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의 정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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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냥현자
작품등록일 :
2020.04.20 20:44
최근연재일 :
2020.05.13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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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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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메라

DUMMY

“이렇게 많은 손님이 올 줄이야. 제대로 준비를 할 걸 그랬습니다. 대접할 게 아무것도 없어서 아쉬울 따름이군요.”


많은 사람이 죽고 도망쳐 아비규환 상황에도 남자는 웃는 낯을 띠고 있었다.

이리될 걸 알았다는 느낌이라고 할까.


‘불길해······.’


미소에서 섬뜩함을 느끼기 쉽지 않다.


단순히 본심을 숨기는 걸 넘어서 이루 말하기 힘든 불안을 케일은 느꼈다.


레카스가 대표로 당당히 나서며 물었다.


“그쪽이 이곳의 대표인가.”

“네. 부족한 몸이지만 연구에 관한 모든 걸 책임지고 있는 히드반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을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숲의 종족 엘프 여러분.”


예의를 갖춰 몸을 숙여 자신을 소개하는 히드반.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을 따져봤을 때 꽤나 정중하고 상식적인 대응이었다. 오히려 환대에 가까웠다.


‘······도대체 의도가 뭐지.’


미소에서 느껴졌던 불안감이 이어져 케일은 경계심을 늦추지 않은 채 상황을 주시했다.


한편 상대가 말이 통하는 사람이라 여긴 건지 레카스는 계속 대화를 이어나갔다.


“결과적으로 이렇게 되어 버렸지만, 환대해 주어서 고맙군.”

“별말씀을.”

“길게 이야기하지 말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 당신들은 우리의 영역에 불법으로 침입했고, 우리 마을과 동족에게 큰 피해를 주었네. 이건 거기에 대한 경고이자 보복이네.”

“알고 있습니다. 세상사, 각자 목적과 의도가 있는 건 당연한 일. 이번에 단지, 저와 여러분이 대립할 수밖에 없었을 뿐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요.”


안타깝다는 사람의 표정이 이리도 좋아 보이는 게 아이러니한 일이다.

히드반은 말과 태도가 너무나도 상반되어 있다. 일부로 그러는 게 아닐까 의심이 될 정도로.


‘본심을 숨기고자 그러는 건가? 아니면 정말 그런 사람인 걸까.’


아직 판단할 근거가 많이 부족했다.


웃고 있는 건지 아닌 건지 알 수 없는 묘한 표정 하며, 남자라고 하기엔 긴 금색 머리카락은 산발임에도 나름 정리된 단정한 느낌을 드는 것이, 요소 하나하나 이상한 사람이었다.


“그럼 이야기는 쉽겠군. 이곳에서 당장 떠나시게. 그대들의 죄는 오늘 일로 더는 묻지 않을 테니.”

“이쪽을 배려해주시다니. 소문으로 듣기보다 엘프족 여러분은 마음이 넓으시군요. 솔직히 이 시점에서 통보 없이 죽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요.”

“이미 피는 많이 흘렸다. 얘기가 통한다면 더는 흘릴 필요가 없겠지.”

“맞습니다. 안타깝게 죽고 말았죠.”


히드반이 주위를 쭉 둘러보았다.

이곳을 지키려다 쓰러진 병사들과 일부 운 없이 죽은 연구원의 모습이 보인다.


자신의 부하들일 텐데 그다지 슬퍼하거나 분노하는 기색은 없다. 아까 경계병의 대장과는 다른 반응이다.

애초에 그들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었던 걸까.


“알고 있다면 여길 떠나라. 더는······.”

“안타깝게도 피를 흘린 건 맞지만, 이래서는 수지가 맞지 않겠네요.”

“······그게 무슨 소리지?”


겉으로는 예의를 다하는 태도와 다르게 말을 끊는 히드반.


레카스의 물음에 당연한 걸 묻냐며 양팔을 벌렸다.


“저도 이름뿐이긴 해도 이들의 대표니까요. 할 수 있는 데까진 해야겠죠.”

“······?”


알 수 없는 말을 늘어놓는 히드반에 모두가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이.


쿠르르르릉.


“응? 무슨······.”

“땅이······ 진동하고 있어.”


지진이라도 일어나듯 진동이 울렸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타이밍이 딱 맞아떨어졌다.


“여기서 선보일 게 아니었는데, 언제 세상일이 제 맘 대로만 되겠습니까. 그저 누군가에게 자랑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거에 감사해야겠죠.”


뭔 개소리를 늘어놓는지 모르겠지만, 진동은 그칠지 몰랐다.

무엇보다 원인이 무엇인지 불명확하니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알 수 없다.


이윽고 진동의 원인이 드러났다.


천막촌 중앙에 난 넓은 길이 돌연 둘로 갈라지면서 거대한 구멍이 나타난 것이다.


‘이게 무슨······.’


캬아아아아아!!!!!


“으윽!”

“귀, 귀가······!!”


괴성.

고막을 찢을 것 같은 울음소리에 모두가 양손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정신을 갈아먹을 듯 언제 끝날지 모르는 울음소리가 그치고.

이상하게 몸과 정신이 모두 지쳐버린 케일과 엘프들 정면에 괴성의 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건 도대체······.”


레카스가 황망하다는 듯 더는 말을 잊지 못했다.


케일도 같은 심정이었다.

단지 몬스터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는 만큼 보이는 외적인 면에 놀랐을 뿐이다.


‘이런 몬스터가 있었던 건가······.’


머리와 목은 드레이크, 몸통은 켄타우로스. 그리고 꼬리는 거대한 뱀이었다.

거기에 몸 주위에는 인간의 팔을 제외하고도 기형적인 팔이 두 쌍 더 자리 잡고 있었다.


“어떠십니까. 이것이 바로 저희의 연구 결과물! 최강의 몬스터 입니다.”


붉은 마법 띠를 양 팔목에 두른 채 기뻐 소리치는 히드반.


몬스터를 조종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여러 몬스터를 뜯어 합쳐 만든 몬스터가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 끔찍한 혼종은 뭐야.”


그야말로 강한 것들을 모아놓으면 최강이 되겠지 라는 생각에서 나온 괴물이다.


생김새만으로도 괴상했는데, 크기 또한 오우거의 두 배를 넘어선다.


“괴, 괴물······.”

“으아아아!!”


끔찍한 혼종을 눈앞에서 본 엘프 전사들은 그야말로 전의를 잃었다. 제대로 서 있지 못하고 황망한 표정으로 제자리에서 넘어지는 자들이 부기지수였다.


[경고! 알려지지 않은 몬스터와 조우했습니다. 현장에서 물러날 것을 권고합니다.]


그때, 케일의 시스템 창에 처음 보는 경고 메시지가 떴다.


지금까지 능력 사용 전반에 대해서만 알려주었는데 갑자기 경고한 것이다.


“레카스.”

“······.”

“어이, 레카스!”

“뭣?! ······무, 무슨 일이지.”

“모두 데리고 물러나. 저건 보통 몬스터가 아니야.”


굳이 말할 것도 없이 보기만 해도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게다가 지금까지 경우를 보면 저 괴물은 히드반의 명령에 따라 움직일 것이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너희들 전부를 지키면서 싸울 수 있을지 몰라. 녀석이 움직이기 전에 물러나.”

“하지만······ 그럼 넌······.”

“이길 수 있을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시간이라도 벌어봐야지.”


시스템 창에서 경고한 마당에 이길 수 있을 거라 확신은 못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생산했고 능력을 향상해온 드론들이 있다면 적어도 지진 않을 거라 케일은 생각했다.


“시간 없어. 어서 움직여!”

“아, 알았다······.”


상황이 보통이 아닌 걸 알았는지 레카스도 고집을 피우지 않았다. 애초에 부하들이 전의를 잃은 상황에서 싸워봤자 승산이 없다는 걸 안 거다.


“후, 후퇴다! 뒤로 물러난다!”

“수호 대장님······.”

“뒤는······ 저 녀석에게 맡긴다. 우린 방해가 될 뿐이야.”

“······아, 알겠습니다.”


케일의 능력을 잘 아는 엘프 전사들이 무겁게 납득하며 슬금슬금 물러나기 시작했다.

언제라도 저 괴물이 움직일 수 있는 만큼 공포심은 올라왔지만 재빠르게 도망치기 시작했다.


동료를 따라 물러나려 했던 리이나가 멈춰 섰다.


“케일······.”

“너도 어서 가봐. 아무쪼록 리나가 이쪽에 오지 않도록 하고.”

“······알았다. 무운을 빌겠다.”

“누가 보면 죽는 줄 알겠다. 난 여기서 죽을 마음 없거든.”


리이나가 슬쩍 쓴웃음을 지었다.

얘도 웃을 줄 아네.


마지막으로 리이나까지 빠져나간 걸 확인하고 케일은 히드반에게 시선을 돌렸다.


“꽤나 여유가 넘치네. 이쪽이 도망갈 수 있도록 놔두고 말이야.”

“하하, 설마요. 단지 전 당신이 만전을 기하도록 기다렸을 뿐입니다. 어떠십니까, 이제 원하시는 대로 되셨는지 모르겠네요.”

“······.”


그랬다.

히드반은 처음부터 케일만을 노리고 있었다.


케일도 그걸 알고 엘프들을 대피시킨 것이다. 저 남자가 노리고 있는 건 오로지 자신뿐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히드반은 레카스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음에도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케일만을 바라보았다. 마치 다른 건 그다지 상관없다는 듯이.


케일이 느꼈던 미묘한 불안감의 원인은 거기에 있었다.


‘녀석은 나만을 노리고 있었어.’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묘한 동질감과 함께 엮긴 알 수 없는 혐오감이 그를 바라보는 눈에서부터 시작되어 온몸을 뒤덮는다.


나와 같은 비슷한 녀석이라고?

저 말도 안 되는 혼종을 만들어내고, 그를 위해서 죄 없는 엘프들을 죽이고 부하들을 아무렇지 않게 희생시키는 녀석이.


‘······인정할 수 없어.’


연구자로서 자신의 길은 잘못되지 않았다.


드론이라는 이 세계 없는 걸 개발하고 발전시켜 위대한 것으로 인정받는다.


당연히 거기에 희생은 필요 없다. 아니, 있어서는 안 된다.


어디까지나 자신의 노력과 땀, 아이디어가 결합한 창의성이 발현되어 모두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어야 의미가 있는 거다.


눈앞에 녀석처럼 죄 없는 자를 희생하고 갈아 넣어 만들어진 괴물이어서는 안 된다.


“혹시 이상을 꿈꾸고 계신가요?”

“뭐?”

“자신이 하는 연구가 깨끗하다는 착각 말입니다.”


히드반은 케일이 무슨 생각을 다 알고 있다는 듯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때 묻지 않는 신입이 들어왔을 때 더럽게 물들이고 싶어 안달 난 선임처럼 보이는 건 단순한 착각일까.


“더럽혀지지 않고는 도달할 수 없는 게 진리이자 이상이죠. 깨끗하게 살아서 이룰 수 있을 정도로 만만한 건 없으니까요.”

“아주 잘난 사람이 나셨네. 그래서 그쪽은 더럽게 살아서 형편이 좀 나은가 보지?”

“네. 저야 순탄하게 나아가고 있습니다. 결과물은······ 보시다시피 여기에 있고요.”


혼종 몬스터 보이며 히드반은 의기양양해 보였다.

어쩌면 녀석의 이상은 강한 개체를 만들어 이를 조종할 수 있다는 강함일지 모른다.


“어쭙잖은 이상이네.”

“그런가요? 이상하군요,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최강이 되길 원하는데 말이죠.”

“뭐, 그럴지도 모르지.”

“당신은 안 원하시는 거처럼 말씀하시는군요.”

“아니, 원하는데. 이왕이면 아무도 못 건드릴 정도로 강하면 좋긴 하잖아.”


케일은 DD-1과 DD-2를 한 기씩 더 소환했다. 이미 소환된 드론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 거다.


녀석이 자랑하는 결과물이 아니꼬웠지만, 그래도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건 인정했다.


“그런데 어째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건지 알 수 없군요. 혹시 자신을 속이시는 겁니까.”

“설마. 난 언제나 내게 솔직해. 단지, 마음에 안 들어서 말이야.”

“······?”

“네 녀석이 말하는 힘이면 모든 게 된다는 그 생각 머리가!”


선공 필승!

상대가 움직이는 걸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단번에 쓰러뜨려 주마. 가라!”


등 뒤에 몰래 소환해 놓았던 SBD 네 마리가 잽싸게 날아갔다.


노리는 건 녀석의 머리.


오우거 때도 그랬지만, 대부분의 몬스터의 약점은 대가리다.

뚝배기 깨는 걸 제일이라는 게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쾅!


혼종 머리 바로 앞에서 터진 폭발.

4기가 동시에 폭발한 만큼 단일 위력은 대단했다.


혼종 괴물은 커다란 몸집을 가진 탓에 동작이 재빠르지 않았다.

회피 능력이 떨어지는 SBD가 충분히 접근할 수 있었다.


‘······해치웠나.’


워낙 상대가 비주얼적으로 만만치 않아서였을까.

케일은 자신도 모르게 속으로 부활 주문을 외우고 말았다.


그게 씨앗이 되었는지 모른다.


고오오오오.


폭발로 일어난 연기가 걷히고.

그 사이로 드래곤을 닮은 드레이크 머리가 위협적인 모습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었다.

방금 폭발을 없었던 것처럼 매끈한 비닐을 유지한 채로.


“소용없습니다. 그 정도 공격으로는 제 ‘키메라’에게는 상처 하나 줄 수 없습니다.”

“······.”


인정하긴 싫지만, 케일은 받아들여야만 했다.


꽤나 삐뚤어지고 혐오스러운 이상 안에서 탄생한 괴물이지만.


‘역시 집념의 성과물은······ 강력하다는 걸까. 그게 설마 잘못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방향은 다르나 저 괴물이 어쩌면 자신이 가진 드론과 같다고 케일은 생각했다.

절대 인정하곤 싶지 않지만.


작가의말

누구에게나 이상은 있습니다.

그게 선이건 악이건 상관없이 말이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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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의 정령사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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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원고 수정 일지 공지 2020. 05. 13 20.04.24 535 0 -
25 적 속에서 만난 아군 20.05.13 183 6 12쪽
24 제국군 20.05.12 173 8 13쪽
23 공작가 도련님 마린 +2 20.05.11 205 7 14쪽
22 예상외의 동행 +2 20.05.09 253 9 12쪽
21 드론 vs 몬스터 20.05.08 267 7 12쪽
» 키메라 +2 20.05.07 288 10 12쪽
19 기습 +2 20.05.06 302 9 14쪽
18 단서 20.05.05 357 9 12쪽
17 엘프 자매와 한 인간 (2) +2 20.05.04 390 10 12쪽
16 엘프 자매와 한 인간 (1) 20.05.03 429 10 12쪽
15 오우거 (2) 20.05.02 481 14 13쪽
14 오우거 (1) +2 20.05.01 498 12 13쪽
13 고인 곳을 휘젓다 +2 20.04.30 500 14 13쪽
12 사고 +2 20.04.29 530 11 13쪽
11 환대와 경계 +4 20.04.28 558 15 12쪽
10 세계수 원주민 조우 (2) +2 20.04.27 557 17 13쪽
9 세계수 원주민 조우 (1) +4 20.04.26 625 17 12쪽
8 UP +10 20.04.25 702 22 13쪽
7 이에는 이, 눈에는 눈 (2) +2 20.04.24 988 17 12쪽
6 이에는 이, 눈에는 눈 (1) +6 20.04.23 999 22 12쪽
5 반갑지 않은 손님 (2) +4 20.04.22 1,026 16 13쪽
4 반갑지 않은 손님 (1) +6 20.04.21 1,148 21 13쪽
3 제일 잘하는 걸 하자 +2 20.04.20 1,261 20 13쪽
2 유산에서 찾은 꿈 +2 20.04.20 1,391 19 12쪽
1 프롤로그 +4 20.04.20 1,492 20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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