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짖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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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연어진
작품등록일 :
2020.05.11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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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16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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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3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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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쪽

악인은 선해지지 않는다 2

이 글은 실제 일어난 사건들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DUMMY

물은 카삥이나 얼탱과 상의 없이 그의 집을 찾아왔다. 그의 목적은 조씨를 던졌다는 집이 아니다. 그 인근에서 보았다던 차량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음? 뭘 꼬라보고...쯧.’


자신을 보는 운전자의 차와 복장을 보고 그는 피씩 웃어버렸다. 차주가 아닌 운전사라는 것을 그는 한눈에 간파했다. 관심대상도 아니었고, 어울릴 부류도 아니었기에 수행비서는 물에게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물은 본래의 목적을 떠올리고 담장 안을 살폈다. 어렵지 않게 내부가 보였기에 그는 차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 시간이면... 회사에 나갔나 보군.’


“큭! 센스하고는.”


리모델링된 집을 보며 그는 웃음을 참지 않았다. 만약 집에 사는 이가 누군지 짐작하지 않았다면 그는 졸부의 센스라 크게 웃었을 것이다. 가만히 보던 그는 격차가 느껴지려 해 급히 돌아섰다.


“줘도 안가지지만... 여자는 가져야겠지.”


다음에 다시 와보기로 하고, 그는 발길을 옮겼다. 그때 그의 귀로 낮은 진동음이 들려왔다. 그의 눈이 서 있던 트럭으로 향했다. 어디서나 흔히 보는 하얀 트럭이라 금세 무관심해졌지만, 신경 쓰이는 소리의 정체가 궁금해 그는 차를 살펴보았다. 앞으로 움직여 볼 생각은 없었기에 그는 자신의 차 앞으로 움직여 트럭의 왼편을 보았다.


“음?‘


담장에서 이어진 전기선이 차량의 옆면과 연결된 것을 보고 그는 무슨 용도인가 잠시 생각했다. 그런 호기심은 답이 떠오르지 않자 금세 사라졌다.


*


놀라운 소식을 접하고 오랜만에 세 사람이 카삥의 카센터에 모였다.


“발견 되었다고?”

“어, 내부에서도 말이 많은데 아무래도 자살로 끝날 것 같아.”


조씨의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얼탱의 말에 카삥과 물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런데 내부에서 무슨 말이 많아?”


카삥의 질문에 얼탱이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서에서 근무하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알겠어.... 주워듣기론 사체에 남은 흔적들에 대해 말이 많은가봐. 상처도 있고 사망일도 오래된 것 같고... 뭐 그런 이야기들이지.”


“그럼 자살한지 오래되었다가 이번에 발견된 거야?”


카삥의 말에 얼탱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봐야 하지.”


“그럼, 얼탱. 그 놈 살아서 그 집에서 나와서 돌아다니다가 강 상류나 어디에서 물에 빠진 거냐?”


“내가 수사관도 아닌데 어떻게 알아?”


날선 반응에 무안해하던 물의 얼굴이 붉어졌다.


“왜 성질이야?”

“내가 뭐?”

“뭐긴... 너 요새 왜 그래? 놀러 나오라고 해도 계속 뺀찌 놓고.”

“몰라서 묻냐?”

“몰라서 묻는다.”


두 사람이 눈싸움을 시작하자 카삥이 급히 손을 휘젓고 두 사람의 잔을 채웠다.


“왜들 그래? 자자, 한잔씩 하자.”


두 사람은 마지못한 척 술잔을 들어 마셨다. 잔이 몇 번 채워진 후에야 얼탱이 입을 열었다.


“너희가 편할 때.... 난 죽을 맛이었다.”


얼탱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떨어진 조씨가 잘못되었을까 걱정했지만, 겁이 나 확인하지 못한 채 시간을 보냈다. 그런 그의 신경을 물은 계속 자극했다.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던 것도 문제였고, 진급 욕심에 그가 먼저 조씨에 대해 밝히려는 것을 말렸기에 미움이 쌓여갔다.


얼탱이 물과 가까이하는 이유는 배경에 둔 3선 국회의원 때문이다. 각종 비리로 얼룩진 사람이지만, 그런 사람일수록 주변인들에게 베푸는 것이 많다는 것을 얼탱은 잘 알고 있다. 물이 저지른 일들의 뒤처리를 하면서 그가 바란 것은 국회의원인 물의 부친과 직접 연결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물은 그런 얼탱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도움을 받아도 부친에게 소개해주지 않았다. 카삥이 돈으로 물과 얽혀있는 것처럼 얼탱은 진급과 미래를 위한 투자를 하며 물의 수족처럼 굴고 있었다.


“그 집 찾아가서 봤는데, 높이가 상당하더라. 전에 말했는지 모르겠지만... 집이 길 아래쪽에 있어.”


“그래? 옛날에는 다리 아래에서 거지들 살았다더니, 그런 형태인가?”


카삥은 웃었지만, 그런 집 한 채 없이 살아온 얼탱은 웃지 못했다.


“너... 보고 왔다면서?”

“어? 카삥... 너 말했냐?”

“왜? 숨길 일이야?”

“뭐 그건 아니지만.... 보러가긴 했지만, 그 집 보러간 건 아니었다. 전에 말한 차배정씨 딸이 거기 사는지 살펴보려고 갔는데, 차가 없어서 확인 못했다.”

“차배정? 아, 그 재일교포 사업가?”

“어, 기억하네? 새끼.... 돈줄이라고 그런 것은 다 기억하네.”

“크크큭. 그래서 아니었어?”

“모른다니까. 차가 없었어. 그런데... 그 집 보니까 느낌은 나더라. 인테리어가 보통이 아냐. 그 집 계단에 쓴 돌 값만 해도 여기 카센터 건물 반 이상은 지을 거다.”

“구라는...”

“새끼야, 내가 그딴 걸 왜 구라 쳐. 대리석 비싼 거 검색해봐. 개 비싸.”


의심하며 카삥이 검색할 때 얼탱은 실실 웃는 물을 흘겨보고 있었다. 그를 본 물이 표정을 굳혔다.


“왜? 아직도 지랄할 게 남았냐?”

“너... 거기 갔으면 뭐라도 봐야하는 거 아냐?”


기막힌 듯 얼탱이 코웃음을 흘렸다.


“봐서 뭐? 내가 너처럼 짭새냐? 추리소설도 안본 내가 봐서 뭘 안다고? 그딴 건 전문가인 네 담당 아냐? 예전부터 내가 물주, 얼탱 네가 기도, 카삥이 삥뜯기 말빨, 차 담당 등등이잖아. 각자 잘하는 거 하자고 우리 맹세하지 않았냐?”


‘맹세?’


그건 강요였다.


-너 마음에 든다. 우리 그룹에 들어와라.


덩치가 크다는 이유로 먼저 물이 접근했다. 함께 어울리면 가보지 못한 곳, 먹지 못하던 것을 경험하게 되었기에 어린 시절에는 마냥 좋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불쾌감을 느꼈던 얼탱은 군에 들어간 시기에 물과 연락을 끊었었다. 운 좋게 의경이 되어 근무한 얼탱은 전역 후 순경으로 경찰의 길로 들어섰고, 그때 물이 또 찾아왔다. 미움도 흐려진 시기라 반갑게 만났던 시기도 잠시, 다시 물의 본성을 보고 회의감을 느꼈지만 얼탱은 물과 헤어지지 않았다. 그동안 이용당한 만큼 얼탱도 물을 이용할 결심을 해서다.


옛일을 떠올리며 얼탱이 표정관리를 하고 있을 때, 분위기가 가라앉는 걸 느낀 카삥이 입을 열었다.


“내 담당이 늘었다? 크크큭. 야야, 얼탱 그만 해라. 이유를 말하던가? 물 성격 모르냐? 원래 진지하지 못하잖아. 금세 까먹고.”

“새끼 은근히 돌려 까네?”

“흐흐. 웃자고. 오늘 좋은 날이잖아? 그 미친 새끼 뒤져서 떠올랐다는데 뭐가 걱정이야? 수사 종결 난다며? 우리 걸릴 일도 없잖아, 그럼.”

“그래! 말 잘했다. 카삥 말이 맞잖아. 얼탱 너 왜 그러냐? 좋은날 기분 잡치게 하지 말고 마시자. 응? 야야, 친구야. 어서.”


‘친구 좋아하네.’

‘지랄...친구는 무슨.’

‘좆같은 새끼들.’


각자 속내를 숨기며 억지웃음으로 잔을 부딪친 세 사람은 이 유쾌하지 못한 만남을 언제까지 이어가야할지 계산했다. 그리고 쉽게 벗어날 수 없는 이유가 생겼음을 이들은 깨달았다. 범죄를 함께했다. 떨어지면 상대가 무슨 짓을 할지 몰라 걱정이 든다. 게으른 성격인 물이 두 사람에게 주기적으로 연락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 새끼 범죄자잖아? 우리랑 상관없는 거 아닐까?”


양주 한 병이 비워졌을 때, 혀가 약간 꼬인 카삥이 본심을 꺼냈다. 꾸벅꾸벅 졸던 물이 눈을 뜰 때, 절제해 마셔 취하지 않았던 얼탱이 충혈 된 눈으로 카삥을 보았다.


“왜 상관이 없어.”

“있나? 있어? 그 새끼 살인마잖아.”

“그렇다고 해도 우리가 한 일들 무죄로 선언되지 않아. 그러니 입 조심해, 카삥. 어디서 술 먹고 지금처럼 늘어놓지 말고.”

“....씨발! 내가 뭐! 내가 언제 떠들고 다녔어?!”

“카삥.... 목소리 커진다.”


물이 슬쩍 달래보지만 카삥은 참았던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너희가 한 거잖아! 난 어쩔 수 없이 끼어든 거잖아! 물이 사고치고 왜 여기로 데리고 왔는데! 너 씨발, 얼탱! 니가 뭐 쳐 죽이자고 그 지랄 한 거 잊었냐? 나 그때 반대했다. 난 씨발 너희가 강요해서 그 새끼 똥까지 치우고 씨발! 좆같아도 씨발 참았는데!”


“...증거 있냐?”


화가 난 나머지 맘에 없는 말을 내뱉고 얼탱은 후회했다. 그러나 이어진 말에 그는 미안함을 잊었다.


“있지! 씨발, 내가 호구새끼냐? 내부 씨씨 내가 다 껐다고 생각하지? 좆까! 니새끼들이 배신 때릴까봐 내가 증거로 다 수집해 뒀다.”


차가워진 둘의 표정을 보지 못했는지 카삥은 계속 자신이 챙겨둔 안전장치들에 대해 주절거렸다.


‘증거를 남겼다고...?’


술이 확 깬 물은 부친의 노한 눈빛을 떠올리며 몸을 떨었다.


-한 번 더 이런 일 생기면 그땐 끝이야! 아들하나 있다고 네 녀석 못 내보낼 것 같아?!


부친과의 관계단절. 그것은 물이 가진 모든 것을 잃는 것과 동일한 일이다. 서른이 되어가도록 직장생활 한번 해보지 못한 물은 부모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 너무나 잘 아는 사람이다. 밖에선 행실이 바르지 못하다는 소리를 듣지만, 집에선 귀여운 아들 노릇을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내 놔!!”


물이 일어나 카삥을 잡고 넘어트렸다. 놀란 얼탱이 주춤 일어나려다 슬쩍 물러났다.


“이 미친 새끼! 그딴 걸 왜 모르는 새끼한테 맡겨! 어디야! 가져와!”


놀라 멍해졌던 카삥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미쳤냐? 니 새끼 이지랄 하는데 내가 오냐하고 가져다줄까? 병신새끼.”

“이!”


주먹을 쥐었지만 물은 때리지 못했다. 카삥의 눈빛을 보고 잘못되면 자신만 손해라는 자각을 했다. 그는 카삥의 몸에서 떨어져 넘어진 의자를 찾아 앉았다. 카삥도 그런 물을 노려보며 의자를 찾아 앉았다. 넘어지고 깨진 병조각과 음식물들을 치운 후, 얼탱은 여전히 말없이 서로를 보는 두 사람 사이에 소주병을 꺼내 놓았다. 마른안주와 소주. 물이 절대 먹지 않는 것들로 상을 다시 차리고 그는 두 사람의 잔을 채웠다.


“술이 넘어가냐?”


물이 비아냥거렸지만 얼탱은 대꾸하지 않았다. 두 잔을 더 마시고 그는 입을 열었다.


“그 집 구조를 봤다면 너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짐작했을 거다. 너 머리 나쁘지 않잖아?”

“뭐? 뭐라는 거야...”

“....낙차가 큰 집이었다. 난 그런 것도 몰랐고.”


물을 노려보던 카삥이 무언가를 짐작했는지 얼탱에게 시선을 돌렸다.


“원래는 위에다 두고 오려고 했다. 달동네라고... 계단 졸라 많은 곳 있다. 거기 두고 오면 그 새끼가 기어 나오던지 어쨌든 걸릴 거라고 생각했고.... 담장 안에 넣기 전에 그 새끼 분명 살아 있었다. 내가 확인했으니 확실해...”


“너! 얼탱...!”


“후우... 주차하는 새끼가 들어와서 다급했다. 급히 밀어 넣는데.... 뭔가 안 좋은 소리 들렸다.”


물도 뭔가를 짐작한 듯 놀란 눈으로 얼탱을 보았다.


“죽었는지... 그건 몰라. 모르지만... 아아... 죽었으면 어쩌나 걱정했다. 너희들에게 말도 못하고, 혹시 갔는데 죽어 있으면 좆 되는 거니까.”


얼탱이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을 보았다.


“알겠냐? 그 새끼 강에서 발견되었다는 소리 듣고 내가 얼마나 안심했는지.”


그 순간 물은 기시감이 들었지만 확실하지 않아 입을 열지는 않았다.


“어떻게 사람들 눈을 피해서 강까지 갔는지... 근처 산에라도 숨어서 지낸 것인지... 모르겠지만... 전에 갔을 때 그 집 안을 봤잖아. 깨끗하더라. 다행이 빈집인데, 핏자국도 없었고. 그 새끼가 그건 또 치우고 갔나 생각했지. 알고 보니 착한 새끼잖아? 큭. 안 그러냐?”


카삥은 어색하게 따라 웃었지만 물은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만 풀어라.... 생각해봐? 너라면 어떻겠어. 솔직히 문제는 네가 일으켰잖아. 그 새끼 그냥 신고하고 끝냈으면 고민할 필요도 없었고, 카삥도 고생하지 않았지. 나도 판단을 잘못해서 그 새끼 집에 찾아가고... 솔직히 쫄았지. 그래서 제대로 생각하지 못하고 차로 친다느니 그런 생각을 한 거고.... 난 카삥 이해한다. 아무리 친해도 이런 일.... 나 많이 봤다. 친구 믿고 있다가 칼 맞은 새끼도 봤고. 카삥이 그 증거란 거 함부로 쓸 놈도 아니고, 그 안에 카삥이 동조한 혐의도 들어가 있으니까.... 안 그래?”


편을 들려나 싶었던 카삥은 얼탱의 말뜻을 이해하고 쓰게 웃었다.


“그래, 담보다.... 걸려도 너희보다는 덜 받겠지.”

“그건 사실이야. 넌.... 그렇지. 야, 물! 인상 그만 쓰고 화해하자. 나도 그 새끼 때문에 신경 곤두서서 너한테 서운한 점 많았고.... 너도 알게 모르게 그런 거 아냐?”


물이 고개를 들었다. 이제 풀리나 싶었던 얼탱은 흔들리는 물의 눈을 보고 불안해졌다.


“야...”

“왜? 뭔데?”

“그 집에... 진짜 사람 안사냐...?”


목소리까지 떨리고 있었다. 소름이 돋았던 얼탱은 급히 생각을 더듬어보았다.


“어...어어. 분명히. 거기 동네 사는 사람들이 사람 안사는 집이라고 했다. 내가 알기로도 집주인이 전에 급사한 곳이야. 나 전근오기 전 일인데, 순찰하다 사수가 말해줘서 기억한다....왜?”


“정말.... 안 살아?”


“그렇다니까! 거기 노인하고 옆집에 사는 애한테도 물어봤고!”


위화감을 느꼈지만 그는 떠올리지 않으려 내리 누르며 답했다.


“사람 안사는 집에...전기는 들어 오냐...?”

“전기....라니?”


물은 급히 술잔을 들어 마셨다. 한잔으로 부족했는지 물은 병을 들어 나발을 불었다.


“크윽....야...내가... 아, 씨발... 아닐 거야...아니겠지?”

“말을 해야 알지! 뭐냐고!”

“...전기선을 봤다.”

“뭐?”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전기선이다. 허나 부촌에는 노출된 전기선을 찾아볼 수 없다. 전주를 모두 없애며 지중설비를 갖췄기 때문이다. 그런 곳에 살기에 전기선을 신기하게 보았다 얼탱이 생각할 때 물이 말했다.


“트럭에 연결되어 있었다.”

“...트럭...이라니?”


얼탱은 최근 시에서 일어난 가장 큰 사건 중 하나인 트럭강탈사건을 떠올렸다.


“트럭이 있었다고... 그 트럭에 담장에서 넘어온 전기선이 연결되어 있었고.”

“에이! 난 또 뭐라고.... 졸라 긴장했잖아! 전기선이야 아무데서나 끌어올 수 있잖아? 안 그래?”


동조를 바라며 카삥이 물었지만 얼탱은 그러지 못했다.


“정말이냐.”

“어, 씨발! 내가 봤다니까. 그 차... 뭐 돌아가는 소리 들리고, 그래서 뭔가 싶어서 봤는데... 야! 이거... 이상하지?”

“전기선이...?”


가만히 이야기를 종업해본 카삥이 갑자기 큰 소리로 웃었다.


“아! 이 새끼들 졸라 간 작네. 야야, 전기선 땡겨서 쓰는 일 흔해. 빈집이라도 전기 들어오니까 그 트럭새끼가 전기 몰래 쓰는 거잖아? 그런 걸 가지고 놀라서... 그게 뭐라도 된다고.”


카삥의 말에 물이 어색한 표정으로 얼탱을 보았다. 얼탱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런 거냐?”

“모르겠지만... 어쩌면. 동네 사람들이 잘못 알리도 없고. 뭐, 내일 내가 순찰 돌다가 한번 볼게.”

“하! 난 씨발... 사람 사나 싶어서 졸라 놀랐네. 아니겠지?”

“야, 물! 사람이 사는데 그 새끼 들어왔는데 그냥 넘어 가냐? 벌써 신고 들어갔지.”

“어? 어어! 그러네?”


카삥의 말에 물의 얼굴이 밝아졌다.


“푸하하! 아 씨발... 졸라 쫄았네. 야! 안주가 이게 뭐냐? 내가 쏠게 뭐라도 시켜라.”


고난과 역경을 함께하면 각별해진다. 서로 미워하지만 위기상황에서는 서로를 도와야 하는 세 사람이었기에 이어진 술자리는 전보다 화기애애해졌다.


“혼자 잘 죽어준 새끼를 위하여!”

“그거 좋네! 위하여!”

“큭! 그래 위하여다.”


*


전날 과음한 탓에 아버지가 나가는 것도 보지 못한 물은 눈을 뜨자마자 아버지에게 전화해 애교부터 부렸다.


“아빠, 나 이제 일어났어.”

-잘하는 짓이다.... 밥은?

“이제 먹을게요. 아빠는요?”

-난 먹었다. 술 작작 먹어. 몸 버려.

“예. 어제 기분 좋은 일 있어서요.”

-음주운전 안했지...?

“네, 이제 안 해요. 대리 불러서 왔어요.”

-잘했다. 아 참, 엄마 백화점 간다고 했는데 네가 모셔다 드려.

“예, 그럴게요. 몇 시에 오세요?”

-오늘 늦을 것 같은데, 대표님하고 저녁약속이 있어서.

“아... 알겠어요. 아빠, 술 조금만 드시고요.”

-네가 누구 닮아서 말술인지 모르는 거냐.


전화를 끊고 볼을 긁적이며 부끄러움을 상쇄하던 그의 눈에 부재중 표시가 보였다.


“뭐한다고 아침부터...”


42건이라는 수를 보고 통화기록을 연 그는 얼탱이라는 사실에 인상부터 썼다.


‘예전에 짤랐어야 하는 새끼인데... 거지같은 새끼.... 니가 아무리 꼬리쳐도 넌 아웃이다, 이 새끼야.’


물도 얼탱이 자신을 싫어하면서 붙어있다는 것을 오래전부터 느끼고 있었다. 그는 조금 어리숙하고 자존심도 강해 자주 대드는 카삥을 더 신뢰하는 편이다. 그렇기에 카삥에게 투자를 해 카센터와 셀프세차장을 만든 것이다. 물에게 얼탱은 적당히 이용하다 버리는 존재였다. 만약 조씨일이 없었다면 물은 얼탱과 작별을 고했을 것이다. 부탁을 할 때마다 마치 자신이 우위에 선 것처럼 비웃는 표정을 몇 번이나 봤기에 물은 얼탱을 좋아할 수 없었다.


“아직은 조금 더 써야하나...”


왜 전화했는지 궁금하기도 했기에 얼탱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전화를 걸었다.


“어, 나...”

-당장 와.

“....뭐라는 거야. 나 지금 일어났다. 그리고 오늘은.”

-당장 오라고. 안 그럼 너 감방에 들어간다.

“씨발...”


전화를 끊고 옷을 입고 나가며 그는 카삥과 얼탱을 욕했다. 별일이 아니라면 크게 화를 낼 것이라 마음먹으며 도착한 곳은 공사가 한창인 제2통조교 아래 강변이었다.


“뭔데? 왜 여기서... 아, 새끼들 졸라 시끄럽네.”


날리는 먼지를 봤는지 물은 급히 마스크를 꺼내 썼다.


“그래서? 왜 불렀냐?”

“그 집에 갔었다.”

“집?”


전날 일을 모두 잊었던 물은 한참 뒤에야 얼탱이 말하는 곳이 어딘지 깨달았다.


“그런데...”

“빈집은 확실해. 몰래 들어가 봤다.”

“그럼 됐잖아?”


*


얼탱은 아침 순찰 때 골목길을 들어가 자세히 살폈다. 얼탱이 말한 트럭이 보이지 않았고, 건너편 인나의 집에는 차가 세대 주차되어 있었다. 돌아 나올 때, 그는 심하게 짖는 흰색 개를 보았다. 준서에게 말을 걸 때 본 개라고 여길 때, 옆에 탄 경사가 말했다.


“그 효자씨 개네?”

“네? 잘 못 들었습니다. 선배님.”

“왜 전에... 이월인가? 날 추울 때, 맨홀 앞에서 봤잖아. 아버지 시계 차고 다니던 사람. 대리운전 한다던가 말했지?”

“예? 아, 예....”


얼탱도 그를 기억해냈다. 순찰 도중 만난 적이 몇 번 있다. 개와 산책을 하던 그에게 처음 입마개를 하라고 한 것도 얼탱이었다.


“지나가다 몇 번 봤었지. 아는 척 할까 하다가 그냥 뒀어. 알고 보니 부자였네? 저 집 예전에 벌집이라고 방 좁게 만들어서 사람 가득 채워서 돈 벌던 곳이거든. 전에는 기숙사였다고 했던가? 그런 집이 무슨 성처럼 변해버렸어. 크으, 돈이 좋기는 좋다.”


순찰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잊은 것이 있다며 경사를 지구대에 내려주고 다시 폐촌으로 향했다. 소공원 건너에 차를 주차한 그는 주변을 살피며 공원 안으로 들어갔다. 확 트인 길이 아닌 곳에서 내부를 살피기 위해서다. 비탈길을 올라 보호종 나무에 발을 디디고 그는 담을 넘었다. 무성한 나뭇잎이 자신을 가려주는 것을 믿은 행위다. 대문 쪽보다 낮은 담장이라 키가 큰 그는 쉽게 넘어갈 수 있었다. 안으로 들어선 그는 집안을 살폈지만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물이 말했던 담장까지 연결된 전기선은 있었다.


‘계량기...!’


계량기의 위치를 찾을 수 없던 그는 내부로 들어갈 방법을 찾아보았다. 그러다 마루문 안쪽 기둥에서 세대분전반을 발견했다. 기둥에 설치되어 있던 차단기는 모두 내려가 있었다. 안을 살피려 했지만 유리문 사이에는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집을 나갈 때마다 내리고 나가는 사람일 수도 있지만...’


냉장고 등 상시전력이 필요한 물품들이 있다면 끄고 나갈 수 없다는 상식을 떠올리며 그는 흐릿한 유리문 안으로 내부를 살폈다. 멀리 냉장고가 서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의 표정이 처음보다 밝아졌다. 더 확실한 증거를 찾기 위해 주변을 살피던 그는 안방 창문의 열린 틈을 발견하고 내부를 보았다. 가구하나 없는 빈방에 벽지도 다 뜯어져 있었고, 장판조차 없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마당에 있던 수도꼭지를 열어보았다. 물은 나오지 않았다.


“...괜히 왔군.”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다. 누군가 몰래 전기를 썼지만 일시적인 일이다. 그 존재와 조씨가 만날 확률은 극히 낮을 것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발견했다면 신고했을 것이다. 조씨를 버린 15일 이후 얼탱은 근처를 순찰하며 골목길 안을 살폈었다. 당시에는 트럭이 없었다. 그는 조씨가 도주한 이후 트럭이 담장 옆에 서기 시작했고, 트럭주인이 주인 없는 집의 전기를 몰래 썼다고 확신했다. 그 확신은 밖으로 나온 후 담장에 달린 도시가스 계량기를 보고 더 확고해졌다.


‘지난달 사용이 제로... 지지난달도 없고...’


2월, 3월에는 사용량이 표시되어 있었다. 4월부터 5월까지는 그 수치가 매우 적었다.


‘집 주인은 있는 집이겠지. 그래서 전기나 수도를 완전히 차단하지 않고 공급을 받고 있었나... 겨울이라 배관이 터질까봐 보일러를 켜두었기에 도시가스는 나왔고... 그렇군.’


그렇게 관리되는 집이 많은 동네다. 순찰을 돌며 세금만 나가고 집은 팔리지 않아 비관해 자살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는 여러 차례 들었었다.


‘지대도 낮아서 불편함이 많은 집이라 더 안 나가겠지.’


그는 가벼워진 마음으로 순찰차로 돌아갈 수 있었다.


*


“뭐냐... 그런 보고를 하려고.”

“보고? 내가...”


울컥한 얼탱은 화를 참으려 물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돌아가서 뭔가 찝찝했다. 그래서 몰래 그 집 조회해봤고...”


물의 침 넘기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려오자 얼탱은 속으로 비웃어주었다. 그런 소소한 쾌감에 그의 기분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후우, 전입자가 있더라.”

“....있다고? 전입자가 뭔데?”

“사람이 이사했다고! 씨발.”


가만히 듣던 카삥이 소리를 지르며 땅을 걷어찼다. 화난 눈으로 보다 물이 급히 얼탱을 보았다.


“사람이 산....?”

“그래... 작년부터 들어와 살더라. 젠장... 여전히 살고 있다고 나오고.”


힘이 풀린 얼탱이 아끼는 차위에 걸터앉았다.




이 글은 픽션입니다. 등장인물의 이름과 단체등은 사실과 같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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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짖는 소리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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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현재 수정이 불가. 20.06.16 49 0 -
91 오래전 시작된 거짓된 이야기 2 +4 20.06.16 41 4 16쪽
90 오래전 시작된 거짓된 이야기 1 20.06.16 20 3 19쪽
89 두 친구 2 +1 20.06.16 24 2 19쪽
88 두 친구 1 20.06.15 23 4 18쪽
87 악인과 악인 4 20.06.14 21 4 22쪽
86 악인과 악인 3 20.06.14 22 2 17쪽
85 악인과 악인 2 20.06.14 18 2 24쪽
84 악인과 악인 20.06.14 19 2 20쪽
83 악인은 선해지지 않는다 7 20.06.13 20 3 23쪽
82 악인은 선해지지 않는다 6 20.06.13 17 2 21쪽
81 악인은 선해지지 않는다 5 20.06.13 18 2 18쪽
80 악인은 선해지지 않는다 4 20.06.13 18 2 21쪽
79 악인은 선해지지 않는다 3 20.06.13 17 2 17쪽
» 악인은 선해지지 않는다 2 +4 20.06.13 22 2 23쪽
77 악인은 선해지지 않는다 1 20.06.13 17 3 20쪽
76 잃어버린 것 2 20.06.12 20 2 19쪽
75 잃어버린 것 1 20.06.12 20 2 19쪽
74 인과응보 20.06.12 18 2 26쪽
73 떠넘기기 2 20.06.12 19 2 25쪽
72 떠넘기기 1 20.06.12 19 2 24쪽
71 세 친구 4 20.06.12 15 2 19쪽
70 세 친구 3 20.06.12 19 3 18쪽
69 세 친구 2 20.06.12 20 3 15쪽
68 세 친구 1 20.06.12 30 3 21쪽
67 조씨의 정체 20.06.11 22 3 18쪽
66 세번째 차 +2 20.06.11 22 2 20쪽
65 가족의 의미 2 20.06.10 20 2 18쪽
64 가족의 의미 1 20.06.10 27 3 27쪽
63 퀵보드를 타고 온 단서 2 20.06.10 19 2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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