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등지고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방구석4평
그림/삽화
lovendpeace
작품등록일 :
2019.12.26 00:03
최근연재일 :
2022.08.09 01:45
연재수 :
277 회
조회수 :
28,136
추천수 :
1,600
글자수 :
1,201,430

작성
20.11.25 04:49
조회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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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0쪽

Episode151_묻어둔 것을 파낸다는 것(8)

DUMMY

말 그대로,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추락에 맞춰서 우형이 한 짓은 이러했다. 지붕에 몸이 닿기 전에 자신이 착지할 곳으로 광탄을 쏘더니, 그 폭발로 인해 생겨난 풍압을 온 몸으로 받아서 낙하속도를 감소시켰다.


그 뒤 뚫린 구멍 아래로 떨어진 그는 팔꿈치를 앞으로 내민 채 땅에 부딪혔고, 부드럽게 이어지는 낙법을 통해 피해를 최소화했다. 몸을 굴려 충격을 분산시키며 창고를 와당탕탕 가로지른다.


그렇게 요란하고 위험한 착지를 마치고서도, 놀랍게도 우형은 다시 일어났다. 제 옷가지에 걸린 나무 파편을 밀어내고 아주 쌩쌩하게 몸을 움직인다.


하온은 그저 입을 쩌억 벌린 채 할 말도 잊고 이 진귀한 광경을 바라볼 뿐이다.


우형은 다 타고 찢어진 그 겉옷을 성내듯이 찢어발겼다. 조금의 출혈따윈 신경도 쓰지 않는다. 누렇게 찌들은 천이 걷히자 그 밑에서 빛나는 옷가지 하나가 더 모습을 드러냈는데, 보아하니 그가 파편더미를 맞고도 무사할 수 있었던 이유 역시 거기에 있었다.


그 아래에 숨겨져있던 것은 여지껏 몸 전체를 감싸고 있던 사슬갑옷이었다. 이제 구멍나서 거추장스런 그것을 풀어 땅바닥에 떨어트렸다. 쿵, 하고 말이다.


목을 풀며 뚜둑거리곤 하온을 노려보는 우형. 이제 몸이 가뿐해졌다 이거다. 잘나셨어. 하온은 더 볼 것도 없이 즉시 땅을 박차고 문짝 너머로 도망쳤다.


되로 광탄이 지나가며 나는 폭발음에 소름이 돋았다. 겁이 나 더 속도를 올렸다. 관절이 삐걱대고 아파왔으나 지금에 와서 그딴 것은 하나도 신경쓰이지 않았다.


큰일이 나버렸다. 다리의 피로를 풀어서 이젠 유리해졌다고 생각했더니, 뭐? 사슬갑옷? 사람 놀리는 것도 유분수지!


이렇게 되면 남은 길은 정말 딱 하나밖에 없다. 이 마지막 작전에 온 힘을 걸 수밖에 없다. 하온은 더 이상의 저항은 포기하고, 아까와 같이 계속 힘을 축적시키며 도망만 치기로 했다.


이번에도 손 끝에 집중하며 모으는 것은 치유의 기적. 집중력을 모으고 모아 한번에 터트릴 순간을 노리고 있다. 하지만 언제쯤일까?


골목길 사이사이, 틈과 틈을 이리저리 빠져나가며, 하온은 자신이 향해야 할 곳을 향한다. 아직 아니다. 조금 더 가야해, 왼쪽으로. 이제 오른쪽으로.


그리로 간다면 분명 그의 힘을 폭발시켜야 할 때가 온다. 이는 예측이나 희망이 아닌 확신이었고, 뇌리에 박힌 그 직관에 따라 하온은 딴짓 않고 계속 힘을 온존해두고만 있었다.


이제 다 왔어. 마지막 관문이야.


독백에서 말한 관문은 말 그대로의 관문이었다. 웬 커다란 저택의 외벽에 달린 대문. 그 앞에 멈춰선 하온이 갑자기 숨을 고른다. 당연히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우형은 광탄을 쏴날렸다.


하지만 하온은 바로 이 때를 노렸다. 유인한 바에 따라 하온은 상체를 돌려 최선을 다해 광탄을 피했다. 비록 실패해서 등짝에 빗맞아 폭발에 직격했고, 아껴두었던 보호의 기적을 써버리고 말았지만, 그래도 목표는 달성했다.


폭발의 여파가 문짝까지 미치며, 굳게 잠겨있던 문이 부서져버렸다. 하온은 신나라 하고 그 틈 안으로 뛰쳐들어간다.


칫, 소리를 내며 우형은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놈이 보호의 기적을 낭비하게 만든 것 만으로 가치는 충분했다.


이제와서 사방이 막힌 최악의 퇴로를 향해 제 발로 걸어들어가다니, 보아하니 또 뭔가 사악한 계책을 짜낸게 틀림없다. 본의 아니게 남 좋은 일만 한게 배가 아프지만 어쩔 수 없지, 적이 행동에 들어가기 전에 재빨리 해치우자.


그러나 그 직후 우형이 함께 저택의 대문을 통과했을 때, 하온은 그의 예상과는 달리 건물에는 얼씬도 안하고 그대로 정원을 가로질러 바깥쪽을 향하고 있었다.


하온은 그렇게 담벼락에 바짝 붙어서는 일직선으로 달리기만 하니, 둘 사이에는 어떤 엄폐물도 존재하지 않는다. 정말 생각을 알 수 없는 무방비 상태.


어리둥절해 쫓아가는 우형. 당연히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 실내에서의 이점을 살릴 요량인줄 알았는데, 어째서 기껏 여기까지 와놓고 외곽쪽만 빙빙 돌고있는거지? 이래서야 제 스스로 덫에 걸려들기만 한 꼴이 아닌가.


하온은 벽을 옆에 두고 쭈욱 달려나갔다. 그를 따라 우형도 벽의 옆을 내달렸다. 말 했듯이, 이제 둘 사이에는 엄폐물도 없다.


그리고 놈에겐 보호의 기적이 없다. 그 말은 기회라는 뜻. 이번에야말로, 이번에야말로 죽인다! 팔을 뻗었다. 결코 빗나가지 않도록 신중히 조준했다. 목표는 몸의 머리. 풍향도 완벽하다.


자신의 기적에 온 힘을 집중했다. 손 안에 빛의 입자가 모여든다. 평소보다 몇배는 더 커다란 탄환이 그 형태를 드러낸다.


적은 아직 행동에 들어가지 않았다. 아무런 수작질도 보이지 않는다. 잔뜩 겁이 나 도망만 치는게 눈에 훤히 보이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확실히 숨통을 끊어야 후환이 없다. 하온이 뭔가를 하기 전에 처치해야 해!


그 말대로, 바로 지금··· 발사한다!


그 순간, 하온과 우형 사이를 가르듯이 벽돌과 흙먼지가 터져나온다. 그들 옆의 벽 한복판이 부서져 커다란 구멍이 뚫린 탓이다.


아까와 같은 술수인가! 하지만 상관없다. 이번 광탄은 특히나 강력하다. 하온의 의식을 끊는건 그 폭발력만으로 충분할 것이다.


그 순간 흙먼지를 헤치고 나온 것, 그건 벽돌 파편이 전부가 아니었다. 빨간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달려온 한 여인이 그로부터 튀어나와 눈앞을 가로막았다. 사라였다.


벽이 부서진 건 하온의 수작이 아니었다. 사라가 직접 구멍을 뚫어 난입해온 것이다. 그리고 그녀에겐 섬광파가, 함부로 공격을 했다간···!


그러나 한번 발사한 광탄을 되돌릴 순 없다. 하온을 향해 겨눴던 빛의 탄환은 그의 앞에 나타난 사라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갔고, 시퍼렇게 뜬 그녀의 두 눈에 비춰져 무의미한 직선궤적을 그렸다.


은창의 매끄러운 표면이 그 빛을 반사하며 움직였다. 허공에 선을 긋듯 깔끔하게 휘둘러진 그 일격으로, 찬란히 존재감을 과시하던 광탄은 이전처럼 창에 흡수되어 자취를 감추었다.


동시에 사라의 손바닥으로 한가득 전해지는 뜨거운 열기와 진동.


또한 동시에, 다시금 창이 휘둘러지면서 꽈악 거머쥔 손은 바람을 맞는다. 단숨에 눈 앞을 향해 겨누어진 창은 방금 전 자신이 당한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감히 나에게 이토록 강하고 커다란 광탄을 쐈겠다. 그렇다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동의하지?


창날의 가장 뾰족한 꼭짓점에서 빛의 탄환이 다시금 생성되더니, 본래 태어났던 자신의 주인을 향해 도로 날아갔다. 그 무시무시한 폭발력을 안에 품고 광탄은 우형에게 조준된 채 허공을 가로지른다.


재빨리 팔을 들어 새로운 광탄을 쏘는 우형. 굉장한 순발력으로 자신에게 날아오는 탄환을 정확히 격추시켰고, 사라가 쐈던 광탄은 그에게 도착하기도 전에 허공 한복판에서 그대로 터져 굉음을 울린다.


그러나 이미 말했듯이, 방금 그 광탄은··· 몇배로 강력한 파괴력을 지닌, 하온을 확실히 끝장내기 위해 특히나 힘을 모아 쏜 광탄.


눈 앞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자, 대기를 찢고 닥쳐오는 그 충격파는 그대로 우형을 덮쳐왔다. 온 몸으로 그 힘을 받아냈으니 암만 직격타가 아니라도 쓰러지지 않기란 불가능했다.


말도 안되는 일이다. 하온과 우형의 사이로 정확한 위치에 벽을 부수고 튀어나와서는, 사라는 당황 한번 내비치지 않은 채 자연스럽게 창을 휘둘러 그의 광탄을 되돌렸다. 지나치게 완벽한 팀워크가 아닌가.


마치 둘이 '짰다는듯이' 매끄러운 반격이었고, 우형은 그 능숙함에 불합리함을 느끼며 그대로 기절했다. 도대체 어떻게···?


한편 사라의 뒤에서 뒤쫓아오던 벨크는, 갑작스레 옆의 담벼락을 부수고 안으로 넘어가는 사라의 행동에 의문을 느끼며 그녀를 추격했다.


부서진 벽의 구멍으로 함께 뛰쳐들어온 벨크는, 그러나 측면에서 들려온 폭발음에 무언가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함정이다. 그의 직관이 소리쳤다. 이건 함정이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어느새 다가온 하온이 그를 기습하여 끌어안고는 움직임을 봉쇄한 것이다. 마치 그가 오리란 걸 알고있기라도 한듯이 능숙한 대처였다.


그리고 이번에야말로. 그래, 분명 이 순간을 위해 축적해뒀을 치유의 기적을 하온은 모조리 부서진 벽에 쏟아부었다.


조각이 다시 모여들고 파편이 도로 짜맞춰지며, 벽은 다시 복구되어 넓적한 직육면체의 일부로 되돌아갔다. 그러나 벽은 원래의 모습 그대로 되돌아갈 수는 없었다. 하온에게 잡힌 벨크의 몸이 구멍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가 있건 말건 조각들이 신경쓰는 일은 없었다. 되려 억지로 그를 중심으로 모여들어 원래의 벽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려 했다. 그리고 한데 합쳐진 그 두꺼운 벽돌 사이, 거기 낀 이 살아있는 이물질은, 온 몸이 단단한 석재에 고정되어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최종적으로 벨크는 벽 안에 갇힌 채, 마치 칼을 찬 죄수처럼 두 손과 머리만이 바깥에 삐져나온 꼴이 되었다.


아무리 초재생능력이 대단해도 돌벽을 부술 괴력이 생기는 건 아니다. 몸을 재생시키고 싶다 한들 손발이 묶이면 제 목을 자를 수도 없다. 할 수 있는게 없다는 것은 체크메이트라는 의미, 곧 패배했다는 것이다.


작가의말

애초부터 능력의 상성을 감안해 각각 상대할 팀을 나눴으니, 서로 자리를 바꾸면 자연스럽게 상성관계가 뒤집힌다는 당연한 이치.


지난 화 댓글에 하필 이번 화의 핵심 내용이 적혀져있어서 뜨끔하고 말았읍니다.
설마 그 가장 중요한 사실을 선수쳐 말하실 줄이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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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46 sj란
    작성일
    20.11.25 20:56
    No. 1

    아ㅋㅋㅋㅋㅋㅋㅋㅋ 하온이 벨크를 쉽게 제압할 수 있을지 몰라서 댓글에 안쓴거였는데 저렇게 제압하면 되는구나.

    하온이 새로운 기적을 얻은것일까 아니면 예언자와 같은 예지가 단련된걸까...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지만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6 sj란
    작성일
    20.11.25 20:57
    No. 2

    잘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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