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북경_07. 사라진 군인들과 칠흑의 공주(3)
허구의 역사밀리터리입니다. 동명이인 및 내용은 모두 평행세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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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9월 30일, 양촌 근방의 상공.
3일이 흘렀다.
칼캐로돈에 적응한 생존자들은 크게 두 분류로 분리가 되었다. 중상자와 부상자들은 의료실에 수용이 된 상태였고, 나머지 인원들은 질 좋은 음식으로 체력을 회복하는 중이었다.
그동안 전투 중에 보급이 되었던 식량은 형편이 없었다. 심지어 조선에서 가져온 통조림과 군용 식량조차도 어디로 갔는지 사라졌고, 청국인이 먹는 만두를 물과 함께 먹으면서 지독한 굶주림에 시달렸다.
그나마 전투 중에 죽은 말의 사체를 수거해서 끓여 먹거나 구워 먹지 않았다면 영양실조로 쓰러졌을 것이다.
이에 반하여 공중전함의 형태를 띤 칼캐로돈의 식사는 육류와 야채 같은 식자재부터 건조식량에 이르기까지 없는 것이 없다. 이제까지 만두와 물로 연명하던 그들의 식탐을 자극하고도 남았다.
예로부터 조선국의 다른 이름이 대식국(大食國)으로 불리던 만큼 귀화한 이반이나 미하일도 대식가가 되어서 마구 먹어 치웠다.
특히 바게트 빵과 잼, 살라미와 햄을 썰어서 먹어 치우는 양이 어마어마했다.
먹을 것에 욕심이 없던 한승범도 군용 커피와 달리 깊은 향이 가득한 원두커피에 환장을 했다. 영국의 무역상으로부터 수입하는 커피는 커피콩을 분말로 만들어서 장기 보관하기 때문에 고유의 향이 부족했고 맛도 텁텁하기 그지없다. 이에 반하여 그들이 준 커피의 질은 천상의 맛이었다.
한승범과 일행들이 소소한 행복을 누리고 있을 때 전선의 상황은 더욱더 악화가 되어가고 있었다.
청국군은 양촌에 후속부대를 집결시켜서 방어진지를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중화기 대다수를 소실하고 도주한 그들에게 전차를 막을 무기가 없었다.
조선군부의 위장 상단들이 서둘러서 철조망과 무기들을 공수해 주고 있었지만 태부족이다. 일반 소총과 달리 대포와 기관총은 덩치가 커서 눈에 뜨인다.
청국과 조선의 밀약을 알고 있는 연합국의 지켜보는 눈이 많은 이때 운송이 쉽지 않았다. 그나마 육로를 통해서 북경으로 가는 길을 확보한 상태라서 조선의 물밑 지원이 가능했기에 부족한 탄약의 공급이 수월한 수준이었다.
※※※※※※※
같은 시각, 양촌 청국군 2차 방어사령부.
경진철도의 전 지역에서 패주한 청국군이 모여들면서 양촌의 곳곳은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직례도독 섭사성이 전사했고 총병 마옥곤이 간신히 도주한 1차 방어진지의 패잔병의 수는 십분의 일도 남지 않았다. 일만 명의 패잔병도 무기를 수습하지 못한 채 도착했다.
이에 2차 진지의 총사령관 직례성 총독 유록은 대로했고, 그의 앞에 마옥곤의 고개가 한 없이 꺾였다.
쿵!
탁자가 흔들렸다.
유록의 수염이 부들부들 떨리면서 분을 참지 못해서 탁자를 때렸다.
“마 총병이 말아먹은 병력이 9만이요! 자그마치 9만이 넘는 병력을 가지고 패배했소이다.”
작전실에 모인 군관들도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북경성의 대전에서 연합군을 충분히 막을 수가 있다고 공언한 이들이 그들이다.
“아국의 재력과 군사력을 경진철도에 밀어 넣고도 이런 결과를 가지고 오다니!”
쾅!
다시 탁자가 흔들렸다.
유록은 분노했다.
“눈앞의 적을 어떻게 막을 생각이오. 어디 입이 있으면 말이라도 해보시오.”
마옥곤이 한숨을 내쉬었다.
“소장의 잘못이 큽니다. 총독께서 저를 백의종군하게 해주시고 검 한 자루를 주신다면 목숨을 걸고 막아내겠습니다.”
유록이 이를 뿌드득 갈았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오. 왜! 왜! 진형을 바꾸고 적과 정면 대결을 시도하려고 했소? 생각이 있으신 거요.”
마옥곤은 소매로 이마의 땀을 훔쳤다. 그도 이렇게 상황이 변할지는 몰랐다는 얼굴로 다시 한숨을 몰래 내쉬었고, 유록의 훈계가 이어졌다.
“조선의 정보사가 보낸 문건을 보지 못했소. 아국의 군사력으로 그들과 정면대결은 무리라고 누누이 언급하지 않았소.”
“적이 틈을 보였습니다. 그 틈을 파고들면 본때를 보여줄 수가 있었······.”
“총병, 아국의 군사력은 불과 5년 전만 해도 형편없었소이다. 섬나라 왜구에게 쩔쩔매다 못해서 죽어갔고, 전국의 무기 공장에서 신식무기를 보급받았다고 하지만 짧은 시간 동안에 영국과 프랑스, 러시아군과 상대가 된다고 여기오?”
“그, 그것은······.”
“조선에서 신신당부한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아국의 참모들이 상정한 계획도 무시를 하는 것이오.”
청국은 연합국과 전쟁에 대비해서 작전을 세웠다. 첫 번째는 지연작전을 통해서 보급이 쉽지 않은 적을 괴롭히는 것이고, 둘째는 대량의 사치품과 공업품의 수입을 금지함으로 적의 재정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이 작전계획의 핵심에 조선이 있었고, 그들이 저렴하게 제공하거나 공여해 주는 것으로 수입시장을 뒤흔든다는 전략이었다.
“입이 있으면 말해보시오. 그대가 무리하게 전투를 벌이지 않고 시간을 끌었으면 모든 게 문제없었소이다.”
일이 터졌다.
그러나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기에 유록은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었다.
“조선의용대(양국이 합의한 명칭)의 병력을 흩어놓은 연유는 무엇이오. 그들의 작전계획서가 내게 늦게나마 도착했는데 이것을 감춘 연유는 또 무엇이오?”
순간, 마옥곤과 참모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제출한 의견을 묵살하고 보고를 차단한 것이 자신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경진철도의 축선 방어와 동시에 기습전략 기동부대를 편성해서 적진을 우회해서 공격하고, 조선의용대 한승범 이하의 전차와 기마대를 이용한······.”
읽어 내려가는 유록의 입에서 쉰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그의 음성에는 노기를 억누르는 표정이 역력했다.
누가 들어도 타당한 작전계획서였고, 그들이 세운 전공이 청국군을 통틀어서 세운 것보다 많았다고 평가를 받는 한승범 부대, 그런 부대를 이유 없이 해체해서 재배치한 것을 알아챈 유록의 눈썹이 하늘로 치솟았다.
“그들이 잘 싸우는 부대인 탓에 아군의 부족한 부분을 메우려고 작전 변경을 시도했습니다.”
마옥곤의 변명이 이어졌다.
돌아오는 유록의 답변은 냉담했다.
“그래서 그들에게 통보도 없이 후퇴했소이까.”
마옥곤이 놀라 숨을 들이켰다.
“총독께서 잘못 아신 내용입니다. 그들이 맡은 전선이 무너지면서 일이 이렇게 된 것입니다.”
유록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대뜸 그를 죽이려고 노려보면서 손뼉을 마주쳤다.
“통신군관 허창을 불러와라.”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마옥곤을 비롯한 참모진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들이 맡은 전선이 무너졌다고!”
유록은 냉랭하게 비꼬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새카맣게 타다시피 햇볕에 그을린 군관이 좌우의 호위병에게 부축받으면서 들어왔다.
“허창, 네가 직접 보고 들은 내용을 저들에게 알려주어라. 귀가 있으면 모르지 않을 것이다.”
동시에 호위대의 군관들이 일제히 들고 있던 총을 그들에게 겨냥했다. 살기등등한 병사들의 시선을 받은 무리들은 전전긍긍하면서 떨었다.
“조선의용대가 먼저 무너지고 패해서 도주했다고! 너는 그들이 홀로 전투에 나섰다는 사실을 몰랐더냐! 그들을 버려두고 왔다면 차라리 그렇게 말해라.”
“그, 그것이 전투 중에 중과부적으로 인해서······.”
“닥쳐라! 그들은 불과 백여 명도 되지 않는 수를 가지고 어제까지 전차 수십 량과 연대급의 적에게 피해를 줬다. 겨우 100여 명도 안 되는 병사들로 말이다.”
장내의 분위기가 급격하게 변했다.
이제까지 전공에 대해서 크게 알려지지 않은 한승범 부대의 이야기에 다들 경악했다.
통상적으로 양인(서양인)의 군대는 청국 군대의 다섯 배 혹은 칠팔 배의 질적 우위였다. 청국군 수뇌부는 전쟁 발발 시에 몇 배나 많은 병력과 물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고정관념으로 박혀있었다.
“그게 사실입니까!”
“그대가 버리고 떠난 이들이 적의 진격을 막았다. 한 번이라도 추측을 해보았나? 적이 무질서하게 도주하는 자네의 친위 부대를 추격하지 않았는지 말이다.”
“그럴 수가······.”
“오늘 아침까지 그들이 최후까지 지키던 진지에 대규모 포격이 가해졌다. 최신 대포로 한 시간이나 퍼부었다.”
망연자실해 하는 마옥곤과 일행이었다.
총독 유록과 청국군 수뇌부에게 진실을 숨겼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꼴도 보기가 싫다. 데리고 나가라.”
그때였다.
문을 열고 들어온 호위병이 나지막하게 귓속말했다.
“북경의 궁에서 특사가 도착했습니다.”
유록은 수염이 없는 사내가 들어오자 전언을 들었다. 그는 서태후의 측근으로 궁내의 환관으로 사일홍이라는 작자였다.
“······이상이 태후께서 내리신 전언입니다.”
유록은 인상을 찡그리며 일어서서 자리에 앉았다. 황제의 이름을 빌려서 그에게 명령을 내린 사람이 서태후라는 사실을 알고 불안한 마음이 역력했다.
“공공께서 가져온 내용은 알겠지만, 감군의 총수 동복상에게 군권을 준다는 것은 아니 될 말이오.”
“서태후의 명이십니다.”
“그, 그는 북경과 인근에서 양인이라고 하면 남녀와 아이를 가리지 않고 고통스럽게 베어 죽인 작자이오. 연합군들이 사실을 안다면 양촌으로 대병력을 몰아서 공격할 것이오.”
“총독께서 어찌하여 두려움을 가지고 계십니까. 외이(外夷, 외국 오랑캐)들의 무례함을 징계하고 싶으신 태후마마와 황제 폐하의 뜻을 이리도 몰라주십니까.”
“동복상의 군대는 강도 집단이나 다름이 없소이다. 연합군이 아국의 병사를 생포하고 포로로 잡고 있는 규칙이 깨지오. 그가 이곳으로 온다면 재앙이 벌어질 것이오.”
“호호호, 이미 그는 이리로 오고 있습니다.”
“뭐라고요!”
유록은 전신을 휘청였다.
청국에서 다섯 손가락에 드는 군벌에 드는 감군은 회족이 구성원으로 불교와 달리 마호메트를 믿는 전사로 구성이 되었다. 태어나면서 칼을 차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족이었다.
또한 여타의 청국인과 달리 기독교인을 살해하는 방법도 악랄해서 양인들에게 원성이 자자했다.
“총독과 북양대신의 말씀대로 경진철도에 쏟아부은 아국의 군대가 전멸했습니다. 현재 북경성을 지킬 병력을 제외하고 감군과 태후의 충실한 하인 의화단이 있습니다. 그들을 쓰지 않는다면 큰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일홍이 말했다.
하지만 유록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의 눈빛이 번뜩이면서 강한 어조로 말했다.
“아니오. 이 전쟁의 원인이 무엇인지 태후께서는 잊고 있소이다. 빌어먹을 의화단원이 독일의 철도의 선교사들을 살해했고, 동복상이 북경에서 독일과 일본의 외교관을 참수하면서 빚어진 일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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