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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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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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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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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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불신의 벌판 6

DUMMY

폭발로 일어났던 거대한 연기가 우리 쪽으로 날아온다. 폭약은 전술적으로 올바르게 소모했다. 기관총이 한동안 쏘고 잠시 쉬었다 쏘는데 이제 선명하게 보인다. 예광탄이 탄도를 그리며 날아온다. 새 탄통을 꺼냈나보다. 옆을 보니 내 동기는 이미 입을 크게 벌리고 놀란 눈으로 멈춰있다.


동기는 뭐에 어디를 맞았는지 판단하기도 전에 저승으로 갔다. 어디 맞은 걸까? 하나 건너 하사도 엎드려 신음소리를 내며 꿈틀거리고 있다. 우리 서로 도울 수 없다. 손으로 압박붕대를 찾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2탄 3탄 그 이상을 다시 기다리는 것과 같다. 그 괴물의 체인은 우리를 이미 먹었다. 언제부턴가 예광탄 줄기가 두 개로 늘어났다. 왼쪽 측면에 또 하나가 등장했다. 마치 포위하려는 것 같이...


우리 뒤에서 쏘기 시작한다. 그런다고 저것에 대항할 수 있을까? 저 강한 놈에게? 그것과 더불어 상대편 소총들이 엄청나게 쏘기 시작한다. 엄청난 소음이 차가운 밤하늘을 뜨겁게 울린다. 그 중간에 RPG 펑 슉~~ 로켓이 날아와 터진다. RPG가 터지는 소리는 쾅! 그러면서 얇은 금속 찢기는 소리가 섞였다. 내 머리 바로 위로만 두 발이 날아갔다. 총성과 폭발, 단 10초도 중단되지 않는다. 두부에 함마드릴로 마구 쑤시는 것 같다. 우린 괴력 앞에 초라하게 힘을 잃었다. 그 초반에 당하면서 도전할 기력을 잃었다.


조장과 눈이 마주쳤다. 지휘조는 (바라지도 않았지만) 사격하지 않는다. 사실 쏴봤자 노출만 될 뿐이고. 조장이 뭘 칵 내뱉는데 아마도 핏덩어리 같다. 조장은 신기하지? 영화 같지? 그런 느낌으로 피식 웃었다. 우린 서로의 눈을 보며 단어 하나를 주고받았다.


‘누설.’


누가 불었다. 다른 팀일 거다. 우리 목표는 좀 특이해서 지역대 모두가 대충은 다 알고 있다. 어디서 샜다. 날짜는 몰라도 우리가 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를 향해 모든 걸 동원해 갈긴다. 이 좆같은 토대에서 배신자가 나올 만도 하다. 저들에게 포로 따위는 필요 없다. 우릴 너무 대단하게 보는 것 같다. 일단 다 죽이고 보자는 것 같다. 손을 더듬는다.


찢어지는 고통을 거꾸로 거슬러 K-7를 들었고, 찢어진 생살 복부 불 붙은 쇠꼬챙이로 찌르고 지지는 통증, 몸을 돌려 조준구를 내 눈에 댄다. 남은 탄은 쏘고 싶다. 뭐라도 하고 싶다. 당할 때 당하더라도. K-7이 얼마나 날아가건 상관없다.


‘거꾸로야...’


난 왼손잡이 사격자세가 된다. 눈만 똑바로 보면 되지 뭐. 날아오는 예광탄들의 시작점을 향해 조준해 천천히 단발로 당긴다. 한발 한발 공을 들여 조준해서 당긴다. 한발 나갈 때마다 함마로 몸을 갈기는 것 같다. 사거리가 멀어서 별 효력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쏘고 싶다. 어렵고 힘들게 마지막 탄이 나가고 난 그대로 힘을 잃고 총을 땅에 떨어트렸다. 강하고 큰 한숨이 내 속에서 나온다.


‘이게 다야? 다구나... ’


난 사지를 완전히 큰 대자로 벌리며 누웠고, 그 상태에서 고개만 조장 쪽으로 돌렸다.


조장이 날 바라보고 있었다. 사지를 뻗으니 세상 편하다. 머리 위로 예광탄들이 붕붕거리며 교차해 날아간다. 조장이 인상을 찌푸리더니 다시 칵 속에 것을 뱉고, 엄지를 들어 뒤쪽을 지시한다. 뒤쪽은 이제 안 쏜다. 사실 더 쏴봤자 별 효력도 없고, 그냥 기관총 총구만 그리로 돌아갈 것이다.


조장과 난 많이 알고 친하다 생각했지만, 우리 둘은 새로운 사람처럼 서로를 봤다. 사람 하나란 게 무궁무진해 보인다. 타인이 되어도 우린 서로를 믿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필름이 다 돌아가 롤 끝자락이 퍼덕이는 것 같다. 출혈 때문인지 점차 시야가 몽롱해진다.


예전에 큰 수술할 때 전신마취를 한 적이 있었다. 링겔에 마취제를 주사로 분사하고, 단 10초도 되지 않아 정신이 멍하게 멀어져가는 걸 경험했었다. 난 분명 멀쩡한데 정신이 멀어지고 있었다. 말로 하면 정확히 페이드아웃! 그렇게 가는 건가? 죽은 다음의 사후는 있는가? 있거나 없거나 뭐 어쩔 건데. 뭐가 달라지는데. 사후가 더 중요하다고 그 사후의 표본이 되는 이 현실 인생이 안 중요해? 까는 소리. 사람들 모두 인생보다 사후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으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웠게? 모두 눈앞의 인생만 발악하다 가는 거다. 누가 요즘 천국을 믿나?


하지만 말이다. 조장과 나는 서로의 눈에서 아주 작은 희망과 만족을 보았다. 우린 달라져 있었다. 몸이 맞고 나서, 이제 종지부로 향한다는 생각에 우린 달라지고 있었다. 종착역을 향해 치닫는 가운데 애증은 의미 없었다. 조장도 웃고 나도 웃는다. 우리가 상상하던 진짜 전장의 그림 속에 우리가 있고, 우린 좀 더 올바른 존재가 되었다는 걸 서로를 보면서 알았다.


앞선 5분 전보다 우린 나아졌다. 더러운 것. 더러운 인간의 냄새와 그림자 뒷모습 그 모든 것. 내가 싫은 것. 열 받은 것. 내가 슬프고 힘든 것. 우린 그것이 치유되고 망각으로 사라져 가기를 기다렸다. 아니다. 그것 역시 우리의 집착이었다. 그 잊고 싶고 불쾌하고 모욕적이고 그 모든 좋지 않은 것. 거기에 필요한 걸 드디어 우린 깨달았다.


‘용서.’


내가 나아서도 아니고, 상대가 나와 같은 생각이 아니기 때문에 포기처럼 용서하는 게 아닌 그냥 순수 그대로의 용서. 용서의 효과를 기대하지 않는 그대로의 용서. 증오로 가득 찬 날 먼저 용서하고 그 다음 상대를 용서한다. 상대가 그 용서를 어이없게 받아들이더라도 상관없다. 매몰차게 거부하더라도 상대를 이해할 수 있는 것. 용서가 뼈아프고 슬플 줄 알았다. 아니다. 용서는 사람이 가진 본능적인 감정 중 하나였다. 그러나 용서 자체는 아무 감정이 없었다. 감정을 주고받는 건 용서가 아닌가보다.


크던 작던, 나도 누군가에게 용서받아야할 사람이다.


조장이 K2 개머리판을 땅에 대고 총구를 공중으로 세웠다. 그리고 자동으로 갈긴다. 따다다다다다다다다..... 총은 말하고 있다.


‘여기다 쏴 자식들아.’


그리고... 조장이 마지막으로 버튼을 눌렀다.

[첨병조 나가라.... 퇴출하라고!]

[먼저 나와! 먼저!]

[우린.... 이상 없고, 알아서 나갈 수 있다.]

[공격! 정말이야?]

[정말이라니까. 어서 나가!]

[그럼, 빠져나가 윗선에서 엄호한다!]

[아니 그냥 퇴출해! 우린 남쪽으로 따로 튄다!]


조장이 다시 공중으로 다시 한 탄창 긁었고, 조장도 이제 여력이 없어 총을 던졌다.


기다렸다는 듯이 녹색 예광탄들이 벌떼처럼 날아든다. 웅웅웅웅 붕붕붕붕 날아온다. 먹이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는 땅벌들이 떼로 날아온다. 우다다닥 우다다닥 사방을 때리고... 손이 햄머로 맞은 것 같다. 공중에 들어보니 손가락 두 개가 사라졌다. 묽은 캐찹이 내 인중에 떨어진다.


'내 피가 따뜻하구나. 피곤하다. 사람이 피곤했다.'


고개를 돌리니 조장 표정도 멈췄다. 급하게 잠에 빠진 얼굴 같다. 그나저나 이 밤에 보는 예광탄은 아름답다. 색채가 저리도 강하고 또렷하고 아름다울 수가...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마음속으로 수백 번의 살인을 한 나를 용서하지 마옵소서. 아멘.



남자는 걸어간다. 연신 새로 챙긴, 장식이 멋진 칼을 들여다본다. 북쪽 먼 곳에서 온 남자에게 그 칼은 여전히 신비롭고 처음 보는 형태의 물건이다. 날을 한번 빼봤는데 만들어진 칼의 강도는 굉장히 공들인 것으로 보였다. 무게와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움을 느끼니 적당히 만든 칼이 아니다. 그리고 그 유선형의 날은 무엇을 벨 때 강한 힘을 발휘할 것 같았다. 한번에 엄청 크고 넓게 벨 수 있을 것 같다. 남자 발걸음이 빨라졌다. 누가 따라올 수 있다. 어서 가야 한다. 이 일대를 벗어나야 한다. 그 새 칼을 가진 것에 후회가 온다. 그렇다고 그냥 그 귀중한 걸 아무 데나 던지고 가기는 좀 그렇다.


‘이제 이십 리는 왔는가?’


하루 안에서 시간이 흘러 태양이 변하고 있었다. 아주 빠르게 진행하던 발이 점차 천천히... 느려진다. 그리고 순간, 남자가 멈췄다. 이상하다. 올 것이 온 것 같다. 올 것이 다가온 것 같다. 사방이 자욱한 수풀. 남자는 생각했다. 자신은 잘못한 것이 없다. 오이디푸스가 길에서 아버지인 줄 몰랐던 아버지를 만났을 때처럼. 그저 가볍게 양보하고 기싸움을 포기했다면 아무 문제없었을 것이다. 남자는 자신을 깔봤다고 생각해 마음이 상했고, 그것이 빌미가 된 것은 맞다. 불필요하게 살인을 저지른 것도 맞다. 그러나 이제 아주 가까운 과거라도 버리고 삶을 지탱할 현실을 봐야 했다.


섰다. 발을 어깨너비로 벌려 선다. 남자는 자기 잘못을 겉으로 꺼내고 조용히 혼자 자비를 구한다. 새로 생긴 칼을 아주 천천히 땅에 내려놓는다. 그것은 남자의 것이 아닌 게 맞다. 그것은 욕심이었다.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누구의 잘못이 더 큰 것일까? 잘못의 크기에 따라 벌어진 일의 책임을 잘못이 많다고 생각하는 상대에게 전가할 수 있나? 모른다. 상식이란 건 상식이란 단어를 쓸 때만 온전하다. 모두의 상식은 같은 것을 보고 있어도 서로 다르다. 상식은 수억 개다. 행동으로 어떤 사람은 영웅이 되고 어떤 사람은 추격당하는 사람이 된다.


그건 거기에 처한 어딴 사람의 상식에 달렸다. 전장에서는 영웅이 되고 아닌 곳에서는 범죄자가 된다. 하여간 단추가 잘못 꿰어진 것은 분명하다. 인간은 빌미가 될 자신의 과오를 벌로 닥쳤을 때 깨닫는다. 그것이 과오가 될 걸 앞서 충분히 알았다면, 하지 않았어야 했다. 어떤 사람은 아무 이유 없이 자신에게 닥쳤다고 생각하나, 닥치는 이유 대부분은 본인이 만든다. 자기 인생을 망치는 건 자신 밖에 없다. 그 나란 사람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조건까지 자기가 만든 건 아니며, 주변사람과 세상이 그런 길을 가게 했다.


그러나 모두 이 남자와 같지는 않다. 남자는 도전, 겨루기 합을 택했고, 자기 자존심을 끝까지 버리고 싶지 않았다. 모든 기로에서 선택의 권한이 분명 있었다. 그리고 본능을 따라 차분함이 사라지고 일을 망친다. 그렇게 세상 일이 흘러간다.


공기의 흐름이 바뀌었다. 일대 공기가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무거워진다. 산새들은 울지 않는다. 바람도 멈춰 섰다. 잎사귀가 남자를 주시하고 가지가 남자를 제지한다. 남자는 체념했다. 하늘을 본다. 저 위로 올라가나? 그래서 사람은 하늘을 보나? 저기로 갈 거라고? 서럽다. 서러워. 마지막 자비를 구한다. 자기 칼을 풀어 땅에 던진다. 사실 그 칼도 원래 남자 것은 아니었다. 한동안 쥐고 다녀서 자기 거라고 착각한 것일 뿐이다.


촉이 공기를 가른다.


남자는 세 개까지 세고 대지에 엎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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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 복수불반 4 20.11.14 383 24 14쪽
137 복수불반 3 20.11.13 358 25 12쪽
136 복수불반 2 +4 20.11.12 379 23 11쪽
135 복수불반 1 20.11.11 449 25 12쪽
134 용미리에서 만납시다 2 20.11.10 451 21 12쪽
133 용미리에서 만납시다 1 20.11.09 450 18 13쪽
132 너희가 총력전을 아느냐 5 20.11.08 406 25 15쪽
131 너희가 총력전을 아느냐 4 20.11.07 420 18 12쪽
130 너희가 총력전을 아느냐 3 20.11.06 448 18 12쪽
129 너희가 총력전을 아느냐 2 +1 20.11.05 445 18 12쪽
128 너희가 총력전을 아느냐 1 20.11.04 546 21 11쪽
127 나의 투쟁 2 20.11.03 392 18 15쪽
126 나의 투쟁 1 20.11.02 479 17 16쪽
» 불신의 벌판 6 20.11.01 372 19 12쪽
124 불신의 벌판 5 20.10.31 371 19 12쪽
123 불신의 벌판 4 20.10.30 377 20 12쪽
122 불신의 벌판 3 20.10.29 390 21 12쪽
121 불신의 벌판 2 20.10.28 400 2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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