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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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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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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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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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복수불반 4

DUMMY

난 굳었다. 총소리가 터질 때마다 소스라쳤다. 안에 있는 피아, 모든 사람이 정지했고 숨을 쉴 수가 없다. 지역대장 권총 덮개가 앞뒤로 후퇴전진하면서 탄피들이 튀어나왔고, 군관 하나하나 머리가 요동을 치며 슬로우비디오처럼 앞과 뒤로 고꾸라진다. 그것이 끝나자, 정지된 화면에 가느다란 하얀색 실 연기들이 흐른다.


밀폐된 곳의 권총 발사음은 폭풍처럼 압도했다. 너무나 갑작스러웠기에 충격으로 얼이 빠진다. 내 얼굴에 튀었다 뭐가. 닦지 않았다. 그 냄새에 익숙해지고 싶었다. 지역대장은 엄지로 권총 자물쇠를 안전으로 돌리며 차갑게 남은 자들을 훑어보았다. 감정은 차분해 보였지만 가슴은 거칠게 부풀었고 또한 그것을 이빨로 억누르고 있었다. 숨은 분명 거칠게 타고 있었다.


팔다리가 꺾이고 휘면서 팔다리가 엉켜 넘어진 변사체들...


뒷열에 무릎을 꿇은 북한 병사들은 공포로 넋이 나간 사람들처럼 입을 크게 벌리고 동공이 열리고 눈이 풀렸다. 이제 죽었다고 생각하고 자지러져 실신상태였다. 사람이 저럴 때 목숨 걸고 안 덤비나? 난 방아쇠를 반쯤 당기고 있었다.


지역대장이 권총을 천천히 내리면서 그들에게 다가갔다.


“어이 전사 하전사 들어. 우리 서로 얼굴 다 봤다. 너희는 살려준다. 너희는 죄가 없다. 우리가 모욕을 느끼고 분노한 일은, 너희들이 결정한 게 아니다. 당연히 안다. 죄 없는 사람은 죽이지 않는다.”


병사들은 크게 안도했으나 여전히 긴장을 풀지 않았고, 말을 제대로 듣지도 않고 그저 살라달라는 눈빛으로 두 손을 모았다. 지역대장이 권총을 권총집에 집어넣는다. 이내 곽에서 뽑아 담배를 하나 물었고 난 왼손으로 라이터를 켜주었다. 청동으로 된 흉상에 불을 붙여주는 기분. 지역대장이 훅 한 모금 내뿜고 말을 시작한다.


“걱정마라. 진짜로, 정말로 안 죽인다. 이걸로 끝이다. 우린 너희 군대와 싸우는 거지, 무고한 인민과 싸우지 않는다. 너희가 반은 민간인이지? 사민! 군복 입은 자와 총 든 자 빼고는 안 건드린다. 그리고 이건 교전행위가 아니라 우리의 복수다. 앙갚음. 모욕에 대한 복수. 너희들도 그런 비겁한 일을 하지 않으면 우리 대상이 아니다. 료해(이해)되었나? 이제 우린 간다. 만약 너희들이 여기서 일어난 일에 대해 거짓말을 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우리가 포로로 잡혔을 때, 너희들이 군관을 죽이라고 종용했다고 우리도 거짓말을 하겠다. 서로 있었던 그대로만 기억하면 아무 일 없다. 너희를 묶지 않겠다. 뒤따라 나오고 싶으면 나와!”


지역대장이 입으로 딱딱딱 신호를 했고 우린 재빨리 약정된 행동을 했다. 남은 생존 내무들은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바닥에 엎드리게 했다. 난 권상병과 같이 무기고로 들어가 상태 좋은 88식 보총 두 정과 실탄 수류탄을 챙기고, 나머지 총들은 모두 벽에 대고 후려서 총열이 휘게 하고 던져버렸다. 그 동안 정작장교는 사무실 모든 서류를 들추며 정보가 될 만한 걸 노획했고, 행보관은 대검을 빼서 병사들을 찔렀다. 죽인 게 아니다. 일부러 가볍게 상처만 낸 것이다. 피 칠만 해줬다. 어쩌면 행보관은 남은 내무 병사들에게 살길을 찾게 해 준 것이다. 바닥은 이미 피와 분비물로 흥건했다.


내무 병사들에게, 지역대장의 마지막 말로 우린 퇴출을 시작했다.


“잘 기억해. 내려올 일 만들면, 다시 내려온다!”


나도 여기서 첫 마디를 뗀다.

"다음에 이런 일로 또 내려오면, 총 안 쓴다."


나오기 전 마지막, 유행성 조류독감 때문에 살처분되어 구덩이에 던져진 가축들 같은 군관 넷. 뒤엉킨 4인의 장교. Officer. 군인 중에서 가장 멋있다. 높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허나, 전시의 장교는 죽을 확률이 치솟는다. 전투에서 여러 명 중 고르라 하면 누구나 장교를 쏠 것이다. 누구나 되고 싶은 것이지만 실로 두려운 계급. 표적이 되어도 마냥 엎드려 있을 수 없는 계급. 부하 모두가 엎드려 있어도 일어서야 하는 지위. 적이 항상 우선순위로 조준하는 대상. 더 이상 부럽지 않다.


적이 뺨이나 때리겠는가. 총알이 관통하고 파편이 살을 찢는다. 망자가 뭔 계급이 남아 있나. 아무나 탐내지 말거라. 어떤 것이 무의미해 보여도 사건이 벌어지면 이유가 드러난다. 아무나 탐내지 말아야할 것이지만, 어찌하든 된 자는 오래 앉지 못한다. 일어서 앞을 봐야 한다. 제아무리 바보 천치라도 어깨에 철을 달았으면 진중하며 용감하라. 그러지 않으면 명령에 따라 나가는 사람 없으리. 무섭다. 죽음에 더 가까워 무섭다. 나 같으면 씨발 내 권총으로 내 관자놀이를 쏘리라. 저 모습으로 끝날 것이라면...


거길 천천히 걸어 나온 다음, 우린 산을 향해 속보로 걸었다. 지역대장이 뛰지 말라고 했다. 지역대장은 그들이 쫓아오지 않을 거라 봤지만, 그래도 우린 불안했다. 한참 걷다가 정작장교가 지역대장에게 다가갔다.


“뭔진 모르지만, 폭음이 나서 다행이었습니다.”

“어이 정작, 까먹었어? 그거 4중대잖아. TOT 0230.”


정작장교는 아무 말 못 했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바로 뒤에서 이 말을 들은 나는, 이제 지역대장의 모든 걸 믿기로 했다. 그 전에는 불안했나보다. 날 맡길 지휘관이 맞았다. 흥분하고 공격적이지만 계산도 한다. 뭐가 더 모자란가.


한 시간 정도 오르고 나서 잠시 서서 쉴 때, 이 일이 벌어진 것에 대한 시발자로서 난 지역대장에게 물었다.


“왜 군관만 쏘셨죠?”


“사실 병사는 관계가 없잖아! 군관을 살려두면 거짓 소문이 퍼져. 하전사들은 여기 사는 사람들일 거야. 병사들이 진짜 소문을 퍼트려. 군관은 부임하잖아. 자 봐. 파견나간 놈도 있겠지만, 여기 군관이 다 죽었어. 진짜 얘기가 하급으로부터 퍼지는 거지. 아무리 보안 어쩌고 해도 인간 입은 흘리게 돼 있어. 우린 민사 포기했지? 우리에게 상관만 안 하면 무사하다는 게 알려질 거야. 사실 그게 바로 민사작전 1단계야. 남조선 빨치산들은 개념이 있다. 대항하지 않으면 안 죽인다. 군관만 죽이고 병사는 안 죽였단다... 그 효과는 현재 딱 하나야. 내가 바라는 효과는 딱 하나지. 산에서 우릴 보고 못 본 체 하는 것. 그거. 우리가 도로를 걸을 때 남조선 게릴라를 보고 못 본 척 하는 거. 남조선 빨치산을 본 게 자기 혼자라면 안 본 것이 되는 거. 그 이상 없어!”


“저... 괜찮으십니까?”


그 말에 지역대장 표정이 약간 일그러진다.


“지휘관이면 말야, 자기 공포와 불안을 묻어둘 때가 있어.”

“그냥 저희에게 지시하셨으면...”

“그건 내가 할 일이었어. 누굴 시켜.”

“갑자기 쏘셔서...”

“잡히면 우리도 다 죽어.”

“......”

“그리고, 권총은 그럴 때 쓰는 거지.”

“처음부터 네 명 다 쏠 생각이었습니까?”

“군관을 다 죽인다는 게 아니라, 병사만 살려주겠다 생각한 거야.”

"알겠습니다."

"죽음이 무섭니?"

"모르겠습니다."

"...... 한 순간야. 나 영혼 안 믿어."



휴, 정말 사람 새로 보이네... 그런 생각을 하는데, 지역대장이 한 마디 또 했다.

“내가 보기에, 지목되었던 병사는 탈영할 거야. 한 표.”


어두운 밤길. 산길. 우린 군장 은익장소에 도착해 군장을 지었다.

‘살아서 돌아가면, 한국말 안 쓰는 네팔 같은 데서 셀파나 할까?’


계속 고바위. 대열에 안 떨어지려고 노력한다. 조금 지친다.

어느 순간 내 바로 앞에 가는 사람이 손가방을 들고 있다.


“권! 너 왜 그랬어?”

“저 강하사랑 친합니다. 모르셨슴까?”

“무슨 연관이 있어?”

“고향은 차로 30분 거린데, 여기서 친해졌습니다.”

“그래? 허, 어떻게 친해졌는데...”

“말해도 됩니까? 좀 그렇습니다.”

"여기서 뭐 감출 것도 있나?"

“개인적으로 강하사가 절 형이라고 불렀습니다.”

“그게 씨바 말해도 되고 말고가 어딨어. 그럼 그런 거지.”

“다른 하사님들 알면 난리 납니다.”

“니가 나이가 많지?”

“세 살 윕니다. 다른 하사들한테는 의미 없지만.”


“그래, 마음 좀 추슬러졌어?”

“더 조져야 할 거 같은데요.”

“야가 야가... 얼마나?”

“강하사 나이 열아홉.”


상향길에 땀이 난다.


“눈동자 보는 거리에서 열아홉. 헤헤. 농담입니다.”


‘니가 들으면 지금 그 말이 농담으로 들릴 거 같냐.’


문득 권상병이 다르게 보였다.

그리고 아까부터 봐왔던 걸 내가 물었다.

“그 북한 가방 왜 들고 온 거야? 안에 뭐가 있어?”

“내무군관 군복 세 벌에 권총 네 개요.”


숨은 차지만 템포 조절이 된다. 이대로 주욱 가면 된다.


"어이 정작장교. 이게 특이해 보이나?"

"모르겠습니다."

"백운산, 덕유산, 지리산, 6.25 전후."

"네, 알겠습니다."

"적성권총 하나 자네가 휴대해."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 권총이 말야, 칼 쓰던 전장에서 라이플이 등장했을 때 기병이 한 손으로 쏘라고 피스톨을 만들기 시작한 거야. 한 손이 고삐를 잡고 있어야 하니까. 그러다 재장전이 안 되니까 3연발 5연발이 나온 거고. 말을 탄 사람은 기병 아니면 지휘관이야."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봤지? 장교는 자기 권총을 자기 관자놀이에 대거나 적의 권총에 죽는 거다. 내가 병신 같이 나포될 것 같으면 그 권총으로 날 쏴라. 자네도 투항하면 나도 쏠지 몰라.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 말아. 살아남아 승리의 축포도 이 권총으로 하자. 장교의 명예는 권총으로 시작해 권총으로 끝난다. 장교가 권총을 갖는 이유다."

"명심하겠습니다. 피나 아의 심장만 쏘겠습니다."


다시 어둠 속에서 초침은 현재를 잊고저 미래를 향해 달리고, 크고 자잘한 모든 걸 과거로 둔갑시킨다. 어쩌면 시간과 망각이 인간에게 좋은 것일까? 적어도 전쟁터에서는 그런 것 같다. 걷고 오르고, 그러면서 점차 과거로 멀어지는 사건들을 대신해 거친 숨을 내뱉는다. 육체의 스위치는 뇌에서 허벅지로 스위치를 전환한다.


죽임과 살인의 감정으로 잔뜩 찌푸렸던 미간에 힘이 풀리면서 무념무상의 육체로 돌아가고, 인내의 단비처럼 땀방울이 이마를 타고 흘러내린다. 평시라면 많은 걸 곱씹으며 되새김질하겠지만, 이곳은 내일 다가올 공포가 과거를 덮는다. 전쟁은 면밀하게 계획하나 불특정한 양자도약의 독립영화 24시간 상영. 서로가 살의와 민감함으로 매시 매분 모략한다.


평온하다 5분 뒤에 뭐가 온다. 전쟁 끝나는 날까지, 군인 한 명이 명을 달리할 때까지 약해지지 않고 계속 된다. 더 강해진다. 더 지랄한다. 경험이 사람을 경건하게 한다면 전쟁을 죄다 나이 먹은 사람들이 되자 일으키는 건 무엇으로 설명해? 장사정도, 미슬발사대도 저격도, 방금 전의 것도... 훌훌 멀어져간다. 펄럭이는 군복 하의와 열이 오르는 발바닥. 차이 사이로 뿜기 시작하는 스팀. 땀. 고요 속의 분주한 발자국들.


인생? 큰일 겪고 나서 이제 인생 좀 안 건가 방심하면 더 큰 게 터진다. 이거 막으면 저게 터지고 저거 막으면 이게 터지는 인생. 그 반대도 있기는 할 거다. 허나 오늘 행복했다고 내일의 불행을 막을 수 없다. 일어날 일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저 일어난다.


일렉산드로 솔제니친은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에서 그랬다. 인간의 위장은 배은망덕하다고. 오늘 맛있는 걸 아무리 풍족하게 넣어주어도 내일이면 또 뭘 넣어 달라도 아우성친다나... 하지만 그래서 우리가 오늘을 살 수 있다. 지금에 허덕이는 게 인간이지 뭐. 우린 지나간 것에 체질적으로 배은망덕하고 살지. 뭐 어쩌라고... 더 죽여야 내가 사는데...


대검집이 내 허벅지를 계속해서 친다. 심심하냐?


한참을 씩씩거리며 올라와 정작장교가 지도정치를 하는데, 지역대장이 뒤로 몸을 돌려 저 멀리를 지시한다.

“벌써 효과가 나타나네.”


우리 모두 땀을 훔치며 몸을 뒤로 돌린다.


우리가 떠나온 방향에 불이 났다.

아무리 봐도 장소는

군관 네 명이 죽은 곳 같다.



들판에 울리는 소리가 들리느냐,

이 잔인한 군인들의 포효가.

그들이 바로 우리 곁에 왔다,

너희 조국, 너희 아들들의

목을 따기 위해서.


신성한 조국애여,

우리 복수심에 불타는 팔을 떠받쳐라.

자유, 사랑하는 자유여,

씩씩한 노래에 맞춰 돌진하리라.

네 죽어가는 적들이

네 승리와 영광을 보도록.


나가자, 나가자!

그들의 불결한 피를

우리 들판에 물처럼 흐르게 하자.


- 프랑스 (애)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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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 복수불반 2 +4 20.11.12 379 23 11쪽
135 복수불반 1 20.11.11 449 25 12쪽
134 용미리에서 만납시다 2 20.11.10 451 21 12쪽
133 용미리에서 만납시다 1 20.11.09 450 18 13쪽
132 너희가 총력전을 아느냐 5 20.11.08 407 25 15쪽
131 너희가 총력전을 아느냐 4 20.11.07 422 18 12쪽
130 너희가 총력전을 아느냐 3 20.11.06 448 18 12쪽
129 너희가 총력전을 아느냐 2 +1 20.11.05 446 18 12쪽
128 너희가 총력전을 아느냐 1 20.11.04 548 21 11쪽
127 나의 투쟁 2 20.11.03 393 18 15쪽
126 나의 투쟁 1 20.11.02 479 17 16쪽
125 불신의 벌판 6 20.11.01 373 19 12쪽
124 불신의 벌판 5 20.10.31 373 19 12쪽
123 불신의 벌판 4 20.10.30 378 20 12쪽
122 불신의 벌판 3 20.10.29 390 21 12쪽
121 불신의 벌판 2 20.10.28 400 2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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