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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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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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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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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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마천령 산맥 1

DUMMY

“왜 우린 여기 들어온 겁니까?”


소총을 든 사람이 허스키한 목소리로 물었다.


따사로운 날씨.

회색 산에 온화한 백색이 살아난다.


“진짜 축선은 개성-평양 아닙니까?”


권총을 찬 사람이 부드러운 음성으로 입을 연다.

“거긴 육해공 모든 것이 넘쳐. 탱크가 가면 되는 곳이야.”

“여긴 인프라도 부실하고 지역이 낙후합니다. 너무.”

“이 거대하고 고독한 도. 누가 안 오는 것도 이상하지. 하지만 청진항과 나진 선봉은 우리 병력으로 손도 못 대. 공군도 해군기지를 제외하고는 청진 안 건드리고, 나진 선봉은 러시아가 가까워서 못 건드려. 말도 안 되는 지역에 말도 안 되는 숫자가 들러온 거 맞지.”


“서부에 비해 진격도 늦을 이곳에 진짜, 우릴 꼭 보내야 했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온 거야.”

“그래서라뇨...”

“각자도생. 격리된 지역을 더욱 고립시키는 거야. 여긴 역사적으로 항상 배제된 지역... 사람들이 억세고 수도는 멀어.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는 힘은 여기서 나왔어. 언성이 높아서 북한 비속어로 쏠라도야. 기본 억양이 솔과 라처럼 높고 강하다 이거지. 여기 사람들은 평양 특별구역 가보지도 못해. 밀무역 탈북 가장 많고 남조선도 잘 아는 지역이고. 딱히 선무전을 하지 않아도 남한 잘 사는 거 다 알아.”


“탈북자가 함경도가 많죠. 함경북도.”


“회령 같은 데는 남한 프로그램 다음 날 구워서 들어오기도 해. 진짜 쿠데타라고 할 수 있는 1997년도 6군단 반란사건도 청진. 어차피 이기는 건, 아군 보병과 기갑이 와야되는 것이고, 우리 임무는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차단이야. 더 중요한 목표를 놔두고, 우린 청진 외곽 전력과 통신선 철도를 끊고 도로 차단하는지 이해가 돼?”


“조공의 차단?”


“거꾸로 말해서, 이렇게 인프라가 부실하지 않다면 우린 여기서 작전 못 해. 적 직승기 천 대만 더 있었어도 토벌돼. 우리 목표는 개성 평양 신의주 압록강의 주 축선 오른쪽에서 조공을 못 하도록 막는 거야. 우린 서울을 잊고 저들은 평양을 잊는 거지.”


그러나 옆에 선 사람은 그 말로 모든 감정을 억제할 수 없었다.


“다른 여단은 모두 영광스런 지역을 맡아서 사기가 충천할 겁니다. 우린 뭡니까? 버려진 기분마저 듭니다. 너무 멉니다 너무. 천리행군보다 멉니다.”


“도시에 들어간 여단을 생각해봐. 여긴 아무데로나 도망갈 수 있어. 개마고원에서 끝까지 분전하다 사라진 영도유격대 낙하산 제대를 기억하자고. 여기 말대로 이것은 조국해방전쟁이 되어야 하고, 우린 통일을 찾는 촛불이야. 다만 좀 외로울 뿐.”


“말이 너무 멋지십니다.”

“심미적인 표현이 사기에는 그만이니까.”


두 사람은 시야가 멀리 트인 아래를 내려다본다. 둘 다 군복은 입었지만, 계급도 마크도 없다. 소총을 들고, 허스키한 목소리답게 적당한 키에 군살이 없으며 얼굴이 우둘두둘 거친 작전장교. 이에 비해, 보다 살집이 있고 표정이 온화한 사람은 대대장이다.

아래는 가파르고 굴곡이 심한 지형. 구불구불 도로가 또렷하다.


“남쪽에서 잘하고 있겠지?”

“교신이 안 되니까 말입니다.”

“문제가 생겨서 퇴각한다는 신호는 없었잖아.”

“계속 괴롭히고 있을 겁니다.”


이곳에서 남쪽 5km. 두 개 팀이 중요한 교량을 위장공격하고 있다. 야간에 접근해서 파괴하는 것이 부대 전술이지만, 이제 폭약이 없다. 남쪽 두 팀은 이 도로 매복을 위해 일부러 시간을 끌며 적성 기관총과 RPG로 퇴각하지 않고 반복해서 공격하고 있다. 저들도 전에 못 보던 전술로 당황할 것이다. 두 팀은 공격하다 응사하면 퇴각한 듯 은폐했다가 재공격, 차량이 올라오면 다시 공격하면서 괴롭히고 있을 것이다. 말이 2개 팀일 뿐, 합해봤자 남쪽에서의 1개 팀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그 교량 습격 연합팀의 무장은 강력하다. 7호 발사관 3정과 적성 기관총 3정에 상당한 탄약을 대대원들이 근처까지 날라다 주었다. 동이 트기 전부터 퇴출신호가 떨어질 때까지 공격한다. 대대장은 말했다. 탄 남겨두고 적에게 수복시키지 말라고.


“저쪽에서 안 나오면 어쩌지?”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첫 대대 작전인데.”

쌍안경 배율을 조정해 북쪽을 살핀다.

“여긴 경치가 수목이 아니라 산 자체네.”

“낮이라 그럴 겁니다. 밤이면 이 산악이 괴물로 변하죠.”

“예상 못 하겠지?”

“지금까지 주간공격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우리 잘 시간이죠.”


어디서 얇고 미세한 바람 빠지는 소리. 유압 튜브가 터져 강한 공기압이 새는 것 같다. 시선을 끄는 상공, 저 높은 하늘에 점으로 보이는 편대가 남쪽으로 날아간다. 작건 크건 북한 전투기일 수가 없다. 눈이 전투기를 따라가다 대대장이 쌍안경을 남쪽으로 돌리고, 참모도 슬며시 남쪽으로 돌린다. 불문율처럼 묻지 않는 것이 있다. 아군은 어디까지... 재보급은 언제... 그 질문을 하면 자신도 모르게 긴 호흡이 주욱 빠져 나간다.


허나 그것은 겉으로 드러난 것일 뿐. 발언의 금기는 따로 있다. 먹는 것과 병기는 어떻게든 죽지 않을 정도로 해결하고 참을 수 있다. 진짜 의도적으로 거론 안 하는 것은 무엇일까. 다름 아닌 아이들 이야기. 남반부 이야기. 이 지휘관과 참모는 공통적으로 결혼을 늦게 해서 아이들이 눈에 밟힌다. 그때마다 일부러 인상을 찡그리며 사념을 밀어버리려 노력한다. 군인가족이 워낙 많은 부대다. 부사관들도 사회보다 훨씬 일찍 결혼하는 경향이 있다.


모처럼 좋은 날씨와 태양, 밝은 것을 보니 더 남녘이 그립다. 보안 원칙에 따라 지갑 수첩 군번줄은 물론 가족사진 한 장 휴대하지 못했다.


‘잡히면 뭐라고 합니까?’

‘그런 상황이 오는 걸 용인하지 마라.’


그리우면 생각으로 그려라... 아이들은 물론 아내들에게도 어디 간다, 작전 올라간다, 일절 말하지 못했다. 평범하게 출근하듯이 나가면서 비상이 풀릴 때까지 한동안 못 들어온다, 말했을 뿐. 아이들 자는 얼굴이 마지막. 둘은 서로의 집에서 저녁도 같이 먹고 아내와 아이들끼리도 친하다. 여기 공중전화가 있다 해도, 언제 돌아간다 말할 수 없고, 몸 성하게 살아 돌아갈 보장도 없다.


[브라보 리콘, 보고!]

무전기가 떴다.

[브라보 베이스 송신!]

[통조림 다섯. 도라꾸 일곱. APC 둘. 거리 800.]

[완료. 접수.[


“지시해!”

대대장이 작전참모에게 무전기를 건넨다.

“탱크만 쏴. 다른 건 버려. 탱크만 파괴하면 퇴각한다.”

“병력은 더 안 때립니까?”

“목표는 탱크일 뿐야. 병력과 교전하면 우리 숫자만 줄어.”

“탱크만 때리면 의미가 있습니까?”

“있지. 병력이 몇 명 죽었다 해도 곧 잊혀져. 사람은 계속 죽어가니까. 그리고 사람이 넘치니까. 인명피해를 북한이 뭐 공표라도 해? 하지만 탱크가 다섯 대 깨졌다면 훨씬 소문이 클 걸. 퇴각하면서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는 3인 저격팀을 남긴다. 똘똘한 3중대장에게 맡겨. 끈질기게 괴롭히고 퇴출했다가 또 내일 나가서 이 고개를 저들 입에 맴돌도록 해봐.”

“입력했습니다.”


[전망대기, 전망대기. 각 조, 각 조. 700. 700.]


참모가 구체적인 최종점검을 하달하고, 대대장은 먼 곳을 바라보며 태양을 만끽한다. 대대장은 벙거지 위장모가 아닌 디지털 픽셀 베이스볼 캡을 썼다. 하지만 당당함과는 다르게 옷은 때가 가득하고 수염은 길게 자랐으며 얼굴도 검어 누추한 기색이다. 계급장 마크는 물론 찍찍이 까지 다 떼어, 얼핏 보면 예비군이나, 수염 때문에 체첸 반군처럼 보인다.


‘괴롭히긴 괴롭혔어. 기갑이 이런 고개를 주간에 오다니.’


“대전차 심었지?”

“어젯밤에. 한 열 개.”

“열 개?”

“공화국 제품입니다.”

“적성 대전차에 RPG.”

“널렸습니다. RPG는.”


“대대장님, 갑자기 폭격 떨어지면 어쩌죠?”

“글쎄. 저 정도 차량대열이면 조기경보기에 뜰 거야. 미군 거나 우리 거나. 관심 없을 걸... 여기. 요즘은 도트로 탱크도 식별해. 위에서 그러겠지. 다섯 대?...”


둘은 웅크리지 않고 서서 쌍안경에 집중한다. 속도가 빠르다. 저 멀리 고개에 선두 장갑차가 넘어서고 있다. 탱크 다섯 대 중 세 대가 고갯길 정상을 넘어서길 기다린다.


최적 조건인 맑은 하늘과 바람 한 점 없는 날씨. 둘은, 짙은 대전차지뢰 흑회색 연기가 펑! 일어나길 기다린다. 대전차지뢰 폭발은 군인도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폭발은 즉각 공격명령으로 약정되었다.


“대전차 매설 통과한 거 같은데...”

참모가 중얼거린다.

“저게 원래 재수 없는 놈이 걸리는 거라니까. 차나 탱크나 몸체에 비해 바퀴와 궤도가 좁아. 옛날 월남에서도 꼭 첫 차량이 터지는 게 아니더라고.”


“어, 어, 첫 번째 통조림이 넘어섰습니다.”

“어, 작전! 저기다 심었어?”

‘옙?“

“저긴 하향이 1자로 너무 가팔라. 좀 위험한데.”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긴 속도가 빨라지잖아! 그러니까 대전차는 월남전 표본을 읽어야 한다니까. 속도와 하중은 반비례잖아. 월남전 비포장도로에서 트럭들이 얼마나 빨리 달렸는 줄 알아? 속도가 빠르면 누르는 하중이 가벼워지고, 터져도 운전병과 선탑자가 덜 위험한 꼬리에 물리거나 직후방에서 터져. 그래서 트럭들이 간격을 대전차지뢰 유효 반경으로 벌리고 빠르게 달렸어. 선탑은 쌍안경으로 전방 길에 덜 마른 흙이 있나 봐주면서 가는 거고. 봐, 공중폭격 때문에 지금 쟤네들 간격 잔뜩 벌리고 오잖아.”


“아......”


“하지만 트럭들이 밟다가도 속도를 줄이다가 터지곤 했는데, 잘 닦여서 빨리 달리는 도로는 보통 커브에 심었다고. 굴곡. 속도 줄이는데... 아니면 인계철선을 이중으로 심던가. 좀 더 아래 굽이가 좀 있는 곳에 심었어야지. 지금은 장갑차와 탱크가 있어서 걸릴 거 같기는 한데, 나중에 잘 생각해봐. 분명 도로 중앙에 세 개 정도, 그 뒤는 좌우로 깔았겠지? 최소 두 대 이상 걸리게! 보병분대 원샷으로 잡으려고 산길에 대인지뢰 연계로 까는 방식. 선두 세 발에 하나가 걸려야 대열이 정지하지!”


“확인하겠습니다.”

“일단, 무전기 들어.”

“옙.”

“오케이. 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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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해파리 three (1) 20.10.23 441 2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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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해파리 넘버 Two (1) 20.10.21 494 2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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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내추럴 본 : 종결 1 20.10.19 491 2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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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내추럴 본 : 인민군복으로 1 20.10.17 555 2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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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천령 산맥 1 20.10.15 565 2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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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블랙홀 속으로 9 20.10.12 502 23 15쪽
104 블랙홀 속으로 8 20.10.09 564 2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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