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의 별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8.12 12:00
연재수 :
379 회
조회수 :
232,067
추천수 :
6,987
글자수 :
2,076,964

작성
20.11.07 12:00
조회
421
추천
18
글자
12쪽

너희가 총력전을 아느냐 4

DUMMY

그냥 기습 공격이다. 달리 방법 없다. 그들은 좁은 구역에 대공포 2문을 방열해 모여 있고, 넓은 목표처럼 경계병 하나 무성으로 처리한다고 될 게 아니었다. 곧바로 쏘면서 순간 박살을 내야 목적을 얻을 수 있다. 우리 중 누구도 처음이다. 피를 볼 시간. 갑자기 먼 하늘이 눈에 들어오고 외로워졌다. 그렇게 긴장 속에 어둠을 기다렸고, 그 익숙한 긴장의 어둠 속에서 그 쇳덩어리 둘을 향해 조용히 내려갔다. 내려가기 전에 얼마나 담배를 빨았는지 모른다. 지상에서의 마지막 니코틴처럼...


작전은 순간 발발해 바람처럼 흘러갔다. 내 기억은 내가 느낀 것만 안다. 그 경험은 파편적이고 충격적이었으며 어떤 의미로 짜릿했다, 지역대장 말대로 그날 이후 우린 조금 다른 사람들이 되었다.


지역대장은 그 결정의 책임이라도 지려는 듯 황원사와 앞장을 섰고, 나와 김중사님은 성형폭약을 가지고 바로 뒤를 따라갔다. 잠시 멈춰 경계병 한 명이라도 무성으로 처치하고 들어갈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어느 순간, 예상도 못하다가 내 속에서 이런 씨발이 수십 번 터져 나왔다.


한 손에 총 한 손에 성형을 들고 발소리 아끼면서 내려가는데, 갑자기 어둠 속에서 펑! 퍼버벙! 타타타타! 요란한 총소리와 섬광이 보였고 비명과 고함이 들렸다. 조심스레 내려가던 난 화들짝 놀라 몸이 움찔했다. 무슨 징후도 말도 없었다. 제일 먼저 갈긴 건 지역대장이 분명하다. 더욱 정신을 멍하게 만든 건 수류탄 폭발이었는데, 20미터 거리에서 두 방 터지자 정신이 없다.


난 지나치면서 분대 분침호 같은 곳에 대고 난사했고, 이를 너무 악물어 턱이 아팠다. 별로 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순간 탄창 끝나고 노리쇠가 걸린다. 재빨리 갈아 끼우는데 김중사님이 날 쳤다. 포를 부숴! 포를 향해 다가가는데 앞장 선 김중사님의 총구가 불을 뿜었고 우리 앞에 선 그림자가 땅으로 무너졌다.


김중사님은 불안했던지 쓰러진 그림자에 두 방 더 갈겼다. 뒤에서 계속 총소리와 비명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난 성형을 한 포에 장착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진짜 죽음의 비명을 들었다. 어떤 놈 뒤지는구나. 뭐 아군만 아니면 죽던 말던 난 폭약... 난 조현병 환자처럼 계속 욕을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때, 폭파도 아닌 내가 고민했던 게 떠올랐다. 그 대공포 폐쇄기들 중앙을 날리려고 생각했는데, 정말 3파운드로 폐쇄기 여러 개가 날아갈까 걱정된다. 그런데 내 눈에 탄약박스가 들어왔다. 논리회로가 돌아갔다. 성형을 폐쇄기들 중간에 묶고 거기 기다란 포탄 박스를 세워 붙이고 최대한 고정했다. 김중사님도 곧바로 2번 포에 그렇게 하기 시작했고, 그 중간에 왼쪽에서 섬광이 보이고 총알이 대공포 쇳덩이 탱탱 따다닥 때리자 김중사님은 수류탄을 던져버려 폭발시켰다.


나도 반 탄창 갈기고 다시 작업을 이었다. 총 놓고 뭘 만지는 게 불안하다. 난 이만하면 됐다 생각하고 비전기식 점화기를 잡아당길 준비 하고 김중사님 쪽을 봤다. 구부려 있던 김중사님이 어느 순간 고개 들어 날 봤고, 눈을 보지는 못했지만 의사가 일치했다. 난 손가락을 들어 공중에서 원을 존나 빨리 계속 돌렸다. 김중사님이 사방을 향해 연신 고함을 질렀다.


“폭파! 폭파!”


폭파-준비 약정어. 사방에서 울리는 총성 때문에 누가 들었는지 어쩐지 모르겠다. 반응이 없다. 총을 다시 들었지만 아군 적군 분별하기 힘들어 쉽사리 방아쇠를 당기지 못한다. 뭐가 휙휙 지나가고, 김중사님이 고함을 열 번도 넘게 질렀을 때, 지역대장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점화! 퇴출! 점화! 퇴출!!!”


다른 누가 이 말을 복창했고, 순간 난 점화기를 당겼다. 퍽~칙~~ 소리를 확인하고, 제발 잘 터지라고 성형을 손바닥으로 툭툭 친 다음 능선 위쪽으로 가면서 탄창을 교환했다. 20미터 가서 무릎쏴로 대기했고 바로 옆에서 김중사님도 똑같이 했다. 뛰는 그림자들이 앞에서 진동하자 우린 “전차!” 암구어를 했고 그림자도 “전차!” 응답하고 우릴 지나쳐 뛰었다.


그때서야 저 위쪽에서 쏘는 최하사 저격총 소리가 들린다. 탕! 조금 뒤에 탕! 주기적으로 이어졌고, 난 도화선이 끝나 터질까봐 말도 못하게 불안했다. 그리고 다시 “전차!” 식별어를 교환했을 때, 불안한 마음에 그림자에 대고 소리쳤다. “뒤에 누구?!” 그러자 그림자가 “없어!!!” 소리쳤고, 우린 자동으로 놓은 상태에서 총구가 들리지 않도록 점사로 포좌 지휘소와 분침호를 향해 서너 번 나눠 긁었다.


바로 그때, 탄창 갈아 끼고 뛰려는데, 순간 그림자 하나가 내 앞 3미터도 안 되는 곳에 갑자기 출현했다. 그림자 대 그림자... 어디서 나타난 건지 생각할 틈도 없었고 순간 피아식별이 없다. 모르겠다. 감이 당기라고 했다. 감은 아군 오발이라도 내 책임이라고 했다. 어디선가 그런 말을 들었다.


[판단하면 죽는다.]


다리를 기마자세로 구부리며 총을 수평 지향으로 당겼고 내 앞에 섬광이 번쩍이면서 타다다당! 내 몸이 함마드릴 잡은 것처럼 전율했다. 그림자는 쓰러졌다. 진짜 쓰러지네... 눈깔 쟁반처럼 뜨고 다가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눈을 가늘게 떴다. 아니다. 아군은 아니다. 씨부랄 깡통모자. 갑자기 울화가 치민다.


“야이 개새꺄...” 난 몸통에 두 발 탕탕! 더 갈기고, 분에 못 이겨 뭔가 더 하고 싶었고, 떨어진 AK를 집어 노획했다. 내가 화가 난 건, 아마도 놀랐기 때문인 것 같다.


김중사가 날 쳤고, 우린 발길을 돌려 그림자들 뒤를 따라 뛰었다. 최하사 총소리가 계속 이어진다.


‘팀들은 매일 이러는 거?’


50미터 뛰었을까? 최하사 총소리가 사라졌고, 그때 내 뒤에서 익숙한 충격이 왔다. 낮게 땅에 깔리는 짜릉~쾅! 그리고 10초 뒤에 또 하나가 꽈랑! 뛰면서 나도 모르게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포탄박스 때문인지 폭발소리에 바로 붙어 서너 번 유폭이 펑 퍼버펑 일었다. 내 뒤에 김중사님이 뛰고 있다.


뛰는 건 바람처럼 가벼웠고, 힘들다는 생각 하나도 안 들고 전력질주. 남에서 그렇게 밤에 뛰었다면 어디 나무가 날 여러 번 때렸을 거다. 모든 게 30초 만에 일어난 것 같다. 안 따라오는 몸을 이끌려 머리를 앞으로 흔들고 두 가지 소총을 든 양팔을 힘껏 휘두르며 계속 뛰었다. 뒤에서 총소리가 펑펑펑 터지고 우린 계속 달렸다. 총알 맞을까봐 무섭고 등짝이 간질간질. 그렇게 오므린 자세로 그렇게 낮게 또한 그렇게 빠르게 뛴 것은 내 인생에서 처음이다.


그날 이후 그 녀석이 떠나질 않는다. 난 분명 그 녀석 얼굴을 자세히 안 봤다. 그러나 얼굴이 기억난다. 뭔 일인가 싶었다.


‘뭐가 잘났다고 쓸데없이 껍적거려 가지고...’


말처럼 간단하지 않았다. 누우면 떠오른다. 총성과 폭음으로 귀가 멍멍해서 다행이지 소리까지 들었으면 사람 돌 것 같다. 그나마 컴컴한게 고마웠다.


아래 발사대가 박살난 때문인지 포좌에 병력은 생각보다 적었고, 결과적으로 우린 기습으로 거의 다 사살하고 퇴출했다. 작전에선 저격수 최하사가 큰 몫 했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야간전투의 적외선은 최고였다. 최하사 기억에 자기가 넘긴 게 일곱은 넘는다고 했다. 난 이 개 같은 디자인의 벙거지 전술모를 증오했는데, 최하사 말로는 그 벙거지가 없었다면 식별이 불가능해 쏠 수 없었을 거라고 했다.


제품 값은 했다. 뛸 때 하도 벙거지 챙이 얼굴을 때리고 가려 다음 날 일어나자마자 대검으로 챙 반 정도를 돌려 잘라냈다. 굳이 전승기념일처럼 말하고 싶진 않으나, 끝나고 우리가 아무런 피해도 없이 퇴출했고 폭약까지 터졌으니, 그 만족감과 안도는 상당했다. 군장을 지고 새벽까지 깊숙한 산으로 도피했고, 북에 와서 처음으로 사람들이 웃었다. 그리고 모두 완전히 퍼져 쓰러졌다. 긴장은 체력소모의 휘발유였다. 아침에 일어나니 몸이 천근만근, 지난 밤 일이 어디서 소설로 읽은 것 같이 믿기지 않는다.


그 떠오르는 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분명 난 냄새도 못 맡았는데 냄새까지 기억난다. 무의식적으로 상대 얼굴을 확인하고 냄새까지 맡아 기억하고 있었다. 골인지 내장인지는 모르나 냄새는 역겨웠다. 이후 계속 생각했다. 이걸 어떻게 털어내나... 이거 안 사라지나?... 이렇게 달고 사는 거야?...


하늘은 구름으로 반이 차 있으나 먹물은 아니라서 비가 올 것 같진 않다. 비 오면 항공기 대부분 안 뜬다. 긴급항폭요청 보내고 감청과 전파측량에 대비해 곧바로 안테나 접고 무전기를 껐기에 언제 온다 안 온다 우린 모른다. 정찰보고 등위에서 최고로 올렸으나, 어디라고 최고로 안 놓을까 싶다.


다 긴급이지 뭐. 웬만한 건 폭격효과관측보고도 안올린다. 나중 보고전문에 문장 하나 정도. 조종사들 상은 받아야 하니까. 항폭은 네 번째였으나 앞의 두 번은 운이 좋았다. 날씨도 좋았고, 초계나 상공의 기종이 잘 연결된 거다. 정작장교 박중위 말로, 전시 공군 모든 전투기는 목표가 없어도 일단 다 기본무장하고 뜬다고 한다. 이때를 위해서 엄청난 돈 들여 산 것이니 전시에 놀리는 건 당연히 아닌 거다.


시간은 흐르고, 아무래도 바람 맞았다는 기분이 들기 시작한다. 그녀를 기다리던 카페에서 머그잔의 커피가 차갑게 식는다. 기분도 꿀꿀하고 몸도 쌀쌀한데 날아와 한번 확 싸질러주면 좀 좋아? 불과 화염은 여름에도 사람 모이고 묘하게 기분 좋은 법이니까. 작전성공은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명으로 황홀하다. 한번 또 싸질러주길 바란다. 우린 점차 서로 눈으로 찾기 시작했다. 슬슬 엉덩이 털어야 하나? 안 된 건가? 끝난 건가? 저런 장사정 세 개 정도는 목표 순위도 아닌가?


“아닌갑네.”


황원사가 손목시계를 보더니 중얼거린다. 지역대장을 본다.


“어떻게? 예정된 정찰감시로 이동할까요?”

“아 저거. 부수고 싶은데 말이죠.”


행보관은 불안한 기색이다. 또 저러다 내려가서 때리자고 할까봐 걱정이다. 발사대는 반드시 이동하고, 손을 놓는 순간 다시 못 본다. 만약 지역대 팀 하나만 연합으로 있다면 시도해볼만 하지만, 요행을 바라는 건 대가가 목숨으로 돌아온다. 일당백 일기당천은 맞다이 전투로 달성되지 못한다. 정찰감시와 항폭유도가 오히려 일기당천에 가깝다. 황원사 마음 같아서는 원사 달 때 부사관학교 고급과정에서 재미 삼아 참가했던 106밀리 무반동총 같은 걸로 때리면 제격 같았다.


‘기냥, 저기 조준해서 직선으로 쫘악~ 날아가 퍽! 그건데...’


고급과정 원사 달려고 온갖 부대와 주특기들이 모였단다. 사실 그때 군에 관해 전반적인 거 많이 알게 된다. 전혀 모르던 주특기의 기상천외한 스토리와 역사를 듣는다. 가장 부러운 건 화력. 역시 끝장을 보는 강한 병기는 보병과 포병과 기갑이다. 황원사는 지역대장의 다음 말이 기다려지면서도 방독면을 씌워 드리고 싶다.


“저거 저거 우리 시민들 죽인 포야!”

“개념 없는 자식들이죠.”

“...... 정말. 아이... 확 그냥.”

“지역댐, 참으십쇼. 할 일 많아요.”

“그래요. 그냥 속이 안 좋아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함경도의 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40 횃불처럼 1 20.11.17 446 22 12쪽
139 마지막 개구리뜀 20.11.16 419 17 17쪽
138 복수불반 4 20.11.14 384 24 14쪽
137 복수불반 3 20.11.13 359 25 12쪽
136 복수불반 2 +4 20.11.12 379 23 11쪽
135 복수불반 1 20.11.11 449 25 12쪽
134 용미리에서 만납시다 2 20.11.10 451 21 12쪽
133 용미리에서 만납시다 1 20.11.09 450 18 13쪽
132 너희가 총력전을 아느냐 5 20.11.08 407 25 15쪽
» 너희가 총력전을 아느냐 4 20.11.07 422 18 12쪽
130 너희가 총력전을 아느냐 3 20.11.06 448 18 12쪽
129 너희가 총력전을 아느냐 2 +1 20.11.05 446 18 12쪽
128 너희가 총력전을 아느냐 1 20.11.04 548 21 11쪽
127 나의 투쟁 2 20.11.03 393 18 15쪽
126 나의 투쟁 1 20.11.02 479 17 16쪽
125 불신의 벌판 6 20.11.01 373 19 12쪽
124 불신의 벌판 5 20.10.31 372 19 12쪽
123 불신의 벌판 4 20.10.30 378 20 12쪽
122 불신의 벌판 3 20.10.29 390 21 12쪽
121 불신의 벌판 2 20.10.28 400 20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