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 이유 없이 화를 내는 사람은 흔하지 않아요
"저걸 설치한 마법사는 정상인이 아니었을 거예요. 무슨 주술적 저주라도 담겨있는 걸까? 모두가 이상해진 게 저것 때문이거든."
라클카는 다시금 킬킬 웃었다. 힘없이 늘어진 양 팔이 달랑거렸다. 모든 것을 체념해버린 것 같은 그 모습에 데르옌은 손아귀의 힘을 늦췄다. 흘긋 피오니 쪽을 보니 피오니는 라클카의 말을 분명히 들은 듯 결계에는 손도 대지 않고 있었다. 데르옌은 다시 라클카를 내려다보았다.
"헛소리 말고, 큰 일이 뭔지나 답해."
"오빠는 대답을 들을 자격이 없어요."
라클카가 눈을 가늘게 뜨고 데르옌을 바라봤다. 그 눈길이 바닷물에 푹 젖은 미역으로 피부를 어루만지는 것처럼 불쾌했다. 불현듯 라클카가 팔을 들어 제 멱살을 잡은 데르옌의 손을 붙잡았다. 데르옌은 작은 여자아이의 것이라 믿지 못할 만큼 강한 악력에 놀라 손을 놓고 말았다. 그을린 손등 위로 작은 손자국이 새빨갛게 남아있었다.
라클카는 배를 부여잡고 웃음을 터뜨렸다. 저만치 떨어져 결계를 살펴보던 피오니가 당황해서 달려왔다. 피오니의 두 손이 썩은 흙으로 새카맣게 덮여있었다. 라클카는 허리를 숙이고 고개를 바닥을 향한 채 어깨를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데르옌은 피오니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뒤로 한 발 물러서게 했다.
"언니는 알고 있겠지!?"
별안간 라클카에게서 비명같은 질문이 튀어나왔다.
"처음엔 몰랐어도, 이제는 알았겠지! 살펴보면서 뭘 봤어요!? 뭘 느꼈어요!? 우습지도 않아! 우리가 무슨 죄가 있어 갇혀있어야하는 거지? 우리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똑같은 하루를 반복해가며, 똑같은 죄를 지어가며 사라져야 하는 거냐고!"
라클카가 한 발을 그들에게로 내딛었다. 그 발끝에서 새카만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것은 마치 뱀처럼 재빠르게 기어와 데르옌과 피오니의 발치에서 사라졌다. 매캐한 냄새가 피오니의 코를 찔렀다.
피오니는 아연한 표정을 지으며 라클카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라클카는 말을 했고, 피오니는 대답을 했다. 데르옌은 그것을 멈추지 못했다. 무언가 저를 속박하는 듯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아까의 그 연기 줄기 때문인 것 같았다.
한때 영웅이라 불릴 정도의 실력을 지닌 기사였던 그를 억누르는 마법이다. 이런 것을 펼칠 수 있는 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데르옌은 머릿속으로 목록을 추리며 이를 갈았다.
"처음엔 연기가 피어올랐어."
"새까맣고 새까매서, 이질적이었겠지..."
"연기에 닿으면 물들어버렸어."
"먹물을 칠한 것처럼, 부드러웠을 거야."
"희뿌연 장막이 머리 위로 솟아올랐어."
"괴로웠겠지. 나가고 싶었겠지...?"
"나갈 수 없었어."
"모두, 너무나도 평범했을테니까..."
"평범하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거부했니?"
"모두가 죽어갔어."
"네가 그들을 살렸구나."
"그래서 평범하지 않게 되었어."
"누가 널 그렇게 만들었니."
"차라리 나는 마녀가 되고 싶었어."
차근차근, 차분히 얼르는 듯 대답을 하던 피오니는 그 말에 대답을 하지 못했다. 라클카의 새파란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언니는 마녀지?"
"..."
"기다렸어. 언니를 기다렸어. 이 마을은 그걸 위한 마을이었어. 언니를 위한 마을이었어. 그리고, 드디어 언니가 왔네."
"피오니!"
"난... 언니가 증오스러워요."
데르옌이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 다행히 이 무엇인지 모를 마법은 혀를 구속하는 힘이 약했다. 데르옌은 여전히 몸을 움직이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그와 더불어 라클카의 말을 듣게 해서는 안된다는 두려움이 데르옌의 입을 열게 만들었다.
"들으면 안 됩니다, 귀를 막아요!"
"...나, 마법엔 걸리지 않으니까, 걱정 말아요. 괜찮아요... 괜찮을 거예요."
"그런 게 아닙니다, 피오니! 제발!"
"난, 언니가 정말로 증오스러워요. 왠지 알아요? 알고 싶어요? 알길 원해요?"
"...라클카."
피오니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저를 향한 증오에 직접적으로 노출된 것은 처음이 아니다. 긴 시간을 마녀로 살아오며 자신을, 마녀 즈카미니르를 증오하는 이들을 아예 볼 수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자신이 스스로 해결해야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라클카는 다시 한 발을 내딛었다. 이번에 흘러나온 검은 연기는 좀 더 짙고 좀 더 굵고 좀 더 길었다. 그것은 쏜살같이 날아가 데르옌의 얼굴을 덮쳤다. 데르옌은 다시 혀의 자유를 빼앗겼다.
어느새 라클카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작은 소녀의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땀은 오래된 때와 섞여 구정물이 되어 흘러내렸다. 조그만 땀방울들은 땅에 동그란 자국을 만들었다. 라클카는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이 마을은, 언니를 위한 마을이었으니까."
"뭐...?"
"검은 마력을 가진, 마녀를 붙잡아두기 위한 마을이었으니까."
피오니는 입을 다물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할 지 알지 못했다. 그녀가 지금껏 배운 것 중에는 이런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이 없었다. 숨죽여 사는 법, 있는 듯 없는 듯 사는 법, 상대방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법. 그러나 라클카는 위로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 그래서 피오니는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 언니를 보니까 알겠어. 언니를 본 처음 순간 알았어요. 멍청한 새끼들, 도대체 이런 헛수고는 왜 한 거지!? 이런 걸로 언니를 잡아둘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고작 5급의 마법사 한둘로 어떻게 마녀를 잡아둘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거야..."
데르옌은 눈을 크게 뜨고 눈을 돌려 장막을 살펴보았다. 이것을 만든 이가 5급이라 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둘이라 했다. 그렇다면 기사를 속박할 수 있다는 것이 이해가 간다.
3급의 마법사가 황궁에 입궁할 수 있었고, 4급만 되어도 명실상부한 황궁마법사다. 그들은 그 수가 적고 또한 강하기에 더욱 귀히 여겨진다. 데르옌이 막을 수 있는 것은 3급의 마법사 다섯까지였다.
"언니, 결계를 봤죠...?"
피오니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나갈 수, 있죠?"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지나가줘요."
"그렇지만, 라클카!"
"알잖아요. 부탁이예요."
라클카는 증오와 연민이 뒤섞인 묘한 표정으로 피오니를 바라봤다. 피오니는 그 눈을 똑바로 볼 수 없었다. 저런 눈은 처음이다. 저를 보는 눈에 저런 감정이 섞여있는 것은 처음이다.
"난 여전히 언니가 증오스러워요. 그렇지만, 그만큼 이 짐에서 해방되고 싶어. 더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아요."
그 순간, 끊임없이 몸을 움직이려 하던 데르옌은 제 구속이 풀리는 것을 느끼곤 곧장 피오니를 안고서 다섯 걸음 뒤로 물러섰다. 라클카를 노려보는 데르옌은 잔뜩 화가 나 있었다. 라클카는 오히려 그 눈을 마주하며 초연한 표정을 보였다. 그 표정은 라클카를 어린 소녀가 아닌 스물 중반의 잔뜩 지친 여인으로 보이게 했다.
- 작가의말
한 편 한 편 따로 쓰다 보니 분위기가 연결되지 않는 느낌입니다.
감정선이 연결이 되지 않는 느낌이예요. 특히 대화가 들어가면 더 그런 것 같습니다. 아직도 많이 미숙한가봐요. 감정이 아주 확확 바뀌어버리네요.
이번 주 부터 시험이라 Romance는 올라올 수 있을 지 없을 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올리도록 노력할게요.
일주일에 각 한 편씩 올리는 걸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 홍보하길 잘한 것 같아요... 선작해주시고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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