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당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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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llita
작품등록일 :
2013.05.23 22:23
최근연재일 :
2013.11.12 23:57
연재수 :
17 회
조회수 :
9,663
추천수 :
478
글자수 :
51,694

작성
13.05.29 19:05
조회
519
추천
47
글자
7쪽

(004. 대가 없이 주어지는 것이 있긴 하던가요

DUMMY

그녀가 눈을 떴을 때, 그녀는 호화찬란한 천에 감겨 커다란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 천은 입은 듯 안 입은 듯 가벼웠고 침대의 시트는 더할 나위 없이 부드러웠다. 구름 위에 올라앉은 것 같은 감촉에 그녀는 입을 벌렸다. 그녀는 어찌 된 영문인지 알 수가 없어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엇 하나 상하게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침대에 앉은 채로 주변을 둘러보려 하니 침대에는 두터운 휘장이 둘러져 있었다. 그녀가 저기요, 하고 말하려는 순간 휘장이 휙하니 걷혔다.

중장년의 여성들이 그녀가 앉은 침대를 둘러싸고 있었다. 다들 평범한 옷들을 입은 채로였지만 그녀는 직감적으로 느꼈다. 이 사람들은 홀에서의 그 사람들이라고. 홀에서의 기억이 겹쳐진 그녀가 어깨를 감싼 채로 떨자 가장 나이가 많아보이는 여자가 그녀에게로 다가와 그녀를 안고 얼렀다.


"자, 몇 가지만 물어볼게요. 나이가 몇이지요?"


조곤조곤한 목소리였다. 그녀는 자신의 나이를 기억하고 있었다. 스스로 어떤 계절이 몇 번을 지나가는 지를 세어보고 있었고, 나이를 어떻게 계산하는 지를 배웠기에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나이를 알고 있었다.


"이제... 막, 아홉... 살이, 됐어요."


잘했어요, 하는 것 처럼 등을 도닥이는 손길이 부드러웠다. 그녀의 떨림은 차차 줄어들었다. 질문은 바로 이어졌다.


"이름은 뭐예요?"

"그런... 거, 아무도 지어주지 않았는걸요?"


누구도 그녀를 부르지 않았고, 누구도 그녀를 신경쓰지 않았고, 누구도 그녀를 찾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무시했고 의도적으로 지웠으며 의도적으로 잊었다. 그녀는 '없는 사람' 이었다.

그녀의 대답을 들은 여자들이 웅성거리자 그녀를 안고 있던 여자가 조용히 하라며 꾸짖었다. 여자는 주변이 조용해지자 웃으며 그녀를 도닥였다. 그녀는 여자가 자신을 도닥이는 척 하며 제 몸을 샅샅이 검사하고 있다고 느꼈다.


"혹시, 소원이 있나요?"

"소원... 이요?"

"예, 소원. 애타게 바라고, 원하던, 그런 소원 말이예요."



「솔직히 꿈만 같았어요, 그때는. 모든 게 너무나 빠르게 지나가 상황을 정리할 시간조차 없었지요. 머리가 멍한 와중에 그런 걸 물으니 뭘 궁리할 잠깐의 틈도 없었는걸요. 그래서, 그냥 되는 대로 말했던 것 같아요. 평소에 가장 간절하게 이루어지길 빌어왔던 것으로...」


그녀는 망설임없이 즉각적으로 대답했다.


"사랑받고 싶어요."


그녀의 대답을 들은 여자는 눈을 접어 웃었다. 그녀를 안은 팔에는 힘이 들어갔다. 그녀는 여자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여자의 눈은 검은 색에 가까운 고동색이었다. 그녀는 여자의 팔을 잡았다.


"사랑받고, 싶어요?"


여자의 목소리가 끈적끈적해졌다.


"예, 사랑받고 싶어요."


그녀는 그 때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이제 와서 후회해봤자 소용은 없지만, 듣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하고 상상해보기도 한다고 했다. 그래도 그 때로 돌아간다면 다시 그 대답을 할 것이라고도 했다. 그녀는 정말로 사랑받고 싶었다.


"그럼 우리가 당신을 사랑해줄게요."

"정말요...?"


여자가 그녀를 품에 고쳐안았다. 그녀는 여자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여자의 깡마른 손이 그녀의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소름이 끼치면서도 한편으로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고 했다. 그녀는 여자의 옷깃을 부여잡았다.


"이름도 지어주고, 매일매일 안아주고 도닥여줄게요."


다른 여자들도 침대 위에 있는 그녀의 곁에 둘러앉아 여자에게 안긴 그녀의 등을 쓸어주고 팔을 도닥여줬다. 작은 발을 주물러주는 여자도 있었다. 자신에게 갑자기 들이닥친 애정과 관심에 그녀는 정신이 혼미해졌다.


"대신에, 우리가 원하는 것을, 요구하는 것을 들어주겠어요?"


여자의 목소리는 지나치게 달콤했고, 제대로 생각할 여력조차 없던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사실상 굶주려있었다. 멀쩡한 척, 괜찮은 척 의연하게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살고 있었지만 사람에 굶주리고 정에 굶주려있었다. 그 날로부터 그녀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다.



그녀를 껴안고 달래주었던 여자의 이름은 샤미르 라고 했다. 샤미르는 그녀의 곁에서 그녀를 사랑해 줄 여자 다섯을 뽑았는데, 지카르, 마하르, 다쿠르, 치무르, 야니르 라는 이름이었다고 했다. 샤미르는 그녀에게 즈카미니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들은 끄트머리에 '르' 자를 집어넣는 것으로 그들을 구분한다고도 했다.

그녀는 3년간 그 다섯 여자들에게 과분할 정도로 넘치는 사랑을 받으며 살았다고 했다. 처음에 물어봤던 것과 달리 요구하는 것도 없었고, 그저 사랑만 해줬다고. 그녀가 13살이 되던 해에 처음으로 샤미르가 그녀에게 요구를 해 왔다.


"우리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을 방해하려는 사람들이 있어요. 당신이 검은 머리이기 때문에 불길하다고들 하면서, 당신을 사랑하는 것을 그만 두라 하더군요. 그들을 없애주세요. 그래야 우리가 당신을 마음 놓고 사랑할 수 있어요."


그녀는 자신이 더 이상 사랑받을 수 없게 되는 게 싫었다. 그녀를 덮쳤던 검은 덩어리는 이제 완전히 그녀의 힘이 된 지 오래였다. 그녀는 샤미르가 안내하는 곳으로 가 샤미르가 지시한 곳을 완벽하게 없애버렸다. 돌무더기 하나, 벌레 하나 남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그 무엇보다 사랑받는 것이 중요했다.

그로부터 샤미르는 하나씩 요구사항을 늘려갔고, 그 요구에 따라 그녀는 사람들에게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소문은 점차적으로 퍼져나갔다.


'마녀들의 수장, 즈카미니르가 나타났다! 마녀의 손에 걸리면 살아남지 못한다!'


어느새 그녀는 자신의 밑에 그 여자들을 두게 되었다. 그 동굴의 모든 여자가 그녀를 '주인' 이라 칭했다. 샤미르를 비롯한 여섯 여자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를 대하는 것이 조심스러워졌고 그녀가 조금 투정이라도 부리려 하면 죽는 시늉을 했다.

그녀는 이름으로 불리고 싶었다. 그들이 지어준 '즈카미니르' 라는 이름이 싫지 않았다. 그러나 그 이름으로 불러주는 것은 이제 그녀를 미워하는 사람들 뿐이었다. 그녀는 점차적으로 외로워졌다. 그러나 그녀 주변의 여자 중 그것을 알아챈 사람은 없었다. 사랑해주되 정을 쌓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것을 깨닫자 그녀는 정말로 자신이 혼자라는 것을 느꼈다.


또 몇 년에 달하는 시간이 흘러갔다. 그녀는 점차로 지쳐갔다.


그녀는 샤미르의 요구에 따라 도시 하나를 없애기 위해 산을 타던 중이었다. 그곳에서 그녀는 알지 못하는 새에 '영웅' 나이트 룩셀러를 만났다. 그리고 이제 이야기는 나이트 룩셀러, 즉 칼라디아 룩셀러가 태어난 해로 거슬러올라간다.


작가의말

이번 일이 좀 중요한 거라 길게 늘어지네요. 이 시점에서 즈카미니르가 감상에 잠겨서 상세하게 설명했다고 생각해주시면 됩니다. 어쨌건 야호! 즈카미니르 끝났다! 룩셀러는 전형적인 기사인 만큼 빨리... 쓸... 수... 있을... 까요? 모르겠네...

이렇게 빨리 연재하는 건, 이렇게 빨리 쓰는 건 정말 처음이네요. 지금 이틀에 한 번씩이잖아요? 오늘은 또 하루만에 올라오고? 원래 일주일에 하나도 힘들었었는데. 콘티대로 가야한다는 부담감이 없어서 그런가? 아니면 고3 스트레스 도피처인가. 하여간, 그렇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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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73 지나가는
    작성일
    13.06.25 19:07
    No. 1

    결국 다른 마녀들도 즈카미니르를 이용하기 위해 사랑했던거네요. 즈카미니르는 그 사랑이라도 받으려고 수많은 사람을 죽였구... 비극이네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Gellita
    작성일
    13.06.25 23:29
    No. 2

    애초에 마녀가 되어야 할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이 우두머리가 되어버린 거니까요. 목적을 이루려면 이용할 필요가 있었고, 즈카미니르는 이용하기 쉬운 아이였으니까...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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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016. 선택이라 해서 언제나 행운이 되는 법은 없는 걸까요 +2 13.11.12 310 7 7쪽
16 (015. 평범한 일상이란 이루어지기가 쉽지 않아요 +2 13.10.02 513 19 7쪽
15 (014. 꿈꾸는 것은 죄가 아니라지요 +2 13.08.02 583 18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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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012. 의도하지 않은 잘못은 용서받을 수 있나요 +4 13.07.12 494 25 7쪽
12 (011. 이유 없이 화를 내는 사람은 흔하지 않아요 +4 13.07.02 764 30 8쪽
11 (010. 그냥 주어지는 건 너무 믿으면 안된다는데 +2 13.06.25 578 62 7쪽
10 (009. 경고는 이유없이 나타나지 않지요 +2 13.06.21 1,225 48 7쪽
9 (008. 사람이 제일 믿을 게 못 되는 거 아닌가요 +2 13.06.15 442 30 7쪽
8 (007. 개구멍은 막지 않는 게 예의입니다 +4 13.06.10 566 9 7쪽
7 (006. 정말로 이름을 불러주면 살아나게 될까요 +2 13.06.05 424 17 7쪽
6 (005. 영웅은 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거예요 +2 13.06.03 434 26 8쪽
» (004. 대가 없이 주어지는 것이 있긴 하던가요 +2 13.05.29 520 47 7쪽
4 (003. 원래 그렇게 태어나면 끝까지 그렇다고들 하던데 +2 13.05.28 467 28 7쪽
3 (002. 부모 잃은 계집애는 개만도 못하다데요 +2 13.05.25 514 11 7쪽
2 (001. 어디서부터 써야할까요 +2 13.05.23 560 35 7쪽
1 (000. 시작합니다 +8 13.05.23 795 44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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