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당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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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llita
작품등록일 :
2013.05.23 22:23
최근연재일 :
2013.11.12 23:57
연재수 :
17 회
조회수 :
9,670
추천수 :
478
글자수 :
51,694

작성
13.06.25 17:56
조회
579
추천
62
글자
7쪽

(010. 그냥 주어지는 건 너무 믿으면 안된다는데

DUMMY

물 없이 살 수 있는 생물은 그 어디에도 없다. 그것은 데르옌이 피오니와 함께 도피생활을 하며 가장 처음 깨달은 지식이었다. 술로는 갈증을 해소시키지 못한다. 물이 부족해 우유와 피를 마시는 이들이 있다지만, 그런 것으로는 물만큼 갈증을 해소시킬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이 마을엔 펌프가 아닌 식수를 구할 다른 수단이라도 있는 건가?

주방에서는 계속해서 달그락대는 소리가 나고 있었다. 라클카는 점점 더 자주 주방을 흘긋대며 조바심이 나는 듯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정말로, 정말로 안 갈 생각이예요? 좀 들어달란 말예요, 제발. 난 여기에 사람을 더 늘리고 싶지 않아요. 또 사람을 먹고 싶지는 않아요. 사람이 없으면 질긴 덤불을 구워먹지만, 그래도 사람을 먹기는 싫어요."


피오니가 데르옌의 옷을 슬쩍 잡아당겼다. 피오니는 불길한 의도나 행동에 민감하다. 이곳까지 오면서 그들은 피오니의 도움으로 여러 번 위험을 피한 적이 있었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데르옌에게 피오니는 괜찮다는 의미로 살짝 웃어보였다. 데르옌은 미심쩍다는 듯이 라클카를 바라보았으나, 이내 라클카에게로 몸을 숙였다. 라클카가 눈을 빛내며 음험한 미소를 지었다.


"그 길까지, 들키지 않고 갈 자신이 있나?"

"당연하죠."

"어떤 길이지?"

"개구멍. 몸을 움츠리고 기어가면 오빠도 무난하게 통과할 수 있어요."

"어떻게 찾았지?"

"이 마을에서 유일하게 자유로운 게 나니까."

"그럼 마지막 질문."

"얼마든지요."


주방의 소리가 서서히 줄어들고 있었다. 피오니가 데르옌의 등을 톡톡 두들겼다. 데르옌은 잠시만 기다리라는 뜻으로 한 손을 들어올렸다.


"먹을 사람이 떨어진 지 오래라면, 뭘 먹고 뭘 마시고 살았지?"


라클카의 푸른 눈이 데르옌을 똑바로 응시했다. 작은 입이 씨익 벌어지며 누렇고 조그만 치아가 드러났다. 데르옌은 라클카의 눈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건, 정신건강 상 비밀. 그럼, 따라올 준비는 끝난 거죠?"

"네가 미심쩍긴 하지만."


라클카는 몸을 일으켜 그들이 들어온 문이 아닌 다른 방향의 쪽문으로 달려갔다. 기름칠이 충분히 되어있었는지 쪽문은 아무런 소리 없이 부드럽게 열렸다. 데르옌은 피오니를 앞서 그 문으로 들어갔다. 피오니조차 고개를 숙여야 할 정도로 작은 문이었다.

그들이 문을 나섰을 때 라클카는 발을 재게 놀려 앞서나가고 있었다. 문 바로 옆에 덤불이 있었다. 바싹 말라 물기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바로 곁에 숲이 있는데 어째서 이건 이렇게 말라있는지, 데르옌은 의문을 풀 새도 없이 피오니에게 이끌려 분주히 라클카를 따라갔다. 바싹 마른 몸집의 라클카는 의외로 움직임이 빨랐다.

라클카가 그들을 이끈 곳은 벼랑 밑 동굴이었다. 동굴의 입구는 교묘하게 덤불로 가려져있었다. 바싹 마른 덤불은 애초에 어두운 색이라 드러날 일도 없었다. 라클카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몸을 숙여 안쪽으로 기어가기 시작했고, 그 다음을 피오니, 데르옌이 뒤를 이었다. 라클카의 말 그대로 데르옌이 몸을 움츠리자 넓지 않은 동굴이지만 그럭저럭 넉넉하게 지나갈 수 있었다.

동굴은 짧지 않았다. 시커먼 어둠으로 휩싸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장소를 쉼없이 기어야했다. 이따금 피오니는 기어가는 것을 멈췄고, 데르옌은 멈춰버린 피오니의 발을 짚었다. 그제서야 피오니는 안심한 듯 앞으로 기어나갔다. 맨 앞에서는 라클카가 안 오고 뭐하는 거냐며 작은 소리로 그들을 재촉했다. 그들은 세 시간을 기었다. 피오니의 체감 시간 상으로는 열두시간은 훨씬 기어간 것 같았다.

열심히 움직여 먼저 동굴 밖으로 나간 라클카가 반대편의 동굴 입구의 위를 손바닥으로 팡팡 때렸다. 그 소리는 피오니와 데르옌의 귀에 아득하게 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피오니와 데르옌도 동굴의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늦어요. 빨리 좀 움직이란 말예요, 어른이면서."


조금 투덜거린 라클카가 동굴 밖의 사막을 가로질러 열댓 발자국 정도를 간 후, 다섯 발자국 정도 떨어진 지점을 가리켰다.


"저기예요. 이쪽으로 와서 자세히 좀 볼래요?"


라클카의 손짓을 따라간 그들은 이상한 것을 목격했다. 그들의 앞의 땅에 옅은 형광 초록빛 선이 그어져있고, 이쪽의 땅은 분명 단단하고 메마르기 그지 없는데 선 반대편의 땅에는 푸릇푸릇한 초목이 가득했다. 멀리서 볼 때는 보이지 않던 것이었다. 피오니가 멍하니 입을 벌렸다.


"이... 이거..."


라클카는 어느새 그들에게서 한 발짝 떨어진 곳에 서있었다. 라클카는 맨발로 모래를 파내는 발장난을 하며 말했다.


"결계예요. 꽤 크죠? 내가 말한 길이란 건 그거예요. 그 선, 그 선만 통과할 수 있으면 되죠."

"누구나 다 통과할 수 있는 건가?"


데르옌이 묻자, 라클카는 예의 그 음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밝은 햇살 아래 보이는 그 미소는 더욱 혐오스러웠다. 어린 여자아이의 얼굴에서 나오리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표정. 데르옌은 인상을 찌푸렸다.


"설마요. 그랬다면 난 벌써 나갔겠죠."

"그럼 우리도 못 나갈 수도 있다는 거잖아."

"그래요, 그러니까 운에 따른다는 거예요! 난 저 선을 통과할 자격이 뭔지 알지 못해요. 오빠랑 언니가 그 자격에 부합하는지도 모르고요. 난 지금껏 참 많은 사람들을 이곳으로 데려왔거든요? 그런데, 이 선은 참 이상하더라고요. 그때그때 자기 내키는 대로 사람을 통과시키는 것 같아."


피오니는 라클카의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그들에게서 좀 떨어진 곳에서 결계를 살펴보고 있었다. 데르옌은 라클카를 보며 이를 으득 갈았으나, 라클카는 데르옌의 너머로 시선을 던지더니 결계의 가까이에 서 있는 피오니를 보더니 즐겁다는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로 외쳤다.


"조심해요 언니! 그거, 통과 못하는 사람이 건드리면 안되거든요? 언니가 통과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면 모르겠는데, 없으면 큰 일이 생길 거예요."


데르옌은 성큼 다가서서 키들키들 웃고 있는 라클카의 멱살을 잡아챘다. 얇고 낡은 옷가지가 찢겨질 듯 아슬아슬했다. 라클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푸른 눈동자의 동공이 작은 점처럼 작아져있었다.


"큰 일이라는 게, 뭐지?"

"뭐예요 오빠, 질문은 정중하게, 몰라요?"

"대답이나 해."


라클카는 입술을 비죽이며 퉁명스레 말을 뱉었다.


작가의말

그냥 쓰다 보면 꼭 이런 데서 끊기네요.

이제 남은 5일 내로 Romance가 올라올거예요.

두 개를 일주일에 한 편씩.

너무 늦다고 생각하지 말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나저나 이제 홍보가 가능하네요? 신난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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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012. 의도하지 않은 잘못은 용서받을 수 있나요 +4 13.07.12 495 25 7쪽
12 (011. 이유 없이 화를 내는 사람은 흔하지 않아요 +4 13.07.02 764 30 8쪽
» (010. 그냥 주어지는 건 너무 믿으면 안된다는데 +2 13.06.25 580 62 7쪽
10 (009. 경고는 이유없이 나타나지 않지요 +2 13.06.21 1,225 48 7쪽
9 (008. 사람이 제일 믿을 게 못 되는 거 아닌가요 +2 13.06.15 442 30 7쪽
8 (007. 개구멍은 막지 않는 게 예의입니다 +4 13.06.10 567 9 7쪽
7 (006. 정말로 이름을 불러주면 살아나게 될까요 +2 13.06.05 424 17 7쪽
6 (005. 영웅은 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거예요 +2 13.06.03 434 26 8쪽
5 (004. 대가 없이 주어지는 것이 있긴 하던가요 +2 13.05.29 520 47 7쪽
4 (003. 원래 그렇게 태어나면 끝까지 그렇다고들 하던데 +2 13.05.28 468 28 7쪽
3 (002. 부모 잃은 계집애는 개만도 못하다데요 +2 13.05.25 515 11 7쪽
2 (001. 어디서부터 써야할까요 +2 13.05.23 560 35 7쪽
1 (000. 시작합니다 +8 13.05.23 796 44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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