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빨 헌터생활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에그몹
작품등록일 :
2020.09.11 20:51
최근연재일 :
2020.09.28 16:34
연재수 :
17 회
조회수 :
1,484
추천수 :
43
글자수 :
91,852

작성
20.09.19 15:10
조회
57
추천
3
글자
12쪽

헌터로 살아가는 법 (4)

DUMMY

불안했던 예감과 달리 던전은 평범했다.

동굴처럼 생긴 복도와 벽에 걸린 촛불들.

전형적인 소형 던전의 초입이었던 것이다.


계속되는 슬라임의 향연에 팀원들이 따분해 할 정도였다.


“다행히 아직까지 별다른 건 없네요. 곧 고블린 같은 게 나올 것 같기도 한데···”


뒤에 있던 남자 헌터, 찬이 중얼거렸다. 팀의 리더인 김현준과는 반대로 던전에 관한 이야기에만 반응하던 자였다. 얼음 계열 마법사인 그는 아마도 어둡고 습한 던전의 몬스터들에겐 큰 타격을 주지 못할 것이다.


“뭐든 좀 나와봐라, 좀.”


대성이형이 신경질적으로 외쳤을 때였다.


“또 슬라임입니다!”


설마 이 던전 전체가 슬라임 던전인 건 아니겠지. 이래선 스승님이고 뭐고 작은 아이템 하나도 못 건지는 거 아닌가. 여러모로 불안해지는 순간이었다.


“남순이가 이리로 와서 서포트 좀 적극적으로 해줘!”

“알았어.”


남순은 궁수이면서 불공 다루기 초급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푹.


초록색 점액질로 이루어진 슬라임들은 별다른 비명 소리도 없이 베어지거나 불에 타며 명을 달리했다.


“설마 이대로 끝나진 않겠지?”

“안 돼요. 그럼 일주일 동안 기다린 게 쓸모 없어지는데···.”


대성이형에게 묻는 내 말에 실망한 듯 중얼거리는 김현준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소형 던전엔 쓸 만한 아이템이 최소한 세 개 정도는 나오기 마련이었으니까. 물론 그러기 위해선 고블린, 오크, 어쩌면 오우거 정도는 되는 몬스터를 상대해야 했다.


“고블린이라도 나와야 하는데, 이래선···”

“계속 가 봅시다. 아직 길은 많이 남은 것 같아요.”


초조해하기 시작한 현준을 타일렀다. 앞쪽에 꽤 넓은 공간이 있는 것처럼, 공기가 꽤 긴 경로로 돌고 있었다.


“아, 청준 씨는 바람 계열 특성을 가졌다고 하셨죠?”

“네. 보니까 뭔가 있는 것 같긴 합니다.”

“그럼 다행인데. D급 헌터이시니까 믿어보겠습니다!”


그때, 허리 높이에서 날카롭게 이는 바람이 느껴졌다. 무언가가 예기를 휘두르며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앞쪽에 무기 쓰는 몬스터입니다! 고블린이거나 비슷한 것 같아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내 심장을 노리는 하얀 창.


깡!


검과 부딪히자마자 창은 거두어졌고, 그걸 휘두른 존재의 정체를 확인한 나는 혼란스러웠다. 하얀 창은 그것의 딱딱한 꼬리였기 때문이다.


팀원 모두가 모여들자 공교롭게도 복도 있던 촛불이 한 번에 켜졌고, 순식간에 밝아진 공간은 우리가 있는 곳이 더 이상 복도가 아니란 사실을 알려줬다.


동굴의 벽은 그대로였지만 공간의 크기는 점점 넓어져 하나의 공동을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공동 너머로 펼쳐진 공간은 다시 우리가 있는 복도처럼 좁은 길로 이어졌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건 따로 있었다.


공동 안엔 누군가가 살고 있는 것처럼 식탁과 침대 같은 것들이 놓여 있었다. 가구들은 원목으로 만들어진 데다 오방색이라 불리는 여러 가지 색의 천으로 장식되어 있어 흡사 옛날 시골집, 아니 조선 시대의 것들을 방불케 했다.


그 한 가운데엔 정말 두 존재가 흰 꼬리들을 흔들고 있었다.


길고 커다란 아홉 개의 꼬리를 달고 있는 몬스터는 아무리 봐도 내가 생각하는 그게 맞는 것 같었다. 마찬가지로 내 옆에 서 그걸 본 대성이형이 당황스럽다는 듯 말했다.


“저게 뭐냐? 지금 저게 너 찌르려고 했지?”

“어.”


방 안의 두 남녀, 아니 구미호들은 분명 살면서 본 실물 중 최고의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우습게도 그것들은 촌스러운 흰색 한복을 걸치고 있었는데, 상체를 반만 가린 그것들의 옷이 또 그것들의 흰 피부와 어우러져서 묘한 느낌을 자아내고 있었다.


“오빠, 안녕?”

“이리 와, 누님.”


색기를 잔뜩 흘리는 두 몬스터의 모습은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이상한 감정이 들게 했다. 잠시 고개를 돌리고 나서야 원래의 기분대로 돌아올 수 있었을 만큼.


“형, 저것들 그냥 몬스터가 아니야. 구미호라고.”

“···.”

“형!”


건성인 대성이형의 대답에 옆을 돌아본 나는 형의 어깨를 세게 쳤다. 멍한 얼굴로 입을 벌리고 있는 꼴이 뭔가 이상했기 때문이다.


동공이 살짝 풀린 모습이 꽤나 역겹다. 못 볼 걸 본 기분이다. 다시 형의 등짝을 온 힘을 실어 쳤다.


“아, 김대성!”

“방금 나 넋 놓고 있었냐?”

“진짜 미친놈 같았어.”

“아···, 왜 그랬지. 야. 저것 봐라.”


겨우 정신을 차린 형이 가리킨 곳을 보자, 일행들이 한 술 더 떠 그것들에게 다가가는 게 보였다. 무기도 늘어뜨리고 있는 게 완전한 무방비 상태에, 사람이 저렇게 멍청한 표정을 지을 수도 있구나 싶어 소름이 돋았다. 더 소름 돋는 건 구미호들의 멘트들이었다.


귀엽다느니, 이리 와 안기라느니···.


그새 남성체 구미호에게 다가간 남순 씨는 그것의 느끼한 멘트가 아무렇지도 않은지, 아예 놈이 앉은 침대 옆에 반쯤 드러누웠다. 보육원에 살던 시절 사람만 보면 만져달라고 드러눕는 옆집 진돌이 같은 모습이었다.


남순 씨에게 질세라, 소파에 앉아있는 여성체에게 다가가는 현준과 찬, 다른 두 팀원의 모습은 더 눈꼴사나웠다. 슬슬 멀쩡한 스스로가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흐···”

“그렇지, 후훗.”


그들은 생각하는 법을 잃은 사람처럼 멍하니 그것의 무릎이나 팔에 얼굴을 비비고 있었다. 모양새가 어찌나 야리꾸리한지, 던전 안의 모습이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는 풍경이었다.


더 있다간 형과 함께 보고싶진 않은 꼴을 볼 것 같았다. 던전 들어올 때, 아니, 십 분 전만 해도 상상도 못했던 풍경. 저 몬스터들은 사람을 유혹하는 물질이나 힘 같은 게 있는 것 같다.


“저거 떼 놔야 되는 거 아냐?”

“미친, 뒀다간 뭔 일 날 거 같지?”


형은 말하면서도 힐끗힐끗 여성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이 어디에 머무르고 있는지는 말하지 않겠다.


우릴 향해서까지 두 팔을 벌리는 여성체 구미호의 모습이 가히 육감적이었지만···


왜일까.

빛나는 그것의 살결에 스승님의 대머리가 떠올랐다.


“크음···”


뭘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던 찰나, 여성체와 눈을 마주친 나는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걸 느꼈다. 놈은 짐승의 것처럼 좁아진 동공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저거 좀 위험하다.”

“어후, 눈깔 왜 저려냐.”


그때였다.


순간적으로 서로를 바라본 두 구미호가 각자 옆에 있는 사람을 향해 손톱을 세운 건. 내 민첩도가 높다 해도 어찌할 수 없을 만큼 빠른 동작이었다.


“꺄악!”


대성이형과 나는 각자 다른 구미호에게로 달려갔다.


“헉.”

“정신 차려요!”


겨우 정신을 차린 듯 엉거주춤하게 무기를 꺼내 든 일행은 여성체를 막기에 역부족이었다. 이미 그것의 손톱이 찬의 가슴을 꿰뚫었기 때문이다.


“끼이이익”


사람의 것이 아닌 소리를 내던 구미호는 거친 동작으로 찬의 몸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구미호에 관련한 구전이 떠오르며 소름이 돋았다.


‘구미호는 사람의 간을 빼 먹는다.’


게다가 그것의 외형은 전과 딴판으로 바뀌어있었다. 흰털로 덮인 거대한 덩치에 쭉 찢어진 동공. 붉은 피로 잔뜩 젖은 모습이 오싹했다.


재빨리 그것의 등 뒤를 공략하려던 나는 날아오는 꼬리의 모습에 몸을 피했다. 꼬리에 촘촘히 달린 가시 같은 털들이 결코 호락호락한 몬스터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었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몬스터라는 점이 이상할 정도였다.


아홉 개의 꼬리가 검처럼 휘둘러지는 모습에 섣불리 다가가기가 어려웠다. 나머지 일행이 쉽사리 그걸 공격하지 못하는 이유도 같았다. 어쩐지 공격이 잘 먹히지 않는 것 같다는 건 착각인가? 그 와중에 내 옆에 남은 한 명은 또다시 반쯤 눈이 풀리고 있었다.


대체 사람의 간을 먹는 모습을 보면서 왜 정신을 못 차리는지 모르겠지만 상관할 여유가 없었다. 빈 틈을 노려 그걸 죽여야 했으니까.


“저는 못 하겠습니다!”


번쩍 정신이 든 듯 고개를 쳐든 남자가 뒤를 돌아 도망치기 시작했다. 정신을 못 차렸던 건 공포에 질려서였던 것 같았다.


남성체 구미호와 대치 중인 대성이형이 그걸 보곤 욕을 읊조렸다.


“박승헌!”


현준도 놀란 눈치였다. 그럴 만도 했다. 그는 여기로 오는 지하철에서 박승헌과 자신이 얼마나 강한 전우애를 지녔는지 십 분도 넘게 떠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준은 정확히 그로부터 일 분도 지나기 전에 남순 씨를 업고 공동을 빠져나갔다. 겹경사가 아니라 겹배신이었다. 더 문제인 건 그의 손에 남성체 구미호의 손목에 걸려있던 옥빛 팔찌가 걸려있었단 거였다.


“하아, 미안합니다! 이러다 진짜 죽겠어서!”


먹튀였다.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치는 현준의 뒷모습에 대성이형과 나는 어이가 없었지만 놈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끼야아아아아아”


평소에 연습이라도 해 두는 건지, 귀를 찌를 정도의 울부짖음과 함께 남성체 구미호가 형에게로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형은 그것에게 옆구리를 긁혔다.


“크윽.”


어쩐지 대성이형은 그것에게 힘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섣불리 도우러 갈 수도 없었다. 여기서 등을 돌리면 여성체가 즉시 내 뒤를 칠 거다.


답은 검풍이었다. 던전 안엔 놀라우리만치 많은 기가 퍼져 있었던 것이다. 검에 기운을 모으는 것이 휘두르는 것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소요하기에, 고기를 얻을 때가 아니면 좀처럼 쓰지 않았던 그걸 이곳에선 바로 쓸 수가 있었다.


덕분에 순식간에 검풍을 쏴 남성체의 심장을 꿰뚫은 나는 곧이어 달려드는 다른 구미호의 손톱을 막아냈다.


깡!


“네가 내 동생을 죽여?”


몬스터 주제에 남매란 개념도 있는 모양이다. 갑자기 근육을 부풀린 암컷 구미호가 피칠갑이 된 손톱과 꼬리를 휘날리는 모습이란.


챙!


형이 뒤에 있건 말건, 구미호는 나만을 공략했다. 풍만하고 단단한 꼬리와 검이 부딪히자 손이 얼얼해졌다. 재빨리 뒤로 빠진 나는 분노에 빠진 그것이 다가오는 틈을 노려 옆으로 비켜선 후, 뒤를 찔렀다. 구미호가 본능적으로 옆을 향해 손톱을 날렸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끼에에에엑!”


고통에 찬 놈의 비명은 다시 들어도 끔찍한 소리였다.


“시끄러워!”


나는 사리분별을 못할 정도로 돌변한 구미호의 목에 검풍을 쏘았다. 조금 빗나갔지만, 아까보다 더 많은 양을 실은 탓에 놈의 목엔 커다란 상처가 났다.


“다 너 때문이로구나!”

“뭔 소리야.”


내가 검을 들고 그것에게로 다가가자, 구미호는 몸을 떨며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인간도 괴물도 아닌 자여, 저주 받으리!”


그때, 그것에게 뛰어든 대성이형이 크게 검을 휘둘렀다.


“풍우일격!”


비바람이 몰아치며 구미호를 감쌌다. 내게는 없는 멋진 기술이었지만 여기서 쓰기엔 좋지 않은 선택이었다. 던전 안이 안개로 가득차 그것의 모습까지 가려버렸던 것이다.


“시발 왜 여기서 이걸 썼지?”


스스로를 탓해봤자 뭐하나.

잠시 후에야 비바람이 가라앉았고, 그 가운데엔···


“도망갔네, 아오!”


무엇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게 도망칠 만한 곳이라곤 공동 뒤쪽에 난 또다른 복도뿐. 지성이 있는 몬스터이니 이곳의 지리를 훤히 꿰뚫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따라갈 거지? 잡으면 분명 뭔가 나온다. 저거 딱 봐도 D급, 아니면 그 이상이야.”


구미호의 손톱에 스친 옆구리가 참을만 한지, 형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작가의말

구미호 고기는 어떤 맛일까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재능빨 헌터생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리메이크로 돌아오겠습니다 +1 20.09.30 26 0 -
공지 제목 변경 안내 20.09.28 18 0 -
공지 연재 주기 및 작품 관련 사담 20.09.25 24 0 -
공지 수정 공지입니다 (2020.9.23) 20.09.23 26 0 -
17 사이비냐 (1) +1 20.09.28 41 1 11쪽
16 히든 던전의 히든 던전 (4) +1 20.09.26 45 2 14쪽
15 히든 던전의 히든 던전 (3) +1 20.09.25 70 3 12쪽
14 히든 던전의 히든 던전 (2) 20.09.24 36 1 11쪽
13 히든 던전의 히든 던전 (1) +2 20.09.23 33 1 11쪽
12 어딜 가나 파벌 싸움 (3) +2 20.09.23 45 2 11쪽
11 어딜 가나 파벌 싸움 (2) 20.09.22 49 1 11쪽
10 어딜 가나 파벌 싸움 (1) +2 20.09.21 46 2 13쪽
9 헌터로 살아가는 법 (5) +2 20.09.20 53 3 14쪽
» 헌터로 살아가는 법 (4) +4 20.09.19 58 3 12쪽
7 헌터로 살아가는 법 (3) +2 20.09.18 63 3 12쪽
6 헌터로 살아가는 법 (2) +4 20.09.17 93 4 11쪽
5 헌터로 살아가는 법 (1) +4 20.09.16 115 4 13쪽
4 게이트 오픈 기념 악연 만들기 (4) +1 20.09.15 126 3 12쪽
3 게이트 오픈 기념 악연 만들기 (3) 20.09.14 142 2 13쪽
2 게이트 오픈 기념 악연 만들기 (2) +2 20.09.12 175 4 13쪽
1 게이트 오픈 기념 악연 만들기 (1) +4 20.09.11 294 4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