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검주 도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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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체프라
작품등록일 :
2016.03.18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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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09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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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3.18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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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_마음의 굴레

DUMMY

20


그날 저녁. 병원 진료 시간은 마감되었고, 레지던트 숙소에는 안도여와 한곤계만이 남아 있다. 두 사람 사이에는 냉랭한 기류가 감돌고 있다.


“도여 너, 왜 말 안 했어?”

“...무슨 말요?”

“너 정말 이럴 거야? 우리 아버지가 누구한테 저렇게 됐는지 잘 알면서... 왜 말 안했지?”

“그러니까... 더욱 말 못하죠.”

도여의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그 모습에 곤계는 화를 참지 못하고 책상을 내리친다.


“왜 하필... 그 사람이 네 아버지냐고? 홍민곽이 왜! 당신과는 성도 다른데 왜? 어떻게 그런 자가 당신 아버지냐고?”

“말 함부로 하지 마요. 그래도, 나한텐 좋은 아빠니까.”

“흐...”

도여가 눈물 맺힌 눈으로 곤계를 노려보자 그가 시선을 피했다.


“그래? 그렇다 치자. 그럼, 우리 사이는 이제 어떻게 할 건데?”

“우리 사이... 뭐 달라진 게 있나요?”


“뭐? 그걸 말이라고 해? 네 아버지는 탈주범에, 아니 그건 관두더라도 우리 아버지를 죽이려고 했어. 그런데 우리가 이전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해?”

“아빠의 일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어요. 하지만, 그게 우리 잘못은 아니잖아요?”


도여가 간절한 눈빛으로 곤계를 쳐다본다.


“아니지. 우리 잘못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지. 당신 아버지는 경찰에 쫓기는 신세에다가 더구나, 우리 아버지를 죽이려 했던 자고... 경찰이 병원까지 와서 너를 감시하고 있는 마당에... 난 솔직히 감당할 자신이 없다.”

“...그럼?”

뭔가를 확신한 듯 도여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우리... 이쯤에서 관두자. 그게 서로에게 좋을 것 같다.”

“흐... 서로?”

도여가 기분 나쁜 미소를 머금고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어갔다.


“서로가 아니라... 당신을 위해서겠지? 안 그래?”

“도, 도여야. 너 갑자기 왜 그래? 우리 이러지 말자, 응? 앞으로 안 볼 사이도 아니고.”

“끝내자는데... 그럼 웃을까? 미친 사람처럼? 깔깔깔. 됐니?”

“너.......”


곤계는 얼어붙은 도여의 얼굴을 애써 외면하려 듯 등지고 돌아앉았다. 두 사람 사이에 잠깐 동안 침묵이 흘렀고, 자리를 먼저 박차고 일어선 것은 도여였다.


“좋아, 그래 끝내. 근데 나... 홀몸이 아니래. 어쩌지?”

“...뭐? 너 설마... 거짓말이지?”

“꺄르르르르....”

도여가 미친 사람처럼 배를 잡고 한참을 웃었다. 곤계의 얼굴빛이 하얗게 변해가고 있었지만, 그는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했다.


“그냥... 한번 해 본 소리였는데. 호호호. 당신이 어떻게 나오나 궁금하기도 하고. 근데 당신도 별수 없네, 머. 후훗.”

도여가 싱긋이 웃고는 방문 손잡이를 잡았다.


“잠깐! 너... 거짓말, 확실하지?”

“뭐가요? ”

“솔직히 말해. 임신이야 아니야?”

“호호호... 내가 언제 임신이라고 말한 적 있었나? 그리고 헤어지는 마당에 그게 왜 궁금하실까. 걱정 마요. 그런 일도 없지만, 난 그런 일로 당신을 묶어 놓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까. 한. 곤. 계. 선생님.”


도여는 미소를 살짝 머금은 채로 방문을 열어젖혔다. 그녀는 몸을 밖으로 반쯤 내밀다 말고 고개를 돌렸다.

“아, 한 선생님. 끝낼 땐 깔끔하게. 호호호.”


도여는 검지와 중지를 까닥거리며 손가락으로 가위질하는 시늉을 해 보였다. 곤계가 입술을 깨물며 분한 표정을 짓는다.


복도로 나온 도여는 북받치는 감정을 애써 억눌렀다. 울면 지는 거라 생각하며 그녀는 가쁜 호흡을 가다듬었다.



퇴근을 하던 도찬이 당직 근무를 위해 출근하던 친구를 병원 1층에서 우연히 만났다. 도찬과 대학 동기인 그는 방사선실에서 근무한다.


“어이, 재욱. 이제 출근하냐?”

“응. 벌써 퇴근? 이야, 좋겠다.”


“히히히. 그러니까 진작 전공을 바꾸라고 했잖아? 이 형님 말 안 듣더니... 쯔쯔쯔. 우린 당직이 없어서 그건 좋다. 꺄꺄꺄.”

“그러게 말이다. 네 말 들을 걸... 후회막급이 크다. 긴 밤을 또 어떻게 보내냐? 어휴, 벌써 걱정이네.”


“엄살은... 밤에 간식 좀 사다 줄까?”

“그럼 나야 좋지. 긴급만 없으면... 같이 옛날 얘기나 좀 하고, 응? 그래라, 도찬아.”


“알았어. 나중에 문자할게. 수고해라.”

“그래. 가.”


도찬이 근무지로 가는 재욱의 등을 지켜보다가 고개를 돌리는데 도여가 얼핏 눈에 띄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그녀의 모습에 도찬의 얼굴은 환하게 밝아졌다.


“어, 안 선생님. 퇴근 안 하세요?”

눈을 깜박거리며 도여가 고개를 들자 도찬이 반갑게 웃고 있었다.


“아, 네. 당직이라서요.”

“네에, 그렇군요. 헤헤헤.”

도찬은 은근히 아침의 일로 공치사라도 들으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고개만 살짝 까닥이고는 그를 지나쳤다.


“쩝...”

도찬이 못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신다. 그 순간, 그를 부르는 도여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 기 선생님.”

도찬은 기다렸다는 듯 몸을 홱 돌렸다.


“네, 선생님.”

“덕분에... 모든 걸 알게 해 줘서 고맙다고 해야 할지......”

“네? 무슨...?”

환하게 웃던 도찬의 얼굴이 서서히 굳어졌다.


“하지만, 부탁인데 앞으로 제 일에 나서지 말아 주세요. 아니, 가급적이면 업무 외엔 저와 마주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네요. 기 선생님의 시선이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니라서요.”

도찬은 갑작스러운 그녀의 잔인한 말에 당황하여 어찌할 줄을 몰랐다.


“제 말, 무슨 뜻인지 아시겠죠? 그 정도는 알아들었으리라 믿어요. 그럼...”


망신, 이런 개망신을?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녀가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도찬은 고개를 돌릴 수가 없다. 누가 본 사람은 없겠지? 도찬이 생각한 것은 고작 그것뿐이었지만 그의 마음 한구석은 왠지 모르게 편안해지는 듯했다.



21


소윤의 연락을 받은 세나는 난천과 함께 그녀의 가게를 다시 찾았다.


“당신들 말이 맞았어요. 그들은 우리를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무슨... 일이라도?”

난천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들은 우리의 정체를 알아내려고 혈안이 된 듯해요. 제가 잡혀갔던 그곳에서... 그 노부부를 보았어요. 마치... 곧 해부 당할 실험용 쥐가 된 것처럼 덩그러니 누워있더라고요. 아무 의식도 없이.”

“네?”

난천과 세나가 놀라며 동시에 말했다.


“그들이 저보고 그 사람을 아냐고 묻더군요. 본 적은 없지만... 아마 그들이 맞을 거예요, 사라졌다는.”

소윤이 의기소침한 듯 한숨을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저를 높은 곳에서 밀어뜨리기까지 하더라고요. 날개가 있는지 확인하려고....... 어쩌면 나를 죽일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이렇게 연락을 드린 거고요.”

“잘하셨어요.”

세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소윤은 자신의 존재를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녀의 어머니, 외할머니로부터 수없이 들었던 이야기라고 했다. 그녀의 외할머니는 한민의 신녀(神女), 그러니까 지금의 무당처럼 제사를 지내거나 마을의 길흉사를 점치던 사람의 딸이었다고 했다.


그녀는 자신이 한민이란 사실이 싫었다고 했다.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원히 한민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길 바랐다고 했다. 하지만 운명은 거슬릴 수 없는지, 한동안 꿈자리가 조용할 날이 없었다고 한다. 결국 한민의 능력이 나타나고 말았다며 못내 아쉬운 듯 말했다.


“어쩌면 이렇게 칼을 잘 다루는 것도... 한민의 피가 흘러서 그런지도 모르죠. 으흐흐흐.”

소윤이 고기를 손질하던 칼을 치켜 보며 말했다.


“어머님. 홍민곽, 아니 아버님은 어떻게 만나게 되신 거예요?”

“오래 전이죠. 10년은 더 되었을 것 같은데....... 여기 시장에서 험한 일을 하고 있더라고요. 유독 저한테만 잘해 주기에...... 그렇게 가까워졌죠.”

세나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한민인 줄은 서로 모르셨겠군요?”

“그럼요. 알았다면 제가... 멀리했을걸요. 호호호.”

난천의 물음에 소윤이 싱긋이 웃으며 말했다. 난천이 궁금한 것이 있는지 또다시 물었다.


“자녀분은...?”

“그 사람과는 아이가 없어요. 하지만......”

“네.”

“전 남편에게서는... 딸이 하나 있지요.”

“그 따님은 지금 어디서 뭘...?”

“저를 닮아서 그런지 걔도 칼 잡는 일을 해요. 호호호. 직장 때문에 지금은 따로 떨어져 살고요.”

“아, 네. 그렇군요.”


난천은 입술을 다문 채 생각에 잠긴다. 세나가 말을 꺼내기 전까지 침묵이 흘렀다.


“외삼촌, 이제 어떻게 해야......?”

“음... 당분간 우리의 존재를 철저히 숨겨야 하겠지. 아직 우리에겐 지킬 힘이 없으니...”

“그럼 언제까지...?”

“일단 기다려 봐야지. 더 많은 힘을 모을 수 있는 방도가 있지 않겠니?”


“그분, 비검주가 나타나셨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봐요.”

소윤의 말에 세나와 난천이 깜짝 놀라며 쳐다본다.


“비검주를 아세요?”

세나가 다급하게 물었다.


“그럼요. 비검의 주인이자 우리 한민의 수호자가 되실, 그분을 모를 리가 있겠어요?”


“나타났다는 것은 어떻게...?”

이번엔 난천이 물었다.


“그러게요. 자꾸 그분이 보인답니다, 꿈에요. 호호호.”

“네에? 그럼 얼굴을 보셨습니까? 혹시 여자이던가요?”

난천이 속사포처럼 연거푸 물었다.


“흐릿하긴 했지만... 남자인 것만은 분명해요.”


세나와 난천이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에 소윤이 작업대 아래에서 뭔가를 끄집어냈다. 그녀가 난천에게 내민 것은 한 권의 낡은 책이었다.

“이거요... 저는 잘 읽지를 못하겠더라고요. 어머니가 남기고 가신 책이긴 한데... 저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한민에게 중요한 책이라고 하셨거든요.”


난천은 그녀가 건넨 책을 조심스럽게 받아들고는 겉표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비한서(庀翰書). 날개를 다스리는 글이라... 난천은 천천히 겉표지를 들어 넘겼다.


“외삼촌, 뭐라고 적혔는데요?”

세나가 기다리지 못하고 물었다.


“...글쎄다. 한자랑 잘 모르는 글자가 섞여 있어서... 찬찬히 살펴봐야 알 수 있겠어.”

난천이 난감한 표정으로 세나를 쳐다보다가 소윤에게 시선을 옮겼다.


“근데, 이걸 왜...?”

“저보다는... 한민에게 더 애착이 많으신 분이 갖고 계신 게... 맞는 것 같아서요. 한민을 위해서도 그게 좋을 것 같고.”


소윤의 얼굴에 쓸쓸한 미소가 잠시 흘렀지만 이내 무거운 짐을 벗었다는 듯 홀가분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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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34화_저주 16.06.13 416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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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31화_낯선 호의 16.05.30 484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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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8화_드러난 실체(1) +1 16.03.19 1,067 1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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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5화_검은 그림자 +1 16.03.18 1,149 15 9쪽
4 4화_오리무중 +1 16.03.18 1,309 20 9쪽
3 3화_되살아난 검 +1 16.03.18 1,637 20 9쪽
2 2화_탈주범 +1 16.03.18 1,879 23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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