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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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8.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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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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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복수불반 3

DUMMY

우린 보초에게 대검을 들이민 상태 그대로 안으로 치고 들어갔다. 보초 면상은 줄줄 흐르는 코피로 범벅 쿨럭대고, 행보관과 난 대검으로 목을 잡은 지역대장과 보초를 피해 문으로 질주해 들어가, 양쪽으로 꺾어져 가늠자를 스캔하며 목표물을 찾았다. 담당관이 최하사와 같이 외부 경계를 맡았고, 다섯 명은 거총하고 밀고 들어갔다.


안에는 당직처럼 한 명이 탁자에 있고 나머지는 관서 뒤쪽 방에서 군복을 입고 자고 있었다. 보초를 가운데 던지고, 뒤로 들어가 모두 깨운 뒤에 서 가운데로 끌고 나왔다. 일단 개머리판과 발길로 사정없이 갈겨 쓰러트렸다. 때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이성을 잃었다. 한 30초간 물불 안 가리고 닥치는 대로 깠다. 대가리고 뭐고 갈비뼈 이빨 부러지든 말든 눈에 보이는 거 없다. 신음과 비명. 그냥 원없이 깠다. 산에 올라가면 생나무 몽둥이 하나 깎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패 죽이고 싶었다. 그러나 보복할 대상은 지역대장이 선별하겠다고 이미 언질이 있었다.


총 일곱 명. 넷은 군관. 너무 적다. 일곱 모두 엎어져 잠잠해지자 지역대장은 권총을 뽑아들고 맨 앞 군관의 인중에 댔다.

얼굴 검은 다섯과 자다 깬 일곱.

처음 말을 뱉은 것은 숨을 고르던 행보관이었다.


"뭘봐 씨.... 남조선 첨 보냐?"


“이게 다야?”

“뭐를?...“

“병력이 이게 다냐고! 전사 하전사 군관 총원이!”

“여긴 관구 사무실입니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북한사람이 입 여는 걸 난 처음 봤다. 밤에 그들을 조준해 총을 쏜 것 외에는. 가장 얼치기 같은 말이지만 똑같은 인간이었다. 몸을 떨면서 자기가 곧 죽을까봐 무서워하고 있다. 난, 죽일 테면 죽여라... 그렇게 나오는 상상을 했었다. 장군님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는 그런. 그들 얼굴에 쓰여 있다. 남조선... 말로만 듣던 남조선...


“그러니까 몇 명이냐고!”

“총 15명으로 오늘은 이거래 통(총)원입니다!”

“여기 제일 높은 사람 누구야!”


모두 묵묵부답.


“군복 다 벗어! 모두!”

모두 군복을 벗는 가운데, 지역대장이 또 말한다.

“병사는 뒤로 가. 전사 하전사는 뒤로! 군관만 앞으로 나와 꿇어.”


그들은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하고, 지역대장은 일갈한다.

“거짓뿌렁 하는 놈들은 없애버린다. 분명히 경고한다.”


어느 순간, 모든 분위기가 지역대장에게 몰리고 있다. 우린 계급장 같은 거 없었지만, 북한 내무부원들은 모두 지역대장을 주목하고 눈치를 보고 있었다. 차가웠다. 한겨울 노천에 방치된 선반 기계처럼 차가웠다. 지역대장의 그런 모습은 나에게도 처음이었다. 어떻게든 냉정하게 이 상황을 판단하려고 작심한 듯 보인다.


나 자신은 이런 상황에 뭐랄까 좀 적응이 안 된다. 삽탄에 자물쇠도 풀었지만 비무장들을 바로 당길 생각은 들지 않고, 방아쇠도 검지를 빼서 뻗은 상태였다. 그들은 무기력하고 비굴하기도 했다. 전에 본 사건 때문에, 그 자세가 진실은 아니라고 생각도 했다. 그때 지역대장이 우리 모두의 눈과 한번씩 ‘일부러’ 마주쳤다. 눈은 말하고 있었다.


‘이놈들 믿지 마. 이놈들 말을 믿지 마.’



“내 말 똑바로 들어라. 목숨이 너희 말에 달려 있다. 며칠 전에 너희들 장사정포 있는 데서 남조선 군인 하나를 죽였다. 군관이 남조선 군인 포로 머리에 총을 쐈다.”


“장사정포가 뭐임까?”


“.... 이 자식이 모르는 척 하는 거야 뭐야? 멀리 쏘는 포. 땅크나 뜨락또르처럼 궤도가 달린 포신이 무척 긴 포. 땅크 같이 포가 긴 포병.”


“주체포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거. 거기서 포로 왜 죽였어?”


침묵이 흐른다. 이상하다. 녀석들도 그게 잘못된 거란 걸 아는 걸까? 난 아닐 거라 생각했다. 그냥 생각 없고 무식한 놈들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문제가 됐다는 걸 모르지는 않다.


“모르오, 모르오, 모릅니다.”

“거기서 총 맞아 죽은 군관 여기 소속이지?”

“저격당한 군관요?... 네.”

“직책이 뭐야?”

“국장이오.”

“거기 주체포에 갔었던 사람 여기 있어?”

대답이 없다.

“있어, 없어!”

비로써 지역대장이 장전된 권총의 공이치기를 뒤로 딸깍 당겼다. 그들도 그 의미를 모를 리 없었다.

“경무관이 한 거이지, 우린 아이오.”

“니들 그 포로, 발전소에서 잡았지?”

“예? 아니 그걸...”

“맞아 틀려!”

“맞습네다.”

“왜 보위부로 안 넘기고 니들이 죽였어!”

“죄송합니다. 우리가 아이고 군관이 한 거야요.”


뒤에 앉아 있던 병사가 말했다. 그때 갑자기 행보관이 K-2 총구를 면상에 디밀며 앞으로 나왔다.


"이 염병할 것들이 좋은 말로 하니까... 뒈지고 싶지? 공화국영웅 되고 싶지? 아가리 벌려! 내가 영웅 만들어주게. 대가리 벌창 만들어주마. 이런 적 같은 놈들이 말야, 우리 군관님이 인간적으로 대해주니까 어디 거짓뿌렁 하고 지랄이야. 갈갈이 찢어 앞마당에 널어놓겠어. 이 개 아들넘아 우리가 산에서 다 봤어. 군관이 우리 전우 머리에 권총 쏘는 거 다 봤다고. 모르고 온 줄 아냐? 니들 싸그리 다 죽이려고 했지만, 우리 군관님이 말려서 지금 물어보는 거라고 이 호로 썅간나새끼들아!“


지역대장이 말리려 했지만 행보관은 그만 두지 않았다. 행보관은 바로 앞의 군관을 퍽 걷어찼고 군관은 신음을 내며 앞으로 엎어졌다. 그러자 뒤통수에 총구를 댔다.


“자, 넌 공화국영웅이다. 장군님 만세! 해봐. ‘만세’에 쏴줄게. 자랑스럽지? 염병 행복하지? 장군님 만세 해! 해, 빨리!”


그러자 앞에 무릎을 꿇은 군관 하나가 입을 연다.

“잘못했습니다.”

그러자 행보관은 더욱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잘못한 거 알어? 이 새끼들아! 니들도 반 군인이지? 아무리 그래도 백주 대낮에 사람들 보는데서 손을 뒤로 묶고 머리를 쏴 죽여? 안 되겠어. 이 새끼들 총알이 아까워. 이런 것들은 칼로 처리해야 돼!”


“행보관님, 참으십시오. 제가 하겠습니다.”


예상치 못하게 권상병이 대검을 뽑아들고 나섰다. 권상병은 그 중 제일 높은 군관을 지목했다.


“자, 너 한 명만 이리 나오고 나머지는 뒤돌아서 앉아. 잘 들어! 너희 세 명과 이 앞에 사람은 서로 등으로 돌리고 있다. 너! 나온 놈, 넌, 내가 올려!... 그러면 여기 네 명 중에서 그 주체포에 있던 사람 숫자를 손가락으로 표시해. 만약 너도 있었으면 팔을 들면서 손가락을 표시해. 그리고 돌아선 너희 셋. 내가 들어! 그러면 거기 있었던 놈들은 손을 든다. 만약 이 앞 사람이 표시하는 숫자와 너희들 손드는 숫자가 다르면, 모두 난도질해버린다. 거짓말한 놈 아가기를 확!”


지역대장은 한 걸음 물러나 관망하기 시작했고, 시계를 봤다. 나도 시계를 본다. 새벽 2시가 넘었다. 난 권상병이 그냥 몸 좋은 시골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권상병은 계급만 다르지, 어쩌면 그 이상일 수도 있었다. 농사졌다고만 했는데 모르겠다.


“어디 씹창 나고 싶냐? 허파에 바람구녕 내줘? 며가지를 확 따벌라. 어디서 개구라야. 야이 니들 내무, 인민들한테는 고조 왕이지? 당원이냐? 어디서 군인들 노는데 끼어서 잘난 척을 하고 곤조를 떨어! 니들 중 하나라도 진실을 말하는 놈은 살려준다. 자, 그날 주체포에 있었던 사람... 들어!”


.... 앞에 사람은 손가락으로 표기했고 뒤는 손을 들었다.

그리고, 일치했다. 앞에 놈은 손가락 둘을 표시했고, 돌아앉은 놈 둘이 손을 들었다.

드디어 관망하던 지역대장이 앞으로 나온다.


“어이, 모두 눈 뜨고 모두 들어. 돌아서 날 봐. 보라우! 너희들도 알다시피 우린 남조선 빨치산이다. 너희는 전투행위를 통해서 잡은 우리 측 포로를 비인간적으로 죽였다. 세상의 법도를 어겼다. 니들이 내무인데 왜 군인 포로를 죽이나? 거기다 다른 군인들 보는 앞에서 그런 건 모욕이다. ‘모욕’이란 단어 알지? 모욕. 우릴 수치스럽게 했어. 마음 같아선 너희들 다 죽이고 싶다. 하지만 난 기회를 주겠다. 우린 언제든지 내려온다. 너그 그 군관처럼 언제든지 산에서 저격할 수 있다. 우린 지금 너희들 얼굴을 모두 봤다. 장군님도 좋다만, 니들도 처가 있고 자식이 있지?


원래 게릴라는 이런 대우 안 해줘. 들어온 순간 너희들은 이미 다 죽은 거야. 그게 정상이야. 하지만 우린 무분별하게 사람 안 죽인다. 우린 똑똑히 경고하려고 왔다. 앞으로 조심해라. 우린 올바르게 한다. 딱 한 놈만 대가를 치러야겠다. 대신 내가 원하는 건 두 가지다. 다시는 사람답지 않은 행동 하지 마라. 둘! 죽을 놈은 너희들이 골라라. 지금부터 계급 필요 없다. 남조선 말이라고 해도 못 알아먹을 말 없다. 자, 누구든 말해봐!“


순간 말이 쏟아진다. 1/3 정도는 명칭이 달라서인지 알아들을 수 없다. 그러나 난 보았다. 그들 무리는 군관이 더 많았고, 궁시렁거림 근저에 아직도 계급이 있고 체계가 흐르고 있었다. 그들은 피해자를 애써 만들고 있었다. 피해자는 맨 뒷열의 한 병사에게 몰리고 있다. 병사, 북한말로 한 ‘전사’가 울기 시작했다. 웃겼다. 군관들 눈치를 보며 엄한 사람 지목하는 거. 우리 다섯 명 중에서 그걸 눈치 채지 못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순진한 건지. 한마디로 까고 있었다. 지역대장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지역대장은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분위기 묘하게 흐른다. 이건 뭐지? 어떻게 되는 거야? 좀 이해가 안 된다. 정말 어쩔려고 이러는 걸까? 정말 지목하는 사람 하나 죽이려는 건가? 저건 그냥 피해자일 뿐인데. 저 놈이 무슨 죄가 있어? 이건 좀 아닌 거 같은데... 안 되겠다. 이건 나라도 말을 지역대장에게 해야겠다. 이대로 가서 저 약하고 떨고 있는 병사 하나 죽인다고 뭐가 돼. 이건 아냐...'


난 굳게 마음 먹고, 헛기침을 한 다음 일단 총을 내리고 지역대장을 봤다. 그러나 내심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밖으로 나가서 이야기하잘 수도 없고, 그렇다고 북한군이 보는데 거부 의사를 대놓고 밝히기도 좀 그렇고. 귓속말로 해야 하나?... 아이 참.


나는 그렇게 잠시 망설였고, 놈들은 그렇게 웅성거리며 죄인을 정하고 있을 때,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큰 폭음이 쾅! 꽈르릉! 울렸다. 예상치 못한 폭발에 우린 순간 흔들렸고, 총구가 돌아갈까봐 몸에 힘을 주었다. 진동은 파도처럼 건물까지 밀려와 여러 번 친다. 잔물결처럼 약한 게 계속 혼다.

그러나 더욱 큰 충격은 바로 그 다음이었다.


지역대장이 더러운 가래침을 뱉을 거 같은 얼굴로... 갑자기 오른팔을 수평으로 뻗고 앞으로 걸어 나왔다.

어... 어... 이런 씨...


탕! 탕!... 탕!...... 탕!


정확히 한 발 씩 머리를 쏘았다.

군관만... 네 명 모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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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 복수불반 1 20.11.11 449 2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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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용미리에서 만납시다 1 20.11.09 450 1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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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 너희가 총력전을 아느냐 4 20.11.07 420 18 12쪽
130 너희가 총력전을 아느냐 3 20.11.06 448 18 12쪽
129 너희가 총력전을 아느냐 2 +1 20.11.05 445 1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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