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마족? 그래, 이거다! (2)
“그나저나 무턱대고 떠날 수는 없지.”
원래 살던 세계라면 모를까 이 게이월드는 그래도 위험한 세계다. 단순히 게이로 가득해서가 아니라 판타지스런 세계이기 때문에 위험한 것이다.
“여어, 겨바군. 나하고 자러 왔나?”
잡화점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듣는 성희롱이다. 말로 대꾸하기 보다는 감자주먹을 먹인 후, 필요한 것들을 적은 종이를 내밀었다.
“어디 여행이라도 떠나려고 하나?”
“꼬치꼬치 캐묻지 말고 물건이나 챙겨줘요.”
잡화점 주인은 피식 웃고는 물건을 하나씩 카운터로 올려놨다. 기본인 지도를 시작으로 하여 여행 용품 그리고
“씨발, 이딴 건 필요 없다니까.”
한 가득 주는 콘돔에 성질을 부리는 겨바였다.
“겨바, 피임은 중요하다고.”
“지랄 말라고. 난 그냥 동정으로 죽을 테니까. 이딴 거 필요없다고!”
피식 웃은 잡화점 주인은 다시 콘돔을 챙겨주며 말했다.
“꼭 피임 때문에 필요한 건 아니야.”
“수통 대신 쓰라고 하면 당신 아가리에다 쳐 넣을 줄 아쇼.”
“내 아가리에 넣어 줄 거면 겨바의 물건이 좋은데 푸히힛.”
잠시 낄낄거린 잡화점 주인은 이내 진지한 표정으로 콘돔의 쓰임새를 말해주었다.
“아직 본격적으로 몬스터를 사냥해 본 적이 없을 거야.”
겨바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실 겨바는 직접적으로 사냥하기 보다는 이런 저런 잡일로 생활해왔다. 생존기술이라든지 검술이라든지 배워보기는 해봤지만, 아직 직접적으로 써먹어보지는 않았다. 이게 다 빌리 덕이다.
“몬스터를 사냥했을 때 가장 돈이 되는 게 뭐라고 생각하지?”
“음, 이빨이나 손톱? 아니면 가죽이겠죠.”
“틀렸어”
잡화점 주인은 히죽거리고는 묘한 악센트를 넣으며 말했다.
“정액이야.”
“……뭐라고요?”
“정액, 겨바가 섹스를 하다 흥분해서 싸는 그거 말이야.”
“아놔, 씨발. 좀 진지하게 말해요.”
“크크크, 여하튼 진짜로 돈 되는 건 몬스터의 정액이야.”
이어지는 설명에 의하면 갓 죽었을 때 채취되는 몬스터의 정액에 마나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죽은 지 오래되거나 하면 채취할 수 없으며 신선하지 않은 정액은 마나가 소실되어 쓸모가 없다는 것이다.
“즉, 갓 죽인 몬스터의 생식기에 마나 코팅된 이 콘돔을 씌워서 채취하지 않으면 그냥 헛짓하는 것이지.”
“……오우, 씨발.”
이놈의 세계는 알면 알수록 X같다는 생각이 드는 겨바였다.
“아놔, 그러면 그 정액은 대체 어디다 써먹는 겁니까?”
“아무래도 마법사들이 주로 쓰겠지?”
“이를테면?”
“뭐, 듣자하니 체내 마나의 양을 늘리기 위해 장복한다더군. 일부 사람들은 정력제로 먹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는 마법 용품 만드는데 주로 쓰지.”
마법에 대한 환성마저 무너지는 겨바였다.
“……주쇼.”
기분 나쁘지만 현실적으로는 앞으로 필요할 것 같았다. 그렇게 필요한 것들을 챙기고 숙소로 돌아오자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빌리가 있었다.
“떠난다며?”
“그래, 말리지 마라.”
딱 잘라 말하는 겨바의 태도에 빌리는 한숨을 크게 내쉬고는 이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나도 간다.”
“뭣? 그냥 여기 있어!”
질겁하는 겨바에게 애잔한 눈빛으로 빌리가 말했다.
“그냥……동료다.”
“뭐? 언제는 동료 아니었냐?”
빌리는 잠시 감정을 추스르고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네가 왜 여행을 떠나려는 건지 알아.”
그 말에 움찔거린 겨바는 뭔가 변명을 하려고 했다. 그렇지만 그런 것을 막으며 빌리는 위압적인 태도로 말했다.
“네가 원하는 것은 여성체. 그 마족이라는 것들이 목표겠지. 틀려?”
“……맞아.”
“도저히 나를……아니, 남자를 받아들일 수 없나?”
“몇 번이고 말했지만 절대 받아들일 수 없어.”
“후우, 도대체 왜 난…….”
양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며 고개를 숙인 빌리는 잠시 후 다시 고개를 들었다. 어색하지만 웃는 표정으로 빌리는 말했다.
“친구.”
“응?”
“우린 그래도 친구잖아.”
“어, 응…….”
“그러니까 같이 가줄게. 네가 원하는 거 도와줄게. 친구로서. 친구니까 너를 도와 줄 거야.”
뭔지 모를 기이한 감정이 겨바를 감쌌다. 잠시 머뭇거린 겨바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고마워.”
“짜식.”
자리에서 일어난 빌리가 솥뚜껑 같은 손으로 등을 치고는 빙긋거리며 말했다.
“남자의 멋짐을 모르는 네가 불쌍해.”
“그런 거 필요 없어.”
“하하핫, 여하튼 이 빌리만 믿어라. 여행 초보인 너에게 여행의 참맛을 가르쳐주지.”
“하아, 좋을데로.”
어깨를 으쓱거리는 겨바에게 애잔한 눈빛으로 빌리는 말했다.
“이것만은 알아둬.”
“응?”
“마족이라는 여성체는 너에게 아무것도 줄 수 없어.”
“뜬금없이 뭔 소리야.”
“들어! 그 여성체들은 너에게서 사랑을 받기만 할 거야. 잘하면 너에게 사랑도 줄 수 있겠지.”
빌리는 쓸쓸하게 발걸음을 떼며 말을 마무리 지었다.
“하지만 난, 아니 남자는 너에게 사랑만 줄 뿐 아니라 우정까지 줄 수 있어. 그것만은 알아줬으면 한다.”
“……빌리.”
“나중에 보자. 친구.”
뒤돌아서 떠나는 듬직한 빌리의 등이 오늘따라 가냘파 보이는 겨바였다.
- 작가의말
* 본 작품은 평범한 판타지를 지향합니다
우정은 멋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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