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의 정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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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냥현자
작품등록일 :
2020.04.20 20:44
최근연재일 :
2020.05.13 16:06
연재수 :
2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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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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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단서

DUMMY

계기는 별거 아니었다.


“으으······. 밤에 숲속은 춥네요.”

“그러게. 쌀쌀하네.”


식사를 마치고 슬슬 잘 준비를 하는데, 리나가 몸을 격하게 떨었다.


한밤의 숲속은 유독 쌀쌀했다.

한낮에는 살짝 땀이 날 정도로 더웠는데,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밤이 되면 추워진다. 리나, 담요를 잘 덮어라. 감기 든다.”

“응. 알았어, 언니.”


엘프가 다 그런지 모르겠지만, 리이나와 리나는 가벼운 복장이었다. 위아래가 하나로 된 원피스 형태에 허리끈을 당겨 고정한 옷이다.


리이나는 한밤에 숲이 춥다는 걸 아는지 그 위에 망토를 걸쳤다. 하지만 마을 밖이 처음인 리나는 아무것도 없었다.


케일은 부유 저택으로 여행할 때부터 바지에 웃옷, 자켓, 그 위에 여행자 망토까지. 아주 철저했다.


낡은 옷이긴 해도 오래 입어도 좋을 고급 옷이었다. 아마 처음 만들었을 때는 상당히 비싸지 않았을까 하고 케일은 생각했다.


“케일 씨는······ 혼자서만 따뜻해 보이시네요.”

“평소 복장이 이런 건데 어쩌라고.”

“우~ 여기서 남자로서 할 말이 있지 않으세요?”

“뭔 말.”


추우니까 감기 걸리지 말라고 걱정이라고 해줘야 하는 건가. 앞으로 여정에 고생하니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리나는 케일의 반응이 맘에 안 들었는지 뚱한 기색이다.


리이나도 동생이 왜 그런지 전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한다.


“으으~ 몰라요! 이렇게 된 거!”

“에?”


갑자기 리나가 케일이 덮고 있는 담요로 파고들었다.


“······뭐 하는 거야. 나 혼자 덮기도 작다고.”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춥다고요! 그리고 제 담요도 같이 쓰면 되잖아요. 이렇게.”


리나는 자신의 담요로 아래를 덮고, 케일의 담요는 서로 나눠 덮었다.


이걸로 담요 문제는 해결되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가깝잖아.’


같은 담요에 파고든 것도 문제인데, 한쪽 팔을 껴안으며 안기듯 밀착했다.


이성이 이리도 가까이 다가온 건 얼마 만일까.


전생에 케일은 어릴 때부터 드론 개발에만 몰두했던 터라 주위에 여성은 없다시피 했다.


남중 – 남고 – 공대 – 군대.


여성이 1도 없는 저주받은 빌드업의 주인공이 케일 자신이었다.

당연히 이성에 대한 면역력은 없었다.


이종족이라고 해도 이렇게 갑자기 다가오면 너무 치명적이다.

아니, 오히려 이 세상 외모가 아니라서 더 치명적이 아닐까.


‘여성들은 다 이렇게 좋은 냄새가 나는 건가.’


딱 붙은 팔뚝에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진다.

코를 자극하는 꽃냄새에 순간 억눌러왔던 본능이 꿈틀거리는 걸 느꼈다.


‘아니아니. 무슨 생각은 하는 거야. 상대는 리나라고.’


타인이긴 해도 같은 집에서 살면서 말괄량이 여동생이나 다름없는 아이다.

몸이 반응하면서도 이성으로는 이 무슨 흑심이냐며 거부감이 앞선다.


근데 문제는 상대인 리나는 전혀 떨어질 생각이 없다는 거지.


“리나, 너무 가깝다.”

“왜~ 추울 때는 이렇게 딱 붙어 있는 거잖아. 집에서도 언니랑 리에랑도 그랬는걸.”

“······.”


그거와 이건 경우가 다르다는 말이 입 앞까지 올라온 모양이지만, 리이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말해봤자 안 들을 게 뻔해 보이니 일찌감치 포기한 모양이다.

그리고 케일의 오른쪽 자리에 딱 붙어 자리를 잡았다.


“야, 너까지 왜 이래······.”

“감시다. 네가 내 동생에 뭔 짓을 하는지 안 하는지.”

“······.”


아니, 그쪽 동생님이 뭔 짓을 하면 했지 전 아무 짓도 안 했거든요.

그리고 너무 가깝습니다만. 좀 떨어져서 감시하셔도 되지 않습니까.


케일이 불만스럽게 쳐다봤지만, 리이나는 시선을 피했다.

그 사이 리나는 어째서인지 지지 않겠다는 듯 품에 안은 케인의 팔을 좀 더 끌어당겼다. 말랑한 감촉이 더 강해졌다.


이미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니 케일은 일찌감치 자기로 했다.

내일도 꽤나 힘든 여정이 될 테니 쉴 수 있을 때 쉬는 게 좋겠지.


혹시 몬스터가 나타날 걸 대비해 거충 몬스터와 상대했던 드론들이 경계를 담당했다.


최근에는 드론을 개발하고 만들 시간이 별로 없어서 포인트를 좀 아껴야 했다.


‘부족한 건 아니지만, 혹시 필요할 때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특히나 몬스터가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상황이다.

조금은 신중하게 갈 필요도 있겠지.

지켜야 할 사람도 있고.


“케일 씨, 주무세요?”

“응. 자고 있는데.”

“자는 사람이 대답은 잘하시네요.”


왜, 지금 꿈속에 있는 것일 수도 있잖아.


“빨리 자라. 내일도 온종일 걸어야 하잖아.”

“이제 익숙해져서 괜찮아요.”

“그거야 네 언니가 걸음에 맞춰서 움직여 주고 있으니까.”

“······.”


조금 무리를 할 수도 있는데, 추격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았다.


물론 시급한 건 아니지만, 지형에 익숙하고 이런 일에 능숙한 리이나 치고는 느린 속도다.


“알고 계셨어요?”

“뭐, 대충 감이라고 할까. 네 언니 움직임 보통이 아니잖아. 내가 그 정도로 움직일 수 있었으면 지금에 두 배는 빨리 가지 않았을까 생각했던 거지.”

“죄송해요······. 저 때문에······.”

“나한테 사과해서 뭐할 건데.”


리이나는 잠이 들었는지 아무 반응이 없다.


살짝 리나를 보니, 그녀도 언니가 듣고 있는지 신경을 쓰는 듯 반대쪽을 보려다 케일과 눈이 마주쳤다.


“아직도 어색해?”

“······아니요. 그건 이미 풀렸어요. 단지, 제가 폐를 끼치는 것 같아서요.”

“이미 끼쳐놓고 무슨 소리인데.”

“그래도······.”


케일은 돌아누우며 리나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었다.


“괜히 마음 쓰지 마. 네가 동행한 걸 허락한 건 나고, 리이나는 안내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니까.”

“케일 씨······.”

“자, 내일 폐 끼치기 싫으면 잘 자야지.”

“······네.”


리나는 한결 밝아진 태도로 대답했다.

그리고 어째선지 케일의 품에 파고들었다.


“왜 또 그러는데.”

“추워서요. 이렇게 하면 케일 씨도 따뜻하잖아요. 헤헤.”


아니, 강아지도 아닌데 왜 이렇게 파고드는 건데. 정말이지.


귀찮은 티를 팍팍 내면서도 케일은 슬며시 팔로 리나의 머리를 받쳐주었다.


한밤의 숲은 쌀쌀했지만, 이상하게 평소보다 더 따뜻하다고 느낀 케일이었다.


***


날이 밝자마자 바로 출발했다.


여러 식물이 뿜어내는 습기로 안개가 내려앉았다.


“바닥이 미끄럽다. 넘어지지 않게 조심해라.”


리이나가 선행하며 말했다.

확실히 바닥에 떨어진 낙엽과 풀의 잔해가 안개로 촉촉해져 미끄러지기 딱 좋았다.


“우왓!”


말하기 무섭게 리나가 휘청거린다.


뒤따라가던 케일이 급히 손을 잡아준다.


“조심해. 빨리 걸을 필요는 없으니까.”

“네에······ 잡아주셔서 고마워요, 케일 씨.”


넘어지지 않아서 다행이다.

치료사가 다쳐서 치료를 못 하면 그거야말로 웃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디디, 리나 옆에 딱 붙어 있어.”


삐빅.


케일은 이제는 리나의 개인 경호원이나 다름없는 디디에게 경호를 부탁했다.


“이럴 것까지는 없는데요······.”

“시끄러. 괜히 다치지 말고 디디 한테 의지해. 적어도 너처럼 아무 데서나 쓰러지지 않으니까.”

“그야 얘는 날아다니잖아요. 애초에 넘어질 일도 없거든요~.”

“말은 잘해요.”

“헤헤, 칭찬받았다.”

“칭찬한 거 아니야.”


그리고 해맑게 웃지 마. 그러다가 정든다.


그렇게 케일이 리나와 이리저리 투닥대며 리이나 뒤를 졸졸 따라가는 사이.


“잠깐.”


갑자기 앞서가던 리나가 손짓하며 멈췄다.


뭔가 문제가 있어 케일은 긴장감을 높이며 뒤따르던 드론들을 가까이 불러들였다. 혹시라도 있을 상황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언니, 무슨 일이야?”

“케일. 잠시 이쪽으로.”


리이나가 케일을 불렀다.


케일은 리나에게 드론들과 함께 있으라 얘기하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이야?”

“이걸 봐라.”


리이나가 바닥을 가리켰다.

그러면서도 연신 날카로운 시선으로 주위를 경계한다.


뭐가 이상한가 의아한 태도로 케일은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그들이 뒤를 쫓고 있는 오우거의 커다란 발자국이 있었다.


전에 봤을 때도 무슨 기둥으로 찍은 것처럼 대단하긴 해도 이상하게 여길 건 아니다.


‘도대체 뭐가······ 응?’


순간 케일은 뭘 잘못 봤나 생각했다.


솔직히 예상하긴 했어도 눈으로 확인하니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어떻게 생각하나.”

“어떻게 생각하고 자시고. 이러면 빼박이잖아.”

“······응?”


자신도 모르게 케일은 속된 말을 내뱉고 말았다.


“아니, 빼도 박도 못한다고. 이거면 거의 확실한 거네.”


불안한 예상은 잘 맞는다.


오우거의 발자국 옆에 쇳조각이 떨어져 있다.

주워 확인해 보니 자연적으로 형성된 게 아니다. 누가 인공적으로 만든 거다.


“족쇄를 만든 데 사용한 것 같은데. 어디까지 넘겨짚은 거지만.”

“그럼 그 오우거는······.”

“어. 누군가 조종하고 있는 거야. 아마도······ 나와 같은 인간이겠지.”


철을 이렇게까지 작게 제련해 사용하는 건 특정 종족을 제외하고는 인간밖에 없다.

애초에 엘프들은 철을 사용하지 않고, 근처에 인간이나 엘프 정도 지성 있는 이종족은 없으니까.


“앞으로는 편하게 이동하지 못하겠네. 몬스터도 몬스터지만······ 오우거를 조종한 녀석과도 만나게 될지 모르니까.”

“······그렇군.”

“리나는 나와 드론들이 맡을 때니까, 너는 이전보다 경계를 강화해줘. 무슨 일이 있으면 이 드론을 옆에 붙여줄 테니까 내게 보내주고.”

“알았다.”


케일이 붙여준 ND-2를 확인하며 리이나는 곧바로 오우거의 흔적을 쫓기 시작했다.


교대하듯 리나가 케일에게 다가왔다.


“케일 씨, 무슨 일에요?”

“단서를 발견했어. 곧 오우거가 어디서 온 건지 알 수 있을 거야.”

“정말요~. 그런 좀 아쉽네요.”

“아쉽긴 뭐가 아쉬워. 이 고생도 이제 끝인데.”

“그치만 소풍 나온 것 같아서 좋았던걸요. 리에랑 아버지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몬스터에게 습격당하는 소풍이라니.

어쩌면 이곳에서는 그게 일상인가.


케일은 작게 한숨을 내쉬면서 걷기 시작했다. 깊게 생각해 봤자 머리만 아플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케일 씨하고 이렇게 둘이서 걸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


나지막이 들린 리나의 목소리에 순간 발걸음이 멈췄다.

도대체 무슨 뜻에서 저런 소리를 하는지 케일은 알 수 없었다.


고개를 돌려 리나를 보려고 했지만, 강한 손길이 이를 막았다.


“고개 돌리지 마세요! 지금은 좀······ 부끄러우니까요.”

“뭐가 부끄러워. 서로 볼 거 다 본 사인데.”

“케일 씨와 그런 사이가 된 기억 없는데요!”


얼굴을 붙잡은 손길을 살짝 밀어내고 리나를 보자 귀까지 빨개져 있었다. 여간 부끄러웠던 모양이다.


‘부끄러운 소리를 하니까 그렇지. 할 거면 차라리 뻔뻔하기라도 하던가.’


감정 표현이 너무 솔직한 게 이럴 때 문제다. 강한 감정이면 눈에 쉽게 드러나고 마니까.


여기서 괜히 지적하면 예의가 아니다.

케일은 애써 모른 척해주기로 했다.


케일은 쓴웃음을 지으며 리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잠깐만요. 왜 갑자기 쓰다듬는 건가요.”

“기특해 보이는 애를 칭찬할 때는 다 이렇게 하지 않아?”

“에······ 묘하게 어리다고 무시하는 것 같아서 기분 나쁘거든요!”

“아직 어린 건 사실이잖아.”

“안 어리거든요! 저 충분히 어른이거든요!”

“그래그래. 네 언니처럼 크고 나면 그때 말해라.”

“우씨! 저도 화낼 줄 알거든요. 당장 절 같은 나이의 여성으로 대해 주세요! 안 그러면 화낼 거예요!”

“안 무서운 데 어쩌나~.”


주먹으로 툭툭 등을 치는 리나와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역시 이러니 저러니 해도.

리나는 웃거나 활기찬 모습이 좋다고 생각하는 케일이었다.


작가의말

어린이 날입니다.

어릴 때는 참 좋았는데, 지금은 그저 휴일일 뿐이죠.

그래도 미래의 아이들이 잘 컸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적어도 저보다는 좋은 세상에서 살았으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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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의 정령사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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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원고 수정 일지 공지 2020. 05. 13 20.04.24 535 0 -
25 적 속에서 만난 아군 20.05.13 182 6 12쪽
24 제국군 20.05.12 173 8 13쪽
23 공작가 도련님 마린 +2 20.05.11 205 7 14쪽
22 예상외의 동행 +2 20.05.09 253 9 12쪽
21 드론 vs 몬스터 20.05.08 267 7 12쪽
20 키메라 +2 20.05.07 286 10 12쪽
19 기습 +2 20.05.06 302 9 14쪽
» 단서 20.05.05 357 9 12쪽
17 엘프 자매와 한 인간 (2) +2 20.05.04 390 10 12쪽
16 엘프 자매와 한 인간 (1) 20.05.03 429 10 12쪽
15 오우거 (2) 20.05.02 481 14 13쪽
14 오우거 (1) +2 20.05.01 498 12 13쪽
13 고인 곳을 휘젓다 +2 20.04.30 500 14 13쪽
12 사고 +2 20.04.29 530 11 13쪽
11 환대와 경계 +4 20.04.28 558 15 12쪽
10 세계수 원주민 조우 (2) +2 20.04.27 557 17 13쪽
9 세계수 원주민 조우 (1) +4 20.04.26 625 17 12쪽
8 UP +10 20.04.25 702 22 13쪽
7 이에는 이, 눈에는 눈 (2) +2 20.04.24 988 17 12쪽
6 이에는 이, 눈에는 눈 (1) +6 20.04.23 999 22 12쪽
5 반갑지 않은 손님 (2) +4 20.04.22 1,026 16 13쪽
4 반갑지 않은 손님 (1) +6 20.04.21 1,148 21 13쪽
3 제일 잘하는 걸 하자 +2 20.04.20 1,261 20 13쪽
2 유산에서 찾은 꿈 +2 20.04.20 1,391 19 12쪽
1 프롤로그 +4 20.04.20 1,492 20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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