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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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눌밭
작품등록일 :
2012.11.15 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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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9.21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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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주유강호-귀주이편[제3-2화]

DUMMY

"그래? 그 녀석들이……."

엷은 웃음을 띤 표정은 그대로다. 그는 새벽의 한기 속에서 홀로 서 있었다. 손 영감은 루주가 사망한 이후에도 여전히 정창에서 번을 서고 있었다. 동이 틀 무렵에는 한두 잔 씩 걸친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는 것 또한 그대로였다.


효기와 함께 그의 앞에 나섰을 때도 손 영감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났지만 형식적인 인사를 나누지도 않았다. 그러기에는 두 사람 사이의 골은 꽤 깊어 메울 여지가 보이지 않았다. 효기는 그런 분위기에 적응하기 힘들었다. 나서서 인사를 하는 것도 이상해서 잠자코 천강의 뒤에 서 있었다. 손 영감은 효기를 한번 보고 가볍게 목례를 했다.


"그런 복은 타고 난 거 같구먼. 클클클."

기분 좋게 사적인 이야기를 주고받을 틈은 없었다. 천강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약조를 어긴 것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들에게 신의를 따져봐야 돌아오는 것은 조롱 아니면 무시였기 때문이다. 손 영감이라면 대놓고 천강을 무시하지는 않겠지만, 결과를 따져봤을 때는 별다를 것이 없을 것이었다. 그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거래를 제안했다.


"우리를 성 밖으로 보내 주시오. 그리고 하루 동안 추격을 늦춰주시오."

"자네는 나를 뭐라고 생각하나? 나는 그저 술창고에 붙어있는 지박령같은 존재일세, 서하루의 장로라는 것은 그저 퇴물을 치우는 과정에 붙여 놓은 허울일 뿐일세."

"청성은 우리가 온 것은 알고 있소이까?"

"아직 모르는 일이야, 비연 그 녀석들이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것 같아."

"흠……."

"그래봐야. 아침이 되면 그들을 찾기 시작할 거네. 자백이 가만있지 않을게야. 비연의 실책을 본인보다 더 책하고 있어. 그들이 성문에 나가는 것에 대해 꽤 신경을 쓰고 있지"


부욱~

책이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효기가 양손에 힘을 주었다. 비급은 깨끗하게 양분되었다. 한손에 들고 있던 반쪽의 대라신공 비급을 손 영감에게 날려 보냈다. 그것을 받아든 손 영감의 눈썹이 위로 올라갔다 제자리를 찾았다. 서책을 고정하는 데 쓰인 끈이 모두 끊어져 있었다. 이를 흩트리지 않고 한 장이 넘는 거리를 온전하게 던지는 것은 여간한 공력으로는 힘든 일이었다. 효기는 손 영감에게 딴 생각을 품지 말라는 경고도 함께 보낸 것이다.


"이건 가짜일세."

"가짜는 이쪽이지 않소."

천강은 효기가 들고 있는 나머지 반쪽을 가리켰다. 손 영감이 웃었다.

"자네는 능가경의 후반부와 대라신공의의 후반부가 일치한다고 생각하나?"

아차 싶었다. 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아낸 게 없었다. 도박의 초반부터 어긋나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노인장께서는 진본을 본적이 있으신지요?"

"하하하"

효기의 말에 손 영감은 웃음을 터뜨렸다. 천강은 그제야 눈치를 채고 자신의 머리를 두드렸다. 이미 청성파에서 절전되었다고 알려진 대라신공을 손 영감이 알고 있을 리가 없다. 혹여 종지행이 곽근창에 넘겨주는 과정에서 봤을 수는 있겠으나 진정한 내용을 해독할 정도로 시간을 할애했다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취금과 좋은 경쟁상대가 될 거 같으이."

"효기와는 그런……."

"알겠네, 거래를 하지. 대라신공 반쪽과 자네들 둘의 목숨 값이라면 이쪽이 남는 장사니까."

천강은 긴장이 풀렸지만, 내색을 하지 않았다. 이 너구리같은 영감이 어떤 술수를 부릴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저 소저를 소개시켜 주지 않겠나?"

"무효기라고 하옵니다. 선배님을 뵙습니다."

천강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효기가 나섰다. 일의 주도권에서 이미 천강은 한걸음 물러난 형국이 되었다. 손 영감은 염소수염을 만지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 그들을 탈출 시킬 방법을 말해 주었다.


손 영감이 있는 정창은 서하루에서 소비되는 모든 술의 출입을 관장하며, 지방의 명주를 생산하여 하루에도 몇 번씩 술의 출납이 이루어 졌다. 그들은 대부분 적수하를 통한 하상운송을 이용했다. 각지의 술은 장강에서 이어진 적수하를 통해 반입 되고, 출하는 그 반대로 이루어진다.


천강은 술을 나르는 짐꾼 들 틈에 섞여 대모진으로 향하고, 효기는 변복할 시간이 없으므로 빈 술독 하나에 몸을 숨긴다. 일단 대모진에 도착하면 천강은 섬부가 되어 이곳을 빠져 나간 후, 기회를 봐서 효기를 꺼내어 함께 배에서 달아난다는 계책이었다.


섬부란 배가 상류로 올라갈 때 동아줄을 이용해 배를 끄는 직업으로, 강폭이 좁고 물살이 급해 여울이 많은 적수하에서 볼 수 있는 특이한 직업이었다. 배를 끌고 모래톱과 절벽을 번갈아 나아가며 끌어야 하기 때문에, 무척이나 고되고 위험했다. 언제나 일손이 부족했다. 지나가던 뜨내기도 건장한 몸만 있으면 언제라도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섬부들의 수장인 변고나 조타수 역할을 하는 이변이 되려면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섬부는 그런 제한이 없었다. 확실히 섬부로 일한다는 것이 편하지는 않았지만, 이대로 청성의 손에 잡히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배는 운남으로 간다.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섬부들의 역할이 절실히 필요한 항로다. 문제는 운남이라는 곳이었다. 강호는 남북으로 갈려 다툼이 끊이질 않았다. 북의 사도맹, 남의 정백련. 팽팽한 대립의 세월 속에서 십 여 년 전 한 사건으로 인해 운남이 사도맹 세력으로 편입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정백련 지역에서 사도맹의 섬이 생긴 것이다. 운남에 본거지를 둔 점창파로 인해 아직 정파의 명맥이 완전히 끊이지는 않았으나 세력이 운남 서북에 편중되어 있어 대부분의 지역은 사도맹에 잠식당해 있었다.


이러한 사정으로 비록 무림 인사의 교류는 거의 끊어지다 시피 했으나 물적인 교류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었다. 사람이란 먹고 마셔야 하기 때문이다. 정창에서 만들어진 술도 당연히 운남으로 들어간다. 다만 다른 배와는 달리 감시의 눈길이 삼엄했다. 사파지역의 인사가 정파지역으로 와 있는 것이니 서로간의 감시는 당연한 일일 것이다. 따라서 효기와 기회를 봐서 탈출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어쩌면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그녀는 술독에서 빠져나올 기회조차 잡기 어려울지 모른다.


그래도 운남이라는 지역에 천강은 실낱같은 희망을 걸었다. 이미 정백련의 세력 하에서는 길가는 것조차 위태로워진 그에게 사도맹의 새로운 가능성이었다. 잘못하면 첩자로 몰려 개죽음을 당할 수도 있었지만 기회라는 측면에 있어서는 훨씬 유리했다.


시간이 없다. 날이 밝으면 곡자백은 조카의 행방을 찾기 시작할 것이고, 곧 일의 자초지종을 알아챌 것이다. 청성에 급전이 날아가고 배가 묶이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아무리 손 영감의 입김이 있다고 하더라도 청성 본 파가 직접 나서면 아무 소용이 없어진다. 손 영감이 효기에게 술동이 하나를 가리켰다. 그녀가 들어가기에 충분한 크기였다. 천강은 입구가 좁아 제대로 들어갈 수나 있을까 걱정했지만, 가녀린 효기의 몸은 신기하게도 그 좁은 입구를 용케도 통과했다. 손 영감이 재빨리 입구를 막았다.


일다경도 안 되어 인기척이 났다. 짐꾼들이 도착한 것이다. 손 영감은 정창의 문을 열어젖히고 그들을 맞이한 후 내 가야할 술동이들을 지목했다. 그 소란한 틈 속에 천강이 끼어들었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또 주정뱅이 하나가 서하루의 술값을 갚지 못하고 이곳에서 몸으로 때우려니 생각했다. 천강은 직접 효기가 숨어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술동이에 돋아 있는 양 귀에는 이미 운반을 위한 멜대가 밧줄로 연결되어 있었다. 한쪽은 이미 다른 짐꾼이 들고 있었다. 천강은 그와 호흡을 맞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짐꾼은 다른 것에 비해 가벼운 무게에 놀랐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가볍든 무겁든 그가 받는 품삯은 동일하기 때문이었다.


작가의말

고향에 잠시 내려갑니다.
바로 당일에 올라오지만 말입니다.ㅎㅎ
그래도 어디 간다는 건 좋네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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