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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6.03.16 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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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3.25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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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덴티티, 그리고 적응 - 6

DUMMY

“참내. 난 치료마법은 잘 모르는데. 그보다 넌 대체 무슨 생각으로 킨한테 덤빈 거야? 네가 무식하게 킨한테 덤빌 정도로 멍청하진 않을 텐데?”


“누구누구 말처럼 맞는 걸 즐기는 마조히스트라서 그런가보죠.”


“장난치지 말고. 넌 절대로 그런 멍청한 짓은 안한다는 건 알고 있으니까. 내가 너랑 하루 이틀 같이 있었냐?”


“······.”


안젤라가 내 등에 손을 얹고 주창도 없이 해독마법을 걸며 진지하게 물어왔다. 어째서 킨에게 쓸 데도 없는 젤을 구해오라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녀 정도의 실력이면 화살촉으로 생긴 상처쯤은 젤 없이도 충분히 복원할 수 있다. 그런데 킨을 일부러 연구실로 보내면서까지 단 둘이 남는 상황을 만들었다. 아마 직감적으로 이 일이 킨과 관련됐고, 킨이 알아선 안 된다는 걸 어렴풋이 눈치 챈 듯했다. 이렇게 보면 안젤라도 은근히 주변눈치는 밝은 것 같았다.


“그냥, 기분전환 좀 시켜주려고 그랬어요. 뭔가 많이 답답해하는 것 같아서요.”


“킨이? 무슨 고민이라도 있는 건가? 나한텐 그런 말 없었는데.”


“야뇨, 고민아리고 보단, 자기발전에 큰 변화가 없어서 좌절하는 것 같더라고요.”


일단 킨의 주목적은 말하지 않았으니 이 정도로 얼버무리면 될 듯했다. 안젤라가 캐묻는 바람에 대충 둘러댄 것치곤 나쁘지 않은 답변이었다.


“오. 그럼 너는 킨이 일종의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는 거네?”


“굳이 감탄할만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만?”


“그야 네가 남을 위할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 허구한 날 빈정대고 사사건건 의심스러운 짓만 골라서 하는 꼴만 봤으니 내가 널 어떻게 보겠어?”


“의심스러운 짓? 내가 그랬었나?”


빈정거리는 거야 그렇다고 쳐도 안젤라가 나를 의심스러워할만한 행동은 전혀 한 기억이 없었다. 불철주야 온갖 잡다한 일을 마다하지 않고 봉사정신으로 헌신한 게 의심스러운 일이라면, 그녀가 날 의심스러워하는 건 충분하고도 남았다. 난 그저 내가 현재 주어진 본문에만 충실할 뿐이지 이상한 데엔 전혀 사심을 품지 않았다.


“설마 모른다고 말은 안하겠지? 너 매일 밤마다 빛이 나오는 이상한 기계를 홀린 것처럼 보면서 지내잖아? 그게 얼마나 수상한지 알아? 그, 뭐라고 그러더라. 스마 뭐시기 그거 있잖아.”


“아, 스마트폰이요?”


“아 맞다. 스마트폰. 그래 그거. 그게 뭐가 좋다고 희희낙락거리고.”


저 말. 우리 엄마가 자주 했던 말인데. 내가 손에 스마트폰을 달고 산 건 맞지만 그렇다고 중독이거나 심취해있진 않았다. 할 일은 다했으니까. 하지만 엄마는 스마트폰을 하고 있는 날 볼 때마다 ‘그러다 눈 나빠진다.’라는지 아니면 ‘그게 너 바보로 만드는 거야.’라는 등의 한 마디를 꼭 덧붙였다. 물론 그런 엄마가 쓰는 휴대전화는 스마트폰이 아니라 폴더폰이었다. 스마트폰의 편리함과 유희성을 모르는 엄마로선 스마트폰은 그저 TV에 이어 신시대에 나타난 또 하나의 바보상자일 뿐이었다.


안젤라도 스마트폰에 대해선 전혀 모를 테니 그녀 눈엔 우리 엄마처럼 스마트폰은 빛을 뿜어내는 큼지막한 상자로밖에 안 보일 것이다. 다만 안젤라와 엄마의 다른 점이 있다면, 안젤라는 엄마와는 다르게 스마트폰에 지대한 관심을 품고 있다는 정도였다. 물론 절대로 그녀의 손에 쥐어줄 생각은 없었다. 내 유일한 낙인데 만약 그녀가 잘못 건드렸다가 결함이라도 나면 AS를 맡길 곳도 없는 이곳에서 아마 하루하루를 절망적인 날을 보내게 될 것이다.


“해본 사람만 알아요. 안 해본 사람은 절대 모르죠. 스마트폰이 주는 종합적인 기능이 가져다주는 편리함과 유희성에 대해서요.”


“그럼 나도 줘봐. 나도 한번 해보게.”


“싫습니다.”


“해본 사람만 안다며? 그럼 나도 한번 그 편리성이랑 유희성 좀 누려보게 잠깐만 좀 써보자.”


“각하입니다.”


“아 왜! 대체 뭐 때문에 안 된다는 건데? 나도 스마트폰을 쓸 자격은 있거든? 게다가 그건 네 주인으로서가 아니라 스마트폰의 충전기를 개발해준 사람으로서라는 정당한 사유라고!"


아, 그래도 안젤라한테 고마운 게 있긴 있었구나. 생각해보니까 내 폰의 전용충전기도 그녀가 만들어서 쓸 수 있게 됐지.


안젤라가 만들어준 충전기가 무슨 원리로 작동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마나석으로 충전되는 방식인 것만은 확실했다. 외형은 내가 일러준 대로 만들어준 덕분에 콘센트를 꽂아서 예전 모델이랑은 외형이 별반 차이가 없었다. 다른 점이라면 콘센트를 꽂아야할 데가 내 주먹만 한 크기의 마나석이 들어가는 이상한 장치가 있다는 것뿐이었다.


이걸 만드는데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전기규격은 맞추는 것부터 충전기 선을 어떻게 연결하는 것 등, 아주 많은 실패를 거듭했다. 그리고 큰 희생도 치러야했다.


“그거야 아주 감사했죠. 덕분에 배터리에 구애받지 않고 쓸 수 있었으니까요. 그건 진심으로 감사해요.”


“그러면 빌려줄 수 있는 거잖아? 그런데 왜 쩨쩨하게 굴어?”


그렇다. 빌려줄 수도 있었다. 안젤라는 먹히지도 않는 주인으로서의 권한이 아닌 후원자로서의 권리로 내게 요구를 하는 것이니까. 그런 면에선 그녀의 선택은 옳았다. 씨알도 안 먹히는 명령을 내려봤자 나는 분명 콧방귀만 낄 것이다. 하지만 정당한 명분을 내세워 요구를 한다면 아무리 나라도 양심상 그녀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다.


물론 나도 안젤라에게 스마트폰을 빌려주고 싶었다. 변태같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처음 접해보는 문명에 신기해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하는 사람을 지켜보는 게 나한텐 흐뭇하게 느껴졌다. 뭐랄까, 이 사람이 내가 아끼는 걸 알아주는 게 좋다고나 할까. 아무튼 그런 데서 난 소소한 재미를 느꼈다.


하지만 안젤라한테만은 절대 빌려줄 수 없었다. 바로 옆에서 그녀가 스마트폰을 한다고 해도 절대로 그녀의 손에 쥐어줄 수 없었다.


“안 돼요.”


“그러니까 대체 왜! 정당한 이유를 대보라니까!”


“제 MP3을 완전히 고물로 만들어놓으셨잖아요.”


그랬다. 안젤라에겐 전과가 있었다. 내 MP3. 마나석 충전기를 만들면서 치룬 희생이자 안제라의 부주의로 세상을 떠나버린 불쌍한 내 음악들.


안젤라가 내 말에 흠칫했다. 그녀는 닦달하는 걸 멈추고 빤히 쳐다보는 내 시선을 피해 눈동자를 돌렸다. 제아무리 그녀라도 이건 양심에 찔리는 것 같았다. 그래도 내 주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지 시선을 피하면서 변명을 늘어놓았다. 얼굴엔 당황한 기색이 역력히 드러나고 높아진 언성으로 말이다.


“그건 어쩔 수 없었잖아! 정확한 세기도 잘 몰라서 조절하기 힘들었던 데다가, 그래! 내가 그건 실험용으로 하자고 했잖아!”


“아, 그랬죠. 하지만 처음부터 제 말 안 듣고 막무가내로 실험을 감행한 사람은 누구였죠?”


“으음······.”


“아무리 봐도 220V는 훌쩍 넘을 것 같은, 굳이 표현하자면 주변에 전기가 튈 정도로 고압의 전기였죠, 아마? 그런데 그걸 무식하게 MP3 충전용으로 사용했으니 뻥, 하고 터질 수밖에요. 이야, 끝내줬죠. 내 20G가 공중분해가 되는 건 식은 죽 먹기더군요. 그 음악들 모으느냐고 쏟아 부은 돈이 한두 푼이 아니었는데.”


한 줌의 재가 되어버린 내 음악파일들은 전부 내 돈 내고 다운받은 정품들이었다. 게다가 한순간에 폭죽이 되어버린 MP3도 돈이 제법 깨서 산 고급 MP3였다.


안젤라는 입을 꾹 다물기만 할뿐, 반박이나 대꾸도 없이 그저 내 시선을 피하기에 바빴다.


“처음엔 살살 하자니까 ‘이 정도는 전기 축에도 못 낀다고!’하면서 자신만만하게 MP3에 충전기를 꽂았다가 고압을 못 이기고 결국 MP3는 속부터 새까맣게 타버렸죠. 스파크 튈 땐 식겁했다니까요.”


“으···, 그거 내가 책임져준다고 했잖아. 남자가 쪼잔하게.”


적당한 반박거리를 못 찾은 안젤라가 내 빈정거림에 어금니를 꽉 깨물며 내게 빈정거리는 걸 멈춰주길 원했다. 사실 지금까지 그녀가 내 빈정댐에 인내한 것도 예전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벌써 데스볼에 지져지다 못해 형체도 남아있어야 있지 않아야할 내 몸이 지금은 안젤라의 해독마법을 받고 있으니까.


“알겠어요. 이제 입 꽉 다물고 지퍼 채워놓을 게요. 그럼 됐죠?”


“그래. 정말로, 아주 정말로 고맙다.”


“어째, 뒷맛이 그리 개운치 않은 인사네요.”


“후···, 넌 예나 지금이나 꼭 한 마디를 안 지려고 하는구나.”


안젤라가 짜증이 묻어나는 어투로 말했지만, 해독마법을 거는 손은 여전히 내 등에서 떼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벌서 때려치고도 남았을 텐데.


그 짧은 시간동안 안젤라는 쉬지 않고 내 등에 손을 얹은 채 해독마법을 걸어줬다. 잠시 후 킨이 지하실에서 가져온 젤을 안젤라가 손대중으로 대충 떼어내 구멍이 난 내 신체 부위에 밀어 넣었다. 이후 그녀는 복원마법을 써서 젤과 내 신체를 융합시켜 구멍을 완전히 메워버렸다.


“이걸로 치료 끝. 해독마법도 해서 움직이는데 별 지장 없을 거야. 조금 어색한 감은 있겠지만.”


“이게, 끝인가요? 빨리 끝났네요.”


간단한 마법이라 그리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뭐랄까, 뭔가 휘황찬란한 마법진들을 기대했던 내게 그녀의 마법은 조금 아쉬움을 불렀다.


“뭐야? 설마 뭔가 대단한 마법이라고 기대한 거야?”


“솔직히 말하면, 그렇긴 했죠. 뭔가 마법진들이 허공에 수놓아져지고, 빛이 발하고. 왜 있잖아요? 고급마법 같은 거 쓸 때 나오는 이펙트 같은 거요.”


판타지에 심취하면 겪은 일종의 병이랄까? 아니면 로망이랄까. 결정의 순간에 마법사가 자신이 주창할 수 있는 최고의 마법을 펼치기 위해 마법진을 소환하고 마나를 주입하면서 생기는 거대한 소용돌이에 요동치는 공간에 홀로 서서 멋지게 주문을 외치는 그런 장면을 상상한 나에게 안젤라의 치료마법은 왠지 모르게 허무함이 들게 했다.


“흠. 그런 정도의 이펙트라면, 확실히 고위마법을 써야하긴 하지. 해독마법 정도에 마법진 같은 건 거의 필요 없으니까. 게다가 그런 고위마법을 쓰려면 마법진에 주입해야하는 마나도 엄청나니까 일반적으론 거의 쓸 일이 없을 테고. 뭐, 네가 보고 싶다는 그런 이펙트는 현실적으로 그리 보기 쉬운 일은 아니야.”


역시 그렇겠지? 하긴 내가 로망을 가진 그 장면도 ‘최후의 순간’이라는 타이틀이 꼬리표로 따라왔으니.


“그런가요? 그럼 전 그런 마법을 볼 일은 거의 없겠네요.”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 싶은데.”


“뭐, 제 주변에 그런 마법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럴 만한 상황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어쩔 수 없죠.”


로망은 로망일 뿐이라는 사실이 절실하게 가슴에 와 닿았다. 하지만 그런 로망이 있기 때문에 삶이 윤택해졌다. 꿈이 있기 때문에 싫증을 잘 내는 인간들이 끝없이 도전하는 거니까. 가슴에 꿈 하나 품고 가는 게 없는 사람과는 천지차이였다.


비록 내가 가진 로망은 그런 것과는 별개였지만, 그래도 어쩌면 그게 좋은 방향으로 바뀔 지도 모르지.


해독마법이랑 복원마법도 끝난 지금 계속 바닥에 엎드려있을 순 없었다. 나는 마비가 가신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왠지 내 몸이 아닌 것 같아 서있는 폼이 그리 좋지 않았고, 서있는 것 또한 그리 편하지 않았다.


“에고, 이거 그리 좋진 않네. 해독마법을 했는데도 이 정도라면, 킨, 너 신경마비 마법 강도가 제법 센 것 같다? 너 진짜 나한테 악감정이라도 있는 거 아니야?”


“···그전에 내가 하나 묻자.”


아직도 움직이기는 게 뻐근해 킨에게 장난스럽게 농담을 던지는데 킨이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안젤라가 그 사이를 타고 들어왔다.


그녀는 다짜고짜 내 멱살을 잡더니 살벌한 음성으로 협박 비슷하게 질문을 했다. 느닷없는 그녀의 협박에 안 그래도 거동하기 힘든 몸이 더 힘들어졌다.


안젤라는 내가 힘들건 말건 개의치 않고 붉은색 아지랑이를 만들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너, 방금 고위마법을 만들어낼 만한 마법사가 네 ‘주변’에 없다고 했지?”


“아, 네. 그랬죠.”


나는 안젤라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


아, 지뢰를 잘못 밟았다.


“없다고···? 없다고···? 없다고? 없다고?! 없다고?!?!”


“아, 이런. 큰일 났네.”


작가의말
  • (/・ω・)/\(・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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