.


그저 어떤 머저리들이 또 싸우는구나 하고 말 것이다.


쥐돌이는 피가 줄줄 흐르는 머리통을 부여잡고는 땅바닥을 굴렀다.


“어떤, 새끼야!”


아펠은 아랑곳하지 않고 쇠붙이로 녀석의 발목 뒤를 그었다.


스걱 스걱


다시 한번 녀석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허나 비명은 곧 그쳤다.


쥐돌이가 스스로 제 입을 틀어막았기 때문이다.


이제 곧 밤이 되고, 밤에는 ‘들개’들이 몰려오는 것을 의식한 것이다.


그냥 들개라면 오히려 도시락이 제 발로 찾아온다고 좋아했겠지만, 지금 말하는 들개는 ‘마물’이다.


녀석들은 사람과 피를 특히 좋아한다.


“끄흐흑 끅, 이런 미친, 새끼-”


“난 오늘 누군가에게 맞아 죽을 수도 있었다.”


“안 죽었잖아!”


“그건 상관없다. 중요한 건 내가 너 때문에 죽을 뻔했다는 거야.”


아펠은 쥐돌이의 머리채를 잡고 쓰레기 더미를 성큼성큼 올라갔다.


몇 번이고 저항했으나 쇠붙이로 몇 번 긋자 바둥거리던 팔다리가 조용해졌다.


힘줄을 제대로 끊었는지 모르겠다만, 발목의 부상으로 혼자서는 쓰레기 더미를 내려오지 못할 것이다.


만약 오늘 밤 들개에게서 살아남는다고 하더라도 발목은 온갖 세균에 감염되어 퉁퉁 부을 거고, 시름시름 앓다 죽어버리겠지.


아펠은 자신의 처지를 깨달은 쥐돌이의 구슬픈 울음소리를 뒤로하고 쓰레기더미를 내렸다.


그리고 그가 향한 곳은 낮에 굴러떨어져 내렸던 쓰레기 더미였다.


사실 쥐돌이는 제대로 봤다.


그는 의도적으로 쓰레기 더미를 구르며 잔해 사이에 마력 압력 조절기를 처박아 둔 것이다.


그리고 다행히도, 아직 그 자리에 있었다.


아펠은 가져왔던 자루에 그 비싸다는 부품을 들고는 쓰레기 더미 사이를 달렸다.


다른 이들에게는 들개를 피해 달아나는 것처럼 보일 터.


허나 아펠이 향하는 곳은 쓰레기 더미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자신의 거처가 아니다.


그는 쓸만한 고철이나 부품을 크랭으로 교환해주는 교환창구로 가는 중이다.


대낮에 가봤자 양아치들이 교환창구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며 다른 난민들의 자루를 호시탐탐 노리곤 한다.


그래서 아펠은 이렇게 날이 저물고 들개들이 돌아다니기 시작할 때쯤 교환창구로 향하곤 한다.


교환창구는 24시간 운영 중이며 코어 사용자가 상주해 있기에.


물론 코어 사용자들은 난민들이 눈앞에서 들개에게 물려가도 눈 깜짝하지 않는다.


그들은 오로지 난민들이나 마물들이 교환창구를 통해 벽 안으로 넘어오는 것을 감시하고 막는 것에만 치중한다.


이따금 씩 다른 난민들이 아펠이 자루를 짊어지고 교환창구로 향하는 것을 보았으나 딱히 쫓아오는 이들은 없었다.


저 멀리서 들개들이 지는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아펠 또한 머릿속 한구석에서 걱정이 스멀스멀 피어올랐으나 이내 발이나 빨리 놀리는 것에 집중했다.


반대편에 있는 쓰레기 더미 꼭대기에 먹이로 두고 왔으니 오늘 밤은 그쪽에서 맴돌 터.


오늘따라 교환창구로 향하는 길이 유난히 길게 느껴진다.


허나 이는 조급한 마음이 불러일으킨 착각일 뿐.


저 멀지 않은 곳에 교환창구의 빛이 눈에 들어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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