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죽지않는 대마법사
파르치 가문의 아이들이 가고, 이젠 좀 조용히 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지 못 한 곳에서 귀찮은 일이 생겨버렸다.
“ 제발!! 제발 좀 알려주세요!! ”
파투였다. 잠시 저택 밖을 나오기가 무섭게 달라붙었다. 너무나 막무가내로 밀어 붙이고 있었기에, 떼어놓고 저택으로 들어가려하자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울부짖었다.
“ 저도 강해지고 싶습니다!! ”
대체 이 아이에겐 무슨 사연이 있기에 이렇게나 강함에 목이 마른 것일까? 지금의 난 비록 양자지만 귀족의 신분이었다. 천민이 귀족에 몸에 손을 대는 것 자체가 중죄. 강해지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그러한 것들까지 무지하게 만들었다는 얘기였다.
“ 감히 어디다 손을 대는 것이냐? ”
허나 그저 철없는 어린아이 일뿐. 이러한 동정심으로 인연을 만들 생각 따윈 없었다. 지금도 죽어버린 알렌 탓에 꼬일 때로 꼬여버린 상태였으니까..
“ 예..? ”
내가 천민이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어투로 말하자 깜짝 놀란 파투가 두어 걸음 뒤로 물러섰다.
“ 천민이 귀족의 몸에 손대는 것은 중죄. 홀 블랙에 갇혀 평생을 살고 싶은 것이냐? ”
※ 홀 블랙 - 제스페르 가문의 영지 카라나트 홀에 있는 이카루스 제국의 대형 감옥. 대다수의 범죄자들이 이 곳에 갇힌다.
그제야 내가 귀족이 되었다는 것을 확실하게 인지한 파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대충 봐도 육체도 정신적으로도 검술과는 어울리지 않는 아이였다. 제 아무리 내가 가르친다고 해도 가능성이 없었다.
“ 한 번은 봐줄 테니 돌아가. ”
이렇게까지 했으니 이젠 더 이상 찾아오지 않을 터, 확실히 마무리를 짓기 위해 또 한 번 말을 이었다.
“ 다음에도 이런 식으로 찾아왔다가는 목숨을 걸어야 할 것이다. ”
- 툭.. 툭...
- 쏴아아아!
말을 끝내고 돌아서기가 무섭게 하늘에서 비가 쏟아졌다.
‘ 늘 그렇지.. ’
신이란 놈들은 그렇다. 누군가가 아플 땐.. 꼭 비가 내렸다. 저 아이의 깊은 사연을 알지 못 하기에 그 아픔의 척도를 알 순 없었지만, 적어도 저 어린 나이에 저렇게나 강한 의지를 가지고 왔다가 그 의지가 꺾여버린다면..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을 느끼고 있을 터였다.
“ 제발!!!!!!!! ”
저택으로 들어서기 직전. 파투가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 소리쳤다. 끝없이 쏟아지는 비 소리를 뚫고 들릴 정도로 큰 소리였다. 간절한 의지가 담겨 있는 울부짖음이었지만, 나의 발목을 붙잡을 정도는 아니었다.
- 콰르르르!!
그 순간, 공간이 뒤틀렸다. 쏟아지는 빗물이 파투의 주위로 휘몰아쳤다.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 어떻게..? ’
마나의 흐름. 지면으로 내리쳐야 할 빗물이 허공을 돌고 있었다. 이렇게 자연의 섭리를 어긋나게 하는 것은 단 하나, 마나의 흐름 뿐.
‘ 마법을 쓴다고? ’
아니 마법은 아니다. 마나를 구체화 시켜 마법을 발현시킨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확실히 느껴지는 마나의 기운이었다. 이 정도면 마나의 기운이 흐름을 타 고리를 형성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 마법에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천민의 아이가? ’
마법은 타고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어떠한 인간이든 약간의 마나를 가지고 있을 수 있지만, 이렇게 눈에 보일 정도로 마나의 고리를 형성시킬 수는 없다.
‘ 천민의 아이가 아니다? ’
적어도 부모 혹은 조부모 중에 마법사가 있다는 얘기였다. 마나의 고리는 누군가에게 부여받지 않는 한, 저 어린 나이에 만들어 낼 수 없었으니까.. 자신은 인지하지 못 하고 있는 걸 보니 갓난 아이 일 때, 마나를 부여받은 것 같았다.
그러나 그 뿐이었다. 약간의 호기심이 생기긴 했지만, 인연을 만들 정도는 아니었다. 저 아이가 강해지고자 하는 의지와 마나의 고리를 부여받은 것은 분명 저 아이의 깊은 사연과 관련이 있을 거라는 것. 그 뿐이었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파투와 나와의 인연은 이렇게 끝나는 줄 알았다.
유렌이 나의 종자를 데리고 오기 전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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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아이가.. 제 종자라고요..? ”
“ 그래. 이제 너도 귀족이 됐고, 파라멘타에 입학을 해야 하니 널 옆에서 섬길 종자가 필요해. 이 아이에게 들어보니 레그멘타에 다닐 때 너를 잘 따랐었다며? 어차피 종자는 천민 중에서 골라야 하고, 이왕이면 아는 사람이 하는 게 좋지 않겠어? ”
유렌의 뒤에서 예를 갖추고 있던 파투가 고개를 들더니 회심의 미소를 지어보였다.
“ 하.. ”
양자인 내가 미르시스 가문의 장녀의 말을 거부할 순 없었다. 결국.. 생겨버렸다. 깊은 인연이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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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페르 가문의 영지. 카라나트 홀. 대형 감옥. 홀 블랙 >>
홀 블랙. 1250m 땅을 파고, 그 굴속에 544m 높이의 탑을 쌓았다. 사면이 깎아진 절벽으로 만들어져 부유 마법이 걸려 있는 통로를 통하지 않는다면 절대 나올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물리적으로 뿐만 아니라, 굴속에 있는 모든 대기의 마나를 절벽 위에 있는 5개의 마나수정이 흡수하고 있어 마법적으로도 불가능했다. 홀 블랙이 만들어진지 274년 동안 탈옥을 성공한 죄수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
그 말은 즉.
한 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다는 얘기였다.
홀 블랙은 범죄의 무게에 따라 층별로 등급을 나누는 데 총 8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1층부터 절도, 강간 범죄를 시작으로 일반 살인, 귀족 살인, 반란 모의 죄까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죄질이 심해지며 간수들의 숫자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즉 1층은 경미한 범죄자들이라면 8층에 갇힌 범죄자들은 역사에 기록이 될 만 한 큰 중죄를 저지른 자들이란 얘기다.
카라나트 홀에 있는 홀 블랙이었기에 당연히 관리자는 제스페르 가문의 사람들이었다. 이 홀 블랙에 대해서 제스페르 가문의 주요 인물들만 알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대외적으로 8층까지만 존재하고 있는 줄 알고 있는 홀 블랙에 한 개의 층이 더 숨겨져 있다는 거였다. 가장 꼭대기. 얼핏 보면 지붕처럼 보이는 그 곳에 하나의 층이 더 존재하고 있다.
홀 블랙에 9층이자
통칭
제로나인
총 9명의 중범죄자 중에 중범죄자들만 가두어 둔 곳으로 제스페르의 기사들 중 최고로 꼽히는 자들이 간수로 있으며, 마법의 탑 최고 수준의 결계 뿐 만 아니라 북방의 몬스터를 사로잡아 풀어 감옥에서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게 만들어 놨다.
갇혀있는 범죄자 중에 몇 명을 소개하자면, 17년 전, 자신의 특수 능력을 이용하여 북방의 몬스터 수백 마리를 소환하여 한 도시의 민간인 수천 명을 학살한 블랙머더러 젠나이츠를 시작으로 160년 전, 81대 왕인 페논 에르미안티 국왕을 시해한 ‘킹슬레이어’ 앗카스가 있었다. 앗카스는 대마법사의 능력으로 무려 200년은 넘게 살고 있어, 또 다른 이름으로 ‘죽지 않는 마법사’로 불렸다.
- 철컥
그런 제로나인, 그것도 앗카스가 갇혀있는 감옥의 문이 열렸다.
“ 160년 동안 단 한 번도 열리지 않았던 문이 열렸군. 내가 죽기 전까진 절대 열리지 않을 줄 알았는데 말이야.. ”
그도 그럴 것이 그에게 내려진 형량은 1274년 형. 홀 블랙, 그것도 제로나인의 특성상 형량이 끝날 때까지 감옥의 문은 절대 열리지 않는 것이 규율이다.
“ 킹슬레이어. ”
감옥의 문을 열고 들어온 중년의 남성이 차갑게 내려앉은 어투로 입을 열었다.
“ 그 별명은 매 번 들어도 기분이 좋아. ”
“ 또 다른 별명이 맞긴 한가보군. 이런 곳에서 160년이나 썩었으면서 아직까지 살아있는 것을 보면.. 죽지 않는 마법사. ”
“ 참 불행이지 않겠나? 이렇게나 지루한 일생이라니.. 차라리 빨리 죽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어. ”
“ 죽기엔 아깝지. 제국 최초로 9써클에 도달한 대마법사인데 말이야. ”
앗카스가 아무리 이 곳에서 오랜 세월을 썩었어도 왕하 친위대와 마탑의 마법사 절반을 죽이고, 당시 국왕의 사지를 찢은 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옥 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는 앗카스를 코앞에서 마주한 상태로 대화를 하고 있음에도, 그 어떠한 공포심도 느껴지지 않았다.
“ 보통 놈은 아니로군. 네 놈은 누구냐? ”
왕의 명령이어도 열 수 없는 게 제로나인의 감옥 문이었다. 이 문을 스스럼없이 열 수 있는 자라면, 보통 놈은 확실히 아니라는 증거였다.
“ 아니지. 누군지 물어 볼 필요도 없겠군. 왕의 명령으로도 열 수 없는 이 문을 열 수 있는 사람은 이 제국에 단 한 명 뿐 일 테니까.. ”
잠시 뜸을 드린 앗카스가 갑작스레 눈을 번뜩- 하고 떴다.
“ 그래. 홀 블랙의 관리자이자 카라나트 홀의 주인. 제스페르의 가주가 나에게 무슨 볼 일이 있어 왔지? ”
“ 역시 앗카스 답군. 단 번에 내가 누군지 알아내다니.. ”
“ 네가 방금 연 그 문은 왕도 열 수 없는 문이다. 그러나 단 한 사람만이 열 수 있지. 이 곳을 관리하는 자. ”
“ 뭐.. 그런가? 좋아. 킹슬레이어를.. 내가 왜 찾아왔다고 생각하나? ”
파라칸의 아버지이자 제국에서 2번째로 권력을 잡고 있는 가르칸 제스페르 대공작이 물었다.
“ 질문이 너무 쉽군. ”
“ 쉽다? ”
“ 이 문을 연 것 자체가 왕의 대한 반역이다. ”
앗카스의 말에 회심의 미소를 지어보인 가르칸이 아주 천천히.. 그리고 아주 무겁게 입을 열었다.
“ 맞아. 반역. 또 한 번.. 왕을 죽여줬으면 하는 군. ”
“ 또.. 왕을 죽여 달라? ”
“ 약속한다면 이 곳에서 꺼내주겠다. 너도 에르미안티 가문이라면 치를 떨지 않나? 그래서 81대 왕인 페논 에르미안티 국왕의 사지를 찢은 거고.. ”
“ 정확히 알고 있군. ”
“ 홀 블랙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마나를 흡수하는 5개의 마나수정을 딱 5분만 정지시켜주지. 대마법사 앗카스라면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겠어? ”
가르칸의 말에 앗카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 1분이면 충분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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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콰쾅!!!!!
홀 블랙의 외벽이 터졌다. 곧바로 반응한 간수들이 일제히 달려들었지만 마나 수정의 방해를 받지 않는 앗카스는 단순히 200살 먹은 노인네가 아닌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9써클의 대마법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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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홀 블랙!! 19년 만에 역사상 4번째 탈옥자가 생기다!! 』
『 가르칸 제스페르 대공작, “탈옥의 방법은 알지 못 한다.” 』
『 희생당한 간수만 백여 명 』
『 제스페르 가문의 실수. 가르칸 대공작의 해명은? 』
『 탈옥자, 앗카스 그는 누구? 』
『 160년 전, 킹슬레이어. 그가 세상 밖으로 나오다. 』
『 전설 속에만 존재한다는 9써클의 대마법사. 사실일까? 』
『 왕가 에르미안티. 초비상 사태 발령. 』
『 시론 에르미안티 국왕, “모든 병력을 총동원을 해서라도 잡아내겠다. 왕 시해자는 절대 용서 할 수 없는 중죄.” 』
『 왕하 친위대를 비롯한 공작가 기사들 총 소집 명령. 목표는 앗카스. 』
이카루스 제국 전체가 뒤집혔다. 왕 시해자의 탈옥. 200년을 산 죽지 않는 마법사. 절대 뚫리지 않을 것만 같은 홀 블랙이 뚫렸다. 홀 블랙 만큼은 절대 뚫려서는 안 될 감옥이었다. 온갖 중범죄자들이 수두룩했으니까.. 그 범죄자들이 힘을 모은다면 이카루스 제국을 괴멸시킬 수 있을 만큼 위험한 곳이었다.
“ 홀 블랙이 뚫렸다고..? ”
복도에 놓인 신문을 내려 본 시드가 기억을 더듬었다.
“ 앗카스라면.. ”
들어 본 적이 있는 이름이었다. 39번째 삶. 분명 그 때 만났던 자였다.
‘ 그놈이 그렇게 대단한 놈이었나? ’
신입 마법사로 마법의 탑을 다니던 당시 나와 같은 학년에 있던 아이였다. 조금 음침 해보이긴 했지만, 왕을 죽였다니..
‘ 200년 동안 죽지 않는 마법사라.. ’
200년이나 살아있다는 것은 그 ‘경지’에 도달하여 영혼을 깎아 먹고 있다는 얘기.
‘ 죽지 못 해 살고 있겠군.. ’
200년이라면 남아있는 영혼은 손톱만큼도 안 될 터.. 죽고 난 후에 그에겐.. ‘생지옥’이 기다릴 것이다. 하지만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다.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오늘은 파라멘타 첫 등교를 하는 날이었다.
‘ 오랜만이로군.. 파라멘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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