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짖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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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연어진
작품등록일 :
2020.05.11 11:29
최근연재일 :
2020.06.16 14:07
연재수 :
9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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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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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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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3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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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1쪽

악인은 선해지지 않는다 6

이 글은 실제 일어난 사건들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DUMMY

키 큰 남자가 얼탱인지 그는 확신하지 못했다.


‘얼탱인가?’


키 크고 말라 보인다고 다 얼탱일까 생각하며 그는 카센터로 다가섰다. 장봉진도 그를 보고 그 자리에 서서 인사할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자신을 숨길 생각은 없지만 꾸미기 싫어 그는 편한 복장으로 나섰다. 모자를 쓴 이유는 전날 미용실에서 만들어준 머리를 감고 잤더니 이상하게 변해 있어서다. 마스크는 먼지가 많은 날이라 쓰고 나왔다. 선글라스는 잠을 조금 자서 눈이 많이 충혈 되어 쓴 것이다.


“차 팔려고 나왔습니다.”

“예, 제가 전화를 한 사람입니다.”

“시승하시겠습니까.”

“좋죠.”


장봉진이 익숙하게 셔터를 여는 것을, 열린 자물쇠의 열쇠를 다시 품에 넣는 것을 그는 확인했다.


‘얼탱일까...’


가능성이 높다 여기며 그는 장봉진이 차를 끌고 나오는 것을 보았다.


“먼지가 끼어서 세차부터 해야겠습니다.”


그는 말릴 명분이 없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차를 몰고 옆 세차장으로 간 장봉진은 셀프청소기 봉을 들고 불고 빨아 먼지를 대충 정리했다.


“타시죠.”

“예.”


차에 올라탄 그는 익숙하게 차량을 조정했다.


“전에 타셨나 봅니다.”

“예...”


상대에 대한 의심이 풀리지 않았기에 그는 단답하며 차를 운행했다. 구매할 의사가 있었기에 그는 장봉진에게 차량등록소로 가자고 말했다.


“바로 사시려는 겁니까.”


그 특유의 말투에 그가 장봉진을 슬쩍 보았다. 차창 밖에 시선을 둔 옆 얼굴이 낯설지 않다 그는 다시 느꼈다.


“예.”

“그러실까 싶어서 서류는 준비해뒀습니다. 차량등록 사업소 위치 아십니까.”

“예.”

“그럼 가시죠.”


보험가입부터 해야 했기에 그는 팩스가 올 때까지 장봉진과 어색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두 사람은 대화를 하지 않고 있었다. 그는 이유가 있었고, 장봉진은 조급해져 있었다. 20분이 안되어 팩스가 도착했지만 두 사람에게는 매우 지루하고 고된 시간이었다. 준비한 서류들과 양도증명서를 내고 둘은 또 새로운 차량등록증이 나오기를 기다려야 했다.


-정남님. 정남님.


“큭!”


그가 웃으며 일어나자 장봉진이 그를 힐끔 보았다. 거래하며 상대의 이름도 보지 않았음을 깨달은 순간이다. 그가 서류를 모아 제출했고, 먼저 양도인란에 서명했기에 볼 기회가 없었다. 흔한 이름이라 생각한 장봉진은 자동차등록증을 받고 나온 그가 내미는 봉투를 보았다.


“현금입니다.”

“아.”


슬쩍 열어보고 주머니에 넣자 그가 먼저 밖으로 나갔다. 정봉진도 외떨어진 곳에 위치한 차량등록소에 남겨질까봐 급히 쫓아가 조수석에 올라탔다.


‘음? 아아...’


이해한 그는 차를 몰아 다시 카센터로 달렸다.


“집에 스노우타이어 사둔 거 있는데...”

“겨울에....음...”


경사로를 떠올린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차 가지고 함께 가시죠. 그런데 얼마에...”

“사놓고 한 번도 안 썼습니다. 지금 타는 차와는 맞지 않아서 중고거래로 내놓았는데... 그보단 싸게 드리죠.”


50만원에 샀지만 20만원에 준다는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여 동의해 주었다. 카센터 앞에서 내린 장봉진은 카센터를 정돈한 후 나와 문을 잠갔다. 키를 가져간다면 얼탱이 분명하다 여기며 그는 주시했다. 그러나 키는 세차장 사장에게 건네졌다.


‘아닌가.’


그때 장봉진이 차를 몰고 나왔다. 카센터 뒤 공터에 세워져 있던 차량이 나오자 그는 활짝 웃었다.


“얼탱...이 새끼.”


7221. 얼탱이라 추정된 인물이 타고 다니는 벤츠의 차 번호다. 그는 조용히 앞서가는 벤츠의 뒤를 쫓았다. 흥분한 것은 잠시뿐이다. 상대를 보자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일부러 변장하지 않았지만 마스크에 모자, 선글라스도 꼈다. 하지만 가끔 선글라스도 벗었고, 모자도 벗어 부채질을 했었다. 같이 음료를 마실 때는 마스크도 벗었다.


‘무슨 걱정이야. 만나서 경고할 생각이었으면서.’


상대는 자신이 뭘 했는지 모른다. 예측은 할 수 있겠지만 증거는 이미 사라진 후다. 그를 비난할 입장도 못 된다. 오히려 자신이 더 우위에 서 있음을 떠올리며 그는 자신감을 북돋았다.


‘원룸에 사는군.’


물의 집처럼 대단한 집이 아니란 것에 그는 얼탱에 대한 호감도를 높였다. 카삥과 물과 달리 그동안 전면에 나오지 않았기에 드는 호감이기도 했지만, 그 생각은 잠시 잊은 기억을 되살리며 반전되었다.


‘저 놈이라면 만세형을 들어서 던져 넣을 수 있겠지....’


말랐지만 떡 벌어진 어깨와 옷 밖으로 내보이는 근육들을 보았기에 그는 예전에 세운 가설의 일부가 들어맞았다고 확신했다.


“잠시 기다리십시오.”

“예.”


기다린 보람이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얼탱은 동거중인 여성과 함께 타이어를 옮겼다. 현관 앞에서 그가 있는 차까지 차바퀴 하나를 굴려온 여인은 그를 보고 인사도 했다.


“사주셔서 감사해요. 집이 좁은데 처치곤란이었어요. 20에 사기로 하셨다죠? 알아보니 그보다 싼 물건도 있더라고요. 저희가 나중에 양심에 찔릴 것 같아서 그보다 싸게 15만원에 해드릴게요.”

“....감사합니다.”


그는 지갑을 꺼내 두둑한 현금 속에서 오만원권 세장을 꺼냈다. 그리고 양손으로 정중히 건네며 고개를 숙였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타이어를 꺼내 다락에 올려두었다. 아직 버리지 않았던 조씨의 유품들 곁이다. 그곳에 앉아 그는 멀티탭을 콘센트와 연결한 후 충전기를 찾아 핸드폰에 연결했다. 그의 핸드폰이 아니다. 스트랩이 잘린 핸드폰은 조씨의 것이다. 그는 보지 않아도 확신할 수 있었다.


핸드폰을 찾은 곳은 차의 트렁크 안이다. 트렁크의 덮개 안쪽에 들어가 있던 것이다. 영상을 살피다 발견한 것이었고 바로 회수하려고 했지만 세차장 사장이 오는 바람에 실패했었다.


“셋 다 이건 모르고 있었겠지.”


알았다면 어떻게든 처분했을 것이라 그는 생각했다. 충전을 하며 핸드폰을 켜 보았다. 액정일부가 깨져 있지만 화면은 쉽게 켜졌다.


“패턴...”


지문인식이나 패턴으로 잠겨 있는 핸드폰을 보던 그의 눈에 액정에 새겨진 피얼룩이 보였다. 그는 얼룩을 따라 손가락을 움직여 보았다.


“....만세형.”


핸드폰 안에는 진실이 있었다. 살아서 정신이 있는 동안, 조씨가 기록해둔 것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 안에는 밖에서 들리는 소리들을 녹음한 것도 있었다.


-차로 쳐서.... 통조교에 버리면....

-난 빠진다. 난!

-야, 얼탱!

-물 저 새끼... 지가 잘못해놓고 씨발...


“큭....크크큭....”


흐릿한 의식으로 메모를 남겨 알아보기 어렵지만, 조씨가 어떤 심정이었는지 짐작되는 글도 있었다. 그는 가족에게 연신 미안함을 전하고 있었다. 위기의 상황에서 그는 아무 곳에도 도움을 청하지 못했다. 세 사람이 자신을 풀어줄 것을 알게 된 후에는 안심하며 마지막 글을 남겼다.


[돌아가면.... 자수할게. 미안해... 영지야...보람아...상준아...아빠도 곧....]


“멍청이...”


그는 누워야 했다. 불쌍하게 여기지 말아야 하는데 울음이 자꾸 나오려 했다. 눈을 팔로 막아보지만 흘러나와 버린다.


“애들이 불쌍해서 우는 거야. 젠장...”


*


9월 30일. 불안감에 출국일을 앞당기려 하던 물에게 구월 마지막 날을 넘기지 못한 카삥의 소식이 전해졌다.


‘오, 씨발! 씨발!’


그는 기쁨이 흘러나와 전화를 걸어준 박테리의 부친에게 전해질까 봐 입을 막고 있었다.


“됐다!”


통화를 마치고 환성을 지르며 기뻐하던 그는 이제 편히 살게 되었다며 아이처럼 방방 뛰었다. 그 소란을 듣고 부친이 문을 열자 그는 뛰어가 말했다.


“아빠, 그 새끼 죽었데요!”


놀란 눈을 한 물의 부친이 이내 표정을 굳혔다.


“멍청한 놈. 이럴 때일수록 더 자중해야지! 서둘러 옷부터 갈아입어!”

“옷은 왜요?”

“친구가 죽었는데 그럼 가만히 있어? 당장 장례식장 찾아가. 그리고 화장하는 것까지 보고 와!”


부친의 명이 아니었다면 물은 신나서 놀러 다녔을 것이다.


*


10월 2일. 박테리의 삼일장의 마지막 날인 오늘 얼탱이 찾아왔다. 삼일 내내 가식을 연기해야했던 물은 그를 보고 반가움과 미움이 반씩 섞인 표정으로 다가갔다.


“안 올 줄 않았더니.”


얼탱은 대답하지 않고 인사를 마친 후 나가려 했다. 급히 쫓아나간 물이 그런 얼탱을 붙잡았다.


“...놔.”

“너... 야, 잠깐 대화하자.”


지하 주차장으로 데리고 간 물이 얼탱을 데리고 들어간 곳은 카삥의 차였다.


“...너 왜 이걸?”

“내 명의니까. 아, 네 차는 네 명의로 전에 변경했지만, 이건 아니거든.”


치사한 놈이라 속으로 욕 할 때, 물이 말했다.


“억지로 오긴 했지만, 여기 있으니 친구는 친구였나 싶더라.”

“개소리...”

“....뭐, 그런 소리 들을 만 하지. 사고로 그렇게 되었지만, 오랫동안 같이 지냈으니까. 너 군대 갔을 때도 카삥은 옆에 있었고. 영정사진 보니까 저절로 눈물도 나오더라.”


함께 숨을 쉬는 것조차 거북했던 얼탱은 더는 들어줄 수 없어 차에서 내리려 했다.


“그 집에 CCTV있었다.”

“....뭐?”

“못 봤나 보구나. 거기 있었어. 구석에... 너 찍혔을 거다.”

“너... 너 이 새끼!”


흥분해 멱살을 잡자 물은 웃었다.


“흥분하네? 왜 치려고? 잘 생각해라.... 너 요즘 결혼준비 한다며?”

“알면 왜 말을 안했어?!”

“말하면? 뭐 달라져? 안 찍혔나 싶었지. 찍혔으면 그 집주인이 그냥 있었겠냐?”


힘주어 잡은 손을 풀고 물은 구겨진 룸미러를 돌려 펴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혹시라도 있을까봐 근처에 갔는데 지금은 작동 안하는지 꺼져 있더라. 전에는 켜놨는지 그게 불확실해... 너 들어갔을 때, 전선 같은 거 연결되어 있었냐?”


멍해진 머리를 흔들어 깨우고 얼탱은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하지만 잊으려 노력하던 기억들이라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나 곧 유학 간다. 아빠가 손써서 거기 국적부터 딸 거야. 난 그렇게 안전해지지만... 니가 걱정이야. 너 경찰이잖아? 도움 줄 수는 없지만... 이런 건 말해줘야 할 것 같아서 말이야.”


어깨를 두드리며 물이 나가려했다.


“봉진아. 그래도 친구였으니까 이런 말도 해주는 거다.”


어깨를 두드리는 손을 장봉진, 얼탱은 꽉 쥐었다. 화난 눈으로 물이 보자 얼탱이 피씩 웃으며 핸드폰을 꺼냈다.


-야! 야, 나 좆 됐다. 좆 됐다고! 씨발 어떤 새끼가 차 유리에 술병 던지고, 라이트 깨고 그지랄 하기에 열 받아서 졸라 팼는데, 씨발! 이 새끼 죽은 거 같아. 야, 얼탱... 나 좀 도와줘. 나 미치겠다. 차 리스도 끝나지 않았는데! 아빠에게 뭐라고 말 하냐..... 여기 삼거리 공업사....


저장된 녹음내용을 틀어주자 멍하니 듣던 물이 차 문을 닫으며 다시 앉았다.


“뭐냐...”

“너 혼자 빠져나갈 생각은 하지 말라는 거다.”

“큭... 이 새끼... 너 앞길 막히고 싶냐?”

“갈 때까지 갔어. 나도... 내가 가면 혼자 갈 거 같냐. 너 뒤 봐준 거 다 불면 너 멀쩡할 거 같아? 거기에 네 애비... 그 새끼 비리가 한둘이야? 지금도 간당간당하지?”

“....선 넘네? 그 말 후회한다.”

“후회? 큭... 널 만난 것이 내 인생의 가장 큰 후회다. 너 아직도 카삥이 남긴 CCTV자료 못 찾았지?”


입술을 씹으며 물이 분을 삭일 때 얼탱은 쾌감을 느꼈다.


“나도 찾아봤지만 아무래도 뻥인 거 같다. 그러니 그건 신경 쓰지 마.”


아까와 다른 말투에 물도 경계심을 낮췄다.


“대신 네가 이건 해결해.”

“뭐? 뭘...”

“그 집에 CCTV있는지. 있으면 녹화된 거 있는지 니가 확인하라고.”

“내가 왜...”

“머리 굴려봐. 내가 가면 눈에 띄잖아.”

“나도 씨발 얼굴 팔린 사람이야.”


길에서 알아보는 사람하나 없는 인기 없는 래퍼임을 떠올리며 얼탱은 헛웃음을 흘렸다.


“나 바쁘니까, 이건 니가 알아서 해. 난 전에 한번 들어간 적도 있어서 아무래도 위험하니까. 알았냐?”

“씨발... 집주인 있다며...”

“큭... 그게 걱정이었냐? 그건 괜찮다. 그 집주인... 너도 알지? 트럭강탈사건.”

“트럭...?”

“모르냐? 그 살인마 새끼 발견되기 전에 일어난 사건인데. 트럭을 어떤 새끼가 강탈해서 차주인 끌고 60km를 질주하다가 경찰이 몰아붙이니까 다리에서 뛰어내렸잖아. 차하고 같이.”

“어...어어, 들은 것 같다.”

“그 사건 피해자가 바로 그 집 주인이다. 이름이 특이한데 정날이라는 사람이다. 범인새끼가 물에 빠져 죽었는지 안 잡힌 사건인데 용감한 시민상도 받지 않고 보상금도 피해 입은 곳에 주라고 거부한 사람이지.... 정의로운 사람.”


‘나와 달리.’


“그런 사람이 집주인이다. 조씨 발견했는지 조금 걱정했지만, 생각해보니 그런 사람이 조씨 숨겨줄 리는 없잖아? 보니까 니가 노리는 그 차배정씨 딸하고 같이 살림 차린 거 같더라. 건너편에 집 수리해서.”

“뭐?!”

“큭... 왜? 그런 사람이 네가 노리는 여자 채가니까 기분 나쁘냐?”

“너... 사실이냐? 그 말...”


과거 얼탱은 좋아하는 여자를 물에게 빼앗긴 적이 있다. 그래선지 그에 대해 말하는 것에서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다.


“사실이지. 그 사람도 재산은 있는 것 같더라. 그 집 앞 골목길도 본래 그 사람 것이었고, 재산 반환되어서 소유주 변경된 거 확인했다. 시에 무상으로 땅도 기부한 집안이지. 집안도 대대로 이 도시의 터줏대감 같은 곳이고. 그 사람 증조부 이름으로 공원이름도 정해졌고....”


비리와 추태에도 재산을 불리고, 권력자로 군림해온 물의 집안과 다르기에 얼탱은 기분 좋게 이야기 할 수 있었다.


“집안은 조금 복잡한 것 같더라. 생부를 잃고, 지금은 배다른 동생들을 데리고 살고 있고... 재산도 몇 년 전에 물려받은 것 같고. 땅값 오르면 팔 생각으로 보관하는지, 집은 사용하지 않고 관리만 하는 것 같고....”


“그래서... 그거랑 CCTV랑 무슨 상관인데?”


‘너랑 다른 사람이라고...’


“확인만 해봐. 크게 걱정은 안 되지만, 그 사람이 소홀히 해서 아직 모를 수도 있으니까.”


“거기 가서 내가 걸리면?”


“걱정 말라니까. 그 사람 다리 다쳐서 장기 입원 중이다.”


수십억의 차가 서 있는 것도 얼탱은 몇 번이나 보았다. 그런 집안의 사람이 돈 아끼려고 빨리 퇴원했다는 생각을 얼탱은 가질 수 없었다.


“건너편 집 식구들도 최근에 해외여행 갔다고 들었다.”

“누구한테?”

“있어... 그 동네에 제일 오래 산 노인. 그러니 걱정 말고 들어가서 확인해봐. 그것만 확인하고 우리 관계 끝내자. 너도 나랑 계속 만나면 안 좋아. 난 너 볼 때마다 열 받거든? 열 받아서 나도 모르게 미친 짓 할지도 몰라. 그건 나도 싫다. 좆같지만 우린 운명 공동체야. 그렇지?”


웃으며 얼탱이 차에서 내렸다. 그는 오래 묵은 체증이 사라진 듯 기뻤다. CCTV를 그도 보았었다. 기억에서 잊었던 이유도 물과 대화하다 떠올릴 수 있었다.


‘더미보고 겁먹고...병신새끼.’


그의 집 앞에 설치된 CCTV는 가짜다. 녹화는 되지 않고, 위협을 목적으로 설치하는 싸구려다. 배터리가 없으면 불빛도 켜지지 않는 것이다. 얼탱은 물을 놀리려고 그를 숨겼다. 담장을 넘어가다 신고를 받아 가택침입으로 고소를 당하는 것이 그가 생각한 가장 이상적인 일이었다. 물의 뒷배가 있으니 사건은 커지지 않을 것을 알고 있고, 그래서 자신과 연관된 일들이 밝혀지지 않음을 믿기에 강요할 수 있었던 것이다.


좋은 일은 연이어 생긴다고, 오늘 그동안 신경을 쓰게 했던 중고차를 구입한다는 사람도 나타났다. 차 판 돈과 그동안 모은 돈으로 조금 넓은 곳으로 이사할 생각에 얼탱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집으로 갈 수 있었다.


*


장례식을 끝내고 물은 집으로 돌아와 쓰러져 잠부터 잤다. 푹 자고 일어난 그는 좋던 기분이 떠오른 생각에 저조해지자 나직이 욕을 내뱉었다.


“쯧... 하려던 일이니까.”


얼탱에 대한 미안함이 조금은 있었고, 뒷일을 정리하고 가야 미국에서도 안심하며 살 수 있기에 그는 오래전부터 CCTV에 대한 진실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아 계속 미루던 상황이었다. 얼탱이 집주인과 그 가족이 모두 떠나 있음을 확인해주었기에 그는 좋은 기회라 여겼다.


창을 열어 밖을 본 그는 이내 커튼까지 치고 다시 침대위로 올라갔다. 밤을 틈타 침입해야겠다고 결심한 그의 표정은 밝았다.


*


물이 코를 골고 자고 있을 시각, 그는 얼탱의 주변을 돌고 있었다. 얼탱의 집 앞에서 잠복하면서 혹시 얼탱이 자신이 탄 차를 알아보지 않을까 그는 걱정했다. 도색을 새로 했다는 것을 알면 걱정이 덜 할 테지만, 그런 세세한 사정을 그는 알지 못한다.


그가 알게 된 것은 이 차가 처음 조씨를 옮기는데 사용되었다는 것과 한동안 조씨가 트렁크와 조수석에 머물렀다는 것이다. 차는 정리가 되어 있었다. 흔적이 많이 지워져 있었지만, 카삥은 그리 세세하게 청소하지 않았다. 남의 일이라 여겼기에 보이는 것만 치웠다. 덕분에 그는 조수석 시트 사이에서 핏자국과 전조등 커버 조각을 발견했다. 트렁크에서도 여러 증거물이라 부를만한 것들을 찾아냈다. 시트를 완전히 뜯어 청소하지 않아, 트렁크 바닥에 피 얼룩이 남아 있었다. 특히 사용한 적 없던 바닥에 있던 오래된 응급도구함에는 고여 굳은 피도 있었다. 너무 적나라하게 남은 증거들에 그가 오히려 기막혔을 정도로 세 사람의 뒷정리는 너무나 허술했다. 차를 폐차하지 않고 판매한 것도 그에게 비상식적인 일로 여겨졌다.


‘남 말할 처지는 아니지.’


사체를 숨기고, 데리고 다녔던 자신의 행동을 떠올리며 볼을 붉힐 때, 얼탱의 차가 도착했다. 그는 오늘 얼탱을 만나 그에게 사실을 전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끝난 일이나 더는 접근하지 말고 끝내자고. 그리 좋은 생각은 아닌듯했지만 다른 생각은 떠오르지 않아 무작정 얼탱의 집 앞으로 온 것이다. 차를 보고 시동을 켠 그는 빌라 아래쪽 주차장으로 다가가려다 급히 시동을 껐다.


“저...새끼...”


얼탱은 정복을 입고 있었다.


‘경찰이었어?’


*


그의 생각은 정복 입은 얼탱을 본 순간 모두 달라졌다. 적극적이지 않던 범죄자가 최악의 범죄자로 여겨졌다. 삶을 위협하는 존재인 세 사람 중 가장 악질적인 이도 얼탱으로 바뀌었다.


“해충새끼가...”


그는 분했다. 그동안 수없이 마주친 경찰 중 한명이었기에. 어디서 본 이름이었다 여긴 어제의 기억을 떠올렸다. 처음 집돌이와 산책하던 중 입마개를 하라고 지적한 경찰이 얼탱이었다. 집안을 기웃거리고, 준서와 대화를 했던 이도 얼탱이다.


“아!”


그는 드디어 깨달았다. 집돌이가 왜 경찰을 보면 경계하고 짖었는지. 아무에게나 짖던 것이 아니다. 얼탱의 냄새를 기억하기에 그런 행동을 보인 것이다. 그는 또 깨달았다. 삼거리에서 집돌이가 심하게 짖었던 날 건너편에 검은 차량이 서 있었다는 것을.


‘다 알고 있었구나. 너는...’


냄새가 남아 있기에 공구함에 들어가는구나, 그는 생각하며 차를 움직였다.


‘계획을 다시 세워야해.’


그는 집에 들어가면 상념이 일까봐 일부러 국밥집을 찾아갔다. 국밥과 소주를 마시며 생각을 정리한 후, 그는 차를 움직일까하다 고개를 저었다. 가까운 거리라도 음주운전은 좋지 않다며 아침 일찍 찾으러 와야겠다고 결심했다.


집으로 걸어 올라가던 그는 운영 중인 간이 주차구역에 주차된 차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와 계약한 차량은 아니라 여기며 한참을 올라가다 그가 멈춰 섰다. 급히 돌아서 달린 그는 번호판을 확인했다.


‘2330!’


카삥의 벤츠였다. 혹시 같은 번호인가 싶었지만, 그런 차가 우연히 자신이 사는 곳에 주차할까 싶어졌다. 그는 또 달렸다. 무언가 안 좋은 생각이 계속 들었다. 대문을 열고 그는 외쳤다.


“집돌아!”


답하지 않는 개다. 그래도 오기 전 문 앞에서 대기해준다. 싫은 척 굴지만 가까운 곳을 맴돈다.


“집돌아...”


보이지 않는 집돌이를 찾아 그는 집 뒤로 돌아갔다. 공구함이 보이고, 그 옆에 누운 집돌이가 보였다. 열린 뒷문은 뒤이어 보였다. 그는 천천히 다가가 굳어버린 집돌이를 만졌다.


“...고기 먹었구나.”


생고기 조각이 옆에 있었다. 눈에 확 띄는 다른 색의 이물질이 붙어 있는 고기였다. 그는 고기조각을 공구함에 넣고, 집돌이를 안아 그곳에 넣어주었다. 열린 공구함을 닫고 그는 침입자가 있는 집안으로 발을 옮겼다.


삐익.


그의 무게에 마루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릴 때, 누군가 다급히 뛰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어어!


비명에 이어 쿵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신발을 벗고 소리가 들린 곳으로 움직였다. 화장실 불을 켜고 문을 연 그의 눈에 경련하고 있는 남자가 보였다.


“....너 물이구나.”


그는 물의 경련이 끝날 때까지 가만히 지켜보았다.




이 글은 픽션입니다. 등장인물의 이름과 단체등은 사실과 같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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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잃어버린 것 1 20.06.12 20 2 19쪽
74 인과응보 20.06.12 18 2 26쪽
73 떠넘기기 2 20.06.12 20 2 25쪽
72 떠넘기기 1 20.06.12 19 2 24쪽
71 세 친구 4 20.06.12 15 2 19쪽
70 세 친구 3 20.06.12 19 3 18쪽
69 세 친구 2 20.06.12 20 3 15쪽
68 세 친구 1 20.06.12 30 3 21쪽
67 조씨의 정체 20.06.11 22 3 18쪽
66 세번째 차 +2 20.06.11 22 2 20쪽
65 가족의 의미 2 20.06.10 21 2 18쪽
64 가족의 의미 1 20.06.10 27 3 27쪽
63 퀵보드를 타고 온 단서 2 20.06.10 19 2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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