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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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8.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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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3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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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의 벌판 5

DUMMY

사람이 똘기가 있으면 과감하기라도 해야 하는데, 내가 보기에 분명히 겁이 있었다. 우린 뭐 겁 안 나나? 이유야 어떻든 돌출적인 그 뭔가가 여기서 나온다면 그로 인해 작전은 엉망이 되고 우리 목숨이 백척간두에 아슬아슬 선다.


사실 나 역시 그 사람 성격이나 행동방식을 정확히 어떻다 말하기 힘들다. 너무 다양하게 이상하기 때문이다. 만약 중대장이 공격조에 들어오겠다 그러면 우린 당연히 엄청나게 난감할 거다. 이상행동은 다름 아닌 불안함인데, 불안함은 특히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 돌연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타난다. 내 기억에 중대장은 아직 한 방도 쏘지 않았다.


건제가 멀쩡한데 계획된 작계를 안 하면 (누가 보지도 않고 뭐라 하지도 않지만) 당근 항명이다. 하기 싫어도 해야 한다. 항명과 직무유기는 우리도 원치 않는다. 무전기는 있으나 별 의미가 없다. 건너편은 말하기 싫고 이편도 쓸데없이 대답하기 싫다.


어차피 우린 선두/첨병조를 하려고 했다. 가장 위험하게 선두를 뚫고, 길을 뚫어 공격조를 들인 다음, 공격조가 퇴각할 때까지 엄호하며 가장 힘든 조라고 할 수 있다. 경계조라고 하기도 하고 어디서나 동일한 명칭은 아니다. 물론 몇 명 되지도 않는 가운데 공격조나 첨병조나 모두 위험하기는 똑같지만, 차이가 있다면 첨병조는 전술적으로 무성무기를 사용한다. 어떨 때 칼을 써야하는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네 명 중 내 동기는 이미 그걸 경험했다.


속마음은 모르겠으나 동기는 재밌었다고 했다. 그걸 담당관 쪽에서 하겠다고 말했고, 조금은 우리도 놀랐다. 그러나 긴 대화는 역시 없었다. 브리핑은 정작 주특기 중사가 했고, 중사의 브리핑만 들어도 딱히 궁금한 건 없었다. 신뢰할만한 정작이었다. 사실 어떤 몽상 같은 엉망의 표면적인 작전을 중대장이 주장했을 경우, 우린 반드시 문제를 짚고 넘어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중대장은 별말 하지 않았고, 중사 이상으로 무언가 아이디어를 낼 일도 없었다. 우린 각자 군장을 정리하고 총기를 손질하고 위장하며 준비했다. 나머지는 돌발상황과 대처, 거기에 운이다. 우리의 브리핑 소집은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기 직전의 먹구름 덩어리 같았다.


난 이러한 결속력의 부재가 우리를 지옥으로 이끌 거라고 생각했다. 이 상태로 아무 문제없이 평범?하게 넘어갈 수는 없다. 지나친 요행은 현실에서 지나친 비극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상황, 글쎄. 이게 누구 한두 사람의 전적인 책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작던 크던 누구나 일정하게 책임이 있다.


‘어쩌면 오늘 밤이 마지막? 결정적인 순간에 누가 돕겠어? 알량한 자존심이 그걸 바라지도 않아. 무섭지도 않아. 내 목숨도 걸린 거지 뭐. 교리대로 계획대로? 불가능해. 사건은 터져. 우리 방식대로 모든 게 맞춰지는 건 없어. 훈련조차도 돌발상황의 연속이야. 휴, 세상 힘든 게 인간관계구나. 인간관계. 우린 모두 모자란 사람들이므로 힘을 합쳐도 될까 말까 한데, 이 무수한 파도를 넘어?’ 이 상태로?


우리는 누구이며?

우리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차가운 총. 총은 차분하다. 군인을 든든하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총은 다루는 사람의 마음을 애써 고민하지 않는다. 기계. 작동하느냐 마느냐. 단지 그것. 시선을 돌린다. 우리 중 최고참 조장이 시계를 보고 있다. 다시 다른 두 명을 본다. 흰자 밖에 보이지 않는 얼굴. 왠지 우리에게서 암울함이 감돈다. 우린 믿을 곳이 없는 시라소니 떼다. 끝이 보이지 않는 일방통행 컴컴한 터널로 자원해서 들어가는 기분.


우린 밤의 존재.

어둠의 친구.

총 쏘는 사람.

그러나 과연 우린 누구인가? 난 누구인가?


적을 죽이는 사람? 내가 죽지 않고 최대한 많이 죽여야 하는 사람? 오늘밤도 내 탄창의 총알은 약실에서 터져 총구를 떠나 상대의 몸을 뚫는다. 몸에서 비선형탄도를 그리며 관통하려 발악하고, 내장은 터지고 뒤엉켜 내장출혈, 장기의 기능이 순간 무너진다. 춥다. 마음이. 총알의 비선형탄도는 아나 적이나 똑같다. 그 총으로 서로 승부를 본다. 먼저 정확히 쏘면 될 것 같지만, 전투란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 밀고 들어오는 공자의 파워와 앞을 가로막는 방자의 파워가 순간 상대편 기를 꺾는다. 지금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바로 그것, 똘똘 뭉쳐 비수처럼 나가는 서슬 퍼런 파워가 존재하지 않는다.


조장이 날 툭 친다! 눈을 보자 손을 뻗었고, 손가락 끝으로 저 앞을 지시한다. 눈을 가늘게 떠서 보니 누군가 손짓하고 있다. 첨병조가 통로개척 신호를 한다. 내가 조장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앞으로 나간다. 첫 발이 공중에 떠올라 발가락 갈라지는 게 느껴진다. 소리. 무성. 기도비닉. 조용히. 발걸음 조심하며 나간다. 한발이 사지(死地). 그래도 늦여름이라 소리는 작다. 가을에 풀과 낙엽이 마르면 그때가 힘들다. 겨울이 되면 눈. 부러진 가지를 밟지 않도록 발을 디딜 때 약간 좌우로 비틀어 바닥을 치우며 나간다.


검지는 방아쇠울에서 빼 앞으로 뻗고 엄지는 안전으로 걸린 자물쇠를 잡고 천천히 나간다. 10미터 쯤 나가 뒤를 돌아보니 2번이 나오고 있다. 난 저 앞 손짓을 보고 계속 진행하고, 나도 손을 들어 공중에서 원을 그려 저쪽에 몇 차례 보였다. 우리가 간다!



점차 다가오는 그림자. 더욱 다가서자 철조망이 나오고 한 명이 벌리고 있다. 벌리고 있는 사람이 누군지 안다. 그러나 눈은 안 마주친다. 낮은 자세로 통과하고 앞으로 나가는데, 철조망 안쪽에서 손짓을 하던 그림자가 바닥을 지시한다. 무슨 경고를 하는 듯하다. 시선을 옆으로 내려 보니 통과하는 옆에 사람이 쓰러져 있다. K-7인지 대검인지는 모르나 완전히 떠나서 굳어 있다. 시신을 피해 더 나가 일단 무릎쏴 자세로 대기했다. 내 뒤 2-3-4번이 상당한 폭약과 장구를 가지고 있기에 통과를 기다려야 한다.


그림자가 나에게 손에 쥔 걸 내민다. K-7. 이제 내가 공격조 선두 첨병이 된다. 담당관 눈을 보았다. 다시 건네는 예비 탄창 두 개. 그걸 나에게 주고 담당관은 각개로 걸었던 자기 소총을 앞으로 돌려 잡는다. 우리 서로의 눈에서 말과 다른 뭔가 감각을 주고받았지만 그걸 문장으로 표현할 수 없다. 그냥 감각이었다. 무례함이든 불손이든 불만이든 뭔가 오고 가기는 했다. 그 감각의 일부는 들어가는 우리에 대한 불안. 할 줄 아는 것은 알지만 그래봤자 우리 네 명 중 한 명 만이 1년 반을 넘었다.


뒤에서 장구 때문에 가벼운 소음이 났고, 다 넘어오자 뒤에서 손이 내 등에 댄다. 내 총을 각개로 돌리고 K-7을 거총해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모두 날 따라온다.


그렇게 5분 정도 갔을 때, 다시 날 터치한다. 수풀이 끝나는 곳에서 첨병조가 거기 대기하겠다고 의사를 표현했다. 적당한 지점이다. 우리가 나가기 전에 첨병조 세 명이 10미터 이상씩 벌려 경계태세를 취했고, 난 조장을 한번 본 다음 고개를 끄덕이고 앞으로 나간다. 그 순간, 담당관이 갑자기 어떤 액션이나 의사를 표현하지 않기를 빌었다. 그런 공기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약간 돌발적으로 순간 앞으로 훅 나갔다. 누가 손을 뻗어 날 잡기 힘들도록.


느낀다. 말소리는 당연히 없었지만, 담당관은 누군가 하나를 잡아 어떤 눈빛이나 느낌을 준 것 같다. 담당관님 이러지 마십시오. 속으로 그랬다. 그러지 마십시오. 어쨌거나 우린 할 걸 하러 갑니다. 관 짝에 누워 향냄새 맡으면서 슬픈 말 듣고 싶지 않아요. 그것은 간단한 말과 행동으로 쉽게 풀릴 시점을 이미 지났어요. 억지로 뭘 하려고 하지 마세요. 더욱 안 좋아집니다. 그래서 될 문제가 아닙니다.


곧 정적이 끝나고 조원들이 따라오고 시작한다. 보초가 있을 것 같은 곳을 주시하며 시선과 K-7 총구를 일치시키며 허리를 구부려 천천히 걷는다. 작전할 때 바로 이 시점이 난 가장 기분이 좋다. 재미있다. 뭐 하는 거 같다. 어둠 속에 내가 맨 앞에서 나갈 때, 난 그게 좋은 거다.


이유를 모르나 갑자기 땀이 난다. 미간 사이로 땀 한 방울이 흐른다. 내가 나 때문에 잠시 놀랐다. 계속 나간다. 친숙한 어둠 속으로. 우리가 드러나지 않으면서 더욱 육감적으로 변하는 이 시점이 좋다. 우린 어둠에서 왔고 어둠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아까부터 난 느끼고 있었다. 차가운 육감. 말로 하면... 여기 공기가 이상하다. 모르긴 몰라도 뭔가 이상하다. 둘러싼 대기가 우리에게 친화적이지 않고 냉랭하다. 벌판에 시범케이스로 나가는 것 같다.


내가 느낀다면 우리 조장과 조원 모두 느끼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상하다. 그 이상한 것이 요행으로 이어지기를 바라기도 하지만, 인생은 내가 상상하는 방향과 동일하지 않다. 세상과 자연은 자기 길을 가지 날 조력하지 않는다. 자연은 수십 억 인구 각자를 조력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 그래서 인생이 흥미롭다. 하지만 이 지하 무덤으로 들어가는 기분... 들어갈 때는 자유지만 나올 때는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지하 무덤. 그러나 인간은 가야 한다. 머물면 불안하다. 그 어떤 곳이라도 가야 한다. 유일한 친구 특전조끼가 따스하게 날 감싼다. 놈은 이미 나의 일부가 되었다.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렇게.


폭발이 끝나고...

무서운 것이 왔다.


상상으로나 그려봤던 거다. 알기는 알지만 경험하지 못한 것. 봤지만 실제로 봤다고 말할 수 없는 것. 이쪽에서만 보고 막상 저쪽에서는 보지 못한 것. 기관총. 기관총. 기관총. 상상했던 종류가 아니다. 그냥 넋이 나갈 정도로 파고 들어온다. 그 앞에 숨는다는 게 불가능해 보였다.


폭주 기관차 같은 발포음과 탄두 때리는 소리는 따로 노는 것 같다. 별개의 것 같다. 우다다다다다,,,, 핑 슝 피욱 우따다다다닥! 누가 쇠구슬을 한 움큼 쥐고 던지는 것 같다. 규칙적인 우박처럼 우두두두 우두두두두두 둔탁한 소리로 온다. 계속 수도 없이 날아온다. 사방에 줄을 이어 때리고 쑤시고 파먹는다. 우린 그 물줄기가 지나가는 곳 중앙에 있다. 그 일련의 연속된 소리는 무섭고 무서웠다. 소리와 뒤섞여 우박이 수평으로 엄청나게 우두두 우두두두두 줄지어 날아오며 대상을 찾는다.


우리 넷은 엎드렸지만 이미 살 때리는 특유의 소리를 들었다. 나도 들었고 나머지도 들었다. 난, 가슴 아래 어디 맞은 것 같다. 우리가 어디 있는지 정확히 알고 쐈다. 어떤 충격이 날 감싸면서 난 주저앉았다. 왜 주저앉았는지 모른다. 하체는 내 마음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하체는 이미 날 떠난 것 같다. 손으로 더듬어 보니 복부와 사타구니로 내려가는 곳 중간에 뭐가 때렸다. 컴컴한 하늘에 내 손을 본다. 축축하다. 아마도 이건 피겠지? 따뜻한 그 냄새가 난다. 내 피...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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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 복수불반 1 20.11.11 449 2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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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용미리에서 만납시다 1 20.11.09 450 18 13쪽
132 너희가 총력전을 아느냐 5 20.11.08 406 25 15쪽
131 너희가 총력전을 아느냐 4 20.11.07 420 18 12쪽
130 너희가 총력전을 아느냐 3 20.11.06 448 18 12쪽
129 너희가 총력전을 아느냐 2 +1 20.11.05 445 18 12쪽
128 너희가 총력전을 아느냐 1 20.11.04 546 2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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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나의 투쟁 1 20.11.02 479 17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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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신의 벌판 5 20.10.31 371 1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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