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짖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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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연어진
작품등록일 :
2020.05.11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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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16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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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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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넘기기 2

이 글은 실제 일어난 사건들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DUMMY

익숙해졌고 공인된 것은 아니지만 이해해주는 인나가족과 달리, 마나의 가족은 그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렇다고 마나 가족이 가까워지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마나와의 관계를 정의하지 않는 것은 그도 마나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은 인나처럼 당당히 공인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두 사람의 관계도 그리 명확하지 않다. 그에 마나는 인나의 집을 떠날 생각도 하고 있었다. 마나는 인나 집 인근의 주택을 사들여 자신의 집을 짓고 그곳에서 살 생각을 했음을 두 사람에게 고백했다. 멀어지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그렇게라도 부담감을 줄이고 싶어 했던 것이다. 인나 가족이 인근 주택을 다 사들이지 않았다면, 마나의 계획대로 진행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변경된 계획은 그의 집을 새로 지을 때 층을 나누어 인나, 마나 그가 나누어 사는 것이다. 외부에서만 나뉘어져 있고 내부는 모두 연결된 그런 집의 형태로 만들어 외부의 시선에서 자신들을 보호할 생각이었다.


마나는 오가는 인나 가족을 보며 부담을 느꼈다. 그도 마찬가지지만 그는 피할 장소가 존재했다. 그는 마나가족이 가까이 살면 마나도 부담을 덜 느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마나가족이 다가오는 것을 긍정적으로 여기면서, 그들에게 숨겨할 일들을 떠올리며 부담을 가지는 것이다.


그가 가진 걱정의 최대 원인은 마나와 같지 않다. 인나가 추구하는 삶은 숨기면 그만인 것이다. 금전적인 문제, 형편의 차이 등은 부차적인 것이다.


그가 가진 걱정은 여전히 조씨다. 이젠 전에 가진 죄의식조차 희미해져 있다. 오히려 죄인을 숨겨주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잔인한 살인마를 곱게 모시고 다니는 것조차 짜증이 나는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인나가족과 마나가족이 몰아치듯 다가와 그의 스트레스를 가중시켰다. 그는 자신이 받는 스트레스를 모두 조씨에게 전가하고 있다. 더는 꽃을 사서 넣어주지 않는 소심한 복수를 하고 있다. 비슷한 비율로 원인을 제공한 범인 세 사람에게도 화를 내고 있다.


-하하하, 잘 되었군요.

-예, 덕분입니다.

-어찌 제 덕입니까. 우리 사위가 잘해준 덕이지.


‘사위라니...’


두 아버지의 대화를 들으며 그는 몸이 뒤틀리는 기분을 느꼈다. 결론지어지지 않은 인나와의 관계, 정의되지 않는 마나와의 관계. 그런 상황에서 자신 혼자 고민하고 끙끙거리는 기분이었다. 다들 아무렇지 않게 남편이라 부르고, 사위라 칭한다.


그는 도망가고 싶은 충동을 참아내며, 두 사람의 대화 앞에 묵묵히 미소를 지어야 했다. 자신이 왜 그래야하는가 의문을 가진 채.


두 사람이 돌아간 후 깨어난 인나도 집으로 돌아갔다. 겨우 휴식이 오는가 싶었지만, 준서가 나타났다. 학교에 가기 전 준서는 오빠를 볼 목적으로 온 것이지만 그는 전처럼 마냥 반갑지만은 않았다. 자신이 준서에게 속이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부담도 고민도 털어놓지 못해서다.


“오빠. 얼굴이 상했어요.”


그런 자신을 준서는 언제나처럼 걱정하고 사랑스런 눈빛으로 바라봐준다. 그는 그 눈을 마주보기 어려워 고개를 돌렸다. 준서는 곧 그곳으로 자신을 옮겼다. 인나처럼 강제로 고개를 돌리지 않고 스스로 움직여 서는 것이다.


“밥은...”

“준서는?”

“아직이요.”


그는 준서가 샐러드를 먹었다는 것을 입술에 묻은 마요네즈를 닦아주며 알아차렸다.


“분식집 갈까?”

“아침부터... 좋아요.”

“학교 안 늦어?”

“네.”


미소를 짓는데 어떻게 보지 않을까. 그는 귀여운 동생의 손을 꼭 잡고 집을 나섰다.


“오빠...”

“응.”

“공사 또 할까요.”

“응. 하게 되겠지... 부담 돼?”

“으응...”


귀엽게 도리질도 하는구나, 여기며 그는 준서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쓸어주었다.


“좋아?”

“응... 가까이 살면 편할 것 같아요. 아저씨, 아줌마가 집에 올 때마다 불편한 것이 있었어요. 옷도 안 가져오시고. 가져오면 인나언니가 화낼까봐 눈치 봐요.”

“응... 인나씨가 그런 면에서는 까다롭지.”

“다래언니 임신했어요.”

“....허. 빠르다.”

“테스트로 알아봤다고 했어요. 저랑 다래언니만 알아요.”


테스트기를 들고 나오는 것을 보자 다래가 끌고 가 비밀로 해달라고 용돈도 주었다고 준서는 말해주었다. 그는 기쁘기도 하면서 한편으론 약속을 지키는 것에 충고해야할지 잠시 고민했다.


“음... 그래서 여기로 이사를 하려는 건가?”

“네. 가게 넘기고, 여기는 없대요. 이쪽에 낸다고 했어요.”


체인점이 없는 도시이긴 했다. 다래가 운영 중인 체인점은 다른 체인점들보다 장사가 잘되는 편이다. 그녀가 이전해 자신이 사는 도시에 체인점을 낸다면 그도 마지막 배송지가 변경될 것이라 나쁘지 않은 일이라 여겼다. 차에 실을 수 있는 분량은 한정되어 있지만 지금까지 그의 차가 꽉 찰 정도로 물량이 많은 경우는 없었다. 하지만 거리에 따른 배분에서 그가 담당한 곳이 다른 기사들보다 많은 편이기는 하다. 그 중 한곳은 매우 먼 곳으로 이전부터 다른 기사에게 넘겨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중이었다. 다래의 체인점이 그가 사는 도시에 추가되면 자연스럽게 1시간 이상이 소요되는 먼 체인점이 다른 기사에게 넘어갈 수 있게 된다.


“물류팀장도 모르는 일을....준서에게 그리 말했어?”

“네. 오빠... 비밀.”


가볍게 대었다 뗀 손가락을 준서는 자신의 입술에도 붙였다.


“귀여워.”

“알아요. 지금은 귀엽지만 점점 예뻐질 것 같아요.”

“어... 지금도 예뻐.”

“눈은 오빠 닮아서 다행인 거 같아요. 제 얼굴에 눈도 진하면 외국인 같아 보일 것 같아요.”

“어떤 눈이라도 준서는 예뻐.”

“알아요. 흐으...”


준서와 걷다 분식집에서 김밥과 우동을 나눠먹는 시간이 그는 너무 좋았다. 아쉬워 버스정류장에서 준서가 탄 버스를 한참보다 돌아서며 그는 무거워지려는 마음을 쥐었다.


‘경찰까지...’


-전에 경찰 왔었어요.


김밥이 입 밖으로 튀어나갈 위기를 겨우 모면한 그는 애써 침착한 표정을 유지하며 단무지를 씹었다.


-경찰이 왜 왔을까.

-모르겠어요. 우리 집 담장 안을 보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생각해봤는데 쓰레기 버리는 사람들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을 때 준서가 말했다.


-집돌이가 경찰아저씨한테 막 짖었어요. 그렇게 화난 거 처음 봤어요.


‘무슨 이유로... 마당 안까지 들여다봤을까. 그럴 수 있나?’


이유는 모르지만 경찰이 집 근처를 어슬렁거렸다는 것에 그는 불안해졌다. 조씨가 발각되면 가진 모든 것이 부서지고 흩어져버린다. 살인마의 시신을 가지고 다니는 이를 누가 사랑해줄까. 인나와 마나가 떠나고 동생들도 보호자가 없어 시설에 가거나 흩어지고 말 것이다.


‘숨겨야 해...’


그는 조씨에서 뻗어 나온 사슬이 온 몸을 감싸는 감각을 느꼈다. 그 사슬의 반대쪽을 물과 카삥, 얼탱이 쥐고 있었다. 빠져나오려고 애쓰는 자신을 그들은 조롱하고 힘주어 당기곤 했다.


‘내가 왜 고민해야 하는데... 그 새끼들은 잘 먹고 잘 사는데...’


분했다. 고민하고 괴로워할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조씨와 범인들이다. 원망감이 커지자 그는 전부터 생각하던 일을 실행하기로 결심했다.


“해충 새끼들... 너희가 책임져라.”


*


그는 알리바이를 준비했다. 그럴듯한 이유들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 그는 열심히 일해 모은 돈 중 일부를 쓰기로 했다. 아깝지만 모두 미래를 위한 일이라면 그는 차를 몰고 공업사로 들어갔다.


“전에 말한 거 하려고?”

“예, 설치해 주세요.”

“뭐였더라... 사다리하고 위에 난간인가?”

“네.”

“그런데 태양열판 설치한다고 꼭 난간을 설치해야 하나?”


그는 화물칸 위쪽에 낮은 난간을 설치하려 한다.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이유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위를 루프탑...뭐 그런 걸로 쓰려고요. 캠핑가서.”

“아아, 캠핑카들 차 위에 설치하는... 그럼 난간 높이를 높여야지. 재질도 바꾸고. 여기 보내준 팩스에는 높이가 10cm밖에 안되고, 전체 다 스텐봉으로 해달라고 되어 있던데.”

“그 정도면 충분해요. 위에 굴곡이 있잖아요. 거기 미끄러지지 않게 그 정도면... 나중에 봉을 연결해서 위로 확장하는 개념을 생각해봤어요.”

“옳거니! 그러니까 지지대만 두고 사용할 때는 진짜 난간을 꽂아서 사용하는... 그렇군. 그럼 연결할 수 있게 제작해야겠네?”

“네...아, 그건 도면에 안 그렸나요?”

“어, 없던데... 음, 그렇군. 사다리 탈부착 가능하게 만들어 달라는 것도?”

“예, 옆으로 튀어나오잖아요. 어디 걸려서 사고날까봐.”

“그렇군. 이제 이해했어.”


차 지붕에 낮은 난간을 설치하고, 사다리를 제작하는 동안 그는 전에 찾아갔던 인근 카센터를 찾아갔다.


“아이고, 사장님. 어쩐 일이십니까.”

“태양열 판 한 개 설치하려고요.”

“한 개만요?”

“네, 나중에 늘리더라도 지금은 완전히 부착되는 형태로 하나만 설치해 주세요.”

“하하... 전기세가 많이 나왔나 보군요?”

“뭐, 그렇기도 하고... 보조배터리로 부족할 때가 있더라고요.”

“...알겠습니다. 허? 그런데 위에 난간을 설치하셨군요.”

“루트탑 카페라도 해보려고요. 사다리는 지금 만들고 있어요.”

“저렇게 라인 잡아 뒀으니 맞춰서 넣어야겠군요. 보통 앞쪽으로 설치하는데... 괜찮습니까?”

“예, 자리 많이 차지하지 않으니 오가는 것은 어렵지 않겠죠.”


*


준비가 끝났지만 그는 급하게 움직이지 않았다. 아직 점검해봐야 할 것들이 있기에 일을 마치고 그는 사람이 오지 않는 공터를 찾아갔다. 차를 세운 후 내부 전기로 냉각기를 돌리며 그는 옆문을 열었다. 그리고 공구함 위에 있던 포대를 들었다.


“흠...”


포대를 들고 움직인 그는 내부에 둔 사다리를 설치하려 꺼냈다. 포대를 든 채 설치하기 힘들다는 것을 깨닫고 포대를 내린 후 사다리부터 설치했다. 훤히 뚫린 공터지만 그는 벽이 가까이 있다 여기며 좁은 반경 내에서 움직였다. 위에 있던 고리에 사다리가 걸리자 그는 다시 포대를 들고 사다리를 올라갔다. 올라가다말고 뒤를 힐끔 본 그는 고개를 저었다.


“이건 아니야. 벽에 쓸리잖아. 두 사람이 움직일 거리도 아니고... 문도 문제군.”


여닫이 문이다. 열기 위해서는 벽과 상당거리 떨어져야 한다. 그는 긴 막대를 꺼내 차 옆문의 각도를 조절했다.


“이정도인가.”


차문을 열어두고 고정한 후 다시 사다리를 오르던 그는 힘이 빠져 버렸다. 포대를 짊어진 자세로 올라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깨닫고 그는 방법을 고민했다.


“먼저 올라간 후에 당겨서 올려볼까.”


과연 허리가 버텨낼까, 그는 허리보호대를 찬 후 포대를 줄에 묶었다. 줄을 잡고 위로 올라간 그는 난간에 발을 걸고 두 손으로 힘껏 포대를 당겼다.


“크으...크으...”


쉽지 않은 일이었다. 서서 당기면 그럭저럭 당겨지지만, 그래선 눈에 띄게 된다. 누워 엎드린 자세로 시신을 끌어 올려야 했지만, 그의 팔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두세번 반복하다 포기한 그는 자신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체력이 필요해.”


*


운동을 따로 하지 않던 그였다. 그런 그가 쉬는 날도 일찍 일어나 조깅을 하고, 역기를 들자 그에 자극받은 인나와 마나도 그와 함께 조깅을 시작했다. 준서는 시간이 맞지 않아 아쉬워했다. 아침운동을 한 결과 그는 이씨도 전보다 자주 만났다.


“정남이 덕분에 동네가 활기차게 변했어.”

“제가 뭘요... 팔, 좋아지셨네요?”

“응? 봤는가? 요즘에는 수저도 들 수 있어. 노력하니 되긴 하네. 그런데 공사 안하나?”

“아, 곧 다시 시작할 겁니다. 시끄러울 텐데 먼저 사과드리겠습니다.”

“시끄럽다고 짜증내는 사람은 이 동네 사람이 아니지. 다들 다시 공사하길 바라며 살았는데... 운동가는 길이지? 어서 가봐. 저기 예쁜 색시도 기다리는군.”


가끔 자러오는 효준도 그가 운동을 나가면 함께 움직여야 했다.


“형... 갑자기... 운동을 왜.... 하시....”

“몸이 건강해야 해. 가장은 특히.”

“헉...예... 저도... 운동....”

“그래, 넌 운동 많이 해야겠다. 전에 키오하고 삼십킬로 뺀다고 약속했잖아.”

“헉...예...해야 하는데...헉...헉...”


지친 듯 보여 그는 속도를 늦추다 멈춰 섰다. 인나와 마나가 벤치를 찾아가 쓰러지듯 앉자 효준은 떨리는 다리를 주무르며 그를 보았다.


“형은 아무렇지...않은...후...후...않은 가 봐요.”

“음, 자주하니까. 배송할 때 장애물 많으면 손으로 나르거든. 승강기 고장 나서 계단으로 옮길 때도 생기고.... 지원한 건 아직?”

“아... 왔는데, 불합격 됐어요.”

“왜? 문신 때문에?”

“아마도 그런 것 같아요. 지우고 나서 다시 지원해볼까 해요.”

“음... 굳이 갈 필요 없다니까. 그럴 생각으로 사회에서 돈 벌면 더 많이 벌어. 돈 모아서 대학 간다면서?”

“예, 여친이 저 먼저 보내고 자신은 나중에 간다고 하지만... 전 반대로 먼저 보내고 싶거든요. 사실... 잘됐다 싶어요. 군부대가 오지에 있잖아요. 가면 같이 가더라도 여친은 심심할 것 같고. 장학금 받으면서 공부하려면 일도 많이 못하는데.... 이것저것 생각은 많은데, 아직 시작단계라 막막하네요.”

“형도 얼마라도 보태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는 마. 대출금만 갚으면 돈 쓸 일도 별로 없으니까.”


대화중에도 그는 팔굽혀펴기를 하며 단련을 멈추지 않았다.


“형한테 딸린 식구가 몇인데요. 말씀만 들어도 좋네요.”

“뭐... 그때 가서 생각하고. 우선은 달리자.”

“허...예.”


집에 돌아와 축 늘어진 효준은 무게추도 되어주었다.


“그런데 형.”

“으윽! 후...왜?”

“왜 계단 위에서 절 들어 올리시는 건지...”

“어?”


시신을 끌어올리기 위해 근육을 단련한다고 그는 말할 수 없었다.


“이게 더 운동되잖아.”

“허... 이런 운동이 필요한 일인가요?”

“응? 아아... 참치 무겁다. 사람 무게는 되는데, 사람하고 달리 딱딱하게 굳어 있잖아. 잡은 위치, 손의 마찰. 그런 것들이 무게에 영향을 줘. 내가 넌 번쩍 들어도, 참치는 번쩍 들기 어렵지.”

“제가 몸무게 많이 빠졌다고 해도 백키로는 되는데...”

“전보다 가벼운데? 전엔 못 들었잖아. 자, 또 든다. 흐흡!”


왜 그가 운동을 시작했는지 이유를 아는 이는 없지만, 다들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인나는 그가 근육운동을 시작하면 멍하니 보곤 한다.


“좋냐?”

“좋지... 저 몸에 안기는 거잖아.”

“변태...”

“부러우면 너도 해.”

“얘가... 애들 있는데.”


마나의 말에 인나는 식탁에 앉아 있던 피노와 키오를 힐끔 보고 웃었다.


“과했나?”

“쯧...누군 안하고 싶나.”

“왜? 거부해?”

“아니... 내 쪽에서 꺼려지네, 이젠.”

“조급해하지 마. 너무 달려들면 저사람 도망가.”

“어이구... 누가 들으면 참....”

“내가 경험해봐서 말하는 거야. 그때 내가 막 달려들 때 저 사람 머뭇거리고 뒷걸음질 쳤잖아. 그거보고 나도 용기내지 못했고. 날씨는 꽉 잡고 나서 퍼부어야 해. 키스든, 말이든. 그래야 그 자리에서 생각하지.”

“흐음... 경험자의 충고인가....”


*


가정에 충실하고, 직장에서도 성실한 그는 몰래 외도도 한다. 그의 외도는 공터에서의 연습만이 아니다. 가끔 그는 인나나 마나, 혹은 다래의 승용차를 타고 범행 장소를 시찰한다. 너무 눈에 띄는 인성의 차는 그가 사양하는 편이다.


‘역시... 밤에는 더 경계심이 심해. 아침밖에 없어.’


한 달간의 염탐 끝에 그는 작전 시간을 경비들이 조회하는 5시 10분으로 잡았다.


*


6월.


드디어 그는 자신에게 떠넘겨진 짐을 넘기기로 했다. 그가 넘기려는 대상은 물이다. 물이 주도자인지는 모르지만, 물이 가진 차와 조씨가 접촉한 것은 확신하고 있다. 그게 최초인지 이후인지 그는 더는 관심이 없다. 흉악한 살인범을 그들이 죽였는지, 살려서 던진 것인지도 더는 궁금해 하지 않는다. 죽어 마땅한 이가 담을 넘어와 자신의 집을 더럽힌 것에 화가 날 뿐이다.


그는 물과 얼탱, 카삥이 했듯 그들에게 조씨를 넘길 계획이다. 그를 위해 체력을 단련하고, 지붕위의 공간을 꾸몄고, 사다리를 만들었다.


지붕위에 설치한 난간과 태양열전지는 단순한 더미다. 진짜 목적은 지붕을 오르는데 필요한 사다리다. 사다리를 따로 들고 다닐 수 있지만 사람들 눈에 띄면 의심을 받을 것이다. 설치하기 간편하게 또, 옆문 옆에 만들어도 의심스럽지 않게 차 위를 다른 용도로 쓴다고 알리려 난간을 설치한 것이다. 태양열전지판은 더 그럴싸하게 보이기 위해 거금을 들여 설치했다.


해 놓고 보니 꽤나 실용적이기도 했다. 인나 가족과 자주 나들이를 가는데, 그가 차를 개조하고 난 이후 그의 차에는 인나 모친이 소원하던 튼튼한 테이블과 의자가 실렸고, 음식조리용 도구도 소형을 벗어나 대형으로 갖춰 이동되었다. 보조배터리와 태양열전지판까지 설치한 그의 차는 대형 냉장고의 기능까지 갖췄다. 작은 전자렌지까지 가져와 쓸 수 있게 되자 요리하기에 더 편해졌다. 이런 실용성을 갖췄지만 그는 차에 음식물을 두려하지 않았다. 직접 입이 닿는 식기류도 인나와 마나에게 따로 가져가게 했다. 대형냉장고가 있는데 왜 쓰지 못하는지 묻자 그는 회사에서 지급하는 기름으로 냉동고를 돌리기에 할 수 없다는 양심과 싸우는 답변을 해야 했다. 그걸로 부족해 냉동기를 켜지 않을 때, 세균이 많이 발생할 수 있다는 설명까지 곁들였다.


냉동기를 쓰지 못하지만 다른 부분에서는 가족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 그의 차였다. 차를 나무그늘 아래에 두고 그 위에 올라가 아이들이 뛰어노는 것을 보며 가볍게 맥주를 마시는 것을 인나 부친과 인성은 좋아한다. 차 자체로도 그늘을 만들어주고, 차와 나무를 연결한 천막을 치면 기둥이 없어도 아늑한 그늘막이 만들어진다. 팽팽하게 당겨진 천막보다 바람에 살랑이는 천 아래에서 차를 마시는 것을 인나 모친과 인영은 좋아한다. 인성과 인나 부친에게 캠핑카에 대한 관심도를 높여준 것도 그의 차다. 얼마나 마음에 들었는지 인성이 신혼집으로 버스를 개조해 살겠다는 선언을 했을 정도다.


-나 임신했어!


다래가 급히 임신사실을 전하며 흐지부지되었지만, 인성의 소망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음을 그는 잘 안다.


*


물의 집 담장의 높이는 차 지붕보다 약간 높을 정도로 높다. 그 안으로 조씨의 사체를 던져 넣으려면 차 지붕을 이용해야 한다. 바깥과 달리 안쪽의 낙차는 크지 않기에 얼어있는 조씨가 깨질 염려는 적다. 그런 걱정도 그는 하지 않고 있다.


더는 생각하기도 싫고, 조씨를 데리고 다니는 것도 짜증이 났기에 그는 물에게 조씨를 떠넘기려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간편하게 카센터에 던져둘 수도 있지만, 그는 그를 선택지에 넣지도 않았다. 그가 당한 것처럼 안식처인 집에 조씨를 넣고 싶었던 것이다. 이는 물의 집과 비교되는 자신의 집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물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물은 그와 달리 쉽게 뭐든지 얻으면 살아왔다. 부족함 없이 살던 물이 자신에게 죄를 떠넘긴 것이 그는 분했다.


이 계획에서 만약 물의 집으로 조씨를 넘기는 동안 발각될 사안이 있다면 그는 다른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가 염탐해본 결과, 물의 집은 외각을 살피는 CCTV가 설치되어 있지 않다.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대문 입구에는 방문객을 살피는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 부촌이라 불리는 동네라 경비원들이 살피는 CCTV도 여기저기 설치되어 있다. 딱 한곳 그가 우연히 차를 세웠던 장소만 사각지대였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쪽에도 카메라를 설치하면 순찰하지 않아도 사무실에서 살필 수 있잖아. 왜 설치를 안 하는 거야?

-아, 몰라? 거기 국회의원 살잖아. 언놈들이 오가는지 밝히기 싫으니 그렇지.


부촌 입구 편의점에 앉아 있을 때, 쉬러 나온 경비들이 나누던 대화를 들어 알게 된 사실이다. 다른 국회의원이 살지도 몰라 검색해봤지만, 부촌에 사는 국회의원은 한명 뿐이었다.


각종 비리의혹을 받고 있는 물의 부친이 증거를 남기기 싫어서 설치하지 않을 수 있다 여겼다. 그는 그보다는 높은 담장과 높은 곳에 위치한 집에 대한 자부심 때문에 카메라를 설치하지 않는다고 여겼다. 가진 자의 여유, 그리고 오만한 자신감이라 생각했다.


*


다락에 시신을 숨길 때보다는 치밀한 계획과 준비를 거쳐 실행하고 있지만, 완벽하다고 말할 수 없는 빈틈투성이의 계획이다. 짜증이 솟구쳐 실행하고 있기에 그는 조급해진 상태다. 경찰이 인근에 나타났다는 것이 그를 다급하게 만든 제일 큰 이유다.


그가 조급하다는 첫 번째 증거는 시신이 입은 옷에 있다. 조씨는 여전히 그의 옷을 입고 있다. 사계절 전용답게 그가 여전히 입고 다니는 운동복을 조씨도 입고 있다. 얼어서 벗기기 힘들다는 점도 있지만, 그는 벗길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다.


시행일을 정하고 그는 과감히 차를 몰고 부촌에 들어갔다. 만약 걸리더라도 전처럼 길을 잘못 들었다는 변명을 할 생각이다. 그럴 필요 없이 경비들은 아침 5시 10분에 시작되는 경비교대식 및 조회를 하는 중이다. 전날 있었던 일들을 발표하는 조회는 20분간 이어진다. 한 달 이상 살핀 결과 불변하는 법칙이었다.


여기에 두 번째 실수가 존재한다. 그는 한 달 이상 거동 수상자로 카메라 여기저기에 찍혀 있다. 조깅하는 척 부촌 내부를 돌았기에 의심을 받을 충분한 이유를 지녔다. 빌려 탄 차번호가 노출되지 않도록 카메라가 있는 곳은 차에서 내려 돌았지만, 그의 변장은 그리 꼼꼼하지 않았다.


차를 세운 후 그는 오랜만에 모든 냉동기를 껐다.


‘조용하군.’


이제 더는 필요 없어진 작은 냉동기의 소음을 듣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그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차 좌측 조수석 문을 열고 나간 그는 차와 벽의 간격을 살폈다. 연습한 대로 위로 올라갈 충분한 간격을 확보했음에 그는 또 기뻐했다.


문을 열고 올라간 그는 사다리를 걸친 후, 문을 밀어 벽에 붙이고 봉으로 고정한 뒤에 조씨의 관이었던 공구함을 열었다. 냉기가 빠져나오며 서늘하게 해주는 것도 잠시, 다가오는 여름기운을 담은 공기가 그를 감쌌다. 그는 연습의 성과를 보이며 능숙하게 칸막이를 들어 옮기고, 조씨를 들어 로프를 묶었다. 그런 후 마치 참치를 운송하는 업자들처럼 거칠게 꺼내 바닥에 두었다. 예우해줄 필요가 없는 일이라 그는 무심했다. 밖으로 나가며 조씨를 묶은 로프를 당길 때도 그는 조심하지 않았다.


사다리를 올라가 천천히 로프를 당기던 그는 조씨의 머리숱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필 전날 인나에게서 숱이 많다고 칭찬을 들었기에 그는 기분이 나빠졌다.


쿵!


급히 당긴 덕에 조씨의 머리가 열린 차문에 닿으며 울렸다. 그는 급해진 마음을 달래며 흔들리는 조씨가 멈추기를 기다려 당겼다.


“후. 후...”


적당히 올라왔을 때, 그는 로프를 잡은 한손을 놓고 한손으로 조씨를 견디며 급히 가슴에 맨 로프를 잡았다. 호흡과 동시에 당기자 조씨가 쑥하고 그에게 들려 올라왔다. 그는 조씨를 우선 눕히고 로프를 풀었다. 풀어낸 로프는 화물칸 안으로 던져 놓고, 그는 조씨를 마지막으로 보았다.


“잘...허!”


그제야 그는 조씨가 입은 옷이 자신의 것임을 깨달았다. 그가 오늘 입고 있던 것과 같은 고동색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멀리서보면 누가 사람이고 시신인지 모를 만큼 두 사람의 차림새는 비슷했다. 짧은 머리보다 긴 머리가 어울린다는 말에 최근 기르기 시작했기에 조씨와 머리길이도 비슷했다. 그를 깨닫지는 못했지만 같은 옷을 입은 것에는 불만과 걱정이 들어 그는 혀를 찼다.


“젠장...”


그는 급히 조씨의 옷을 벗기려 지퍼를 잡았다. 얼어 성에가 낀 지퍼는 쉽게 열리지 않았다. 억지로 당겨 반쯤 열었을 때였다.


끼익. 끼익.


‘음?’


조씨의 몸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점점 커지더니 급기야 뚝하는 소리와 함께 팔이 들렸다.


“헙.”


급히 입을 막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릴 때, 조씨는 다시 만세형이 되었다.


‘죽어서도 도움을 안주네.’




이 글은 픽션입니다. 등장인물의 이름과 단체등은 사실과 같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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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짖는 소리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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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오래전 시작된 거짓된 이야기 1 20.06.16 20 3 19쪽
89 두 친구 2 +1 20.06.16 24 2 19쪽
88 두 친구 1 20.06.15 23 4 18쪽
87 악인과 악인 4 20.06.14 21 4 22쪽
86 악인과 악인 3 20.06.14 22 2 17쪽
85 악인과 악인 2 20.06.14 18 2 24쪽
84 악인과 악인 20.06.14 19 2 20쪽
83 악인은 선해지지 않는다 7 20.06.13 20 3 23쪽
82 악인은 선해지지 않는다 6 20.06.13 17 2 21쪽
81 악인은 선해지지 않는다 5 20.06.13 18 2 18쪽
80 악인은 선해지지 않는다 4 20.06.13 18 2 21쪽
79 악인은 선해지지 않는다 3 20.06.13 17 2 17쪽
78 악인은 선해지지 않는다 2 +4 20.06.13 22 2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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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잃어버린 것 2 20.06.12 20 2 19쪽
75 잃어버린 것 1 20.06.12 20 2 19쪽
74 인과응보 20.06.12 18 2 26쪽
» 떠넘기기 2 20.06.12 20 2 25쪽
72 떠넘기기 1 20.06.12 19 2 24쪽
71 세 친구 4 20.06.12 15 2 19쪽
70 세 친구 3 20.06.12 19 3 18쪽
69 세 친구 2 20.06.12 20 3 15쪽
68 세 친구 1 20.06.12 30 3 21쪽
67 조씨의 정체 20.06.11 22 3 18쪽
66 세번째 차 +2 20.06.11 22 2 20쪽
65 가족의 의미 2 20.06.10 21 2 18쪽
64 가족의 의미 1 20.06.10 27 3 27쪽
63 퀵보드를 타고 온 단서 2 20.06.10 19 2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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