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먼 연대기 (윙클리드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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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정(魔井)
작품등록일 :
2016.06.20 01:12
최근연재일 :
2016.12.05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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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7.03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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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사라센 - 성년 파티 2

DUMMY

그가 본 쪽엔 아까의 남녀가 아렌 아저씨와 함께 이야기하며 사라지고 있었다. 나처럼 멀찍이 서서 그들이 있던 장소, 혹은 그들의 뒷모습만 바라보는 사람들만 남겨두고서.



“커런덤 남매야. 외국에서 왔는데 아버지와 거래하는 사람들이지.”



그래? 분명 내 친구는 바로 옆에서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귀로 들어온 말은 반대편으로 흘러내렸고 내 눈은 그들의 뒤만 쫓고 있었다. 아렌 아주머니가 일행에 합류하더니 리큐르드를 찾는지 두리번거렸다.



“잘못 하면 집까지 걸어가게 생겼네. 나도 집에 가야겠다. 다음에 봐.”



친구는 미소 지으며 나에게 인사를 한 뒤 가족을 향해 종종거리며 걸어갔다. 몇몇 손님들이 돌아갔지만 밤은 길었다.


홀에선 여전히 음악과 웃음소리가 들렸고, 복도와 구석진 방에선 연애를 거는 소리가 났다.


여기는 우리 집이고 내 영역이었다. 평소의 나라면 예쁜 여자에게 다가가 말이라도 한번 걸어봤을 거다. 그리고 나에게 먼저 말을 거는 여자들에겐 적당히 격식을 차린 대화를 해 주면서 다음을 기약했을 거고.


하지만 지금의 내 관심사는 주변의 여자들이 아니었다.

애들이 흔히 말하는 여신 급의 여성을 직접 본데다 평소보다 과하게 마신 술기운이 넘실넘실 올라왔다.


머리가 몽롱해지는 취기를 처음 경험한 나는 피곤하다는 핑계로 방으로 돌아왔다.


사실 늦은 밤은 어른들의 시간으로 내 또래는 거의 퇴장해야 하는 시간이 되긴 했다.


방으로 돌아와 잠시 앉아 쉬니 어지러운 기가 좀 가시면서 막 꿈에서 깬 기분이 들었다.

분명 잠시 눈만 마주친 것 같은데, 그 환영과 실제로 흐른 시간의 흐름은 무엇이었을까?


단순한 환상은 아닐 것이다.

설마 첫눈에 반한다는 게 이런 것인가, 아니면 내가 무언가에 홀렸을까? 예쁜 여자는 많이 봤지만 그 정도로 아름답다고 말할 만한 여자는 처음이었다.


이런저런 생각 속에 탈의를 하고 샤워를 했다.

따뜻한 물이 몸을 적시고 씻자 머리가 조금 맑아졌다. 사용인들이 모두 손님 접대 중이라 혼자서 잠옷을 가져와 샤워 가운에서 잠옷으로 갈아입는 순간이었다.


뭔가가 투두둑거리며 발 옆으로 떨어졌다.


뭐지?


카펫 사이를 잠시 훑어 주워드니 어디서 본 듯한 작고 파란 알맹이였다. 녹두알 크기의 단단한 알갱이는 전등 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왼쪽 손바닥을 굴러다니던 파란 조각은 약지에서 멎었다. 그 손가락에는 반지가 하나 있었다. 사파이어가 박힌 호펠학교 졸업 기념반지가.


천천히 손을 뒤집자 보석이 빠져 생긴 공간이 보였다. 사파이어 알은 그 공간보다 작았다.

깨졌나 보구나. 그런데 사파이어도 깨지던가?

약간의 의문을 가진 채 난 아까의 남매, 아니 커런덤 양을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어제 마신 술이 과했던 모양이었다.

속이 조금 쓰려 배를 잡고 식당으로 가자 내 얼굴을 본 집사가 말없이 꿀물을 줬다. 달달한 꿀물을 마신 뒤 반숙 계란을 얹은 에그 베네딕트와 다시 꿀을 듬뿍 넣은 우유를 마시니 속이 많이 진정됐다.


내가 아침을 다 먹을 즈음에야 누님이 식사하러 오는 것이 보였다.



“좋은 아침!”



“좋은 아침, 약속이 있어서 먼저 일어날게.”



“너, 어제 술 많이 마셨니? 누누이 얘기 하는데···.”



누님이 뒤에서 뭐라 이야기 했지만 난 재빨리 마지막 우유를 털어 마시고 일어났다. 약속이랄 거야 없지만, 만들면 그만이었다.


풋맨이 건네준 옷을 입고, 머리 손질이 끝난 뒤 지갑을 확인하니 현금이 조금, 교통 카드 겸용 은행 카드가 한 장 들어있었다.

뭐, 돈이야 찾으면 되고 이 금액 정도면 오늘 하루 무리는 없어 보였다.


나도 자동차가 하나 있으면 좋을 텐데, 차고엔 부모님의 자동차가 그대로 있었다.

운전면허는 진작 땄지만 대학 입학 전까진 꿈도 꾸지 말라는 부보님의 말은 거역하기 어려웠다. 말을 타고 가기엔 목적지가 애매했다.


어쩔 수 없이 정원을 걸어 나가 큰길까지 갔다.

날씨가 맑아서인지 곧 다가올 카니발 때문인지 거리는 제법 붐볐고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늘어나 있었다. 평소와 달리 사람이 많은 전차를 한 번 타고 십분 정도 가다가 내려서 역시 십여 분을 걸어간 뒤에야 목표지점으로 올 수 있었다.


사라센의 명물중 하나, 500m가량인 도로의 양옆이 모두 보석가게가 들어선 빛의 거리.

그중에서도 꽤 큰 편에 속하는 보석가게인 –아렌 보석가게- 가 오늘의 목적지였다.

‘딸랑’


문을 밀자 풍경소리가 나면서 열렸다. 싸그닥거리는 바닥을 비질하는 소리와 함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손님, 개점은 한 시간 뒤예요. 조금 있다 오시겠어요?”



“리큐르드, 나야. 들어가도 되지?”



친구를 부르자 안쪽에서부터 리큐르드가 가게 앞치마를 걸친 채로 나왔다. 불쌍한 친구는 10살이 된 이후로 아침마다 가게청소를 하지 않으면 용돈이 없었다.



“이 시간에 웬일이야? 설마 놀러 온 건 아닐 테고.”



“졸업 반지 때문에. 알이 부서졌어. 아저씨는 아직 나오지 않으셨니?”



자연스럽게 안쪽으로 들어간 나는 접대용 소파에 앉았다.



“아버진 이제야 일어나셨을 걸? 급하지 않으면 놀면서 기다려.”



리큐르드가 가게 한쪽에 비치된 음료수와 과자를 가져다줬다.



“내 졸업반진 멀쩡한데. 알이 부서지다니 별인이네. 뭣하면 내가 먼저 볼까?”



“그럴래?”



난 반지를 벗어 리큐르드에게 줬다. 반지를 받는 친구의 손에 나와 같은 졸업 반지가 있었다. 반지를 받은 친구는 내가 따로 준 반지알도 관심을 가지곤 이리저리 살펴봤다.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했던가. 어깨너머로 배운 지식을 가지고 반지와 알을 살펴본 리큐르드가 반지를 돌려주며 입을 열었다.



“이거 새로 보석을 박아 넣어야겠는데? 알이 왜 이렇게 됐다냐. 지금 보석 값이 좀 올랐어. 얼마 뒤 경매잖아.”



자신의 졸업 반지를 뽑아 이리저리 살피는 리큐르드를 보며 나도 말했다.



“맞아! 카니발이 끝나면 보석경매 기간이었지!”



칸다르디야는 보수적인 행성이지만 지역마다 축제가 많았다. 그 중에서도 내가 사는 사라센은 봄의 카니발이 유명했다. 5일 동안의 화려하고 열정적인 카니발이 끝나는 그 날부터 일주일간 보석경매가 열리기 때문이었다. 1000년도 전에 발견된 루비광맥은 몇 백 년 전에 말라버렸다. 하지만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보석경매는 아직 계속되고 있었다. 매년 비싼 보석들이 출품되는 국제적인 규모로 말이었다.



“뭐, 친군데 설마 비싸게야 받겠니. 그건 그렇고 넌 진로 정했어?”



나와 마주보고 앉은 리큐르드가 과자를 하나 주워들고 씹으며 물었다. 대부분의 경우처럼 올해 초 졸업한 우리도 일 년가량 교양 및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진로에 대해 생각하는 중이었다.



“당연히 대학에 진학해야지. 가업이 있으니 무역 쪽을 전공할 거야. 그리고 졸업하면 무역업을 하면서 여행도 할 거고. 학교도 생각해 뒀어. 내가 생각한 학교에서 졸업반이 되면 아버지 회사에서 본격적으로 일도 배워야지. 넌?”



와작거리며 입에 넣은 과자를 음료수로 삼키며 리큐르드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난 유학 갈 예정이야. 칸다르디야에는 내 마음에 드는 학교가 없어. 그래서 모성에 있는 안드로겐 광물 학교나 특수목적종합대학중 한 군데에 갈 생각이야.”



뭐? 외국으로 가겠다니!


난 옆에 앉아 과자를 먹던 친구가 갑자기 달라 보였다.

모성이라면 아렌 성이었다. 아렌 가는 아주 먼 옛날 한 행성을 기점으로 탄생한 가문이었다. 현재 아렌 성 인구의 10% 이상이 아렌이라는 성을 지니고 있고, 다른 곳에 사는 그 가문의 사람도 아렌 성을 모성으로 여기는 행성.


여러 곳에 흩어져 사는 아렌 가문의 사람들은 성지 순례하듯이 일생에 한 번은 들리는 곳이었다.



“굉장하구나? 광물 학교로 간다면 너도 가업을 이을 거니?”



“응.”



아저씨처럼 보석을 취급하고 출장으로 광산에도 가고 그런 삶을 살겠구나! 어쩌면 내가 가구용 나무를 보러 출장 갈 때 같이 갈지도 모르겠는 걸? 서로 다른 인생을 살겠지만, 어느 부분에서 접점이 생길지도 모르잖아.



“그리고 능력 개발을 해서 정식으로 인정도 받아야 해.”



“능력 개발이라니? 어떤 능력?”



내가 막 그 질문을 하는 찰나 딸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아렌 아저씨가 들어왔다. 한 명의 손님과 함께. 갑자기 가게 안이 화사해졌다.


무릎 근처에서 찰랑거리는 특이한 보라색의 머리, 거기에 꽂힌 화려하면서도 기품 있는 모양의 보석 핀, 우아하면서도 고상한 여왕 같은 자세로 그녀가 들어왔다.



“···그러니까 이 상태 그대로 경매에 내놓으실 거군요?”



“네, 입소문 좀 내주세요. 아렌씨는 제 대리인의 자격이 되는 거니까.”



내 머리만 한 가죽 가방을 들고 있던 아저씨가 고개를 끄덕이다 나란히 앉아있던 우리를 발견했다.



“윙클리드, 아침부터 어쩐 일이냐?”



아저씨는 가방을 탁자위에 올렸고, 심장이 좀 전보다 빨리 뛰기 시작한 난 말없이 반지를 보여줬다.


내 생각이 틀렸다. 칸다르디야인이라고 해도 될 만큼의 언어 구사력에 지성과 교양 있는 이지적인 얼굴, 미소 띤 얼굴의 그녀는 내 생각보다 나이가 조금 더 많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말

 어릴 적 용돈 타는 방법은 심부름 하기와 집안일. 

뭐, 나이가 되면 아르바이트도 가능하지만, 중상류층인 주인공은 좀 여유롭네요...


당장은 아니더라도, 좀 굴려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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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프롤로그 - 장례식과 손님들 2 16.06.28 323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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