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신의 수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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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woon)
작품등록일 :
2013.06.16 13:43
최근연재일 :
2013.09.29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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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6.16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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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제 2장 네 개의 세력(3)

DUMMY

평소와 다름없는 시각에 은하는 잠에서 깼다. 그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고개를 내밀어 운용을 살폈다. 운용은 이불을 푹 덮어쓴 채 아직 자고 있었다. 여느 때와 같은 아침이었지만 은하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그는 어젯밤에도 여러 생각을 하느라 평소보다 잠을 늦게 잤다. 그런데도 그의 품 안에 내장된 알람시계는 놀랍도록 정확해서 평소와 같은 시간에 일어난 것이다. 그는 피곤한 표정으로 침대에 누워있었다. 두 눈동자에 동공이 확장된 것으로 보아 무언가를 집중해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 문이 열리더니 익숙한 인물이 들어왔다. 이맘때쯤 제웅은 그들의 방을 갑작스레 침범했는데 기숙사장인 그는 모든 열쇠를 지니고 있기에 그들로선 사실상 막을 방법이 전혀 없었다. 빨리 일어나라며 호통치는 그의 목소리에는 잠이 많은 운용조차 깨우는 대단한 힘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평소와는 다르게 오늘은 조용했다.


"문디놈들, 여즉 자네."


익숙한 사투리, 나직하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는 민구의 것이었다.


"빨리 인나라. 늦으면 밥 없데이."


밥이라는 말에 은하의 몸이 반사적으로 스르르 일어나자 민구가 그를 보며 싱긋 웃었다. 은하는 머리가 사방으로 뻗쳐서 부스스해 보였는데 흰색 상의에는 국물 자국인지 커피 자국인지 모를 얼룩마저 나 있었다. 반면에 민구는 깔끔하게 정돈된 머리에 교복의 흰 셔츠를 길게 빼서 입고 교복 바지에는 구김 하나 없었다.


"잘 잤나? 니 얼굴이 와 그라노?"


은하는 대답 대신 빙긋 웃었다. 민구는 운용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 자슥은 와 안 일나노? 마, 퍼뜩 안 일나나."


그의 외침에도 운용은 미동 하나 보이지 않고 자고 있었다.


"근데 오늘은 왜 선배가 오셨어요?"

"아, 곰티는 볼 일이 있어가 잠깐 어디 갔데이."

"아, 네."

"마, 암만 사내들 방이라도 좀 치우고 살아라. 이기 머꼬."


민구가 주변을 둘러보더니 가볍게 인상을 찌푸리며 은하의 뻗친 머리를 더 헝클어뜨렸다. 은하는 그의 핀잔에 헤헤하며 웃어넘겼다.


"우리끼리 가자마. 저 자슥은 알아서 처묵겠지."


민구는 여전히 반응이 없는 운용을 힐끔 보더니 은하를 재촉했다. 은하는 의자에 걸린 옷을 대충 아무렇게나 주워 입고 그와 함께 방을 나섰다.


"안 힘드나?"


아침 식사 후 그들은 잠깐 나와 바깥 공기를 쐬며 소화를 시키고 있었다. 생각보다 이른 시간이라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학교 말이다. 우리야 익숙하지만 첨 온 니는 낯설긴데. 이상한 놈도 많고."


은하는 순간 풉하고 내뱉을 뻔했다. 분명 남들보다 훨씬 튀는 민구가 이상한 놈이라고 하니 뭔가 우습게 생각되었다.


"웅이가 니 마이 챙기더라. 글마가 겉으로는 무식해도 속으로는 섬세한 놈인기라."

"네."

"학교에서 힘든 일 있으면 글마한테 얘기해라. 아, 내한테 해도 된데이."


민구의 말에 은하는 문득 무언가가 떠올랐다.


"선배들은 저한테 왜 그리 잘해주세요?"

"음. 글쎄. 니가 착해서 그런 기라."

"네? 저 별로 안 착한데?"

"니 착해. 우리들 수호자 눈엔 그래 보인데이. 니의 영혼이 그래 보인다꼬."

"아, 그런가요?"


은하는 민구의 말에 계속 부정하는 것이 걸려서 대충 얼버무리고 넘어갔다. 대신 그는 꼭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다.


"저, 선배는 혹시 왕따 당해본 적 있으세요?"

"그건 갑자기 와 묻노? 반에서 누가 니 왕따 시키나?"

"아뇨. 여긴 아니지만 실은 저 전에 학교에서 당해봤거든요."


그의 의미심장한 말에 민구의 눈 꼬리가 가늘어졌다. 은하에게 무언가 있음을 직감한 것이다.


"그게 다 힘없는 놈들이 그런기라. 갸들 눈에 우리는 괴롭히기 딱 좋아 비거든."


은하는 그의 말을 들으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의 생각을 좀 더 듣고 싶었다.


"우리는 남들하고 다르니까 표적이 되기 싶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자신과 다른 존재를 두려버 하거든. 하지만 어쩌겠노? 우리도 이래 되고 싶어가 된 건 아니다 아이가."


말을 마친 민구가 은하를 보며 가볍게 웃었다. 입술 사이로 살짝 드러나는 하얀 이가 은하의 눈길을 끌었다. 마침 봄바람이 불어와 그의 머리칼을 어루만지자 단정한 머리가 살짝 흐트러지며 날리는 것이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 같이 인상 깊게 느껴졌다.


"선배는 수호자가 된 걸 후회한 적 있어요?"


은하가 조심스레 말을 꺼내자 민구는 그에게서 고개를 돌려 한참 동안 푸른 하늘을 바라봤다.


"닌 수호자가 머라 생각하노?"

"네? 글쎄요. 음."

"낸 말이다. 이래 생각한데이. 우리는 인연을 위한 존재라고."

"흠. 어렵네요."

"간단하게 생각해 보그라. 우린 수호신과 가문을 잇는 존잰기라. 그리고 수호신은 옛날부터 있었으니 과거와 현재를 잇는 존재도 되는거제."

"귀신과 사람도 이어주고요?"

"맞다. 그런기지. 이렇게 니하고 내하고도 안 이어주나. 디비 자는 운용이랑 니도 이어주고."

"후, 뭔가 알듯 말듯 하네요."

"하하, 시간이 지나면 다 알게 될 기다."

"그럴까요?"

"그래. 닌 아직 니 수호신의 마음도 모르지 않나?"

"수호신의 마음이요? 그건 어찌 알 수 있나요?"

"허허, 내가 다 말해줄 수 있나. 앞으로 겪어보면 알끼다. 말로 설명하기 힘든 기라 카이."

"네."


민구는 은하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은하는 그의 말을 되새겨 보며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했다. 민구의 눈 꼬리가 다시 가늘어졌다.


"왕따를 당했다고 해서 너무 갸들을 미워하지 마라. 어찌보면 갸들도 피해자인기라. 사회가 공부공부 거리며 아들끼리 경쟁을 계속하게 만드니 스트레스가 오죽 하겠노. 그렇다고 어디 풀 데가 있나. 집에 가면 부모가 너거들 하소연 들어주는 것도 아니고. 온종일 학교에 있으니 학교에서 풀어야제. 그러다 보니 재수가 없어서 니가 그 대상이 된 기다. 남들보다 아주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결코, 니 탓이 아니다. 니가 이상하거나 잘못 해서가 아니란 거데이. 주변 아들도 같이 안 하면 니처럼 될까 속으로 두려버서 동참한기고. 괴롭힐 때도 처음엔 미안하다가 날이 갈수록 무덤덤해지고 더 강도가 심해지는 기라. 도둑질도 처음 한 번이 어렵다 카자나."

"그렇다고 모두가 한 사람의 인격을 무시하고 개인의 존엄성을 짓밟는 건 잘못된 거 아닌가요?"

"그래. 니 말이 맞다. 그런데 사람들은 무리 속에 있으면 지 잘못을 잘 모른다. 죄책감보다 오히려 다 같이 죄를 짓는다는 동질감이 생겨가 더 용감해진데이. 책임감을 나눠서 갖는다고 생각하거든. 그렇게 다 같이 하니까 폭력의 무서움을 잊게 되는 기라. 그리고 폭력을 방관하는 것도 결국 폭력에 굴복하는 것이란 걸 모르는 기지."

"맞아요."

"그래서 폭력이 무서운 기다. 폭력이 계속되어 습관이 되면 그게 잘못된 건지 더는 스스로 알지 못하게 된다. 피해자도 가해자도 양쪽 다 점점 익숙해지는 기다. 그리고 가해자는 점차 지가 그렇게 당할 수 있다는 걸 잊게 되는 기지."

"그럼 그 당하는 아이가 정말 죽고 싶을 만큼 힘들다면 어떻게 해야 하죠?"

"글쎄. 좀 너그러워지는 건 어떻겠노?"

"무슨 말인가요?"

"폭력에 같이 폭력으로 맞서는 건 결국 둘 다 망가지게 된다. 사람이 애초에 사람을 때린다는 게 뭣 같은 일이데이. 조금만 유도리 있게 생각해보자. 앞에서 닐 때리는 글마도 니처럼 똥도 싸고, 엄마한테 혼도 나고, 선생한테 터지기도 하고, 이쁜 여자 보면 침도 질질 흘리겠지. 니랑 같은 인간이란 기다. 니보다 나을 기 없다고. 그런 뭣도 아닌 놈이 때린다고 자신을 스스로 해치면 되겠나? 니 앞에서 똥폼 잡아봤자 금마도 결국 인간일 뿐이다. 글고 나중에는 결국 지가 한 짓이 되돌아와서 피눈물을 흘리게 될 끼다."

"하루하루가 힘든데 나중이 무슨 소용인가요. 지금 당장 죽겠는데."

"지금 당장을 참는다고 생각하지 말고 나중을 기약하는 거다. 그런 뭣도 아닌 놈때메 니 미래를 니 스스로 버리지 마라. 그게 제일 등신 같은 기다. 니 주변에는 금마 말고도 닐 봐주는 부모와 친구, 하다 못해서 키우는 개새끼라도 있을 거 아니가. 그들은 모두 니한테 기대하고 닐 바라보고 있다. 금마랑 반 아들이 니 주변 사람이 되던."

"그럼 나중 일을 어떻게 아나요?"

"우리가 수호자 아니겠나. 저승에 가면 그 인간이 한 짓 몽땅 다 나온다. 업경 앞에 서면 니가 사는 동안 코 푼 휴지가 몇 장인지도 알 수 있다고. 살아서가 되던, 죽어서가 되던 인간은 결국 지가 한 데로 나중에 모두 되돌아온다. 이게 업보인 기다. 사람은 업보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데이. 왜냐면 사람이기 때문이다."


민구가 씨익 웃으며 은하를 바라봤다. 그리곤 은하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튕겼다.


"짜슥. 어지간히도 빡센 거를 묻네. 진땀난다, 고마 가자."

"고생했다. 버티느라. 니 혼자 힘들었을 텐데."


은하는 일어나는 민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가 새삼스레 느껴졌다. 속으로 뭔가가 울컥 올라오는 것 같았다. 자신보다 한 살밖에 많지 않음에 불구하고 그의 생각은 자신이 따라갈 수 없을 만큼 깊고 넓었다. 게다가 잘생기기까지 하다니. 은하는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것을 온몸으로 절실히 느끼며 그의 말을 기억해서 기성에게 들려주리라 다짐했다.



* * *



이상한 일이었다. 쉬는 시간마다 기성의 반에 찾아갔으나 그를 전혀 볼 수 없었다. 벌써 이 교시째 기성은 교실에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도 반 아이들은 모두 무관심했다. 은하가 기성의 행방을 묻자 오히려 그를 이상하게 바라보며 서로 짜기라도 한 듯 모르쇠로 일관적인 대답을 했다. 그들의 무관심에 은하는 점점 화가 남을 느꼈다. 여기서 기성의 행방을 알 만한 사람은 딱 한명 뿐이었다. 그는 대형에게 걸어갔다.


"기성이 어딨냐?"

"그걸 왜 나한테 묻는데?"

"네가 한 거자나."

"허, 난 모르는데? 어디 처박혀서 잠이나 처자겠지."


은하는 눈앞의 비열하게 웃는 대형의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싶은 충동에 빠졌다. 그의 눈이 분노에 휩싸이고 있었다.


"진짜 모르냐?"

"몰라. 그딴 새끼 알게 뭐야."

"네 짓인 거 밝혀지면 가만히 안 둘 꺼다."

"하하. 아이고, 무서워라."


대형은 비아냥거리며 입 꼬리를 말아 올렸다. 은하의 눈동자는 활활 타오르는 듯했다. 은하가 그를 뒤로하고 나가려는 찰나,


"끼리끼리 논다더니. 재수 없게."


그의 뒤통수에 대형의 조소 섞인 말이 들려왔다. 그는 두 주먹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끼며 교실 밖으로 나왔다.


"지루해."


탐스러운 검은 머리칼을 가진 미소녀가 책상 위에 두 팔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그녀는 고양이처럼 두 팔에 힘을 주어 허공으로 쭉 펴더니 입을 활짝 벌리며 하품을 하였다. 붉은 입술 사이로 하얀 이와 촉촉한 혀가 드러나자 주변 남학생들이 그녀를 힐끔거렸다. 그녀는 개의치 않고 늘어지게 하품을 끝마치곤 옆자리의 소년을 향해 몸을 틀었다. 소년은 엎드린 채로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대체 은하는 어디 간 거야."


그녀의 혼잣말에도 소년이 미동도 없자 다윤은 양볼에 바람을 잔뜩 넣은 뾰로통한 표정이 되었다.


"삼용이는 만날 잠만 자고. 지겨워!"

"그렇게 부르지 말랬지?"


삼용이란 말에 운용이 벌떡 일어나 뾰족한 눈초리로 그녀를 노려봤다. 다윤은 그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팔꿈치를 책상에 올리더니 그대로 턱을 괴고 운용을 바라봤다.


"은하 어디 갔어?"

"몰라."

"대체 어딜 간 거야. 나 심심한데."

"걔가 니 장난감이냐?"

"아니. 놀아주는 사람이지!"

"그거나, 그거나."


퉁명스러운 운용의 말에 다윤은 샐쭉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운용의 무심한 얼굴을 보는 다윤의 눈 꼬리가 올라갔다.


"넌 이제 지겨워. 은하가 필요해."

"아, 그럼 니가 찾아보던가."


운용은 말을 마치곤 그대로 다시 엎드렸다. 그녀는 그런 그에게 흥미를 잃은 듯 힘없는 발걸음으로 자리로 돌아갔다.


육중한 쇳소리가 나며 철문이 활짝 열렸다. 파아란 하늘을 도화지 삼아 붓으로 찍어놓은 듯한 하얀 구름이 장관을 이루었지만, 소년은 그것에 관심 없는 듯 이리저리 살피고 있었다. 그의 콧잔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고 얼굴이 붉게 상기된 것이 무언가를 급하게 찾는 모양이었다. 그는 옥상 구석구석까지 한참을 살펴보다가 난관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운동장 한쪽 끝에 세워진 작은 창고가 눈에 띄었다. 은하는 그곳을 향해 달려 내려갔다.


'끼이익.'


낡은 쇳가루가 바스라 지는 소리와 함께 창고의 문이 열렸다. 창고 특유의 퀴퀴한 냄새가 은하의 코를 찔렀다. 창고 한쪽에는 공들이 겹겹이 쌓여있고 그 옆으로 뜀틀이 보였다. 바닥에는 매트와 평행봉 등이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은하는 그것들을 피해 두리번거리며 기성을 찾았다. 창고의 삼면은 막혀 있고 한 면에는 작은 창문이 뚫려 있었는데 어린아이의 머리통만 한 크기라 모두 막혀 있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는 왠지 이곳에 기성이 있을 거라 짐작되었다. 뜀틀 안쪽을 살피던 그의 눈에 문득 한쪽 구석에 숨겨진 녹색 철제 사물함이 보였다. 그 앞을 공들로 교묘하게 가려놔서 이 위치가 아니라면 잘 보이지도 않았다. 아마 본래 청소 도구함으로 사용하던 것인데 지금은 쓰이지 않는 것 같았다. 은하는 사물함의 앞으로 다가가 문을 조심스레 당겼다.

과연 사물함 안에는 기성이 있었다. 그리고 그를 본 은하의 눈에 불똥이 튀는 것 같았다. 기성의 팔은 뒤로 돌려진 채 노끈 같은 것으로 두 손목을 단단히 묶어놨고, 발목은 허리벨트를 꽉 조여 두 다리를 움직이지 못하게 압박해 놨다. 입에는 손수건을 말아 목구멍까지 쑤셔 넣어서 침도 삼키지 못한 채 그대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눈물과 침 같은 타액으로 얼룩져 있었다. 게다가 손수건 때문에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서인지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은하가 그의 입에서 손수건을 뽑자 침과 함께 길게 늘어진 피가 묻어나왔다. 그는 아무 말 없이 기성을 압박하던 것들을 제거했다. 노끈을 너무 단단히 묶어놔서 손목에 온통 피멍이 들어있었다. 그는 기성의 한쪽 팔을 들어 자신의 어깨에 걸치고 그곳을 나왔다.




은하는 기성을 양호실에 데려다 놓고 곧장 대형에게 뛰어갔다.


"너 인간이냐? 기성이를 죽이려 했냐?"

"내가 뭘? 그 병신 같은 게 뒤지기라도 했냐?"


은하의 고함에 대형은 킥킥거리며 웃었다.


"네가 그랬잖아!"

"증거 있어? 내가 그랬다는?"


대형은 은하에게 조롱 섞인 웃음을 날렸다.


"조만간 밝혀질 거다."


은하가 간신히 분노를 억누르고 뒤돌아서는데 대형이 비아냥거렸다.


"기집애같이 생긴 놈이 지가 뭐라도 되는 줄 알기는."

"뭐?"

"네가 신이라도 되냐? 네가 그놈의 뭔데? 그 새낄 구원해줄 수 있을 것 같냐? 너 같은 게?"


은하는 아무런 대꾸 없이 대형을 차갑게 노려봤다. 대형은 싱글거리며 은하의 두 눈을 똑바로 마주 봤다.


"정운용와 같은 방이라며? 곱상한 얼굴로 밤에 시중이라도 들어줬냐?"


그러자 은하의 몸이 부르르 떨리더니 그대로 대형에게 달려들어 그의 옷깃을 잡아 올렸다.


"너 지금 뭐라고 했냐?"

"너나 그 새끼나 똑같은 놈들이야. 약한 주제에 남한테 빌붙어 사는 기생 종자라고."

"뭐라고, 이 새끼야?"

"정운용이 없으면 너 따위가 그 반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거 같냐? 서호와 택에게서?"


은하는 거친 숨소리를 내며 그의 옷깃을 잡은 채로 고개를 푹 숙였다. 대형은 그런 그를 보며 입 꼬리를 비열하게 비틀었다.


"야! 여기서 뭐하냐?"


그때 마침 운용이 지나가다 교실의 유리창 너머로 은하를 보고 달려왔다. 다윤의 등쌀에 못 이겨 은하를 찾아 나선 참이었다.


"네 낭군님이 오셨네? 빨리 가서 안겨야지?"


여전히 모욕적인 그의 말투에 은하는 아무런 대꾸 없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분노가 극에 다란 듯했다. 운용이 다가와 은하를 저지했다.


"너 이 새끼. 넌 내가 가만 안 둔다."


은하가 고개를 들어 대형을 노려보더니 그대로 손을 놓았다. 그리곤 뒤돌아서 교실을 나서자 운용이 그의 뒤를 따라왔다. 운용은 둘 사이에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생겼음을 직감했으나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둘은 말 한마디 없이 자리로 돌아왔다. 다윤이 쪼르르 달려와 은하에게 이런저런 투정을 부렸으나 은하의 표정은 풀어질 줄 몰랐다. 이내 실망한 그녀는 그의 눈치만 보더니 자리로 돌아갔다.

그녀가 돌아서자 은하가 나직이 입을 열었다.


"고맙다. 나랑 친구 해줘서."

"이 새끼. 이제 알았냐? 그러니 앞으로 잘해. 임마."


은하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운용은 가벼운 농담으로 답했다. 은하는 아무것도 묻지 않는 그의 배려가 새삼스레 고맙게 느껴졌다. 둘은 서로 마주 보며 씨익 웃었으나 은하의 마음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작가의말

재밌게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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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제 4장 반수호자와의 조우(9) 13.09.29 698 39 18쪽
38 제 4장 반수호자와의 조우(8) +4 13.08.26 671 12 21쪽
37 제 4장 반수호자와의 조우(7) 13.08.13 336 7 19쪽
36 제 4장 반수호자와의 조우(6) 13.08.05 697 27 16쪽
35 제 4장 반수호자와의 조우(5) 13.07.20 307 4 16쪽
34 제 4장 반수호자와의 조우(4) 13.07.12 466 6 14쪽
33 제 4장 반수호자와의 조우(3) 13.07.10 1,313 16 16쪽
32 제 4장 반수호자와의 조우(2) +2 13.07.08 897 16 17쪽
31 제 4장 반수호자와의 조우(1) +5 13.07.01 681 7 16쪽
30 제 3장 어둠에 물든 이들(8) 13.06.24 1,979 36 23쪽
29 제 3장 어둠에 물든 이들(7) 13.06.22 865 32 17쪽
28 제 3장 어둠에 물든 이들(6) 13.06.16 584 9 16쪽
27 제 3장 어둠에 물든 이들(5) 13.06.16 552 8 15쪽
26 제 3장 어둠에 물든 이들(4) 13.06.16 509 8 18쪽
25 제 3장 어둠에 물든 이들(3) 13.06.16 1,206 31 25쪽
24 제 3장 어둠에 물든 이들(2) 13.06.16 556 14 14쪽
23 제 3장 어둠에 물든 이들(1) 13.06.16 1,032 29 11쪽
22 제 2장 네 개의 세력(11) 13.06.16 647 8 12쪽
21 제 2장 네 개의 세력(10) +3 13.06.16 1,144 36 18쪽
20 제 2장 네 개의 세력(9) 13.06.16 979 50 14쪽
19 제 2장 네 개의 세력(8) 13.06.16 695 16 15쪽
18 제 2장 네 개의 세력(7) +3 13.06.16 1,023 26 14쪽
17 제 2장 네 개의 세력(6) +2 13.06.16 1,208 17 14쪽
16 제 2장 네 개의 세력(5) 13.06.16 718 8 16쪽
15 제 2장 네 개의 세력(4) 13.06.16 1,359 29 13쪽
» 제 2장 네 개의 세력(3) 13.06.16 790 12 18쪽
13 제 2장 네 개의 세력(2) +5 13.06.16 823 14 16쪽
12 제 2장 네 개의 세력(1) 13.06.16 679 9 13쪽
11 제 1장 시작의 장(10) 13.06.16 938 1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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