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되주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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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1.09.29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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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29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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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5.11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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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되주센! - 009

DUMMY

‘드르륵.’



교실에서 수업을 하던 중 분필이 떨어져 마침 앞자리였던 승희는 선생님의 명령으로 분필을 가져오게 되었다. 승희는 교무실에 가 분필을 가지고서 나왔다. 공손히 문을 닫고 막 글으려고 하는데.



“억!”



“엇!”



‘퍽!’



‘탁! 투두둑.’



승희는 달려오던 누군가와 부딪혔다. 달려오던 사람도 멈추지 못했는지 둘은 엄청 세게 부딪혔다. 덕분에 승희는 분필을 떨궜고, 떨어진 분필은 강한 충격으로 몇 개는 부서지고 몇 개는 튀어나와 저 멀리로 흩어졌다.



“아, 죄, 죄송해요!”



“아니, 앞을 안 본 제가 더...”



둘은 황급히 서로 사과했다. 그리고서, 둘은 서로 비슷하게 긴 머리를 넘기고 서로를 쳐다봤다.

유나는 놀랐다. 선생님이 쫓아 오는 줄 알고 냅다 뛰는 게 문제였다. 갑자기 나온 사람과 부딪혀 넘어졌다. 유나가 놀란 건 그게 아니었다. 부딪혀 넘어진 사람이 바로 아까 아침에 처음 본 ‘어린엄마’라는 것이다. 물론 이 두 모녀는 난생처음 대면하는 것이다. 승희가 무슨 천리안도 아니고, 유나를 보자마자 ‘앗 내 딸이다’ 라고 할 리가 없다. 그러나 유나는 괜히 심장이 덜컥 했다. 자신의 얼굴을 유심히 보는 승희를 보고 행여 들킨 게 아닌가 하고 조마조마했다.



‘누구지...?’



승희는 이 애가 누구인가 생각해봤다. 입한중앙고의 왠만한 여자애들은 입한여중 출신이고, 발이 넓은 승희가 모르는 애는 거의 없다시피했다. 고등학교 들어와서도, 모르는 애들하고 웬만큼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4월이 훌쩍 넘었는데 이렇게 모르는 애가 있으니 골똘이 생각해보는 승희였다. 얘가 몇 반 애인지.



‘뚝.’



“아, 코피...”



“저, 죄송해요오~!”



“아, 잠깐!”



유나는 겁에 질려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르게 뛰어갔다. 부딪힌 충격으로 코피가 나는 유나였지만, 그런 건 어찌 되든 상관없었다. 얼른 뛰기만 했다. 승희가 잡으려 했으나 소용 없었다.





“하악... 하악...”




유나는 학교 아무 화장실에 들어가서 숨을 헐떡였다. 코피가 나는 건 알고 있었다. 흰 세면대에 유나의 피가 흘렀다. 유나는 얼른 거울을 봤다. 뛰어오면서 코피가 옆으로 흘렀고, 또한 뛰어오느라 피가 말라서 참 몰골이 흉했다. 얼른 세수를 하는 유나.



“휴... 큰일 나는 줄 알았어.”




유나는 심장이 두근거려서 더는 학교에 있을 수 없었다. 그냥 불안한 마음이 들어서 바로 집으로 돌아갔다.


-




힘들어 죽겠다. 이 지겨운 수업을 모두 듣고도 야자를 또 하는 게. 이런 걸 잘도 버티다니, 고2, 고3 선배들이 경탄스러울 정도다. 그나저나, 아까 전에 있던 유나녀석... 집에 가기만 해봐라, 내가 얼마나 당황했는데... 야자시간은 별거 없다. 공부? 1학년이? 아, 물론 우리가 대학교 1학년처럼 노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1학년이다. 반의 대다수는 공부하지 않고 논다. 그게 야자가 아니던가. 그럼 왜 피곤하냐고? 선생님 눈치보면서 노느라 피곤한거지. 남자애들은 그냥 자는 애들이 되게 많고, 피엠피를 보거나 소설, 만화책을 보는 녀석들도 상당했다. 진정 공부하는 녀석들은 반에서 3명 정도도 되지 않았다. 여자애들은 자기들끼리 작게 수다떨거나 뭐 그런식으로 논다. 내 앞에 반장인 혜경이는 거의 유일하게 여자애들중에 열심히 공부하는 애다. 공부하는 것만 보면 전교 1등할 기세야... 나는 물론 공부하지 않는 부류이다. 애들이랑 잡담하거나, 만화책 보거나, 선생님한테 걸려서 그 만화책 뺏기고 엎드리기도 하고, 이럭저럭 시간을 보내니... 드디어 10시! 아싸, 야자 끝났다! 밖으로 나가니 역시나, 승희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에는 되게 어색했지만, 왠지 지금은 말을 걸 수 있을 것 같았다. 다행히 아까 아침보다 훨씬 완화된 분위기여서, 간단한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있잖아, 효성아.”



“응?”



승희가 뭔가 얘기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오늘, 오전에 어떤 애랑 부딪혔었는데...”



“......부딪혀?”



“몰라, 어디서 뛰어왔나봐. 여자애인데. 교무실에서 나오다가...”



음... 오전시간에. 뛰어와서 부딪혔다라. 게다가 여자애. 교무실... 음...



“근데, 내가 모르던 애더라고? 나, 우리 학교 애들은 다 안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쳇. 헤헤.”



“......”



나는 그냥 들을 수 없었다. 정황 상 그건 유나 같았다. 우리 반에서 좀만 가면 나오는 게 교무실이다. 물론 승희한테 정확하게 몇 시에 그랬냐고 물을 순 없지만, 아주 정황이 그렇게 돌아가는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러니까, 유나는 멋대로 학교에 왔다가 승희랑 마주친거구나. 엄만데. 함부로 마주치면 안되는 거 알텐데. 내 이놈의 자식을...!



“내 이놈의 자식을...!”



“응? 너 자식 있어?”



“아, 아니, 무심결에...”



“하하하, 웃기다 너.”



정말 무심결에 생각이 말로 나왔다. 승희는 재미있는 듯 깔깔 웃었다. 약간 쪽팔려서 얼굴이 달아올랐다. 에이, 뭐 승희가 웃었으니 됐지. 근데... 이 유나 이 자식 진짜!

대충 넘기자. 집에 도착이다.






“진유나!!”



“!”



나는 집에 들어가자마자 크게 외쳤다. 유나는 엄마와 함께 모로 누워 TV를 보고 있었다. 나의 외침에, 둘은 화들짝 놀랐다. 나는 잔뜩 따지듯이 말했다.



“너 왜 학교왔어! 발뺌하지 마, 승희한테 들었으니까!”



“어, 엄마가 알아요, 저인거?”



유나는 말까지 더듬으며 물었다. 물론 이 말은 위협 겸 한번 떠 본것이지만, 역시 유나는 제 발을 저린다. 저 말 자체가 ‘내가 학교에서 엄마를 만났었는데’를 내포한 말인데.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오늘 낯선 애하고 부딪혔다고 하더라고. 코피도 났다고 하더라고.”



“읏...”



나는 은근하게 말하며 유나의 옷깃에 눈길을 보냈다. 유나의 옷에는 피가 한 방울 묻어 있었다. 아마, 코피가 흘러 묻은 것일게다. 그러나, 우리집에 여자옷이라고는 엄마 옷밖에 없고, 그러니 아마 못 갈아입은 것이다.



“어머... 아까 유나 코피 흘리면서 오던 게 그거니?”



“할머니!”



“어머... 미안.”



“심증이 확증이 되고. 어디 네 죄를 네가 알려보렷다!”



어머니의 훌륭한 증언까지. 어디 한번 제대로 해 보자, 유나야. 유나는 안절부절 못하면서 몸을 베베 꼬다가 입을 열었다.



“...그냥 아빠 학교는 어떨까 해서, 과거 학교는 어떻게 생겼나 해서 간 거에요...”



유나는 그렇게 말하고 뾰루퉁해져서 입이 한자는 나온다. 하, 적반하장일세. 누가 화내고 누가 삐져야 할 상황인데! 나는 잠자코 말했다.



“그래, 견학 차 학교 온 것 까진 괜찮다고 치자. 창문 앞에서 난동 부린 건 뭐야, 대체?”



“그, 그건... 아빠가 있길레...”



유나는 얼굴이 새빨개지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나는 더욱 다그쳤다.



“그거 다 생략하고, 승희랑은 왜 마주친거야! 내가 얼마나 난감했는데...!”



“......”

유나는 이제 고개를 숙이고 말이 없다. 이자식, 말 안하면 장땡이냐?



“왜 그랬냐니까?!”



“...난 아빠 학교 가면 안되요?”



“...!”



유나는 고개를 쳐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뜻밖에도, 유나의 눈엔 눈물이 고여 있었다. 파르르 떨리는 입술은 금방이라도 울 듯 했다. 아, 이봐. 내가 그렇게 울 정도로 다그쳤나?



“유나야...”



“......”



유나는 끝내 눈물을 한방울 또르르 흘리더니 아무말도 안 하고 내 방으로 들어갔다. 문을 쾅 닫고. 나는 한동안 잠자코 서 있었다. 뭐... 잘못한건가. 내가.



“효성이... 아빠 자격도 없구나. 딸이나 울리고.”



“아이, 그게... 엄마. 내가 잘못한 거에요?”



“지금 울고 있는 게 누구야?”



“아니... 운다고 다 되는 게 아니잖아요. 애도 아니고.”



“미래에서 낯선 곳으로 온 딸을, 그렇게 매몰차게 몰아세우면 어떡하니. 안 그래도 불안할텐데.”



“...그건 그렇네요.”



나는 열심히 발뺌하려 변명했지만, 엄마는 진짜 엄마다. 엄마는 진짜 어른이다. 말빨에서나 명분에서나 이길 수는 없다. 나도 솔직히 잘못한 것 같긴 하다. 그냥 웃어 넘기면 될 일을, 괜히 유나 혼이나 내고... 나는 아빠 자격도 없는 놈인가보다.



“얼른 가서 미안하다고 사과해. 유나 더 울기 전에.”



“네...”



엄마의 말에, 그게 옳은 것 같아 얼른 내 방으로 들어갔다. 미안한 마음 한 가득 안고서.



“......”



방문을 열었다. 어둡다. 유나는 방에 불도 안 켜고 울고 있나보다. 침대에 누워있는 유나의 모습이 얼핏 보였다. 나는 잠깐동안 말 없이 그냥 문 앞에 서 있다가 말했다.



“유나야.”



“......”



“유나야, 미안해. 내가 잘못...!!”



나는 유나에게 잘못했다고 말하면서 불을 켰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이유는... 판이하게 바뀐 내 방의 풍경. 내 방은 온통 여자 방처럼 바뀌어 버렸다. (아. 근데 나는 여자방을 본 적이 없는데. 그냥 애니에서나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묘사해야지.) 난잡하게 자유방임주의로 널부러져 있던 책상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벽에는 난데없는 남자연애인 브로마이드가 걸려있고, 심지어 아무것도 없던 침대에는 큰 곰인형마저 있었다. 책장에도 인형들이 몇 개 있었다.



“엄마!! 엄마!! 이거 뭐에요!”



“...푸헤헷.”



“너... 아까 운 것도 연기지?”



“헤헤헤헤...”



유나는 침대에 얼굴을 박고 있었지만, 내가 황망하게 엄마를 부르자 웃음을 참지 못한다. 침대에 얼굴을 박고 있지만 웃음소리는 똑바로 들린다. 엄마는 나의 부름에 금방 와서 의아한 표정을 지으신다.



“왜?”



“왜? 엄마, 이게 뭐에요. 이거 내 방 맞아요? 나는 지금 미래의 유나 방을 보는 것인감?”



“아... 네 방인 걸 잊고 유나 방으로 꾸며버렸네. 미안하다. 엄마가 이래.”



“아, 엄마! 제발 그렇게 무책임하게 말하지 말라고요! 엄마 나이를 생각해요!”



“엄마가 뭐 어때서!”



“헤헤헤헤헷.”



나와 엄마는 말싸움을 하고, 유나는 마구 웃어댄다. 결국 내 방은 ‘유나방’이 되어 버렸다. 밤은 깊어가고, 방에서 자려 했다. 엄마가 한 마디 하신다.



“자, 효성아. 유나는 침대에서 자고, 너는 이불 깔고 밑에서 자도록 해.”



엄마의 어이없는 말에, 나는 한 마디 했다.



“아이, 엄마. 내 방인데 내가 바닥에서 자라고요?”



“시끄러! 넌 내가 널 바닥에 재우고 내가 침대에서 자디? 자식새끼 좀 생각해라, 아들아.”



“그거하고 이건 다르...”



“어찌 됐든 네 딸이잖아?”



“맞아요, 헤헷.”



“...어휴.”



엄마와 유나의 협공으로 나는 어쩔 수 없이 바닥에서 잘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엄마하고 유나, 왜 이렇게 친해진 거야. 도저히 당해낼 수가 없구만. 아. 내 방은 이제 내 방이 아니구나. 어찌됐든 엄마는 나갔고, 엄마가 나가고서 한참동안이나 나와 유나는 잠을 자지 못하고 뒤척였다.



“유나야.”



“?”



“미안해.”



“......”



“아까 전에 다그쳐서, 미안해.”



유나는 아무 말도 안 하고 몸을 돌리고 누워있다. 젠장. 된통 삐친건가. 얼른 풀어줘야 하는데.



“미안해. 어이, 자냐?”



“......”



내가 일어나 앉아서 등을 돌리고 있는 유나를 보며 말했다. 유나는 미동도 않는다. 자나보다 하고 한숨쉬고 누우려고 하는데.



‘스윽.’



“...!”



“뭐, 뭐하는거여?”



유나는 갑자기 일어나서 양 손을 내 어깨 위에 올리고 날 지그시 바라봤다. 나는 당황해서 말까지 더듬었다. 이런 자세(?)는 그런(?)데서나 나오는 자세잖아! 게다가 난... 난... 난 네 애비다! 그만 둬 유나야!



“그럼, 나한테 뽀뽀해 주고 자요.”



“...뭐?”



얘 뭐야...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겨! 네가 아무리 딸이라고 해도 지금은 나랑 동갑이잖아! 게다가 난... 그래, 첫뽀뽀다.



“그건 아니라고 보는데...”



“아빤 항상 뽀뽀해주고 잤어요! 안 하면 계속 삐져있을 거에요.”



크... 어쩔 수 없구만... 어차피 얘가 원한거니(?). 나는 눈을 감고 천천히 유나에게 다가갔다. 아. 왜 이렇게 긴장하는거야, 진효성. 유나는 네 딸이야. 아무 사심도 없이...



“......”



“풋.”



“?”



“하하하하...”



내가 유나에게 거의 닿았을 때, 살짝 눈을 떠 봤다. 웃음기 가득한 유나의 눈과 눈이 마주쳤다. 유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마구 웃었다. 나는 뭔 영문인가 몰라 멀뚱멀뚱 있었다. 침대에서 둥굴면서 마구 웃던 유나가 말했다.



“헤헤, 아빠가 창피해하는 거 진짜 웃겨요, 하하하...”



“이... 너 죽을래!”



그래도 유나가 기분을 푼 것 같아 다행이다.


작가의말

일이 있어서... 몇 일 안 썼더니 카테고리가 생겼네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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