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찬란하고 아름다운 이방인
결말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런가 요즘 따라 죽고 싶다 말하는 게 습관이 되어 버렸다. 딱히 슬프지는 않다. 그렇다고 기쁘지도 않다. 그냥 이 무료한 하루를 보낼 뿐이다.
내 이름이 뭐였지? 갑자기 생각이 나지 않아 실실 웃어버렸다. 웃음 소리가 컸던 탓인가 내게 향하는 시선이 조금 따갑긴 하지만 상관없다. 저들은 나란 인간을 궁금해하는 것이 아니라 저 웃음이 자신에게 어떤 피해로 번질지를 궁금해하는 거니까.
아, 그래 그러니까 내 이름은 무명이라 하지. 어차피 이름 같은 건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니 나를 어떻게 부르던 상관없는 일이다.
거짓말쟁이, 이상가, 몽상가, 이상한 녀석, 예술가, 로맨티스트, 아버지, 환자 그리고. . . .괴물.
내게는 너무 많은 이름이 있다. 하루를 꼬박 지새워도 전부 말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이름이 있다. 아니, 있었다.
그래 내게는 많은 이름이 있었다.
그러나 그 이름들은 이제 아무 필요가 없어졌다.
그저 참을 수 없는 궁금증과 끝이 보이지 않는 시간이 나를 괴롭히고 있을 뿐이지.
너희들은 어째서 내게 그런 이름을 붙였는지, 그것이 내 이름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 . .
너의 이름은 무엇이지. 너희는 왜 끝을 알면서도 자살하지 않는 것인지.
아, 이 하얀 종이 밖의 너희들에게 묻고 싶은 말은 많지만 더 이상의 시간은 내게 주어지지 않아서. . . .
이제 끝을 내야 할 것 같다.
내게 주어진 이 끈질긴 삶을 말이다.
나는 오늘 나를 죽일 거다. 그것도 아주 잔인하게.
죽었으면 좋겠다.
정말로.
오늘은 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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