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신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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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
작품등록일 :
2012.08.15 07:59
최근연재일 :
2012.08.15 07:59
연재수 :
7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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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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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6.03 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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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신전기 - 서장

DUMMY

서장


“뽀드득! 뽀드득!”

순백의 산등성이위로 발자국이 길게 이어졌다. 아무도 밟지 않은 순백의 대지에 거침없이 발자국을 남기고 가든 왕팔은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둥근 보름달이 환하게 빛났다.

“보름달 한번 더럽게 환하군.”

왕팔은 바닥에 가래침을 한번 뱉고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깊은 산속이지만 온통 하얗게 뒤덮인 눈과 보름달의 영향으로 주위는 등불을 밝힌 것보다 더 환했다.

왕팔은 당나라 태종 이세민이 고구려를 침략할 때 동원된 사병이었다. 거침없이 고구려로 진격해가든 당나라 군대는 안시성에서 고구려의 명장 양만춘에게 1년이 넘게 발이 묶여 있다가 많은 군사를 잃고 퇴각을 하게 된다.

기골이 장대하고 선천적으로 힘이 장사였던 왕팔은 지옥 같았던 전장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아 진급까지 했지만 따분한 생활에 싫증을 느껴 고향에 돌아와서 산적이 되었다.

거력패왕이라는 그럴 듯한 별호까지 얻으며 한동안 순탄하게 산적두목 생활을 잘 이어가든 왕팔은 관군의 대대적인 산적토벌로 부하들을 모두 잃고 쫓기는 신세가 되어 화전민이 모여 사는 곳으로 숨어들게 되었다.

화전민 촌에서 왕팔은 한동안 조용히 지냈다. 하지만 산적두목까지 했던 그의 성격에 남의 지시를 따르는 것은 죽기보다 싫었다. 그래서 지금은 촌장을 몰아내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는 중이었다.

원래 왕팔이 알고 있는 상식에 의하면 화전민은 인원이 많아봐야 10명에서 20명사이었다. 그런데 이곳에 모인 화전민은 그런 왕팔의 상식을 완전히 뒤집기라도 하듯 인원이 3백 명이 넘었다. 왕팔은 촌장만 몰아내고 나면 그들을 이용하여 다시 한 번 산적두목으로 화려하게 등장할 수 있다는 꿈에 부풀었다.

장백산과 가까운 이곳에 이토록 많은 화전민이 생겨난 이유는 당나라의 고구려 침략에 그 원인이 있었다. 당나라 군대는 고구려 침략에서 아무리 공격해도 결코 무너지지 않는 벽에 가로막히게 된다.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지휘관들이야 공격명령만 내리면 되지만 밑에서 그 명령을 수행해야 하는 병사들은 안시성 전투가 바로 지옥이었다. 그 전투에서 수많은 죽음과 부상자, 그리고 탈영병들이 발생했다. 이곳에 모인 화전민들은 바로 그 탈영병들이었다.

왕팔이 두시진 정도 부지런히 눈길을 헤치며 산위로 오르자 가파른 산길이 갑자기 평지로 변하며 넓은 분지에 그림 같은 초가집이 한 채 나타났다. 신선이 살고 있을 것 같은 그런 초가집이었다.

주위 산들은 온통 흰 눈으로 뒤덮여 있었지만 이곳은 이상하게 눈이 전혀 내리지 않은 듯 초가집 마당은 붉은 흙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고 마당 한쪽에 이름을 알 수 없는 꽃들이 활짝 피어 달콤한 향기를 뿜어대고 있었다. 무심코 숨을 크게 들이 마신 왕팔은 폐부 속을 맑게 채워주는 꽃들의 향기에 기분이 좋아졌다.

“쏴아아!”

초가집 우측에 있는 용처럼 생긴 바위에서 폭포수가 쏟아지며 허공으로 물안개를 피워 올리자 왕팔은 며칠 전에 이곳에서 봤던 선녀가 떠오르며 입가에 침이 흘러내렸다.

왕팔에게 그것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행운이었다. 화전민 마을에서 왕팔의 역할은 사냥이었는데 그날은 평소 쉽게 잡히던 산토끼 한 마리 눈에 띄지 않았다. 짜증이 머리끝까지 치민 왕팔은 사냥을 포기하려고 할 때 풀숲에 사슴 한 마리가 나타났다.

‘이게 웬 떡이야!’

왕팔은 급히 화살을 활시위에 걸고 사슴을 겨냥했다. 그런데 왕팔이 너무 힘을 준 탓인지 활이 부러지고 말았다.

“젠장! 쫓아가서 잡아야겠군.”

그때부터 왕팔과 사슴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왕팔이 비록 경신법을 익히기는 했지만 사슴을 쉽게 따라잡지는 못했다. 두시진이나 계속된 추격전은 왕팔의 패배로 결론이 났다.

사슴은 왕팔이 한 번도 와보지 못한 곳에서 종적을 감추었다. 사슴을 놓치고 허탈한 심정으로 발길을 돌리던 왕팔의 눈에 홀연히 천상의 선녀가 나타났다.

별빛처럼 맑고 큰 눈, 백옥같이 맑고 고운 피부, 짐승의 가죽으로 만들어 입은 옷을 보면 야성미까지 물씬 풍겼다. 왕팔의 35년 인생 중에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누구보다 건강하다고 자부하는 왕팔의 피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 이봐! 널 내 부인으로 맞이하겠다.”

원래 무식한 왕팔은 상대방 의견을 물어볼 생각조차 없었다. 남편이 있으면 남편을 죽이면 되고 처녀면 보쌈을 하거나 납치를 해서 데리고 살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왕팔이었기에 화전민이 된 지금도 산을 몇 개나 넘어야 나타나는 마을에서 보쌈을 해와 데리고 사는 부인이 있었다. 이곳 화전민 마을의 대부분 남자들은 다 그렇게 부인을 맞이했다.

왕팔은 천상의 선녀를 보는 순간 집에 있는 마귀할멈 같은 부인은 당장 쫓아내 버려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런데 그런 왕팔에게 전혀 예상치 못한 사태가 발생했다. 아름다운 선녀가 냉정한 얼굴로 자신에게 화살을 겨눈 것이다.

“여기서 꺼져! 거기서 한발자국만 더 앞으로 오면 머리통이 뚫릴 줄 알아!”

옥구슬을 굴리는 것 같은 맑은 목소리였지만 그 내용은 살벌했다. 왕팔은 선녀의 말대로 우선 물러나기로 마음먹었다. 활을 들고 있는 선녀는 결코 만만하지가 않았다. 고구려와의 전쟁과 산적생활을 거치며 숱한 위기상황을 맞이했던 그의 본능이 경고음을 보냈다.

‘네 년이 잘 때까지 활을 끌어안고 자지는 않겠지.’

왕팔은 그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떼어 뒤돌아섰다. 선녀를 포기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바로 오늘 같은 날을 기다린 것이다. 사방천지가 온통 눈으로 뒤덮인 오늘 같은 날, 선녀는 안심하고 깊은 잠에 빠져 있을 것이다.

왕팔은 최대한 발자국 소리가 나지 않게 살금살금 초가집으로 다가가 마루에 올라섰다. 왕팔의 육중한 몸무게에 마루에서 삐걱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 소리는 때마침 불어오는 거친 바람소리에 묻혀버렸다. 잠시 방문 앞에서 호흡을 가다듬은 왕팔은 조심스럽게 방문을 살짝 열었다.

방안에 들어선 왕팔의 입가에 만족한 미소가 번졌다. 왕팔의 예상대로 선녀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문풍지 사이로 스며든 달빛에 방안의 모습이 눈에 다 들어 왔다. 한발 두발 선녀에게로 다가서든 왕팔은 흠칫 놀랐다. 선녀의 우측에 잠들어 있는 일곱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 아이의 얼굴을 봤기 때문이다.

‘흑! 대체 이놈이 사람이야. 괴물이야?’

아이의 얼굴을 본 순간 왕팔은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아이의 얼굴을 자세히 보니 선녀를 닮아서 그런지 너무도 귀엽고 잘생긴 얼굴이었다. 그런데 얼굴 우측은 어둠속에서도 자체적으로 발광을 하는 듯 성스러운 빛이 흘러나왔고 얼굴 좌측은 어둠마저도 빨려들 것 같이 시커멓게 보였다.

아이의 눈, 코, 입은 조각상처럼 아름다웠지만 얼굴의 좌측과 우측의 피부색이 완전히 다르니 괴물처럼 보였던 것이다.

‘선녀는 욕구를 푼 다음에 데려가서 부인으로 삼고 저놈은 죽여 버려야겠군.’

손에 활이 없는 선녀는 왕팔에게 한마디로 밥이었다. 타고난 힘에다가 무공까지 조금 익힌 왕팔은 단숨에 선녀를 능욕하고 괴물같이 생긴 아이를 때려죽일 생각을 했다.

‘흐흐흐! 자는 모습도 미치고 환장할 정도로 사랑스럽군.’

왕팔이 토끼털로 만든 상의를 벗자 울퉁불퉁한 근육이 모습을 드러냈다.

“내 밑에 깔려 자지라지게 만들어 주마.”

왕팔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선녀가 덮고 있는 이불을 벗기며 선녀의 몸 위에 올라탔다. 이런 깊은 산속에 살고 있는 여인이 속옷을 입고 있을 리가 없었다. 그냥 동물가죽으로 된 털옷만 벗기고 나면 바로 눈부신 나신이 드러날 것이다.

“이런 산속에서 얼마나 굶주렸겠느냐? 내가 너의 갈증을 시원하게 풀어주마.”

왕팔은 마치 선녀가 애타게 자신을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단숨에 선녀의 옷을 벗겨 버리기 위해 거친 손으로 상의 매듭을 잡았다.

마음이 급한 왕팔은 단숨에 선녀의 옷을 찢어버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시체처럼 가만히 누워 있던 선녀가 갑자기 눈을 번쩍 뜨며 입가에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순간, 왕팔은 옆구리에 찢어지는 아픔을 느끼며 작살에 꿰뚫린 듯 몸을 웅크렸다.

“이런 찢어죽일 년!”

왕팔은 고통에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가운데 고통이 느껴지는 진원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왕팔의 옆구리에는 칼날부분이 완전히 사라진 비수의 손잡이가 앞으로 왕팔이 어떻게 될 것인지 그 운명을 예고했다.

왕팔은 죽을 때 죽더라도 자신을 이렇게 만든 선녀의 얼굴에 분노의 주먹을 한방 먹일 생각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어차피 선녀는 자신의 육중한 몸에 깔려 꼼짝도 못하고 있었다. 왕팔이 고통을 참으며 주먹을 번쩍 들어 올린 순간 왕팔의 목에 뭔가가 푹 박혔다.

왕팔은 몸에 힘이 다 빠져 나감을 느끼며 가까스로 고개를 돌렸다. 좌측으로 고개가 돌아간 왕팔의 눈에 무표정한 소년의 얼굴이 들어왔다. 누가 자신의 목에 비수를 박아 넣었는지 그 범인을 확인한 왕팔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한 채 옆으로 천천히 넘어갔다.

옆으로 쓰러진 왕팔이 숨을 거두자 선녀와 소년은 아무렇지 않은 듯 왕팔을 마당으로 질질 끌어냈다. 마당 한쪽에 왕팔을 쓰레기 버리듯 버린 선녀는 방에 들어가 걸레로 왕팔이 흘린 피를 닦아냈고 소년은 왕팔의 목과 옆구리에 박혀 있는 비수를 뽑아냈다.

비수를 뽑자 상처부위로 피가 콸콸 흘러내렸지만 소년의 표정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소년은 폭포수 물에 비수를 씻어 들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검천아! 놀라지 않았느냐?”

“이런 일이 한두 번이라야 놀라죠. 최근에 열 번도 넘게 발생된 일이라 이제 만성이 되어 더 이상 놀랍지도 않습니다.”

검천의 말에 왕팔에게 선녀의 이미지를 남긴 양수련은 입가에 상큼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역시 넌 내 자랑스러운 아들이다.”

수련은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마음의 동요가 심할 검천을 꼭 안아 주었다. 수련은 검천의 얼굴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얼굴 좌측과 우측의 피부 색깔이 완전히 다른 때문에 마을로 내려간다는 것은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세상과 완전히 격리된 상태에서 검천이 이곳에서 하는 일은 사냥과 책을 읽는 반복된 생활이었다. 수련도 아들과 함께 이곳에 지내는 것에 만족했지만 한 가지 이상한 점은 사시사철 이곳의 기온은 따뜻한 봄날이었다. 그리고 지금 15세인 검천의 성장이 너무나 늦어 8세 정도 아이의 몸이라는 점이다.

그것을 보면 이곳 땅의 지기와 어떤 연관성이 있다고 느껴졌지만 수련으로서는 자세히 몰랐다. 다행인 점은 이곳의 물과 과일을 먹고 각종 나물과 약초뿌리를 캐먹고 나니 덩치가 산만한 왕팔을 손쉽게 끌어낼 정도로 힘이 세졌다는 점이다.

수련은 문득 자신이 이곳까지 오게 된 사연이 떠올랐다. 수련의 별처럼 반짝이는 눈이 몽롱하게 변하며 아득한 과거를 더듬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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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52 천지
    작성일
    12.06.03 02:24
    No. 1

    오늘부터 연재를 시작합니다.
    연재를 시작하면 항상 연참대전에 참여한다는 생각으로 연재에 임합니다. 그러니 열심히 올리겠습니다.
    상상이 많이 동원되었으니 다소 터무니없는 내용을 다룰 수도 있지만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두번 째로 올린 '영혼조정술법'보다는 더 나은 작품이 되도록 노력했습니다.
    많은 성원부탁드리며......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8 술마루
    작성일
    12.09.03 10:45
    No. 2

    주인공이 왕팔인줄 알앗는데 아니군요. 그런데 왕팔에 대한설명이 너무 많아서 주인공 같아요. 시대적 배경 설명이라고 해도 심한듯 ...
    왕팔에 집중하다 급실망..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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