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당의 딜레마

무료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Gellita
작품등록일 :
2013.05.23 22:23
최근연재일 :
2013.11.12 23:57
연재수 :
17 회
조회수 :
9,677
추천수 :
478
글자수 :
51,694

작성
13.06.15 19:25
조회
442
추천
30
글자
7쪽

(008. 사람이 제일 믿을 게 못 되는 거 아닌가요

DUMMY

데르옌은 이제 막 사방이 밝아지고 있을 때 깨어났다. 나무가 빽빽한 숲 속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미 해는 높이 떠올라있을 것이다. 피오니는 여전히 데르옌의 품 속에 안겨 있었다. 데르옌은 피오니의 어깨를 잡고 살짝 흔들었다. 피오니는 많이 피곤했던지 쉽게 눈을 뜨지 못했다.


"일어나요, 피오니."


피오니는 간신히 눈을 떴다. 데르옌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피오니를 부축했다. 날이 밝아지니 어젯 저녁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였다. 야생의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는 가운데 사람의 흔적이 보였던 것이다.

데르옌은 피오니의 어깨를 건드렸다. 피오니가 자신에게로 시선을 돌리자 이번엔 손이 닿을 법한 자리의 낮은 나뭇가지들을 가리켰다. 그것들은 모두 일정한 방향으로 꺾여있었다. 꺾인 것이 떨어지고 새순이 난 자리도 어김없이 모두 꺾였다. 그러나 피오니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데르옌? 저게 왜요?"

"저건 마을로 가는 길을 표시하는 겁니다. 이런 복잡한 숲 속에선 길을 잃기 쉬우니까요. 꺾인 나뭇가지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면 분명 마을이 나올 거예요. 지금은 점 멀테지만, 가면 갈 수록 꺾인 부분이 점점 짧아지는 걸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저것만 따라가면 마을이라는 얘기죠!"


피오니는 데르옌의 말에 굉장히 들떴다. 마녀, 즈카미니르의 모습이 아닌 피오니의 모습으로 사람들 앞에 나설 수 있다는 사실에 고무된 것일까. 데르옌은 먼저 앞서나가는 피오니의 뒤를 따랐다. 도망치던 길 근처의 농가에서 훔쳐온 장화가 피오니의 발보다 커서 덜컥거린다. 끈으로 졸라매기는 했지만, 피오니의 체력이 상당히 딸리는 원인에 그것이 포함되기는 한 것 같다. 신발을 바꿔주고 싶어도 데르옌이 신은 것이 피오니가 신은 것보다 커서 그럴 수도 없었다.

나뭇가지는 금방금방 짧아졌다. 애시당초 이런 복잡한 숲에 길게 들어갈만큼 용기있는 이가 있을 리가 만무하다. 담력시험을 하려는 꼬맹이들이었나? 높이가 좀 낮기는 했다만. 분명 아이들이 보지 않는 곳까지는 조금씩 길이를 늘리다가 아이들이 보이지 않자마자 길이를 쭉쭉 늘려나갔을 것이다. 데르옌은 겁에 질려 두리번거리는 아이의 모습을 상상하며 속으로 웃었다. 제국을 벗어나 처음으로 만나는 마을이라는 것에 긴장이 좀 풀어진 건지도 모른다.

곧 마을의 모습이 드러났다. 숲 근처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나뭇꾼들을 위한 마을 같았다. 로브레타에는 나무가 많긴 하지만 쓸만한 나무를 찾기가 어렵기 때문에 목재가 굉장히 귀하다. 숲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이라곤 찾기 힘든 희귀 약초들과 땔감들 뿐인데, 땔감은 햇볕이 잘 들지 않아 그마저도 찾기가 힘들어 나무꾼들은 대부분 심마니를 겸한 이들이 많았다.

데르옌과 피오니는 곧 마을로 들어섰다. 나무꾼들이 이미 일을 하러 떠났기 때문인지 마을은 상당히 적막했다. 데르옌은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다.

누군가들을 위로하기 위해 만들어진 마을은 늘 그렇다. 위로하기 위한 누군가가 없을 때는 적막하기 그지 없다. 남자들은 술을 팔고 여자들은 몸을 판다. 되는 대로 굴러먹다 이 바닥으로 흘러들어온 여자들은 피임에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집마다 적어도 애가 하나씩은 딸려 있다. 제가 낳은 자식들이라고 잘해주지도 않는다. 그저, 애를 버려봤자 이 마을에서 떠돌 수밖에 없고, 돈이 궁해진 나무꾼들이 그 애들을 덮쳐 성욕을 채우면 제 수입이 줄어들 걸 알기에 키우는 것이다.

계집애는 나이가 차면 몸을 팔도록 시키고 사내애는 어릴 적부터 숲으로 들여보내 나무꾼을 만든다. 나무꾼이 된 사내애는 계집애를 임신시키고, 그러면 계집애는 또 제 자식을 그렇게 만든다. 끝이 보이지 않는 악순환. 누군가 힘있는 사람이 이 모든 것을 갈아엎지 않는 한 그것은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이다.

두꺼운 블라인드가 내려온 창틈으로, 사람들이 마을에 들어선 낯선 이방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피오니는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나 데르옌의 팔을 꼭 끌어안았다. 그 중 한 집의 문이 열리며 배불뚝이의 절름발이 사내가 나왔다. 사내의 셔츠는 음식찌꺼기와 술로 범벅이 된데다 여기저기 잔뜩 얼룩이 져서 족히 몇 년은 물을 못 만난 것 같았다. 그가 나온 문 틈으로 꾀죄죄하고 더러운, 작은 계집아이가 바깥을 훔쳐보고 있었다.


"외지인인가?"


사내의 눈빛이 탐욕스레 피오니의 몸을 훑었다. 아무리 두꺼운 옷을 입는다 해도 이 계절에는 몸을 많이 가려주지 못한다. 피오니는 데르옌의 등 뒤로 숨듯이 비켜섰고, 데르옌은 망토를 벗어 피오니에게 둘러주며 사내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렇소."

"말투가 독특하군. 산을 넘어 왔나?"


어줍잖은 짓. 데르옌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별로 가고 싶지 않았던 사교계를 들락거리며 생긴 좋지 않은 버릇이다. 그 미소를 마주한 사내의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었다.


"글쎄, 내 생각엔 당신 말투나 내 말투나 별로 다를 게 없는 것 같은데. 이곳이-"


데르옌은 숲에서 마을로 들어서며 보았던 바래고 깨지고 부서진 나무판을 기억해냈다. 분명, 그곳에 쓰여진 이름이-


"베즐카, 아니었나? 나무꾼들의 마을, 베즐카. 이쪽은 꺾인 나뭇가지를 보고 찾아왔다고."


데르옌의 손가락이 뚝뚝, 나뭇가지를 부러뜨리는 시늉을 했다. 오면서 본 나뭇가지의 높이에 맞춰, 성인 남자의 허리쯤의 높이의 것을. 그것을 본 사내의 표정은 이제 완전히 풀어졌다. 사내는 퉁퉁한 손가락으로 제 코 밑을 쓱 훔쳤다. 볼품없는 콧수염 끝에 매달린 술방울이 달랑거렸다.


"아하, 거 참, 진작 말하지 그랬어. 괜히 오해했잖나... 요새 시국이 흉흉해서 말이야."


사내는 코 끝을 긁으며 데르옌의 뒷편을 살폈다. 피오니는 더더욱 몸을 움츠렸다.


"그런데, 그 계집은 뭐지? 머리 상태로 보니 그렇게 건강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노예요?"

"노예는 아니야. 죽으려던 걸 내가 구해줬지."

"그럼 노예나 다름없잖아!"

"난 피오니를 부려먹진 않거든."


이야, 사내가 감탄사를 터뜨렸다. 어차피 처음 여자를 봤을 때 이마에 인장이 없는 것으로 노예가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마법으로 새기는 인장이니 웬만해선 없앨 수 없으니까. 그렇지만 여자가 너무 소심하게 행동하는 바람에 의심이 들었던 것이다.


작가의말

오랜만이네요! 음, 좀 들떴습니다.

제목은 안 바꿔도 될 것 같습니다. 완결까지 스토리를 전부 짰어요. 그렇다고 빨리 올라오지는 않아요. 짧게 끝나지도 않을 것 같고요.

 

...그래도 일단은 써져야지요... 원래는 어제 마무리하고 올리려고 했는데, 사정이 여의치가 않아서. 일단 급하게 몰래 써서 올립니다. 후반부가 엉성해도 좀 봐주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악당의 딜레마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7 (016. 선택이라 해서 언제나 행운이 되는 법은 없는 걸까요 +2 13.11.12 311 7 7쪽
16 (015. 평범한 일상이란 이루어지기가 쉽지 않아요 +2 13.10.02 513 19 7쪽
15 (014. 꿈꾸는 것은 죄가 아니라지요 +2 13.08.02 584 18 7쪽
14 (013. 평범한 곳에선 의외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4 13.07.20 475 22 7쪽
13 (012. 의도하지 않은 잘못은 용서받을 수 있나요 +4 13.07.12 495 25 7쪽
12 (011. 이유 없이 화를 내는 사람은 흔하지 않아요 +4 13.07.02 765 30 8쪽
11 (010. 그냥 주어지는 건 너무 믿으면 안된다는데 +2 13.06.25 581 62 7쪽
10 (009. 경고는 이유없이 나타나지 않지요 +2 13.06.21 1,225 48 7쪽
» (008. 사람이 제일 믿을 게 못 되는 거 아닌가요 +2 13.06.15 443 30 7쪽
8 (007. 개구멍은 막지 않는 게 예의입니다 +4 13.06.10 568 9 7쪽
7 (006. 정말로 이름을 불러주면 살아나게 될까요 +2 13.06.05 424 17 7쪽
6 (005. 영웅은 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거예요 +2 13.06.03 434 26 8쪽
5 (004. 대가 없이 주어지는 것이 있긴 하던가요 +2 13.05.29 520 47 7쪽
4 (003. 원래 그렇게 태어나면 끝까지 그렇다고들 하던데 +2 13.05.28 468 28 7쪽
3 (002. 부모 잃은 계집애는 개만도 못하다데요 +2 13.05.25 515 11 7쪽
2 (001. 어디서부터 써야할까요 +2 13.05.23 561 35 7쪽
1 (000. 시작합니다 +8 13.05.23 796 44 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