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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nifle
작품등록일 :
2016.03.19 09:17
최근연재일 :
2019.04.04 19:57
연재수 :
2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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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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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9
글자수 :
1,493,079

작성
16.06.04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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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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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글자
11쪽

19화-만남을 위한 이별(5)

DUMMY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그 모습에 드로울이 감사를 전했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싸늘한 냉소와 차가운 비웃음 뿐이었다.


“닥쳐. 하찮은 것이 쓸데 없이 말이 많구나.”


“네? 크윽!”


언제 그리 된 것일까. 바닥에 주저 앉을 수 밖에 없었던 드로울의 시야에 잘려나간 자신의 손목과 발목이 보였다. 분명 힘줄이 잘렸을 터였다.

그리고 이내 아물어 버리는 상처에 드로울은 가만히 눈을 감을 수 밖에 없었다. 상처는 아물었지만 힘줄은 낫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낫지 않을 터이다. 그것은 루난도 마찬가지.

그래, 자신들은 벌을 받은 것이다.


“그래, 너희는 벌을 받은 거야. 나를 모욕하고, 아빠를 모욕한 벌을.”


자박, 하는 작은 발소리와 함께 에아의 몸이 드로울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에아는 그대로 주저앉아 일어서지 못하고 있는 드로울을 싸늘하게 내려다 보며 선고했다.


“나를 모욕하고, 내 아빠를 모욕했어. 그래, 날 모욕한 것은 좋아. 아무리 신앙이라고는 해도 한두녀석 정도는 그럴 수 있으니까. 하지만 아빠는 달라. 아빠는 내게 빛을 주었어, 기회를 주었어. 미몽을 헤매던 내게 빛을 주었고, 아빠와 같은 형상을 취한 내게 기회를 주었어. 그리고 받아 주었어. 내게 아빠는 세계이고, 내 존재의 의미나 마찬가지야. 그런데 너는, 너희는 그런 내 아빠를 모욕했어.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음에도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가기 위해 부러 아빠라고 부르고 있는 내 아빠를 무시하고 모욕했어.”


그 순간이 기억 난 것인지 에아의 자그마한 주먹이 가만히 쥐어졌다가 다시 펴졌다.


“난 그걸 참을 수 없었어. 하지만 참았지. 왜? 내가 나서게 되면 아빠를 무시하고, 폄하하는 것이 되니까. 그리고 아빠는 너희에게 징벌을 가했지. 하지만 난 또다시 막아 섰어. 그리고 아빠에게 위해를 가했어.”


그래, 위해다. 설령 그것이 아무리 작고 연약해 아무런 해를 가할 수 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 의도는 통증이라는 해를 가하기 위한 것. 즉, 위해다.

그래서는 안 되었다. 그럴 수는 없었다. 설령 아인즈가 자신을 미워하고, 증오하고, 멸시하고, 경멸할 수는 있을지언정 자신이 아인즈에게 아무리 작고 사소한 것이라 한들 해를 가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이 에아의 정의고, 에아의 삶이며, 에아의 세계였다. 그런데 그것을 스스로 부정해야만 했다.


“그게 어떤 심정인지 너희는 알아? 아무리 필요한 일이었다고 스스로를 납득시켜도 그것을 해야만 했던 내 심경을 너희는 알아? 아니, 모르겠지. 너희는 몰라. 그리고 앞으로도 모를거야. 알아도 모를 거야. 그러니”


에아의 가라앉은 눈이 드로울을 차갑게 내려다 보았다.


“너희는 평생토록 바닥을 기며, 흙을 먹고 살아. 영원히 평안을 얻을 수 없을 것이고, 영원히 비참할 것이고, 영원히 고통스러울 거야. 흙을 먹을 때마다 기억하고, 비참해질 때마다 후회하고, 고통스러울 때마다 비관해. 그게, 내가 너희에게 주는 벌이야.”


그 말을 끝으로 돌아서는 에아의 뒷모습을 채 바라보지 못한 채 드로울이 고개를 떨궜다. 그래, 이것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벌인 것이다.

앞으로 평생토록 지고 가야 할. 그런 벌.


* * *


에아에게 약속한 한달을 거의 보낸 어느 날. 아인즈는 뭔가 아련한 눈을 하고 연구실의 의자에 앉아 있었다.


“내일이면······가는구나······”


차라리 1년쯤, 아니, 10년쯤으로 할 것을 잘못했다고 내심 중얼거리며 그런 자신의 모습에 또 쓴웃음을 그려 본다.

이곳에 처음 발을 들일 때에만 해도 살지 못해 죽으려 하고, 죽지 못해 살아야만 했던 이가 어느새 내일을, 그 다음 날을, 또 그 다음 날을 아쉬워하고 있다는 것이 무언가 우스웠다.


“하아······”


이런저런 복잡한 마음을 그대로 담은 한숨이 내쉬어 지고, 마치 그것이 신호라도 되는 듯 그의 옆에서 빛이 쏟아져 내렸다.

태양의 그것과도 비할 수 있을 그런 강령한 빛에도 아인즈는 그저 눈을 감고, 손을 들어 과하게 시신경을 자극하는 빛을 가릴 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이것은 예정된 절차이니까.

모든 것을 빛으로 화하게 하겠다는 듯 쏟아지던 빛이 사그라들고, 그 자리를 누군가의 발소리가 대신했다.

차박, 차박.

물이 얇게 퍼진 바닥을 밟는 소리와 함께 부드러운 천이 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탄생을 축하한다.”


눈이 내린 초원 같은 빛의 새하얀 머리칼, 고개를 숙이고, 한쪽 무릎을 꿇은 기사의 예를 보이고 있기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 눈꺼풀 안에는 푸른색과 은색의 오드아이가 감춰져 있을 터이다.

자신이 최초로 탄생시킨 호문클루스를 보며 아인즈는 잠시 감상에 빠져들었다.

1개월 전, 엘프의 방문으로 인해 만들기 시작한, 사랑하는 에아를 위한 단 하나의 수호기사.

현자의 돌을 대체하기 위해 자신의 권역을 유지하는 모든 마력을 한데 뭉쳐 하나의 결정을 만들어냈다.

십만여의 마도서 중, 연금서도 부지기수. 그렇기에 그 모든 것들을 취합해 아인즈는 세계수의 아이이면서도 인간의 아이이기도 한 그녀를 탄생시키기 위해 자신의 별하늘을, 우주를 넘겼다.

우주는 하나의 거대한 자가발전 시스템. 좁은 범위에서 본다면 언제고 바닥나버릴 에너지를 끊임없이 소모하고 있지만 넓게 본다면 에너지는 끝없는 순환을 거듭한다.

이미 진리를 알아버린 그의 모든 지식을 담아 빚어낸 결정을 코어로 삼아 새로이, 호문클루스라 불릴 수 밖에 없지만 전에 없었던 존재를 탄생 시켰다.

가사상태로 육체를 구축하고 마침내 세계의 섭리로부터 영혼을 허락 받아 탄생하는 가장 완성에 가까운 존재.

탄생할 때부터 이미 세계의 '리' 바로 앞에서 시작하는, 저 위대한 존재라 칭해지는 용종조차 비교될 수 없는 초월종 중의 초월종. 호문클루스가 마침내 눈을 뜨고 세상에 태어났다.

빛과 함께 깨어난 은색의 기사는 그 스스로의 나신을 보이는 것이 전혀 부끄럽지 않다는 듯 한치의 미동도 없이 그저 예를 보이고 있을 뿐이었다.

완벽한 균형을 자랑하는 몸매와 몸을 감쌀 정도로 풍성한 신비한 은발, 그리고 도자기와 같은 하얀 피부는 어떤 남자라도 탐욕을 품을법한 성질의 그것이었지만 아인즈가 느끼는 감정은 그와는 거리가 먼, 에아를 대할 때와 같은 것 이었다.


"아버님."


그녀는 그가 탄생시킨 생명, 그의 딸과도 같은 존재. 거기에 에아를 위해 탄생시킨 존재였으니 그에 따라 알게 모르게 흘러 들어간 그의 염은 그녀를 더욱 아인즈의 딸과 같은 존재로 만들었다. 그런 그녀가 마침내 고개를 들어 그와 눈을 마주쳤을 때. 아인즈는 그녀의 이름을 결정했다.


"너의 직분은 나와 나의 딸을 지킬 수호의 검이니 '세이버(Saver)'라 칭하겠다.

그런 너의 직분을 지탱할 너의 이름은 너의 눈이 그 증표로서 오롯이 존재할 것이다.

너의 우안은 푸르게 비추는 창공의 염원과 같으니 너의 성은 '아주르'(Azure)이며, 너의 좌안은 은빛으로 빛나는 달의 소망과 같으니 너의 이름은 '루나'(Lunar)이다."


"루나......아주르(Lunar-Azure)......"


멍하니 자신의 이름을 되내이는 그녀의 모습에 아인즈는 슬며시 미소지었다.


"어때, 마음에 드느냐?"


그의 물음에 그녀, 루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환하게 웃으며 화답한다.


"네!"


* * *


“잘······갔겠지.”


서쪽의 엘프의 숲으로 떠나가는 에아를 배웅한 아인즈가 쓸쓸함이 감도는 어조로 입을 열었다. 비록 자신이 직접 그리고, 수없이 검증을 거듭한 마법진으로 보냈다고는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자식이 걱정되는 것이 부모의 당연한 마음.

이런다고 해서 아무런 의미도 없을 거라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내쉬어 본다.


“하아······”


적어도 돌덩이를 잔뜩 올려다 놓은 것 같았던 가슴이 조금이나마 가벼워 진 것만 같았으니, 지금은 그것으로 족했다.

물론, 에아를 걱정하는 것이 그다지 의미 없는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게 알고 있다.

에아의 무력도 그렇지만 루나의 무력 역시 제대로 단을 오르고 있는 그런 수준의 것이었으니까. 당장 세상에 나가도 그랜드 마스터라며, 위대한 무인이라며 숭앙받을 그런 수준인 것이니까.

하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고, 또 아쉽다. 이 넓은 탑에서 이제는 온기라고는 느낄 수 없을 테니까. 그리고, 이제 떠나야 하는 자신의 곁에 에아가 없을 테니까.


“······”


아인즈가 가만히 손을 들어 하늘에 비춰본다. 벌써 13년. 밖의 시간은, 현휘의 시간은 이제 채 1년이 지났을 뿐이지만 아인즈의 생은 어느새 13년이 지나고 있었다.

이곳에 도착하고서 있었던 일이라고는 그저 계속해서 연구를 하고, 에아와 감정을 교류하는 것뿐.

하지만 이제는 떠나야 하는 것을 느끼다. 아니, 그러니 이제는 떠나야 한다고 할까.


“너는, 다 알고 있었겠지?”


정강이를 걷어차던 에아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때 에아는 어떤 생각으로, 어떤 마음으로 자신을 찾을까.

겉으로는 분명 말괄량이에 버릇도 없어 보이지만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의 딸이다. 그 안에 있는 마음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 여린 가슴 안에는 조금의 빈자리도 없이 자신에 대한 걱정과 우려로 가득 차 있을 터이다.

그러니 끌어안고, 품에 얼굴을 묻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가슴께 위로 손을 가져가는 것을 극도로 조심했던 그 아이가 정강이를 찬다는 일을 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아인즈는 가만히 눈을 감아본다.

몸을 감싸는 숲의 바람과, 저 너머. 동쪽에서부터 서서히 드리워지는 밤의 장막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안의, 수 없이 많이 재잘거리는 작은 아이들의 목소리 역시.


“정말, 떠나야만 하는 것일까······”


자신이 떠나면 에아가 자신을 어떻게 찾아올까. 물론 못 찾아 올리는 없지만 혹여라도 무슨 탈이 나지 않을까.

또 저기, 수정관 안에서 잠들어 있는 스피카는 어떻게 할까. 탑의 시스템과 일부 연동을 했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은 분명했다. 애초에 수정관 안의 액체들은 생명활동을 위한 양액일뿐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역시 걱정이 되었다. 이미 한번 잃었기에 또다시 잃을까, 그것이 너무나 두려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역시 떠나야만 했다. 이미, 자신은 서서히 상처를 입고 있었으니까.

분명하지도, 선명하지도 않았지만 충분히 인식할 수는 있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마음 속의 상처가 점점 더 그 크기를 키워 갈거라는 것을.

그리고 언젠가 때가 된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자신을 집어삼킬 터였다. 그러니, 떠나야만 했다. 다음 인연들이 기다리고 있을 곳으로.

세상의 물결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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