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균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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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균형자
작품등록일 :
2012.03.18 19:00
최근연재일 :
2012.03.1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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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9.25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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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쪽

01. 빛을 따르는 자(1)

DUMMY

"......"

그러고 보니......

"조금만 더 일찍 말하지."

갈림길을 지나와서 말이지... 그 전에 말했다면 '그곳'으로 그냥 가면 됐는데 지금은 돌아가야 하잖아.

'아니, 어제는 내가 말을 무시했구나.'

결국 내 잘못이군.

"으음... 거길 또 가야하는 건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어제 저녁에 '그곳'과 집으로 가는 길의 갈림길을 지났다는 것이다. 아주 약간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그곳에 빛의 대신전에 대한 자료가 있을지 확신할 수도 없고... 며칠만 집에서 쉬다가 가는게 좋지 않을까... 몇 달 동안 얼굴도 못 비췄는데..."

내 혼잣말에 그녀가 말했다. 아니, 여신이라고 해야하나.

-서두를 필요는 없다. 네가 쉬고 싶다면 조금 쉬어도 상관없어-

......차라리 재촉한다면 고민할 필요가 없을 건데.

"하아......"

난 예전부터 유유부단한게 탈이었다. 일이 코앞까지 닥치기 전에는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하는 것이다.

-......-

"......"

-......-

"에라 모르겠다. 일은 한꺼번에 끝내고 돌아가야지."

어차피 몇 달 동안 안 들린 곳, 지금 급하게 들릴 이유도 없다.

나는 갈림길로 돌아가 왼쪽 길로 향했다. 이 길은 '그곳', 즉 성도로 통하는 길이었다.

신의 도시, 성도 나르케타피안.

어둠의 신전, 불의 신전, 물의 신전, 대지의 신전이 모여있는 그야말로 신의 도시. 지나가는 사람들 중반이 신관이다. 나머지 반은 여행자, 순례자들. 여행객이 얼마 없어서 대부분의 여관이 망하기 직전이라서 숙박비가 싸다는 장점도 있다.

여기서 한가지 궁금점. 왜 여행객이 없냐고? 건물 빼고는 볼 것도 없는 도시다. 게다가 반나절 거리에 큰 도시가 있어서, 대부분 그곳에서 여관을 잡고는 건물구경하고 돌아가고는 한다. 괜히 성도에서 머무르기는 시간이... 아까우니까.

"에효... 왠지 힘이 빠진다."

왔던 길을 돌아가려니 왠지 허무하고 짜증났다. 게다가 혼자 묵묵히 걸으려니 심심하다.

'나중에 말이라도 하나 구입해야지...'

하지만 지금 와서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이미 다시 갈림길을 지났으니...

"하아아..."

심심한데 산적 안 나오나. 이런 지형에서 기습하면 타격이 클텐데.

'하여간 이 나라는 산적도 하나 없어!'

산적을 잡아가면 포상금이 주어진다. 즉, 용돈이라는 얘기다.

'하긴, 없는게 좋은 거지.'

나와는 달리 무력이 없는 사람들만 털리는 거니까.

터벅.

그렇게 며칠 뒤, 나는 성도의 외곽에 도착할 수 있었다.

"후아아... 지겨워."

왔던 길을 돌아오니 여행이 배는 지겨웠다.

어쨌거나 이곳은 성도 나르케타피안. 신의 도시. 신관이 인구의 반을 차지하는 비효율적이고 이상하지만, 건물만은 정말로 아름다운 도시다.

하얀 석재건물들, 반듯하게 갈려있는 포석. 거기에 신전의 속성에 따라 빛나는 신전의 벽.

"......"

뭐, 수십번을 보았음에도 이곳을 지날 때마다 멍하니 건물들을 바라보고 있는 나의 모습을 깨달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하아아..."

막상 오기는 했지만 막막하다. 어디서부터 조사를 해야 될지.

"성도에서는 무기를 소지하실 수 없습니다."

아, 관문을 통과하는 중이었지. 역시 평화로운 도시라서 그런지, 보초들도 둘밖에 없다. 수도의 보초는 거의 소규모 군대 수준인데 말이지.

"여기."

입구에서 검을 풀러 보초에게 건네주었다. 보초는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약간 어색한데...

'차라리 웃지 말지.'

"그럼, 신의 축복이 머무시길."

축복대신 신력 좀 받았으면 좋겠다.

터덜터덜...

역시 흙길보다는 도로가 걷기에는 좋다. 일단 숙소를 먼저 잡아야 하기에 잘 알고있는(정확히 말하자면 근래 5년 간 집에서 잔 것보다 더 많이 머물렀던)여관으로 걷기 시작했다.

"하아아..."

걸어가면서도 한숨만 나왔다.

“역시 막막하다... 집에라도 들릴걸 그랬나.“

앞도 제대로 보지 않고 걷고있지만, 목적지에는 잘가고 있었다.

나는 성도에 한두번 와본 것이 아니다. 신관이 되겠다고 생각한 뒤 제일 먼저 온 곳이 바로 이곳이니까. 그래서 단골로 숙박하는 곳(바로 이곳이다)도 있고, 몇몇 신관들과도 알고 지내는 사이다. 그 중에서 조금 친한 신관들도 있고.

딸랑~

문을 열자 손님의 등장을 알리는 정겨운 방울 소리가 울렸다.

"나 왔어."

"아, 왔나."

여관 주인도 아는 사이기에 인사는 대충 넘어갔다.

"방 알지?"

"한 두 번들려? 그냥 올라가."

누가 들으면 우리 집으로 착각하겠다. 뭐, 어차피 그 방은 내 전용이기는 하지만. 어차피 성도에서는 여관이라는게 인기가 없으니까 방은 거의 비어있고, 나처럼 몇몇 여행객이 쓰는 것을 빼면 말이다. 순례자들도 신전에서 머무는데 여관이 무슨 필요가 있어?

-지금 어디지?

여신의 물음에 나는 계단을 올라가며 대답했다.

"여관이요."

'그런데 이렇게 보고해야 해?'

2층으로 올라가서 가장 처음 보이는 곳에 짐을 풀었다.

"어라?"

창문을 바라보니 석양이 지고 있었다.

꾸르륵...

그러고 보니 배도 고팠다.

'조금 이르기는 하지만 저녁을 먹을까...'

짐을 대충 풀어놓고 1층의 식당으로 내려갔다.

"크하하하!"

당연하지만, 이 인기 없는 여관은 식당에도 사람이 별로 없었다. 5명 정도? 저 다섯이 꽤 시끄럽게 떠들고 있기는 했지만... 여관식당이 다 그렇지 뭐.

"자."

역시 아는 사이는 다르다. 뭘 먹을 건지 안 물어보고 그냥 가져오잖아. 그것도 앉자마자 바로.

'그런데 이번에는 다른게 먹고 싶었는데...'

뭐... 괜히 바꿔달라고 하면 기다려야 한다. 그냥 먹어야지 뭐.

"잘 먹겠어~"

샤샤샥.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고기를 썰기 시작했다.

텁.

"......"

나는 입에 고기를 넣은 그대로 행동을 멈췄다.

'무슨 맛이...'

왜 종이 맛이 나는 걸까.

"왜 표정이 그런가?"

"맛없어."

그는 대충 예상했다는 표정이었다.

"아, 미안해. 그럼 이번 식사는 무료로 하지."

"......"

너무 친하니 이런 일이 생긴다. 아마도 저 안에 있는 보조 주방장(아들)이 만들었겠지.

'그래도 공짜니 뭐...'

요즘 여행 경비도 모자란데 뭐.

샤샤샤샥.

나는 고기를 다 썰어놓고 먹는 성격이기에 먹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재빠르게 자르기 시작했다.

샤샤샤샤샥...

실수로 힘을 너무 많이 주고 말았다.

끼익!

윽. 접시 긁히는 소리.

샤샤샤샤샥...

잘게 썰려진 고기를 바라보며 포크를 들었다. 이제 찍어서 먹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제부터 진짜 식사가...'

벌컹!

누군가가 식당으로 들어왔다. 그것도 매너없이 문을 큰 소리로 열며.

"여기 라드 있지?"

여관문에 서서(들어오려는 사람들을 막고... 아니, 들어오려는 사람은 없구나)나를 찾는 갈색머리의 신관.

"라드!"

그의 목소리는 모르는 사람이 듣기에는 쾌활하고 듣기 좋았지만... 나에게는 짜증만을 불러일으키는 소리였다.

"야아! 라드! 어딨어!"

사람 많은데 저렇게 큰소리로 불러대면 예의가 아니지. 나는 그를 무시하고 식사를 재개했다.

"그래, 바람의 신전에서도 쫓겨났나?"

어떻게 구석에서 몸을 숨기고 있던 나를 귀신같이 찾아내고는 옆에 앉았다.

'하긴, 이 조그만 여관에서 나처럼 눈에 띄는 외모를 못 찾는게 말이 안되지만.'

그나저나 제일 시급한 사건은, 옆에서 떠들고 있는 이 녀석의 처리다.

"......조용히 좀 해라."

"싫은데? 아하하하하하하하!!!"

일부러 더 크게 웃는거 봐라. 하여간...

"후우..."

결국 식사를 멈추는 수밖에 없었다. 이 신관의 이름은 오로스. 물의 신관이다. 젊은 나이에 중급신관의 자리에까지 올라간 촉망받는 인재... 이긴 하나, 성격이 쾌활하다 못해 짜증나는 수준이라 문제다. 나는 이 녀석을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든다.

'이런 놈도 신관인데...'

"그런데 여기는 왜 왔어? 바람의 신전도 안되면 고향으로 내려간다며."

녀석은 정말 궁금하다는 표정이었다.

"아직 한곳이 남아서."

오로스는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 모든 신전에서 거절당한 위대한 라드님이 이번에 도전한 곳은 어디지?"

"......짜증나니까 그런 말하지마."

우직우직!

"하하..."

그를 대신해 신경질적으로 씹어 먹히는 음식을 보고 오로스는 약간 난처한 웃음을 지었다. 아마 한 마디만 더 하면 자신의 얼굴이 내 입에 들어간 음식처럼 뭉개지리라는 것은 알고 있을 테니까.

"농담이야. 오랜만에 만나서 반갑다고 그런 거지."

웃긴다. 웃겨서 콧물 나오겠다. 흥!

"그런데, 이제 남아있는 신전이 없지 않나?"

우적우적...

꿀꺽.

"컥..."

큭, 반 이상 남아있던 음식을 단번에 삼켜 버렸더니 목이 막혀버렸다.

"......쯧. 하여간 급하게 먹기는. 굶었냐?"

"켁... 켁켁!"

'누구 때문인데!'

어쨌거나 녀석은 나를 바라보더니 손을 움직였다.

"여기 물."

쪼르륵...

그의 손에서 물이 떨어지며 비어있던 잔에 물이 담겼다.

'그냥 물을 떠오면 될 것 가지고.'

벌컥.

물을 마시자 목이 좀 뚫린 것 같았다.

"푸하..."

'겨, 겨우 살았다......'

탁.

겨우 목숨을 구하고 잔을 내려놓으며 문득 생각났다.

'물의 신관들이 이 물을 만들어서 판다면 엄청난 돈을 벌 것 같은데...'

건강에도 도움이 되고 잔병도 없애주니까... 그런데 왜 안 파는 걸까.

"후우..."

막혔던 숨을 몰아쉬고 입을 열었다.

"아직... 한군데 남았지."

"어딘데?"

"빛의 신전. 어쨌거나 마침 잘 왔다."

전혀 반갑지는 않지만 이 녀석을 쓸 일이 있었다.

"빛의 신전이라..."

오로스는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빛의 신족이 아직까지 남아있었나?"

오로스의 물음에 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가본데."

"그래?"

솔직히 나도 반신반의하는데 뭐.

"그래서 부탁할게 하나 있는데."

"......"

그는 내 말에 정말 사악한 웃음을 지었다.

"대가는 일이 끝나고 받지."

".....너 신관 맞냐?"

"그럼! 물의 중급신관 오로스! 편하게 천재라고 불러."

"......"

'저런 놈한테 부탁해야 할까?'

하지만 지금은 아주 약간의 정보라도 필요할 때. 결국 녀석에게 일을 맡겨버리고 말았다.

"그럼 이만!"

텅!

그는 큰 소리로 문을 닫으며 나가버렸다.

'신관이 아니었으면 분명히 불량배한테 맞아 죽었을거야.'

아니면 나한테 맞아 죽었을 것이다. 하여간 저 녀석은 직업 하나는 탁월하게 잘 골랐다고 생각한다.

"......"

"......"

식당에 있는 사람들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하... 하하..."

내가 떠든 것도 아니고 오로스가 떠들었는데! 아니, 이 사람들도 오로스에 대한 것은 당연히 알고 있을 테니 오로스를 원망해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그 원흉이... 어쨌거나 다 따져보면 이 녀석 때문이잖아.

"......잘 먹었습니다."

결국 식사도 제대로 못 끝내고 올라와야 했다.

"하아......"

답답하다. 역시 빨리 먹는게 아니었어.

'아니, 아까 그렇게 먹어두지 않았다면 그 음식들을 다 버리고 왔어야 했나?'

"쓰으..."

속이 답답해져 바람 좀 쐬려고 발코니로 나갔다.

'하여간 녀석은...'

생각하지 말자. 괜히 머리만 더 아파지니까.

부르르...

그렇다고 해도 내 주먹은 떨리고 있었다. 매번 이렇게 녀석이 빠져나간 다음에 일이 생기기에 보복하기도 쉽지 않다. 신관이라서 건드리면 조금 골치 아프기도 하고...

'뭐, 어때. 여신을 만난 기념으로 용서하지 뭐.'

애써 마음을 밝게 가졌다.

으득.

이 한번만 갈고 밝게 가져야지.

“음, 오로스에게는 말해뒀고, 내일은 에인에게 말해봐야겠네.“

이들은 나와 그럭저럭 친하다고 할 수 있는 신관들이다.

'자세히 말하자면 오로스는 원수지만.'

원래대로라면 신관이라는 직업이 바빠야 정상이나, 이런 성도에서는 농사지을 땅도 없고 특별히 신력이 필요한 일들도 신관이 인구의 반을 차지하는 도시다보니 그런 일들의 경쟁률이 세다. 그래서 할 일없는 신관들이 꽤나 많은 편이다.

-인맥이 넓네. 그것도 꽤나 고위층과-

고위층이라... 중급신관이면 고위층이기는 하지만...

“뭐, 그럭저럭. 집을 제외하고는 여기서 제일 많은 시간을 보냈으니까요.“

성도에 있는 모든 신전에서 내 이름을 안다. 신전이란 신전은 전부 들려봤고, 신관이 되겠다고 요청해봤고, 안되면 행패도 부려봤으니까. 그 도중에 일부 특이한 신관들과 친해지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그나저나, 바람에 신전에서 어떻게 당신에게 저를 소개 한 거죠?“

신관, 그 중에서도 상위의 신관은 신족과 소통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도 자신이 모시는 신족들이지, 전혀 다른 속성의 신족과 소통이 될까? 그렇다면 어떻게 빛의 신족에게 알려준 거지? 빛의 신관은 없는데.

-몰론 그들이 바로 알려 줄 수는 없지-

"그러니까 궁금하다고요."

-바람의 여신-

“바람의 여신?“

왠 상황에 안 맞는 소리야?

-인간의 말로는 친구... 라고 해야 할까?-

그러니까, 바람의 신전에서 바람의 여신에게 연락하고 그 여신이 또 여신에게 연락했다 이거지?

“아, 대충 이해했습니다.“

비록 가능성이 적기는 하지만 이렇게 방법을 생각해 주다니.

'나중에 선물이나 가져다 줘야지.'

몰론, 그 때 생각난다면.

"......"

-......-

서로에게 할 말이 없었다.

“그나저나, 최고위 신족은 얼마나 강한 거죠?“

그냥 생각 없이 물었다.

-무슨 의미지?-

잠깐. 지금 나 말실수 한거 아냐?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얼마나 강한지를...“

-......우스운 질문이네. 기준을 정해야 비교할 거 아냐?-

“아, 그러십니까."

그렇게 말하니 할 말이 없었다.

"......"

-......-

대화가 끊어졌다.

"......그럼 전 이만 자겠습니다. 어차피 내일은 되어야...정보가 들어올 것 같으니까요."

-그래-

푸스럭.

자리에 누웠지만,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그저, 누워서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뿐이었다.

‘정말로... 신관이...?’

그 날 밤, 이상하게 심장이 두근거리는 바람에 나는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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