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 3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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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LL
작품등록일 :
2012.11.19 03:14
최근연재일 :
2013.01.16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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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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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1.13 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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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8쪽

<6> 하늘과 바다 - 4

소금 민들레



DUMMY

4.


우유니가 접근하는 수십 대의 안드로이드를 감지했다. 고운과 라우라가 등 뒤에서 점차 멀어졌고, 이윽고 우유니의 인지 범위를 벗어났다. 우유니는 주변의 시설과 자재를 끌어 통로를 틀어막았다. 엘리베이터의 문은 튼튼한 방호벽이 되어주었다.

통로는 좁았다. 겨우 두 사람이 설 수 있을만한 넓이였다. 안드로이드가 아무리 많이 달려온대도 실지 피해를 입힐 수 있는 개체는 한정적이었다. 그들 모두를 이길 확률은 제로에 수렴했다. 결국 시간 벌기였다. 더욱이 한 팔을 잃어 운동기능의 손실이 컸다.

임시 방호벽 뒤에 몸을 숨기고 우유니는 비정상적인 시스템을 점검했다.

[ 인지기능, 이상 없음. 판단기능, 이상 없음. 육체기능, 21% 손실. 복구기능, 가동. 머리, 왼 팔, 등에 피탄 자상. 염수 침범으로 내부 부식 위험률 상승. 배터리, 이상 없음. 후두부의 물리적 손상 원인으로 통제 시스템에 이상 발생. 수리를 요함. ]

싸우면서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총상에 잠수하면서 소금물이 침범하고 이상을 일으켰다. 머리에는 모든 기능을 제어하는 중추가 있었다. 우유니가 원치 않았는데도 복구 기능이 가동했다. 표피를 잃어버린 안구 하나에 멋대로 영상이 나타났다.


흙색의 온실과 여자가 보였다. 여자는 만삭으로 배가 불렀다. 여자가 우유니의 손을 끌어 배에 가져다 댔다. 손바닥으로 희미하게 움직임이 느껴졌다.

“어때, 뛰고 있지?”

우유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봄에는 태어날 거야. 이 아이가 자랄 무렵에는 피어났으면 좋겠어.”

“……”

“왜 말이 없어? 당신 감동했나봐.”

“저는 안드로이드입니다. 인간의 감정은 알 수 없습니다.”

여자가 소리 내 웃었다. 우유니는 고개를 갸웃했다.

“사람도 정말로 가슴이 먹먹해지고 감동 할 때는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아. 마치 신체 기능이 정지된 것처럼. 아무 말도 할 수 없어.”

“현상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괜찮아. 지금은, 당신이 느끼는 바가 전부야.”


경보가 울렸다. 우유니가 고개를 들자 안드로이드 무리가 가까이 보였다. 총을 겨누고 발사했다. 통로를 달려오던 안드로이드 역시 총으로 응수했다.


영상이 바뀐다. 온실이 아니었다. 많은 컴퓨터와 기계가 들어찬 연구실이었다. 연구복을 입은 인간들이 우유니의 눈앞을 바삐 돌아다녔다. 남자와 여자도 있었다. 그들은 더 젊었다.


다시 영상이 바뀐다. 초로의 남자가 의자에 앉아있었다. 그는 나무 그늘에서 푸릇한 들판을 바라보았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고, 따듯한 햇살이 비쳤다. 우유니는 나무 위의 새들을 한번 바라보고 노인을 바라보았다. 노인이 말했다.

“이제 나도 갈 때가 됐나봐.”

“……”

“아직 할 일이 남았는데, 이렇게 가야 하니까 많이 아쉬워. 연구는 반도 진행하지 못했고. 결국 아들놈에게 맡겨야 할 것 같은데. 괜히 짐만 지우는지도 몰라.”

“……”


가장 선두에서 달려오던 안드로이드의 머리가 날아갔다. 방호벽은 금세 녹아내려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우유니는 몸을 최대한 낮춰 후퇴했다. 고운과 라우라가 간 길을 따라가, 데메테르의 제어가 풀린 통로의 비상문을 닫았다. 다시 설비를 뜯어 문 뒤로 방호벽을 만들었다.


노인이 우유니를 바라보며 웃었다.

“우리 아들이랑 며느리, 잘 좀 도와주게.”

“안드로이드는 인간을 돕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자네가 있어서 그래도 내 맘이 좀 편하군. 손주 얼굴을 못 보고 가서 슬퍼. 손주가 태어나거든 나 대신에 많이 예뻐해 주게. 그때쯤엔 자네도 내 나이랑 비슷할 테니, 할아버지 대신이라면 좋겠어.”

폭발이 일었다. 문이 폭발의 위력에 휘말려 부서졌다. 불꽃을 뚫고 안드로이드 두 대가 달려들었다. 우유니는 뒤로 물러서 공격을 피하는 한편, 그들의 몸을 가림막이 삼아 뒤쪽에서 날아오는 총탄을 막았다.

영상은 한동안 끊겨 나오지 않았다. 우유니는 보다 싸움에 집중했다. 방패로 삼아 쓰러진 안드로이드의 머리를 뽑고 몸을 저격이 날아오는 쪽으로 던졌다. 몸이 폭발하며 통로 양쪽으로 불꽃과 충격이 터져나갔다. 화재 진압장치에서 소화 모래가 뿜어져 나왔다. 우유니는 하얀 가루를 그대로 뒤집어쓰고 다음 통로의 비상문을 닫았다. 폭발의 충격으로 오른팔마저 너덜거렸다.


영상이 나타난다. 다시 온실이었다. 소녀가 화단에 쪼그려 앉아 흙장난을 했다. 아직 꽃은 피지 않았다. 우유니는 책상에서 프레파라트를 만들다 소녀를 보기를 반복했다. 그때 영상이 크게 흔들렸다. 책상에 올려둔 비커가 쓰러지며 깨졌다. 소녀가 뒤로 넘어져 굴렀다. 우유니가 소녀에게 다가가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영상이 주체할 수 없이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엄마, 엄마아!”

지진이었다. 우유니가 달려가 소녀를 끌어안았다. 위에서 와장창 소리가 들렸다. 머리에 큰 충격이 가해지고, 시야가 새카매졌다.


다시 문이 폭발로 부서졌다. 총탄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오른팔을 관통해 녹였다. 남은 것은 두 다리뿐이었다. 우유니는 남은 다리로 폭발 잔해를 발로 차서 던지며 온힘을 다했다. 절대로 이들을 고운과 라우라에게 보낼 수 없었다.


병상의 허버트가 나타났다.

“부탁하네. 저 애들이 조금이라도 더 살 수 있게 해주게.”

“……”

“이런 말이 얼마나 부끄러운 말인지 알아. 나는 자네의 성정을 믿고, 무책임한 말을 하는 거야. 성정이라니 이상한가?”

“안드로이드에게 할 말씀은 아니십니다.”

허버트는 웃었다.

“나는 많은 기능을 가진 안드로이드가 더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않네. 기능으로 우월의 척도를 재는 건 우성이니 열성이니 하며 태생을 구분 짓는 인간의 이기야. 인간이든, 안드로이드든 시간과 경험과 거기서 행해지는 성장이 중요해.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성정을 가졌는지 알 수 있는 것처럼. 안드로이드 역시 비록 기능이 제한되고 기억이 없어도 인공지능이 발현되는 모습을 보면 그가 어떤 사람들 속에서 살아왔는지, 어떤 대우를 받고 지내왔는지 알 수 있다네.”

“현상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가? 나는 많은 안드로이드를 내 손으로 만들어왔네. 바깥의 안드로이드가 그렇게 된 건…… 다 내가 부덕했기 때문이야.”


우유니는 통로의 마지막 비상문을 닫고, 그 뒤로 몸을 바짝 붙여 막았다. 사용할 수 있는 신체로 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었다.


어둠이 내린 온실의 모습을 보았다. 펌프 뒤에서 모습을 감추고 있던 소녀가 우유니에게 다가오는 영상이었다. 우유니가 몇 번을 돌려보았던 그 영상이 보였다. 소녀가 웃는다. 헤벌쭉 입을 벌리고 웃는다. 앞니가 빠져 있다.


우유니의 얼굴에 물이 흘러내렸다. 머리에 스며들었던 소금물이 안구의 틈을 통해 빠져나갔다.

등 뒤가 폭발했다. 문이 파괴되었고, 우유니의 몸은 여파를 버티지 못하고 넝마가 되어 바닥을 나뒹굴었다.


노인의 모습이 보였다.

“잘 좀 도와주게.”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딸을 부탁하네.”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꽃의 이름을 생각해 주겠어?”

허버트의 모습이 보였다.

“부탁하네.”

케인의 모습이 보였다.

“부탁해.”

라우라의 모습이 보였다.

“라우라랑 약속하는 거야?”

고운의 모습이 보였다.

“그러니까 꼭 살아서 돌아오라고.”

소녀의 모습이 보였다. 소녀는 움직이지 않는 우유니의 손을 들어,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금색 눈동자에 반짝이던 빛이 사라졌다. 우유니가 정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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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에필로그 : 선물 +20 13.01.16 653 11 3쪽
30 <8> 소금 민들레 +2 13.01.16 577 4 10쪽
29 <7> 구원 13.01.16 407 2 1쪽
28 <6> 하늘과 바다 - 6 +4 13.01.15 493 5 5쪽
27 <6> 하늘과 바다 - 5 +2 13.01.14 441 3 7쪽
» <6> 하늘과 바다 - 4 +5 13.01.13 565 9 8쪽
25 <6> 하늘과 바다 - 3 +6 13.01.12 489 3 13쪽
24 <6> 하늘과 바다 - 2 +4 13.01.11 548 4 11쪽
23 <6> 하늘과 바다 - 1 +4 13.01.10 548 3 10쪽
22 <5> 하이퍼케인 - 9 +4 12.12.07 708 4 8쪽
21 <5> 하이퍼케인 - 8 +2 12.11.30 602 2 11쪽
20 <5> 하이퍼케인 - 7 +2 12.11.30 423 1 8쪽
19 <5> 하이퍼케인 - 6 +2 12.11.29 499 2 11쪽
18 <5> 하이퍼케인 - 4, 5 +4 12.11.27 562 1 15쪽
17 <5> 하이퍼케인 - 2, 3 +2 12.11.27 675 2 16쪽
16 <5> 하이퍼케인 - 1 +4 12.11.26 515 1 16쪽
15 <4> 마지막 날 - 5 +2 12.11.21 527 3 10쪽
14 <4> 마지막 날 - 4 +3 12.11.21 752 1 7쪽
13 <4> 마지막 날 - 3 +2 12.11.19 576 2 12쪽
12 <4> 마지막 날 - 2 +2 12.11.18 586 3 12쪽
11 <4> 마지막 날 - 1 12.11.17 625 2 13쪽
10 <3> 여덟째 날과 아홉째 날 - 4 12.11.16 703 2 14쪽
9 <3> 여덟째 날과 아홉째 날 - 3 +2 12.11.14 693 3 10쪽
8 <3> 여덟째 날과 아홉째 날 - 2 +2 12.11.14 809 3 9쪽
7 <3> 여덟째 날과 아홉째 날 - 1 +2 12.11.13 816 2 14쪽
6 <2> 여섯째 날과 일곱째 날 - 4 +3 12.11.13 759 4 9쪽
5 <2> 여섯째 날과 일곱째 날 - 3 +1 12.11.12 767 3 15쪽
4 <2> 여섯째 날과 일곱째 날 - 2 +5 12.11.11 888 3 18쪽
3 <2> 여섯째 날과 일곱째 날 - 1 12.11.10 1,151 4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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