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당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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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llita
작품등록일 :
2013.05.23 22:23
최근연재일 :
2013.11.12 23:57
연재수 :
17 회
조회수 :
9,668
추천수 :
478
글자수 :
51,694

작성
13.05.25 13:41
조회
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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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글자
7쪽

(002. 부모 잃은 계집애는 개만도 못하다데요

DUMMY

그녀가 눈을 떴을 때, 그녀를 품에 안고 있던 사내는 보이지 않았다. 새로운 냄새와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색이 그녀의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을 감싼 강보에서 풍기는 냄새를 맡았다. 십수 명, 아니 수십 명의 아이들이 거쳐가는 동안 한 번도 빨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불평할 힘마저 남아있지 않았다.

그녀는 희뿌연 눈으로나마 주변을 인식하려 노력했다. 저를 신기한 듯 들여다보는 사람들은 그녀가 기억하는 것보다 머리가 작았다. 그녀의 아버지나 사내보다는 어린 나이의 사람들인 것 같았다. 거친 살갗으로 덮인 손이 그녀의 뺨을 건드렸다.


"얘가 어제 들어온 애야?"

"눈 좀 봐, 검은 색이야! 이런 눈은 처음 봐."

"예쁘게 생겼어, 부러워."


한껏 크기를 높여 조잘대는 목소리들. 그녀는 알아들을 수 없는 시끄럽고 빠른 말들에 엉겁결에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의 얇고 힘없는 울음소리에 그들의 소리가 딱 그쳤다. 가느다란 팔들이 그녀의 강보를 들어올려 그녀를 얼렀다. 다급한 몸짓으로 그녀의 배를 도닥거렸다. 그녀는 그들의 행동에서 불길한 무언가를 감지하고 울음을 멈췄다. 그녀의 울음소리가 멈추는 것과 동시에, 그녀의 왼쪽 저편에서 커다란 소리가 났다.


"어느 망할 버러지가 애를 울려! 골이 지끈거리잖아, 이 지랄맞은 각다귀들아!"


둔중한 발소리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한껏 몸을 움츠렸다. 불쾌한 냄새가 코끝을 찌르며 어두운 색의 커다란 덩어리가 그녀의 눈 앞으로 제 몸을 불쑥 들이댔다. 그녀는 흐릿한 시야로 아래쪽의 구멍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고, 그것이 '머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뭐야. 이 년 눈깔이 검은 색이네? 젠장, 재수 없게! 앵앵대는 것도 개같은데..."


그녀를 안고 있는 팔이 벌벌 떨렸다. 그녀는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두려움에 입술을 옴직거렸다. 그것을 그녀가 울음을 터뜨리려는 징조로 받아들인 '덩어리'는 그녀를 안고 있던 사람의 머리를 거세게 후려쳤다.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소리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머리를 얻어맞은 사람은 그녀를 품에 안은 채로 주저앉았다. 갑자기 세상이 쑥 꺼지는 감각에 그녀는 깜짝 놀랐다. 커다란 손이 그녀의 강보를 잡아 막무가내로 그녀를 들어올렸다. 강보는 잘 싸매놓았는지 용케 풀리지 않았다. 그녀는 조금이라도 세상을 선명하게 보기 위해 눈을 비볐다.

그러나 눈을 비비는 도중 그 손은 그녀를 다시 바구니로 던져넣었다. 다행스럽게도 어디 한 군데 다친 곳은 없었다. 그러나 '덩어리'는 그것에마저 기분이 상한 듯 안 그래도 더러운 바닥에 침을 뱉었다.


"저 년 울리기만 해 봐, 머릿가죽을 벗겨서 술 부대로 사용해 줄 테니까. 아주 그냥 옴이 붙어버렸어, 옴이."


그 말을 끝으로 '덩어리'는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큰 소리를 내며 나가버렸고, 아이들은 다시 그녀를 방치했다. 팔을 뻗어 허공을 휘저어봐도, 코를 찡긋거리며 두리번거려도 반응은 오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리려는 것처럼 입을 크게 벌리면 저들 손으로 입을 막아버렸다. 아기에게 닿는 자신들의 손이 더러운지 깨끗한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가 보기에 그들은 굉장히 맹목적이었다.


그녀가 맡겨진 곳은 그녀가 태어난 곳으로부터 정확히 사흘 거리 떨어진 변두리 도시의 고아원이었다. 정부나 사람의 눈길이 닿지 않는 복지시설이 으레 그러하듯 그곳도 굉장히 제멋대로에 불결한 곳이었다. 고아원으로 들어오는 대부분의 지원은 그녀가 '덩어리'로 인식한 고아원의 원장의 호주머니로 들어갔고, 고아원의 아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그들에게는 굉장한 행운이었고, 때문에 아이들은 고아원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원장의 말을 필사적으로 따랐던 것이다.

그나마 그 원장은 고아원의 힘없는 계집아이들로 제 성욕을 채우려고 할 만큼의 쓰레기가 아니었다는 것이 다행이었을까. 대신에 원장은 술을 마시고 아이들을 두들겨 패는 것으로 제 성질을 식히는 일을 밥먹듯 했다.

그녀가 그곳에서 8살까지 아무런 해를 입지 않고 자랐다는 것은 정말로 믿기 힘든 일이다. 그녀의 눈이 불길한 검은색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원장도, 아이들도 그녀에게는 최소한 필요한 만큼의 관심 이상의 것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녀는 항상 바싹 말라있었고, 어깨를 한껏 움츠리고 다녔다. 머리는 다듬을 수가 없어 늘 치렁치렁하게 늘어뜨리고 다녔다고 했다.

그녀를 주운 사내는 홀로 사는 총각이었고, 때문에 그녀를 돌볼 여력이나 시간이 부족했다. 더불어 사내와 결혼을 약속한 여자는 제 아이도 좋아하지 않을 여자였기 때문에 자신의 여자에게 맡기는 것도 불가능했던 모양이다. 그녀는 그것을 몇 년이 흐른 후 길에서 마주친, 자신의 얼굴을 기억하는 사내에게서 들었다.


그녀는 아무에게도 없는 자신의 검은 머리와 검은 눈동자가 싫었다. 아무도 말을 걸어주지 않고 아무도 자신에게 신경쓰지 않는 것이 그것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자신에게, 스스로는 결코 벗겨낼 수 없는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았다.

그녀는 주로 노는 아이들을 피해 건물의 구석진 곳이나 인기척이 드문 곳에 있었고, 어쩌다 한 번씩 아이들이 노는 햇볕 화창한 공터로 나갈 때마다 그곳에서 놀던 아이들은 슬금슬금 그녀를 피했다. 고아원의 한켠에서 아이들이 원장 몰래 키우던 작은 고양이마저도 그녀를 무서워했다. 그녀는 항상 외로웠고, 슬펐다. 자신이 불행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그래도 운 좋게 고아원에 들어가있었잖아요? 원장님도 내게는 해꼬지하지 않았고, 내게 욕을 하는 아이들도 없었어요. 그대로 숲 속에서 죽어갈 수밖에 없던 나예요. 그렇게나마 살아남았다는 것에 감사하며 살았던 것 같아요.」



그녀는 그곳에서 사랑받기 위해 몸부림쳤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화장실을 청소하고,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물을 끓이고, 아이들이 기겁하는 벌레들을 밖으로 쫓았다. 그러나 그녀는 그 과정에서 벌레를 죽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 광경을 목격한 아이들 탓에 그녀는 더욱 철저히 소외되었다고 했다.

나이가 들어가면 갈수록 그녀는 점차적으로 그러한 노력들을 줄여나갔다. 먹은 것이 없으니 살이 붙을 리 없고, 살이 붙을 리 없으니 체구도 작았다. 그녀는 그녀보다 서너 살 어린 아이들과 거의 비슷한 체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서서히 사람들에 대한 기대를 밟아죽였다.


작가의말

검은 눈, 검은 머리. 솔직히 이런 것들이 불길한 게 진부하다는 건 알지만요, 밤을 무서워하는 사람들이니 검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도 그렇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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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012. 의도하지 않은 잘못은 용서받을 수 있나요 +4 13.07.12 495 25 7쪽
12 (011. 이유 없이 화를 내는 사람은 흔하지 않아요 +4 13.07.02 764 30 8쪽
11 (010. 그냥 주어지는 건 너무 믿으면 안된다는데 +2 13.06.25 578 62 7쪽
10 (009. 경고는 이유없이 나타나지 않지요 +2 13.06.21 1,225 48 7쪽
9 (008. 사람이 제일 믿을 게 못 되는 거 아닌가요 +2 13.06.15 442 30 7쪽
8 (007. 개구멍은 막지 않는 게 예의입니다 +4 13.06.10 567 9 7쪽
7 (006. 정말로 이름을 불러주면 살아나게 될까요 +2 13.06.05 424 17 7쪽
6 (005. 영웅은 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거예요 +2 13.06.03 434 26 8쪽
5 (004. 대가 없이 주어지는 것이 있긴 하던가요 +2 13.05.29 520 47 7쪽
4 (003. 원래 그렇게 태어나면 끝까지 그렇다고들 하던데 +2 13.05.28 468 28 7쪽
» (002. 부모 잃은 계집애는 개만도 못하다데요 +2 13.05.25 515 11 7쪽
2 (001. 어디서부터 써야할까요 +2 13.05.23 560 35 7쪽
1 (000. 시작합니다 +8 13.05.23 796 44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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