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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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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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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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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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너희가 총력전을 아느냐 1

DUMMY

내린 소나기로 인해 한기 섞인 늦여름 바람.


선선하니 능선으로 분다. 확실히 같은 날짜에 북은 남보다 기온 2도 정도는 차이 난다. 설마 전쟁이 가을 겨울까지 가지 않겠지? 걱정된다. 눈만 움직이며 모든 걸 정지한 채 수풀의 일부가 되어 기다린다.


모두의 의심...


많이 그래왔어. 우리만 하고 위에선 관심 없을지 모른다. 그래놓고 끝났어... 했다 치고 이제 다음으로 넘어가. 군장 메고 뭐 빠지게 걸어와 장비 깔고 FM대로 했더니 끝났다고 돌아가란다. 익숙하다. 훈련이니까 뭐 누가 알겠어. 우린 할 바를 했고, 이제 돌아가 똥국 끓여 밥 말아먹고 자자고...


수풀 속의 나 포함 일곱.


벙거지 위장모와 몸에 풀까지 꼽아 위장하고 대기. 오늘도 똑같을 거라고 자조하면서. 한 시간도 훌쩍 지났다. 더 이상 뭘 해. 할 바 다했으면 이제 우리 책임은 없는 거야. 전선에 목표물이 넘칠 텐데 이런 것까지 신경 쓰겠어? 차라리 내려가서 직접 부숴버리고 말지. 보낸 전문 다시 확인하고 시계. 전달까지 얼마나 걸려? 정말 와?


우리 작계 목표가 아니라 우연히 발견한 부가목표다. 전문에는 ‘CAS-a’라고 적었지만 모르겠다. 지역대장과 정작장교는 위장포로 덮은 레이저 표적지시기를 직접 조준하고 있다. 정작장교는 정식 항폭유도교육을 받지는 않았지만, 항공유도용 워키토키를 가지고 있다. 학군으로 영어 좀 된다? 정작장교 박중위는 사실 음대에서 트럼본 불던 사람이다. 끌려온 건지 자원한 건지 모르겠다. 사람은 화통하다.


우린 지금 진지하다. 저 앞에 서울 시민을 공포로 몰아넣었으며, 전선의 아군을 향해 포탄을 퍼붓는 기다란 포열의 장사정 자주포. 장사정. 포를 보니 속이 뒤집어진다. 아무래도 포병은 쏘고 이동하는 데 얼이 빠져 있고, 너희가 모르는 가운데 우리가 보고 있다. 서울을 좌표로 계산한 이 조선싸회주의인민공화국 포병 FDC 씨발놈들아.


우리 지역대는 작년 독수리훈련 때 포병부대를 방문했고, 포상 형성과 방열, 포대 배치와 경계배치를 들었다. 정작, 화기들은 그런 전술보다 특이한 장약에만 온통 맘을 빼앗겨 장약 뽀리까려고 잔대가리 굴리고 있었다. 실사격하면 장약은 원채 많이 남으니까. 화기주특기들은 K-9보다 견인포 좋아한다. 궤도 자주포는 내부도 사격과정도 복잡하다. 북한 게 뭐 그리 복잡하지는 않겠지만, 자기가 어느 정도 다룰 수 있는 구형 견인포를 좋아하고 쏴보고 싶어 한다. 한 발 넣고 방아끈을 당기는 거.


우리 본부팀은 지난 밤 이동하다 이 포대의 포격음을 들었고, 처음에는 장사정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지역대장 지시로 멈추어 진지하게 청음했다.


“구경 알겠어?”

지역대장 질문에 화기 최하사는 군침을 삼켰다.

“모르지?”

“152밀리는 넘을 것 같습니다.”

"하여간 전에 듣던 거보다 크긴 크지?"

"네. 몇 밀리길래 저리 크지?"

“하긴 우리가 포병도 아닌데 어쩌겠냐.”


우린 원래 목적지를 포기하고 그 포대가 잘 보이는 곳으로 이동해 관측을 시작했다. 어둠 속이었지만 화염이 너무 커서 우린 구경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쏘고 반드시 이동할 것이기에 지역대장과 정작장교는 방열이 가능한 다음 장소를 지도상에서 물색했고, 관측조는 계속 감시하며 이동징후를 주시했다. 군발이는 군발이를 안다.


야간에 아군 항공기가 뜨면 일대에 [항공!] 경계가 전파되고, 그러면 모든 등을 끈다. 그러나 그런 완전 소등 상태로 견인이든 자주포든 고각의 북한지형을 이동하다보면 반드시 사고 난다. 포 뒤집어지고 자주포나 탱크는 옆에 걷는 병사를 궤도로 씹어버린다. 그러므로 항공! 경보가 터지지 않는 이상 어떤 불빛이라도 나타난다. 우린 그렇게 밤부터 그들을 따라 이동했고 잡고 싶었다. 우리 민간인들을 향해 발포하고 뒤로 빠진 장사정. 농담으로 그랬다. 장사정이 무서운 이유는, 부정확해서라고. 그것이 서울에 특정한 목표도 없이 마구 낙하해 상업지구 주거지구에 터졌다.


장사정은 화염 포성이 크고 발각될 위험이 높아서 함부로 못 쏘고, 쏘면 반드시 이동한다. 대포병 포격은 서로가 목숨 거는 분 초 싸움이고, 장비는 당연히 우리가 뛰어나다. 저들이 두려워하는 건 딱 두 개. 폭격과 아군 대포병레이더. 전쟁 이전에는 장사정을 터널포로 운영해, 쏘고 나서 터널로 존나게 밀어넣었다. 우리 군이 북한 장사정이라 부르는 건 사거리 40km 이상이지만, 규정은 애매하다. 주체포라고 불리는 방사포(다련장) 중에서 아주 멀리 날아가는 것과, 진짜 장거리포를 합해서 장사정이라 부르는데, 장사정 야포라고 하면 우린 170mm를 생각한다.


우리가 본 건 분명 포열이 정말 긴 궤도 자주포. 김일성광장 포병 퍼레이드 후반부에 나오는 긴 것. 퍼레이드에서 이 장사정에 지나가면 미슬 차량이 나오기 시작한다.


추격은 일종의 레이스였다. 능선은 느린 속도로 뛰고, 내리막은 빠른 구보, 오르막은 최대 속보로 올랐다. 군장에 눌리고 군홧발은 무디어진다. 땀이 줄줄 흘러 내복부터 군복까지 젖고 숨이 찬다. 낮은 곳에서 추격하면 기계화차량 속도 때문에 따라가다 놓친다. 우린 능선을 타고 뒤따랐다. 뛰다가 '정치!' 멈춰서 또 망원경 관측하고 지도 보고 판단 - 다시 빠르게 기동. 멈출 때 방향판단이 중요하다. 지역대장도 행보관도 힘겨운 레이스였다.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 어떻게든 저걸 잡고 싶다. 놓칠까봐 불안하다.


“옛날 중공군의 마인드가 느껴지지?”


능선 따라 그들을 추격하며 헉헉거리다 지역대장 말에 귀가 트였다. 옛날 산 타고 내려오면서 유엔군을 주시하던 중공군처럼, 저 아래 사람들은 우리가 보는 걸 모른다. 그리고 이런 추격이 쉬운 게 아니었다. 똑같이 무거운 군장 지고 산을 타지만, 지역대장이나 행보관은 힘든 티 안 내는 버릇이 있다.


우리보다 두 배는 당연히 힘들다. 흐르는 땀을 닦으며 사방을 보노라니 지역대장 말이 틀리지 않다. 도로가 안 보이는 지형이 오면, 재빨리 지도 보고 어느 능선으로 갈아탈 건가 판단한다. 거기서 실수하면 산 하단에 가려 놓친다. 한참 시야에서 사라졌다 다시 보길 서너 번. 산타면서 제발 오늘 밤은 아군기가 나타나지 않길 빌었다. 모든 등을 끄면 추격이 허사가 되고 공든 탑이 무너진다. 먹이를 노리는 하이에나처럼 조용히 맴돌다 딱 한 번 때리는 게 정찰감시. 하이에나의 특징? 빈틈이 보일 때 공격한다. 기계화부대는 멈출 때가 틈이다.


문득 문득 지역대 전투팀처럼 때리고 싶은 욕구가 올라온다. 권상병 빼고 본부팀 모두 당연히 전투팀 경험이 있다. 흔히들 본부팀은 전투력 밑이며 노땅팀으로 여긴다. 지역대장과 원사만 해도 계급이 무겁고 기동력도 좀 떨어진다. 그렇다고 완전히 쳐지는 것도 아니다.


부대 특성상 G-HQ 팀은 어디나 함부로 못한다. 지역대 고참들도 본부팀은 잘 안 건드리려는 문화가 있다. 평시부터 훈련까지 모든 걸 배분하는 권한이 본부에 있고, 혹시나 해코지했다가 지역대 두목급들 귀에 뭐 들어가는 걸 경계한다. 뭔가 수상하면 일단 본부팀에 묻는다. 뭐냐. 뭐 있냐? 그리고 뭐가 내려오면 항상 우리 팀 먼저... 우리 팀 먼저... 우리 팀 많이 줘. 많이 줘 개새꺄... 지역대 어둠의 황제는 전군 공통 HQ-행보관이다.


그렇게 하루를 추격해 새로운 방열 장소를 잡았다. 잠깐 잃어버렸지만 곧 트럭들을 보고 이어가다 잡았다. 포병(포상)은 항상 포탄 실은 트럭이 들락거린다. 트럭은 포병의 ‘장비’. 트럭 없으면 일이 안 된다. 포병 보급품은 무게와 부피가 크기만 포격할 경우 금방 소모한다. 보병은 트럭 하나로 며칠을 버티지만, 포대는 트럭 하나 정도 반나절, 아니 속사로 쏠 경우 한 시간이면 끝난다.


남쪽을 향해 산 후사면, 일정한 공터, 수풀이 무성하고, 도로와 가까운 곳. 트럭이 들락거려?... 안 보여도 대충 답이 나온다. 일단 저게 쏘기 전에 때려야 한다. 쏘고 나면 또 튀어버리니 골치 아프다.


특수전부대가 잘하려면 보병 포병 기갑도 잘 알아야 한다. 그런 지식 없이 잘하지 못한다. 대상이 바로 그들이니까. 특수전부대란 허울이 뭔가 무시하는 순간 빈틈이 생기고, 그 빈틈은 작전실패와 죽음으로 이어진다. 세계 어디도 총 맞아보는 부대 없고, 칼 맞아보는 부대 없으며, 누가 총 맞고 더 잘 버틴다 장담할 수 없고, 총알 하나 폭탄 하나를 맞이하는 인간 몸은 대동소이하다. 그리고 경험. 북한도 똑같다. 장비와 전술과 훈련이 필수, 그리고 대상에 대한 연구.


가장 프로다운 생각은, 그들은 그들 걸 하고 우린 우리 걸 하는 것일 뿐... 바로 이거다. 군생활의 힘겨움은 같은 나라 군대에서 체감 비슷하다. 그들이 그걸 하는데 내가 부러울 것이 없고, 내가 내 걸 하는데 불필요한 프라이드 가질 것 없다. 서로의 존대가 필요하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부터 강한 군인을 ‘용사’라는 이름으로 너무 부각시켜, 남자다움의 추종은 여전히 지워지지 않는다. 대한민국 남자들은 군에서 강한 걸 보려 한다. 그게 군인의 전부인가? 센 놈만 필요한가? 모든 주특기 보직의 군인이 필요하다. 지상전의 반은 포병이다.


북한 대비 우리의 약점은 역설적으로 여기에 있다. 전체 병력 대비 실 전투병 %는 생각해볼만 하다. 미군 체계 답습하고 평시가 오래 지속되면서 그렇게 흘렀다. 북한은 전체 병력 대비 전투원 점유율이 훨씬 큰 군대. 물론 단기전에는 이것이 유효하나 장기전에는 지원 확실한 쪽이 유리하다. 우린 우리 전쟁을 단기로 봐야 하는가 중단기로 봐야 하는가... 설마 장기전?


미군이나 한국군이나 월남전에서 실제 적 그림자라도 보고 조준해서 총 쏜 참전자는 희귀하다. 우리 군은 같은 숫자 안에서 실 전투병력을 늘여야 하고, 지원 병과라도 기본적인 건 계속 점검해야 한다. 모든 병사가 최후의 소총수라는 개념은 반드시 받아들여져야 된다. 지원부대에도 병 기본을 정확히 실행하려는 해병대가 모범일 수 있다. 편의나 후생도 중요하지만 우리 상대가 북한이다. 나 어떤 어떤 보직인데 군 생활 중 사격 세 번 했나?... 이런 말 나오는 군대는 심각한 거다. 소총사격은 병사 부사관 장교 진급에 필수조건으로, 당락이 결정되는 과목이 돼야 한다. 기본선 합격 못하면 진급 보류시켜야 군인인 거다.


군단 사단 여단 연대본부는 보여주기식 편의식 모두 버리고 최소한으로 유지해야 한다. 소총수 개념으로 지원병과도 기본측정 동일하게 해야 한다. 그게 전시에 병사 목숨 살리는 일이다. 전시에 전투병력 빼서 군단본부 사단본부 연대본부 지켜야 하는 현실이 말이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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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 복수불반 2 +4 20.11.12 379 23 11쪽
135 복수불반 1 20.11.11 449 25 12쪽
134 용미리에서 만납시다 2 20.11.10 451 21 12쪽
133 용미리에서 만납시다 1 20.11.09 450 18 13쪽
132 너희가 총력전을 아느냐 5 20.11.08 407 25 15쪽
131 너희가 총력전을 아느냐 4 20.11.07 421 18 12쪽
130 너희가 총력전을 아느냐 3 20.11.06 448 18 12쪽
129 너희가 총력전을 아느냐 2 +1 20.11.05 446 18 12쪽
» 너희가 총력전을 아느냐 1 20.11.04 548 21 11쪽
127 나의 투쟁 2 20.11.03 393 18 15쪽
126 나의 투쟁 1 20.11.02 479 17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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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불신의 벌판 5 20.10.31 372 19 12쪽
123 불신의 벌판 4 20.10.30 378 20 12쪽
122 불신의 벌판 3 20.10.29 390 21 12쪽
121 불신의 벌판 2 20.10.28 400 2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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