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에 핵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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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생각.
작품등록일 :
2020.05.16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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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28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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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24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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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 Meets Girl(2)

DUMMY

유논은 꼬맹이가 내미는 오크고기 꼬치를 쥐고 쪼그려 앉았다.

조그마한 게 자꾸 보채는 바람에 얼떨결에 받게 된 것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먹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유논에게 있어서 영양 보충 용도로의 식사는 마정석만으로 족하지만, 다른 음식물도 분위기를 위해 먹는 것 정도는 할 수 있다.


오크 고기 자체도 멸망 이전이었다면 식인행위 취급받았을 음식이지만, 이런 시대에는 오히려 당연한 식료품이었다.

황야에서 고기를 얻는 방법은 오직 사냥뿐이다.

괴물을 사냥해서, 그 고기를 취하는 것.

오크 고기 또한 그러한 육식의 일환에 불과하다.

이에 역겨움이나 생리적인 거부감을 느낀다면 이런 세상에서 오래 살아가기는 이미 글렀다는 뜻이다.


저 소녀 또한 오크 먹기를 주저하지 않았기에, 괴물의 고기를 먹고 피를 마시기를 주저하지 않았기에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리라.


다만 지금 이 눈앞의 고기는······이 상태 그대로 먹기에는 조금 문제가 있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변종 오크들은 기본적으로 전부 방사능에 의해 변이된 괴수들.

그 고기를 먹으려면 우선적으로 방사능에 대한 대책이 마련되어 있어야만 한다.


유논은 품속에서 정화코인 한 닢을 꺼내 오크고기에다 대고 흔들었다.

정화교단의 방사능 정화기술이 집약된 대체화폐가 부르르 떨며 방사선을 흡수하고는 차갑게 굳었다.

정화할 수 있는 방사선의 총량을 가득 채웠다는 의미.


이제 이 정화코인은 더 이상 화폐로서의 가치가 없다.

정화가 끝났기 때문이다.


유논이 버리고자 바닥에 튕긴 코인을 꼬맹이가 주워들었다.


“와아, 신기하다. 색깔이 변하는 동전? 이런 것도 다 있구나.”


아무리 시라센이 꽤나 변두리에 위치한 지역이라지만 정화코인을 모르다니.

유논은 녀석의 척박한 상식수준에 의문을 느끼며 소녀를 바라보았다.


녀석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오크 고기들을 입속에 집어넣고 있었다.

아무리 불에 구웠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잔뜩 묻어있을 방사능은 신경조차 쓰지 않는 그 모습에 유논조차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방사능은 신경 안 쓰는 거냐?”

“방사능? 그게 뭔데? 나쁜 거라고는 이야기 들어본 적 있는 것 같은데. 괴물 같은 건가. 여기 근처에 있어?”


지금 네가 목구멍으로 삼키고 있다.

유논은 턱 밑까지 올라온 일침을 애써 삼키며 오크 고기를 뜯었다.


저 꼬맹이가 저렇게 방사능 가득한 고기를 마구 먹어치운다 해서 그에게 나쁠 건 없었다.

오히려 피폭돼서 빨리 죽으면 골치 아플 일도 없고 아주 간편할 것이다.


그래, 차라리 그 편이 낫다.

유논은 그리 생각하며 고기를 씹었다.

오크 고기는 기름기 가득하고, 질겼다. 하지만 마정석보다야 나았다.

유논은 오랜만에 느껴보는 진짜 음식의 질감을 미식하며 입을 열었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넌 어디에서 온 거냐.”

“응? 어디에서 오긴. 난 계속 여기 있었는데.”

“여기 있었다고? 그러니까, 여기서 살았다고?”

“응!”


유논은 미간을 좁혔다.

계속 이 금고방 안에서 살아왔다고?

그렇다면 그가 포트 시라센에서 활동하며 성주 저택을 들락날락하는 동안 바로 옆에서 저 황실 직계 후손이 생활하고 있었다는 소리 아닌가.


어쩐지 금고라기보다는 일상적인 생활공간에 가까운 내부 풍경인지라 이상하다고 생각하긴 했었다.

유논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물었다.


“그럼 여기에 보석이나 금붙이 같은 보물은 아예 없었다는 이야기지?”

“응!”


쓸데없이 활기찬 대답에 유논은 이를 갈았다.

시라센의 성주가 이 금고방 안에 그가 가장 아끼는 보물이 들어있다며 껄껄 웃고 자랑하던 것이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그런데 정작 내부로 들어와 보니, 보물은 온데간데없고 금고는 사실 한 소녀의 생활공간에 불과했다니.


‘저 여자아이가 네가 말한 그 값어치를 매길 수 없는 보물이라는 뜻인가, 시라센 성주?’


시라센 성주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황실의 직계 후손을 숨겨둔 것일지는 모르겠지만, 유논은 결코 동의할 수 없었다.


저건 보물 같은 게 아니었다.

차라리 화약고나 폭탄 따위라면 모를까.


“아저씨는 이름이 뭐야?”

“···이름? 갑자기 그건 왜 물어보는 거지?”


상념에서 빠져나온 유논이 딱딱한 목소리로 반문하자, 소녀는 힘차게 대답했다.


“서로의 이름을 아는 게 관계 형성의 시작이랬는걸! 아저씨랑 나는 서로 고기도 나눠먹은 사이잖아. 이제는 통성명을 할 차례지!”


정화코인 같은 상식도 모르는 꼬맹이가 관계 형성, 통성명 같은 어려운 말을 할 줄 안다는 것에서 느껴지는 지식의 불균형.


유논은 어이없어하며 물었다.


“통성명이 관계 형성의 시작이라고? 누구한테 들은 말이지?”

“책에서 읽었어. 그래서 이름이 뭐야, 아저씨?”


몹시 집요한 꼬맹이였다.

그러나 유논은 이 꼬맹이에게 이름을 알려줄 마음이 전혀 없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남에게 함부로 가르쳐주지 않는다.


“알려주지 않을 거다.”

“어···그러면 안 되는데. 관계 형성해야 되는데. 고기도 나눠먹었는데······아!”


우물쭈물하던 소녀가 문득 뭔가 떠오른 듯 눈을 빛내고 소리치려 했으나, 유논은 사전에 차단해 버렸다.


“물론 네 이름도 듣지 않을 거다. 그러니 알려주려 마라.”


그는 남에게 이름을 묻지 않는다.

저 꼬맹이가 말했다시피, 서로의 이름을 알면 관계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그는 더 이상 인간관계라면 지긋지긋한 사람이었다.


잠시 시무룩해하는가 싶던 소녀는 이내 기운을 차리고 입을 열었다.


“그래! 싫다면 강요하지 않을게. 원하지 않는 일을 강요하는 건 폭력이랬어.”


저 꼬맹이, 아까부터 자꾸 쓸데없이 이상한 부분에서 고상한 어휘를 사용하고 있었다.

멸망 이전의 시대에서나 사람들이 저런 어휘를 사용했지, 생존과 욕구의 해결만이 유일한 덕목이 되어버린 폭력의 시대에 저런 말투를 쓰는 꼬맹이를 만나게 될 줄이야.

유논은 멸망 이전으로 돌아간 것만 같은 기시감을 느끼며 소녀의 말을 들었다.


“그 대신 다른 건 물어봐도 돼?”

“질문에 따라 다르지.”

“그러면 아저씨는 어디서 왔는데?”


출신지를 물어보는 건가.

유논이 답하지 않겠다며 거절하려던 찰나였다.


”이건 아저씨도 나한테 물어봤던 거잖아! 난 대답했고. 이제는 아저씨가 대답할 차례야.”

“······.”

“응? 아저씨도 나처럼 요새 생존자잖아. 시라센 어디에서 온 거야? 여기까진 어떻게 온 거고?”


나도 대답했으니, 이제는 네가 대답할 차례라 이건가.

이른바 질문 등가교환의 법칙이었다.


유논은 또박또박 조리 있게 말하는 소녀의 모습에 적잖은 곤란함을 느꼈다.

열다섯 짜리 여자아이가 저렇게 말을 잘할 줄이야.

한동안 말보다는 칼이, 토론보다는 전쟁이 더 가까운 삶을 살아온 마법사로서는 꽤나 신선하게 느껴지는 일이었다.


결국 유논은 장단이나 맞춰줄 겸 입을 열었다.

어차피 대답하는 것 자체는 일도 아니었다.


“나는 시라센 사람이 아니다. 요새 바깥쪽에서 왔지. 저택을 찾아 올 수 있었던 건······내가 시라센 성주의 친구였기 때문이다. 난 그의 집을 찾아서 여기까지 왔다.”

“어······.”


전부를 말한 것은 아니되, 진실의 일부는 섞여 있는 유논의 대답에 소녀는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수많은 인간 군상들을 보아온 유논은 그 얼굴빛만으로도 저 되바라진 꼬맹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차렸다.


저 꼬맹이, 지금 건방지게도 그가 한 말을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유논은 그 사실을 간파하고서도 불쾌해하기보다는 오히려 흥미로움을 느꼈다.

그가 완벽하게 사실만을 말한 것은 아니지만 분명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저 꼬맹이는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이 대답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한 것일까.


“왜, 의심스럽나?”

“응, 아저씨 완전 수상해.”

“어느 부분이?”

“전부 다.”


소녀는 팔짱을 낀 채 단언했다.


“우선, 아저씨가 성주 아저씨랑 친구였다고?”

“그래. 친구였지.”

“그럼 성주 아저씨 이름 뭔지 말할 수 있어?”

“······.”


유논은 침묵했다.

그는 타인의 이름을 묻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럼 그렇지.’ 싶은 소녀의 눈빛에 어째선지 기분이 나빠져 입을 열었으나······.


“꼭 이름을 알아야지만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건 아니지.”

“아저씨, 그런 건 친구가 없다고 하는 거야. 이름도 뭔지 모르는 친구가 세상에 어디 있어?”

“······.”

“아저씨 설마 친구 없어?”


그 순수한 호기심이 담긴 질문에 유논은 짜증이 솟구치는 것을 느끼며 답했다.


“카인, 카인 시라센. 이제 됐겠지.”


카인 시라센.


시라센 성주의 이름이었다.

유논은 본래 타인의 이름을 묻지 않으나, 성주의 이름 같은 경우에는 묻지 않아도 자연히 알게 되었다.

그저 굳이 입 밖으로 꺼내고 싶지 않았던지라 침묵했을 뿐인데, 이런 언어폭력을 당하게 될 줄이야.

어린아이의 호기심은 가끔씩 어른의 악의보다도 더 잔인하다.


어쩐지 대화의 흐름이 점점 말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이런 자그마한 여자아이 하나를 이기겠답시고 대단한 말싸움을 하거나 뭐라 압박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다.


유논은 꼬맹이에게 가볍게 눈길을 보냈다.

이쪽이 맞았고 너의 의심이 틀렸으니, 뭐라도 말을 해보란 뜻이었다.


“어······진짜 카인 아저씨랑 아는 사이였나 보네.”

“그와 친했나?”

“서로 스스럼없이 이름을 부를 정도로는 친했어.”


이름 안 알려준 것에 대한 불만을 돌려 말하는 애다운 모습에 유논은 심드렁히 말했다.


“그래, 그랬군. 그와 달리 너와 나는 서로 이름 부를 정도로 친하지 않으니 이대로 있는 게 좋겠다.”

“···이 아저씨 완전 인성이 나쁜 아저씨네. 카인 아저씨는 아저씨랑 달리 착했어.”

“착했다고?”

“나를 자주 밖에 못 나가게 하긴 했지만, 그래도 나쁜 사람은 아니었어. 나한테 잘해줬다구.”


‘자주 밖에 못 나가게 했다···라.’


시라센 성주로서는 당연한 수순이었을 것이다.

저 꼬맹이가 어디 싸돌아다니다가 황실 직계라는 사실이 밝혀지기라도 하면 바로 제국주의자들이 쳐들어올 테니.


녀석의 신분을 숨기기 위해 당연히 못 나가도록 한 곳에 연금시켜 두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장소가 바로 이곳 금고방이었을 테고.


유논은 그 호탕하고 성격 좋던 시라센 성주가, 사실은 금고 속에 사람을 가둬 놓고 보물이 있다며 자랑하는 괴짜였단 사실에 개탄을 금치 못했다.


이제야 금고라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넓고 또 일상적이었던 방 내부의 풍경이 설명이 되었다.

애초부터 황실의 직계를 가두기 위해 설계된 공간이었던 것이다.


속에 갇힌 사람이 최소한의 인간적인 생활은 해야 하니 안에는 가구나 생활용품 따위를 들여놓았을 테고, 밖으로는 정보가 유출되면 안 되니 외부와의 차단을 확실히 해 놓았을 것이다.


유논은 손끝을 타고 흐르는 마력의 흐름을 느꼈다.


확실히 여러 종류의 차단 마법들이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기척 차단, 추적 차단, 인식 저하 등등······.


전부 핵전쟁 이전에 설치된 오래된 마법들인지라 위력은 떨어졌을지언정 아직까지 거뜬히 유지되고 있었다.

꼬맹이가 오크들을 사냥해서 그 고기를 먹고 피를 마시면서 생활해왔는데도 여태껏 들키지 않은 이유 또한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유논이야 강력한 마법 저항 능력을 지니고 있기에 차단 마법들이 전혀 통하지 않았지만 변종 오크들은 꼼짝없이 마법에 걸려 녀석의 존재를 눈치 채지 못했을 테니까.


‘하지만 전부 온전하지는 않다. 고장 난 부분도 있군.’


유논은 도중에 끊겨 있는 몇 가지 마법들의 마력 흐름을 발견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그 구조를 분석할 것도 없이 어떤 역할을 하는 마법들이었을지 알 것 같았다.


‘혈액과 혈통을 통한 추적을 차단하는 마법이었겠지.’


하지만 포트 시라센과 성주의 저택이 변종 오크들에 의해 함락당하는 과정에서 손상된 것일 터다.

그 결과로 제국주의자들의 혈액추적기에 저 소녀의 위치가 드러난 것이고, 유논이 여기까지 찾아오게 된 것.

선후관계가 공교롭게도 딱 맞아떨어졌다.

그리고 그 때문에 더더욱 의심스러웠다.


유논은 떨떠름한 낯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황실의 피를 이은 소녀가 오랜 시간을 갇혀 있던 장소였다.

그리고 어떤 사람을 파악할 때 그 사람이 머무는 장소를 살펴보는 것만큼 효율적인 방법이 없었다.


역시나 그 주인만큼이나 방도 특이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책들이었다.

책장이 정말 많았다.

그 속이 요즘 시대에는 구하기도 어려울 멸망 이전의 도서들로 꽉 차 있는 것을 본 유논은 어이가 없었다.


책은 그저 불쏘시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되어 버린 세상, 그래서 지식이 그 무엇보다도 값지게 변한 세상에 저 많은 책들이라니.

심지어 전부 열다섯 꼬맹이에게는 버거운 내용의 책들이었다.


“저 책들은 다 읽은 건가?”

“응! 내용까지 전부 기억하고 있어.”


책장이 헤져 있는 것을 보아 확실히 거짓말은 아니었다.

이러니 정작 생활에 필요한 상식은 부족하고 쓸데없이 고급스러운 어휘나 사용할 수밖에.

방에 박혀서 책만 읽으며 지냈는데, 그러지 않는 편이 오히려 이상할 터다.


옛 시대의 책들만 읽으며 지내온 꼬맹이에게서, 유논이 옛 시대의 향수를 느낀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저 소녀는 멸망 이전의 순수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더더욱 꺼려진다.


유논은 부러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내가 성주의 친구였다는 사실은 어느 정도 입증된 것 같은데. 그것 말고는 또 어떤 점이 수상하게 느껴졌다는 거지?”

“아저씨, 시라센 사람 아니라면서. 요새 바깥에서 왔다고 했잖아.”

“그래. 난 시라센 너머의 갈란 시에서 왔다.”

“말도 안 돼.”


소녀는 볼을 부풀리며 말했다.


“요새 생존자가 아닌 사람이 여기까지 어떻게 들어와?”

“못 들어올 이유는?”


유논은 맥락을 따라오지 못해 반문했다.


나름대로 기척 차단 마법까지 사용하며 조심해서 들어오기는 했지만, ‘말도 안 된다.’는 소리까지 들을 정도로 경비가 삼엄하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었다.


낮이라면 모를까, 가뜩이나 밤 시간대 아닌가.

위험요소라고는 기껏해야 순찰 도는 소수의 야광 오크들뿐이었다.


유논의 합당한 의문에 소녀는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두들겼다.


“바깥에는 엄청 센 괴물이 있거든. 어어어어엄청나게 센데다가, 완전 빠르고 감까지 좋아서 누가 요새 안팎을 드나들면 바로 눈치 챌걸?”

“엄청 센 괴물이라고?”

“응. 나도 그 괴물한테 들킬까봐 여태까지 요새 밖으로 못 나가고 있었어. 그 괴물만 없었다면 여기서 맛도 없는 오크 고기만 먹으면서 무작정 버티고 있진 않았을 거야.”


무너진 요새 안에 있을 법한, 그 정도로 기감이 예민하고 강력한 괴물이라면 단 하나밖에 없다.

오크 부족장Orc Chief.

우연찮게도 부재중이어서 유논과는 마주치지 않았던 바로 그 우두머리 괴물이다.


유논은 재미있어하며 물었다.


“왜 내가 그 괴물을 물리치고 여기까지 왔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거지?”

“왜냐하면······그 괴물이 진짜진짜 세니까? 카인 아저씨도 그 괴물한테 순식간에 죽었는걸.”


시라센 성주가 그렇게 죽었군.

유논은 씁쓸한 입맛을 넘겼다.

그는 요새에서 누구보다도 싸움에 능통한 전사였고, 또 훌륭한 지도자였고, 숨기는 것 또한 많은 사람이었으나······결국 이제는 죽은 사람이었다.


지금은 그보다는 아직 살아있는 것에 대해 더 관심이 갔다.

오크 부족장.

시라센의 주인이자, 요새 최강의 싸움꾼이었던 카인 시라센을 순식간에 죽일 정도면 정말 대단히 강력한 괴물임이 분명했다.

놈에 대한 정보를 알아둬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나도 시라센 성주처럼 그 괴물과 싸우면 질 것 같다는 소리냐?”

“응.”

“진심으로?”

“응!”


아주 한 치의 망설임도 없다.

유논은 피식 웃었다.

어린아이의 눈에는 호리호리하고 겉보기에 젊은 그의 육신이 마냥 약하게만 보일 터였다.

저리 생각하는 것도 당연히 무리는 아니다.

그렇게 치부하고 넘기려 했으나······.


“아저씨가 한···15년 전쯤? 그때로 돌아가면 이길 것 같기는 해.”

“······.”


15년 전.

핵전쟁 이전, 유논이 대마법사라 불리던 시절이다.


유논은 표정을 굳혔다.

저 꼬맹이가 그걸 어떻게······.

아니, 그보다.


“15년 전이면 이길 거라고? 그럼 지금은 내가 진다는 거냐?”

“응. 지금 둘이 싸운다면······아저씨, 아마 그 괴물한테 죽을 거야.”


죽을 거야.

유논은 어쩐지 사형선고처럼 들리는 그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작가의말

공모전 기간이라 그런지 재미있는 글들이 많아서 참 행복합니다. 

제 글을 쓰느라 바빠서 그다지 많은 소설들을 읽지는 못했지만, 개 중에서도 노란커피님의 쥐쟁이 챔피언과 사다듬님의 부패의 사제는 정말 제 취향에 딱 맞더군요.

아 참, 신화의주인이나 우주천마 3077도 빼놓을 수 없겠죠....

다들 대단히 훌륭한 소설들입니다. 저도 그만큼 훌륭한 글을 쓸 수 있으면 좋겠군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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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거대 세력(Great Force)(1) +8 20.05.29 3,221 119 14쪽
16 막간-불사조(不死鳥, Phoenix) +18 20.05.27 3,241 127 15쪽
15 Man Meets Girl(5) +17 20.05.26 3,206 133 16쪽
14 Man Meets Girl(4) +6 20.05.25 3,285 136 21쪽
13 Man Meets Girl(3) +8 20.05.25 3,439 135 22쪽
» Man Meets Girl(2) +9 20.05.24 3,429 152 17쪽
11 Man Meets Girl(1) +12 20.05.23 3,530 157 14쪽
10 황야에서 피를 봐서는 안 된다(5) +19 20.05.22 3,580 160 14쪽
9 황야에서 피를 봐서는 안 된다(4) +16 20.05.21 3,646 135 19쪽
8 황야에서 피를 봐서는 안 된다(3) +4 20.05.20 3,702 138 12쪽
7 황야에서 피를 봐서는 안 된다(2) +6 20.05.19 3,907 143 17쪽
6 황야에서 피를 봐서는 안 된다(1) +5 20.05.18 4,258 144 15쪽
5 제국주의자들(2) +13 20.05.17 4,630 159 16쪽
4 제국주의자들(1) +22 20.05.17 5,320 181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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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비정상들의 세상(1) +51 20.05.16 7,830 218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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