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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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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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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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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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의 꿈 5

DUMMY

계속 떠들던 지휘지원조 말이 사라지고 정적이 찾아왔다.


몰핀을 때렸다는 것은 지역대 은어로 ‘중상. 두고 갈 수밖에 없다.’를 의미한다. 전사를 뜻하기도 한다. 북으로 오기 전에 쓰던 말이 아니다. 여기 올라와서 어떤 사건 이후 자연스레 쓰게 된 약어다. 몰핀. 그러자 지역대장이 분명한 목소리가 작전 중에 하지 않는 말을 했다.


[몰핀, 누구야?]

[깔꾸리 셋에 별. 임. 임. 임.]


듣고 있던 편중령은 사이트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숙여 눈을 감았다. 임원사다. 대대 군수과 담당관을 의미했다. 무전기가 서로 침묵했다. 정적 속에서 눈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차분한 지역대장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낮잠(의식불명)인가?]


[아니다... 부상 후 깔꾸리 임이 자청. 솔방울(수류탄) 두 개 달라 요청하고, 후위(로) 남았음. 다리 중상...... 들려고 했으나 실패했음. 죄송함다.]


[..... 완료. 빨리 기동하라. 곧 여기서 쏜다.]

[달린 것(적)이 무척 많다. 어서 쏴라.]



이때 편중령은 듣던 무전기에 송신 스위치를 눌렀다.

[여기 브라보장조. 지원조 바로 윗 능선에 있다.]

[브라보장조는 퇴출하라고 이미 말했다. 이상!]

[엄사하고 퇴출한다. 높고 사계 좋다.]


목소리가 작전장교로 바뀌었다.


[브라보장조는 퇴출하라고 분명이 말했다. 이상!!!]


말이 지휘지원조지 다섯 명이다. 그 중에 하나 저격수는 훌륭한 엄호지만, 지역대장과 작전장교 포함 네 명이서 엄호사격을 하겠다는 것인데, 편중령은 브라보장조가 바로 퇴출하는 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했다.


[말 들어라. 여기 사계 무척 좋다. 사격하다 지원조와 동시 퇴출한다.]

[...... 그럼... 조금만 더 빠르게 퇴출하라. 이상.]


김중사가 입을 열었다.


“300 이내로 진입. 30초 뒤부터 쏘겠음.”


밑의 화기 저격수는 계속 쏘고 있고, 나머지 넷도 모두 쏘기 시작했다. 물체가 조준경에 잡히는 건 아니지만 일단 위협탄이라도 날리려는 생각. 편중령의 높은 위치가 훨씬 좋은 장소였고, 이 자리를 지원조가 먼저 찍어두었다면 좋았을 거라고 편중령은 생각했다. 김중사가 선언한다.


“깔꾸리 김, 사로 본다~~~!”


첫 방이 빵! 나가고 아래 저격수와 비슷하게 15초 간격으로 쏘기 시작했다. 1분 정도 지났을 때, 김중사가 다시 선언한다.


“200에 들어왔다. 나는 물체가 들어오나, 알아서 사격 시작하십쇼. 잠시 후 서너 방 쏘고 탄창교환 위치이동!”


편중령은 숨을 죽여 조준경을 보았다. 연속으로 터지는 섬광. 그 중간에 놓아. 그리고 방아쇠, 첫 발. 땅! 이상병도 쏘기 시작했다. 섬광이 번쩍하면 잠시 더 안 보인다. 마치 오락실 게임과도 같이, 방아쇠를 건 상태에서 섬광이 조준경 중앙에 들어오면 당긴다. 김중사는 물체를 잡고 쏘고 있다. 얼마나 쐈을까....


[신호탄 자리 우측 상방에서 누가 쏜다. 지원조?]

지역대장이 응답했다.

[아니다. 브라보장조. 공수 공수.]

놀랐는지 무전기는 잠시 말을 끊었다.

[퇴출 포인트 잘 보여서 좋다. 편대장 화이팅!]


그러나 잠시 여유를 찾을 수도 없다. 지역대장이 보기에, 전과 다르게 대규모 섬광들이 끝까지 달려들고 있다. 위기의식이 고조된다. 분산탈출 선언하기에는 늦었다. 일단 산으로 들어가는 게 중요하다. 섬광으로 보는 상황은 심각했다. 다가오는 대규모 섬광들이 지원조를 기점으로 포위하듯이 조여오기 시작했다. 누구나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제 도울 건 아무도 없고, 이제부터 각자 알아서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아주 멀지 않은 저 앞에서 수류탄 두 방이 몇 초 간격으로 연이어 폭발했다. 아무도 정확히 볼 수 없었지만, 그 폭발은 근처에 있던 반딧불 여러 개를 잠식시킨 듯 보였다.


편중령도 이런 상황까지 오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앞만 보고 있는 가운데 갑작 왼쪽 저 아래 다수의 섬광이 나타났다. 그때부터 일대는 혼전 그 자체... 김중사가 총구를 돌려 그들을 향해 쏘기 시작했고, 두 명도 번갈아 가며 두 곳에 조준경을 두고 사격했다.


그러나 상황은 이미 걷잡을 수 없이 변하고 있었다. 지휘지원조 가까이 섬광들이 붙었고 응사하는 섬광이 나무들 사이로 번쩍였다. 이후 지역대장은 무전기를 잡을 시간조차 없었다. 지원조와 대대장조를 구심점으로 지근거리 원형으로 적은 조여왔고, 그 중간 어디에서 첨병조와 타격조가 뒤섞여 산으로 향하며 응사하고 있었다.


셋 중 아무도 말하지 않았지만, 이 근접거리 불 튀기는 격렬한 교전은 모두가 상상하던 그것이었다. 언제 자신이 맞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서로 불을 뿜는 교전. 저 섬광 하나가 나에게 적중하면 죽는다. 그러나 나도 쏜다. 두렵고 살벌하다.


모든 무게와 움직임이 사라지고 먼저 적을 적중시키고 후퇴하는 아군을 엄호하겠다는 의지. 땀이 흐르는지 장비가 무거운지 관심 아니다. 불 뿜는 K1 K2가 착실하게 그 역할을 하고 있다. 벅찬 것은 생각보다 탄창이 너무 금방 끝난다는 것. 얼마나 쐈고 몇 발이 남아 있는지 생각 못한다는 것.


실탄 끝나고 노리쇠가 후퇴해서 물려도 가끔 방아쇠를 당기고 있다는 것... 당황하면 탄창도 잘 안 들어간다는 것. 그러면서도 새 탄창을 머리나 덮개에 툭툭 때리면서 실탄을 탄창 앞으로 밀어주는 버릇. 삽탄된 탄창이 떨어져간다는 두려움. 결국 더 빨리 쏘고 있는 편중령과 이상병은 탄창에 삽탄해야 하는 상황이 왔고, 아직 퇴출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이상병이 소리친다.


“탄포 탄창 주십쇼. 제가 삽탄하겠습니다!”


김중사는 사격하다 문득 사격하는 대대장을 바라봤다. 자신의 가장 큰 임무는 브라보장을 데리고 가야 하는 것. 어느 시점에 일어서 뛰어야할지 가슴이 떨린다. 김중사가 봐도 지휘조는 퇴출! 선언을 안 하거나 못 할 것 같다. 이 탄창만 쏘고 일어서자고 사이트로 눈을 돌렸다. 다가오는 섬광들은 전에 느끼던 그들이 아니었다. 모든 지역대원들은 이들이 새로운 부대라고 생각했다.


김중사가 이제 확실한 판단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던 시점. 아주 가까운 저 앞에서 급격한 움직임이 보였다. 뭐랄까 쏘기 전에 생각이 필요했다. 이중현 상병이 고함을 질렀다.


“살모사! 살모사!”

그러자 몇 초 뒤 응신이 왔다.

“전천후(2중대). 전천후. 개(적) 아니다.”

“빨리 올라와! 여기 능선길 있다!”


순간 올라섰을 때, 셋은 사격보다 그들을 살필 수밖에 없었다. 군한군복을 입은 첨병조 두 명이었다. 한 명이 피투성이였고 한 명이 부축하고 있었다. 편중령은 멍했던 자신을 질책하고 곧바로 명령을 내렸다.


“중현아! 너 조력으로 붙어서 같이 올라가!”

“대대장님, 이제 퇴출해야 됩니다.”

“대대장님 같이 퇴출하십쇼. 지원조 무너졌습니다. 제가 후미하겠습니다.”

“일단 중현이와 첨병조 빨리 올라가. 빨리. 어서!”

그때 이상병이 마지막으로 대대장에게 붙었다.

“이거!”


탄창 두 개. 이상병은 곧바로 피투성이 복한군복 옆으로 붙었다.


이제 아무도 무전기로 말하지 않는다. 멀리서 다시 한 번 큰 화염이 우르르 하늘로 치솟았다 가라앉는다. 첨병조와 이상병이 떠나고 1분도 넘지 않아, 이때부터 김중사와 편중령은 조준사격을 더 이상 하지 못했다. 그냥 20-30미터 거리 섬광들에 수평만 보고 당기기 시작했다. 눈이 부실 정도로 섬광들이 사방에서 수도 없이 번쩍거리고, 이제 총알이 스치고 여기저기 때리고, 탄창 교체하는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대대장님, 퇴출! 퇴출! 나도 1분 뒤 퇴출함다. 먼저 가십쇼. 어서!”

“아냐. 수류탄 왼쪽에 투척할 테니, 폭발하면 동시에 뛴다. 완료?”

“완료!!!”


수류탄 안전핀을 뽑아 투척하고 앉은 편중령은 순간 무언가 이상했다. 왼팔이 말을 듣지 않고 축 늘어진다. 깨달았다. 맞았다. 김중사에게 소리치려 했지만 ‘따라와!’란 소리는 너무 작게 입에서 나왔다. 편중령은 오른손으로 총을 들고 일어섰다. 수류탄이 여러 군데 터졌기 때문에 편중령이 생각한 신호는 의미가 없었다.


저 앞에서 김중사로 추정되는 섬광이 계속 일어나는데, 방법이 없다. 중령은 쪼그려 앉아 K1 권총손잡이를 잡고 오른쪽 무릎에 거치한 다음 점사 기능처럼 세 발씩 끊어서 방아쇠를 빠르게 당긴다. 총성 퇴출신호. 그러자 섬광이 멈췄다. 알아들은 것 같다. 편중령은 더 이상 고함도 사격도 힘들다고 생각해 총을 오른쪽 어깨에 걸고 오른손으로 어디 맞았는지 더듬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그림자가 훅 나타나더니 편중령을 잡아끌기 시작했다.


“어딥니까?”

“몰라.”

“일단 걸으시죠.”

“걸으면서 생각하자.”


길을 걸었지

누군가 옆에 있다고

느꼈을 때

나는 알아 버렸네

이미 그대 떠난 후라는 걸

나는 혼자 걷고 있던 거지

갑자기 바람이 차가와지네


묻지 않았지

왜 나를 떠났느냐고

하지만 마음 너무 아팠네

이미 그대 돌아서 있는 걸

혼자 어쩔 수 없었지

미운 건 오히려 나였어


- 산울림 ‘회상’



자기 삶에 충실하게 죽은 사람은, 그것의 성과가 크지 않다 하더라도, 죽어가는 표정이 따스하고 평화롭다. 한 인간은 모든 걸 이룰 수 없고, 그저 한만큼 하고 가는 것이 정답인지 모른다. 따스하고 평화로운 사자의 표정. 편중령은 어둠 속에 네 번을 보았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표정을 지켜보기에 시간이 너무나도 짧았다. 뒤에 달고 있는 것이 너무 가까웠다.


작전장교가 쓰러져 있었다. 인상 좋고 말투가 온화한 사람으로 잠을 자는 것처럼 누워 있었다. 군복에 넓게 피로 젖어 있을 뿐, 정확히 어디 맞았는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사자에게 어디를 맞았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작전장교의 마지막은 작전이 아니라 사격이었다. 주변에 탄창과 탄피들이 수십 개 널려 있었다. 손은 소총 권총손잡이를 잡은 채로 전사했는데, 유독, 가슴에 떨어져 있는 탄피 두 개가 편중령 입장에서 구슬펐다.


다리는 마치 철조망 통과를 하다 중단한 것 같이 널부러진 상태. 부축하던 김중사는 ‘과장님 미안합니다.’하고 특전조끼에서 수류탄을 회수했다. 편중령은 ‘나의 오른팔을 잃었다’란 표현을 실감했다. 편중령은 김중사에게 부탁했다.


"미안하지만, 군번 좀 빼서 줘."


1지역대 본부팀 이성현 하사가 쓰러져 있었다. 산으로 가는 길. 산길을 선택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 길을 타야 거리를 벌리기 쉬웠다. 이하사는 뛰다가 개인 역공을 하듯이 수풀에 총을 쏘다 잠이 든 것처럼 턱을 땅에 옆으로 대고 엎드려 전사했다. 그 앞에 북한군 시신 여러 구가 있었고, 아마도 지휘지원조 단독 후미를 맡은 것 같았다. 김중사는 빨리 올라가자고 했지만 편중령은 얼굴을 돌려 신원을 확인했다.


모두 다 그렇지만 더욱 더 쓰라린, 1지역대장, 추정하자면 지역대장이 더 올라가고 작전과장이 다시 후미에서 사격을 한 것 같았다.


소총은 어디 갔는지 사라졌고, 권총을 쥔 채 쓰러져 있었다. 위장모를 들어보지 않았다면 그게 지역대장인지도 몰랐을 것이다. 모든 마크와 계급장은 넘어오기 전에 실밥 하나까지 완전히 뜯어 버렸다. 총기 끈 주기표, 특전조끼 주기도 모두 제거했다. 모든 장교는 피치 못해 사로잡힐 경우 중사로 행동하기로 약정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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