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정체를 들키다?
‘ 피하면 안 된다. ’
그게 내가 내린 결론. 9곳에서 쏟아지는 공격을 단 번에 피해버린다면, 분명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이런 유치한 신경전 때문에 알렌에게 의심을 살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어린 아이들의 공격. 들고 있는 목검으로 급소만 막아낸다면 치명상은 입지 않을 터.
- 휘이익!!
그렇게 나의 몸을 향해 공격이 쏟아지려는 순간!!
“ 동작 그만!! ”
알렌이 끼어들었다.
“ 언제부터 목검을 서로에게 겨누라고 말했지? ”
“ 그게.. ”
“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다. 지금 목검을 쥐고 있는 놈들 모두, 직접 나에게 명단을 제출하도록. ”
잔뜩 화가 난 알렌이 신형을 돌렸다. 그리고는 다시금 입을 열었다.
“ 시드 너는 지금 즉시 나를 따라 오거라. ”
역시나..
걸렸다.
<< 알렌의 방 >>
알렌을 따라 방으로 들어오기가 무섭게 그가 고개를 훽- 하고 돌렸다.
“ 뭐였냐? ”
뭐 앉으란 말도 없이 뭐였냐가 첫 마디라니..
“ 예? 뭐가요? ”
“ 막콥의 공격을 피했을 때, 너의 그 움직임.. 뭐였냐고!! ”
알렌은 뭐가 그렇게 흥분이 됐는지, 목소리가 잔뜩 격양 돼있었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수십 번의 인생을 살면서 이러한 상황은 몇 백번이고 겪었던 상황이었다. 노하우는 충분히 쌓인 상태, 누군가가 나의 강함을 의심하기 시작하면..
잡아떼면 된다.
“ 운이 좋았습니다. ”
“ 뭐!? ”
“ 운이 좋았다고요. ”
그의 반문에 씨익- 웃어 보이며 답했다. 내가 너무나도 당당하게 나오자, 알렌은 조금 당황한 것 같았다.
“ 너 지금 그걸 말이라고.. 무려 열두 번이다. 열두 번이나 너무나도 깔끔하게 피해냈어. 그것도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
“ 열두 번 다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아니면.. 막콥의 컨디션이 안 좋았다거나.. ”
“ 너 지금 그걸 말이라고!! ”
“ 진짜에요. ”
너무나도 순진한 눈빛으로 거짓말을 하고 있으니, 알렌의 말문이 턱- 하고 막혔다. 그는 더 이상 묻지 않고 가만히 서서 나의 눈을 응시했다. 보통 이러한 상황에서 14살짜리 어린아이라면 눈동자가 흔들리기 마련이겠지만..
난 14살짜리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 후.. 좋아. 나가 보거라. ”
생각보다 쉽게 포기했다. 하지만 방심하면 안 됐다. 기사 출신의 알렌이라면 단 한 번이라도 내 움직임을 본 이상, 의심을 놓지 않을 터였다.
- 스릉
신형을 돌려 문손잡이를 움켜쥐기가 무섭게 알렌이 검을 뽑아들었다.
‘ 역시나 쉽게 포기하진 않는 군. ’
뽑아든 건 진검. 그것도 아주 예리하게 갈려있는 검이라 단 한 번이라도 허용 당한다면 치명상을 입을 게 분명했다. 검을 뽑는 소리가 크지 않았지만, 느낄 수 있었다.
- 타닥
한 발 내딛었고..
- 휘익!!
검 끝이 바람을 가르며 내 뒷덜미를 향해 날아든다.
그러나..
피하지 않는다.
여기서 피하거나 막아낸다면 의심은 더 커질 터, 내가 아는 알렌이라면 자신의 어린 제자를 그것도 등 뒤에서 찔러 죽이진 않을 거였다.
- 쩡!!!
예상대로 검 끝이 뒷덜미에 닿기 직전에 경로를 틀었다.
“ 으악! ”
조금은 어설픈 연기였지만, 해야만 했다.
“ 선생님 대체 왜 그러세요!? ”
놀란 척, 마치 전혀 예상하지 못 한 척..
“ 아.. 아니다.. 미안하구나.. ”
알렌이 고개를 갸우뚱- 하더니 넘어진 나의 손을 잡고 일으켜주었다.
“ 예.. ”
“ 나가 보거라. ”
“ 예. 안녕히 계세요. ”
그래도 위기는 넘겼다. ‘전투의 기초’가 학교 마지막 수업이었으니, 이젠 집으로 돌아가서 쉬면 됐다.
‘ 꽤나 긴 하루였군. ’
얌전히 살려고 했는데, 결국은 이렇게 돼버렸다.
‘ 그래도 오래 버텼지. ’
14년. 수십 번의 인생 동안, 첫 위기 치고는 꽤나 오래 버텼다. 그래도 단순한 ‘의심’ 뿐이니 다행이었다.
‘ 하필 알렌이라니.. ’
나의 움직임을 잡아낼 수 있는 사람은 천민의 구역인 이 곳에선, 알렌이 유일할지도 몰랐다. 그런데 그 유일한 사람인 알렌에게 걸려버렸다.
‘ 조금 더 신중했어야 했는데.. ’
매 번 그랬다. 수십 번의 인생을 살면서 매번 그렇게 신중에 신중을 더 기해도 결국은 누군가에게 나의 능력이 탄로가 났고, 이렇게 곤란한 상황들이 생겨났다.
“ 알려줘. ”
또 하나의 골칫덩이.
“ 알려주세요.. ”
파투가 나의 뒤를 졸졸 쫓아오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어느새 학교 밖 숲 초입까지 들어온 걸보니 꽤나 오랜 시간을 따라온 것 같았다.
“ 제발 나도 강해지게 해줘.. ”
“ 우연이었어. ”
“ 뭐? ”
“ 운이 좋아서 피했다고.. "
“ 너의 그 모든 움직임이 다 우연이었다고? ”
“ 응. ”
“ 그런 말도 안 되는.. ”
“ 네가 믿든 안 믿든, 사실이야. ”
“ 무슨 그런 억지가.. ”
더 이상 대답해 줄 가치가 없었다. 애초에 인연 자체를 만들 생각이 없었으니까..
“ 언제까지 쫓아 올 건데? ”
그런데 파투는 쉽게 포기할 생각이 없어보였다.
“ 네가 알려줄 때까지.. ”
“ 하.. ”
그냥 무시하고 벗어날까 고민하던 찰나.
“ 거보쇼!! 형님!! 굳이 학교 근처까지 갈 필요 없다니까요!! ”
목소리. 근원지에는 수십 명의 기척이 느껴졌다. 어느새 해질녘, 원래라면 이 시간에 그늘숲에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있을 리 만무 했다.
‘ 오늘 일진 참 거지같네.. ’
대충 봐도 어떤 놈들인지 알 것 같았다. 쥐고 있는 무기들 하며, 입고 있는 복장까지.. 턱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그들은 하나같이 험상궂은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 사.. 산적이야!! ”
너무나도 놀란 파투가 내 등 뒤로 숨으며 온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산적
아니 정확히 말하면.. 노예상에 가까웠다.
전 인생의 내가 만든 법률로 인하여 천민들을 노예로 삼는 건 엄연히 불법이었다. 그러나 불법이라 할지라도 안 할 귀족들이 아니었다. 처음에야 내 눈치를 보느냐고 노예상들이 씨가 말리듯 사라졌지만, 지금은 왕이었던 나는 죽은 후였고, 뒤이어 왕위에 오른 나의 배 다른 동생은 이러한 것들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 소문으로 얼핏 듣긴 했지만.. 진짜였다니.. ’
요즘 알파네스에서 도는 흉흉한 소문이 있었다. 노예상들이 수십 개의 천민 학교 하교 길에 매복하여 아이들을 납치한다는 소문.
귀족들의 노예로 쓰기엔 천민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 만 한 게 없었다. 대다수의 천민 아이들은 글을 읽을 줄 몰랐고,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 해 멍청한 아이들이 대다수였으니까.. 그랬기에 기본적인 소양을 갖춘 천민 학교 아이들은 노예상들에겐 귀한 상품으로 취급됐다.
“ 자자 아가들아 도망칠 생각은 하지 말고, 얌전히 가자! ”
숫자는 총 열 둘. 그 중 가장 선두에 있던 남자가 예리한 도끼를 들어 올리며 다가왔다.
‘ 하.. 피곤하네.. ’
잡혀가면 이것보다 더 피곤해질 터이니 선택을 해야 했다. 아직 어린 나이, 제대로 된 육체성장이 이루어지지 않은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기사들도 아닌 이런 풋내기 열둘 정도는 내 상대가 되질 않았다. 진짜 문제는 바로..
“ 어.. 어떡해!? 어떡하지..? 어떡해? 시드? ”
지켜보고 있는 파투였다.
“ 살려 줄 테니 못 본 걸로 하자. ”
“ 뭐? ”
파투를 뒤로 한 채, 한 걸음 앞으로 걸어 나왔다. 내가 자신에게로 당당하게 걸어 나왔으니, 어이가 없다는 듯, 실소를 흘린 남자가 입을 열었다.
“ 왜? 꼬마야? 싸우려고? ”
“ 도끼는 별론데.. ”
“ 뭐?? ”
“ 오랜만에 제대로 싸우는 건데 도끼는 별로라고.. ”
“ 꼬마야 무서워서 정신이 어떻게 된 거냐? ”
“ 아.. 시끄러워. ”
- 타닥!!
시드가 순간적으로 지면을 박찼다. 그 다음 벌어진 상황은 파투를 포함한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경악을 금치 못 했다.
- 빠각!!
두 번의 움직임. 첫 움직임으로 들고 있던 도끼를 빼앗았고, 채 반응하기 전에 빼앗은 도끼로 정수리를 갈랐다.
“ 이.. 이게 무슨..? ”
자신들의 동료가 채 14살도 안 돼 보이는 꼬마에게 단 번에 제압 당해버렸기에, 모두가 놀란 눈을 동그랗게 떴다.
‘ 양날도끼인가.. ’
쓰러진 산적의 정수리에서 다시금 도끼를 뽑아들었다.
짧은 손잡이에 비해 비교적 큰 날을 가진 양날도끼였다. 리치가 짧아 파괴력은 강하지만, 지금 나의 육체로썬 최악의 무기나 마찬가지였다. 아직 제대로 성장하지 않은 탓에, 키도, 팔 길이도 짧았으니까..
‘ 그냥 마법을 써야하나.. ’
환생을 한다 하더라도 나의 정신과 그 정신에 담겨있는 마나고리는 그대로 유지가 됐기에, 단 한 번의 마법으로도 남은 11명 모두를 흔적조차 없이 없애버릴 수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었다.
‘ 마나의 추적. ’
마법을 쓰면 마법에 사용했던 마나의 흔적이 남는다. 천민들이 사는 알파네스에서 마법이 사용 됐다는 걸 마탑의 마법사들이 알게 되는 순간, 지금의 이 놈들보다 더 피곤한 놈들이 찾아올 게 분명했다.
‘ 그냥 하지 뭐.. ’
귀찮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냥 육탄전으로 하는 수밖에..
“ 한꺼번에 와라.. 귀찮으니까.. ”
“ 하!! ”
산적들 중,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시드의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 혀를 차더니 소리쳤다.
“ 죽여!! ”
그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각자의 무기를 치켜든 산적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아직 근력이 채 발달되기 전이었으니, 상대의 힘을 역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 타닥!!
또 한 번, 지면을 박찼다.
“ 말도 안 돼.. ”
철제 무기가 서로 부딪치는 소리와 단말마의 비명소리가 섞여 숲 전체를 울렸다. 시드의 말도 안 되는 움직임을 보며 파투가 입을 쩍- 하고 벌렸다.
“ 이게 대체.. ”
막콥과 싸울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11명의 산적들이 저 어린 시드를 상대하면서 단 한 번도 공격을 적중시키지 못 하고 있었다. 그와 달리 산적들은 한 명 한 명, 차디찬 지면으로 쓰러졌다.
그렇게 승부가 결판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단 1분도 채 되질 않았다.
“ 후.. ”
생각보다 많이 녹슬었다. 제 아무리 내가 자주 쓰던 무기 종류가 아니었음에도,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려버렸다. 게다가 단 일합에 즉사시키지 못 한 놈들도 보였다.
- 서걱
아직 숨통이 붙어있는 두 놈의 목을 잘라낸 시드가 들고 있던 도끼를 던지고는 파투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파투는 앞에 펼쳐진 상황에 딱딱하게 굳어진 얼굴로 멍하니 그를 응시했다.
“ 못 본 걸로 하자. ”
지금 그걸 말이라고..
“ 그.. 그게!! ”
파투가 무언가 말을 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더 이상 그와 말씨름 할 힘이 없었다.
- 타닥
또 한 번 지면을 박차 빠른 속도로 내달렸다.
“ 야!!!!! ”
뒤로는 파투의 절규에 가까운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그의 속도로는 나를 따라 잡지 못 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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