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고 천재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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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게죄
작품등록일 :
2020.07.20 10:55
최근연재일 :
2020.09.1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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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27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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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3. 간파의 업(2)

DUMMY

호진은 설레는 마음으로 정장 할아버지를 바라봤다.

이런 기대를 하는 건 당연했다. 지도의 업은 지도를 얼마나 잘 따라왔는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호진은 모든 상자를 정복했으니, 당연히 최고의 결과를 기대했다.


“기대 이상이에요. 이러면 저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겠네요.”


게다가 정장 할아버지가 이런 말까지 했으니, 기대감은 점점 상승했다.


“이렇게 잘 따라오는 제자를 스승이 돼서 무시할 수 없죠.”


한데, 분위기가 뭔가 이상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좀 더 심도 있게 해보죠.”


심도 있게?

호진이 그게 무슨 뜻인지 깨닫기도 전에, 할아버지는 그 말뜻을 직접 보여주었다.

끼릭. 끼릭.

이 소리가 뭔지는 호진이 제일 잘 알고 있었다. 이 집에 와서 매일같이 듣던 소리였다.


“하, 할아버지?!”


물론, 최근에는 듣지 못한 소리였다. 상자가 줄어들수록 저 소리는 작아졌기 때문이다.


“입학까지 아직 시간이 남았죠? 할 수 있을 때까지 해봐요. 난 호진이를 믿어요.”


카트에는 새로운 종이 상자가 가득 담겨 있었다.

정복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호진의 착각이었다. 상자 더미가 다시 나타났다.


“제가 가르치던 아이들이 호진이 반만 됐었어도 좋았을 텐데, 아쉽네요.”

“하, 할아버지.”

“감동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 열의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더 배우고 싶어 하는 제자를 지원해 주지 못할 정도는 아닙니다.”


아니었다. 감동이나 열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정도 배운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설렌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할아버지에게는 사실대로 말할 수 없었다.


“감사해요. 할아버지.”

“좋아할 줄 알았습니다.”


아니요. 할아버지.

저 좋아하는 거 아니에요.

이 말은 전할 수 없었다.


“자, 봐요. 지금까지는 거짓말에 관한 반응만 봤다면 지금부터는 좀 더 자세하게 들어가는 거예요. 우리의 목표는 감정 반응까지 보는 거예요.”


새롭게 외워야 할 사진에 할아버지의 수업까지 추가됐다.


‘교, 교수님 진도가 너무 빨라요.’


심지어 수업 속도마저 엄청나게 빨랐다.

지옥이 끝난 줄 알았는데, 그보다 더한 지옥이 기다리고 있었다.


‘인생···.’


그런 속마음과는 달리, 호진은 최선을 다해서 수업에 임했다.


***


첫 수업이 진행된 날 저녁.

호진은 책상에 앉아 진지하게 고민했다.


‘이대로는 힘들어.’


새로운 사진 자료들을 외우는 것까지는 괜찮았다. 이미 익숙하기도 했고 나름대로 요령도 있었다.

한데, 거기에 할아버지의 수업이 추가된 게 문제였다.


‘괜한 오해가 생겨서···.’


수업이 빠른 이유는 수업이 끝날 때쯤 들을 수 있었다.


“우리 호진이의 이해 속도에 맞춰 빠르게 수업한다고 했는데, 지루하지 않았으려나 모르겠네요.”


고평가도 이런 고평가가 없었다.

물론,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정장 할아버지에게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다고 솔직하게 말하기만 하면 해결될 일이었다.


‘그러기에는 너무 아쉽다는 게 문제야.’


아까웠다. 지금까지 노력해서 최고의 결과를 만들어냈는데, 인제 와서 못하겠다고 말하고 싶진 않았다.

게다가 이 지옥 같은 지도만 이겨내면 ‘간파’는 어떻게 변할지 너무 기대됐다.


‘평생 도움이 될 업이야. 이건 무조건 이겨내야 해.’


여기선 무리를 해서라도 배우는 게 맞았다. 결정을 내리자마자 호진은 한쪽 허공을 바라봤다.


[보유 카르마: 2831]


어마어마한 카르마가 모여 있었다. 업을 새롭게 배우고 하나씩 쌓일 때마다 점점 모이는 속도가 빨라지더니 어느새 이렇게나 모였다.


‘결정적인 건, 사진 촬영이었나.’


그때 얻은 카르마가 30% 이상이었다.


‘바로 가자.’


새로운 업을 배울 생각은 아니었다. 지금 필요한 건 새로운 업이 아니었다.


[암기]

[암기력에 추가 보정이 붙습니다.]

(추가 강화시)

[추가 보정이 좀 더 강해집니다.]

[암기의 업을 강화하는데 800 카르마가 필요합니다.]

[암기의 업을 강화하시려면 다시 한번 터치해 주세요.]


‘처음이면 비싸다고 생각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호진은 암기를 터치했다.


[암기의 업이 강화됩니다.]

[암기+1]

[암기력에 추가 보정이 붙습니다.]

[추가 보정이 좀 더 강해집니다.]


암기가 성공적으로 강화됐다.


‘이래도 안 되면, 그때는 항복이야.’


자그마치 800 카르마를 투자했다. 이래도 따라가지 못하면 그때는 수업 속도를 늦춰달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일단, 내일 가보자고.’


호진은 내일 수업이 기다려졌다.


***


그는 정장을 입고 화이트보드 앞에 섰다. 이렇게 수업을 하는 게 얼마만 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이제는 교편을 잡기엔 너무 오래되었지만, 한 아이 덕에 놓았던 교편을 오랜만에 다시 잡았다.


“사람은 결코 자신을 숨길 수 없어요. 모든 건 드러나게 되어 있는 법이에요.”


그의 수업을 아직 고등학생도 되지 못한 아이가 따라오고 있었다.


‘어제는 집중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더니.’


고작 하루 만에 자신의 수업을 따라오기 시작했다.


‘하루 만에 따라올 수 있는 수업이 아닐 텐데.’


사람의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수업이었다. 이걸 하루 만에 따라온다는 건, 이 아이가 ‘천재’란 뜻이었다.

직접 가르치고 있기에 이 아이가 얼마나 특별한지 그는 몸소 체감하고 있었다.


“이번 사진을 볼까요? 어때요?”

“코와 입 쪽에 위화감이 있습니다.”


심지어 이 아이는 단순히 머리가 좋아서 기계처럼 잘 외우기만 하는 그런 평범한 천재가 아니었다.


“위화감을 느꼈으면 지금까지 배웠던 걸 교차 검증해 보세요. 그럼, 무슨 감정을 담고 있는지 보일 거예요.”

“음. 수치심과 경멸과 비슷한 거 같은데요? 잠시만요. 이거 사진이 굉장히 신기하네요. 이렇게 많은 감정이 담긴 건 처음 봤어요.”


이 아이는 지금까지 가르쳐준 것들을 응용하고 활용할 줄 알았다. 가르쳐 준 것을 그저 지식으로 삼은 게 아닌, 자신의 지혜로 삼았다.


‘이러니 내 가슴도 뜨거워지는 것이지.’


이런 제자를 가르치려면, 스승도 가만히 있을 순 없다. 평생을 그가 연구했던 학문이지만, 그에게도 준비가 필요했다.

호진이는 몰랐지만, 그는 제자를 위해 매일같이 수업 준비를 했다.


‘참으로 즐겁구나.’


제자를 가르치기 위해 준비하는 스승. 그런 스승의 준비를 완벽하게 따라오는 제자.

그가 흥에 겨워 수업을 이어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속도를 더 높여 봐야겠구나. 이 아이에게는 조금이라도 더 많은 걸 주고 싶다.’


호진은 알았을까?

열심히 하면 할수록 수업 속도가 빨라지는 지옥을 만든 건 다름 아닌 호진 본인이었다.


***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산더미 같던 박스들은 어느새인가 점점 사라졌고,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정장 할아버지의 수업도, 토론으로 변했다.


‘진짜 위험했어.’


암기를 강화한 뒤, 수업은 간신히 따라갈 수 있었다. 문제는 이상하게 수업은 익숙해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암기력이 좋아진 게 맞긴 맞는 거 같은데.’


사진을 외우는 것은 어느 순간 적응되고 점점 속도가 붙었는데, 수업은 언제나 한계까지 호진을 몰아붙였다.


‘수업 쪽 암기는 다른 건가?’


사실은 할아버지가 수업을 호진의 한계까지 맞춰서 조절한 것이었지만, 호진은 그걸 알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잘 따라왔으니까. 잘 됐지 뭐.’


호진은 결국 해냈다.

수업을 전부 따라갔고, 이제는 할아버지와 토론 비슷한 것을 하며 배웠던 것을 소화 중이었다.

처음엔 그저 거짓말을 판별하는 것보다 좋겠단 생각이었는데 막상 배우고 나니 전혀 달랐다. 이건 그저 ‘좀 더 좋겠지’ 정도가 아니었다.


“우리 아들 엄마를 왜 그렇게 빤히 봐?”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그가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지 어렴풋이 보였다. 그렇다고 다른 이의 감정을 맘껏 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다양한 감정이 담겨 있을수록 정확도가 떨어졌고, 순간적인 감정은 캐치할 수 없었다.

그래도 강한 감정은 보였다.


“우리 엄마가 아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보여서. 그게 정말 고마워서요.”

“어머. 얘가 왜 이래.”

“엄마가 아들 사랑하는 것처럼 아들도 엄마를 사랑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네.”


그 사랑이 너무나 커다래 오히려 엄마에게 미안할 정도였다.


“엄마한테 안 해줘도 돼. 대신 아들이 자식을 낳으면 엄마한테 받은 사랑만큼은 건네줘. 그거면 돼.”


엄마의 사랑을 눈으로 보고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건 정말 큰 가치가 있었다.

물론, 엄마처럼 사람들 모두가 호진에게 좋은 감정을 가진 건 아니었다.


“형. 오늘도 맛있게 드셨어요.”

“어. 역시 솜씨 좋으시더라. 잘 먹고 간다. 호진아.”


친절하고 사려 깊은 말과는 달리, 단골손님의 표정에 호진을 가엾어하는 감정이 잠시 어린 뒤 사라졌다. 처음엔 충격을 받기도 했지만,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모두가 날 좋아할 순 없어.’


속으로 상대가 불쾌할 만한 상상은 누구나 하는 법이다. 그 손님에겐 호진은 분식집에서 일하는 게 가엾어 보이는 아이였을 뿐이다.


‘내가 어리석었어.’


손님들과 친해지며 종업원이 아닌 인간으로 봐줄 거라 생각했는데, 그들에게 호진은 여전히 타인이었다.


‘아니. 오히려 갑자기 모두가 날 좋아하면 그게 이상한 거긴 하지.’


그게 당연한 일이었다.

잠깐 인사를 했다고 조건 없이 호진을 좋아하는 건, 사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사용 방법이 잘못됐어.’


잘 모르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지 확인할 필요 없었다.

정반대로 사용해야 했다.

엄마처럼 자신을 잘 아는 사람.

긴 인연을 이어가고 싶은 사람.

그런 사람들에게 사용해야 했다.


“왜 그렇게 이 할애비를 바라볼까. 호진이 걱정이 있는게냐?”

“아니요. 그냥 좋아서요.”

“허허. 이 할애비가 말이냐?”

“예. 엄마랑 같이 이곳에서 커피를 마신 건, 제게 행운이 아니었나 싶어요.”


사장 할아버지의 얼굴엔 호진을 향한 애정이 듬뿍 묻어있었다.


“아니다. 너에게 행운인 게 아니야. 우리 영감탱이들에게 행운이었지.”


할어버지의 표정을 보지 않아도, 이건 진실인 게 느껴졌다. 호진에겐 정말 고맙고 고마운 분들이었다.


“우리 호진이가 고등학교 갈 때가 얼마 남지 않으니, 섭섭한 모양이구나. 괜찮아. 이 할애비 어디 안 간다.”


그 대화를 듣고 다른 할아버지들도 다가오셨다.


“그렇지. 우리 호진이 걱정 하지 않게 옷이라도 계속 보내줘야겠네.”

“아직 시간이 있잖아요. 괜찮아요. 마지막까지 수업이 있어요.”


패셔니스트 할아버지와 정장 할아버지 얼굴에도 애정이 듬뿍 담겨 있었다.

다른 이들과 달리, 다른 감정도 없이 순수하게 호의를 보내주시는 고마운 분들.


“어허. 뭐 스승과 제자만 대화하는 거여? 왜 우리는 빼는거여!”

“내가 아니면 호진이 관상을 누가 봐줄 거야? 지금 점칠안에 기가 가득한 게 아주 좋아. 할애비가 틈틈이 관상을 봐주마.”


한데, 괴팍한 할아버지와 관상 할아버지는 애정 외에 다른 감정이 느껴졌다.


‘비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


두 분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자, 정장 할아버지가 모른척하라는 듯 손짓했다.

그때 괴팍한 할아버지가 정장 할아버지를 쳐다봤다.


“이가! 너 뭐한거여?”

“흠. 아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여. 따라와!”


두 할아버지는 정장 할아버지를 데려가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다른 할아버지들이 한마디씩 하셨다.


“쯧쯧. 나이를 제대로 먹어야 하는데.”

“소울이 없는 영감탱이들이라 그래. 호진아 저 영감탱이들 조심해라.”


세분을 한심하게 바라보는 두 할아버지의 표정을 본 호진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육거리의 새벽은 언제나처럼 즐거웠다.


‘무슨 대화를 하시는 걸까?’


비밀과 애정이 뒤섞인 할아버지들의 표정이 머릿속을 잠시 스쳐 지나갔다.


작가의말

부디 재미있게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

성불예정님 후원 정말 감사합니다.

닥터침묵님 후원 정말 감사합니다.

푸르고싶다님 후원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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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020. 수강 신청. +23 20.09.03 7,721 25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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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016. 제자는 스승을 따라간다. +12 20.08.30 7,957 226 12쪽
15 015. 제주도로 떠납니다. +14 20.08.29 7,982 224 11쪽
14 014. 졸업식 +14 20.08.28 8,009 246 12쪽
» 013. 간파의 업(2) +11 20.08.27 8,008 225 12쪽
12 012. 간파의 업(1) +18 20.08.26 8,179 237 12쪽
11 011. 정장 할아버지. +13 20.08.25 8,460 229 11쪽
10 010. ‘소울’의 업? (2) +13 20.08.24 8,296 234 12쪽
9 009. ‘소울’의 업? (1) +13 20.08.23 8,788 22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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