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집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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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slaa
그림/삽화
리건
작품등록일 :
2020.11.17 09:21
최근연재일 :
2021.02.1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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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11.2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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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음모 (상)

판타지 소설로 송나라 역사를 배우다!




DUMMY

마침 밥을 먹고 있다가 황대류는 깜짝 놀라 젓가락을 탁 내려놓았다.


“뭐라? 한천육이 아니라 그 아들놈이 왔다고?”


황대류에게 소식을 전한 이는 키가 5척이 겨우 될까 싶은 사람이었다. 대나무처럼 말라 볼에는 살이라고는 한 점 없었고 눈만 황소처럼 커서 사람이라기보다는 배고픈 원숭이에 가까워 보였다. 그는 황대류의 수하의 아역으로 류삼이란 자였다.


“한 천육이 아니라 그 집 셋째인 수재가 확실합니다요. 한 씨네 셋째는 성에 들어서자 곧바로 현 관아로 가서 호부(户曹)인 류 서리(書吏)에게 소집 공문을 보여주고 등록을 마쳤대요. 지금은 동문 가까이에 있는 보수사에 갔는데 아마도 방을 하나 빌리고 싶어서겠죠. 그자가 보수사 문으로 들어가는 것을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이렇게 보고드리려고 달려왔습니다요.”


“아버지 대신 차역을 왔다고? 가난뱅이 서생 주제에 효심 한번 대단하군!”


황대류는 진심으로 칭찬을 내뱉었다. 요즘 세상에 효심이 있는 자식들이 있기나 하던가? 자신의 두 아들만 봐도 그랬다.


“한강이 성으로 들어와 현 관아로 곧장 가길래 소인은 억울함을 호소하러 가는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고분고분하게 호조에 가지 않겠어요. 제가 사람들을 데리고 신문고 앞을 지킨 게 헛수고가 됐습니다요.”


“알아서 곱게 나온다면 좋지.”


황대류는 웃었다. 한 씨네가 강경하게 나오면 단번에 제압해버릴 수는 있어도 나중에 골치가 좀 아플 수 있었다. 고분고분하게 나온다니 귀찮을 일이 많이 줄었다. 한강이 올가미 안에 들어왔으니 이제 한 씨네 밭과 그 하녀는 곧 주인이 바뀌게 될 것이다. 아전차역 두 달이면 최소 사오십 관의 돈을 써야 할 테니, 강변의 채소밭은 이나자에게로 사람은 이 황대류의 집으로 오게 되고말고.


한 씨네 양녀를 생각만 하면 사타구니 밑에서부터 두 덩어리의 뜨거운 불덩이가 타올랐다. 그 얼굴과 몸매는 꿈에서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는 얼마 전 하룡만 마을에 있는 사돈집에 볼일이 있어 갔다가 우연히 한운낭을 봤는데 발걸음을 옮길 수가 없었다. 오랑캐의 핏줄이 섞인 이국적인 느낌의 어린 미녀라니, 황대류의 취향에 딱 맞았다.


그는 혀를 내밀고 바싹 마른 입술을 핥더니 흥분한 상태로 벌떡 일어서서 말했다.


“가자! 한 씨네 셋째, 수재라는 놈 좀 보러 가자!”


* * *


한강은 그때 보수사의 방 한 칸을 빌려 가져온 물건을 정리하고 있었다. 책들은 침상 머리맡에 가지런히 놓았다. 집을 떠나왔지만 여기서도 시간이 나는 대로 부지런히 책을 읽을 생각이었다. 이름을 알리려면 아는 게 있어야 하는 법, 놀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보수사는 진주성 안에 있는 작은 절이었다. 절의 크기는 2진(二进) 구조로 그다지 크지 않았고 불상을 모시는 대전도 높이가 2장도 채 안 됐다. 불공을 드리려고 오는 신자들이 많지 않아 스님도 세 명뿐이었다. 큰 절들은 절 소유의 밭이 있어서 소작인을 고용해 자급했지만 보수사 같이 작은 절은 불공드리려고 오는 사람들이 시주하는 돈으로 살아갔다.


보수사 스님들은 자급하는 밭이 없어 장을 봐서 먹고 살아야 했고 한 씨네가 키운 채소도 많이 사주었다. 한천육은 불교 신자라 스님들에게 이문을 남길 생각은 없었기에 늘 시세보다 저렴하게 팔았다. 그런 세월이 길어져 보수사의 스님들은 한 씨네와 친해졌고 한강과도 잘 아는 사이가 되었다.


그날 한강이 보수사에 도착해 빈방이 있으면 빌려달라고 부탁하자 주지 스님은 두 말도 하지 않고 곁채의 방을 내주었다.


한강은 신문고를 울릴 생각도 해보았다. 그러나 이전 생의 경험에서 배운 교훈이 있었다. 섣불리 상급 기관에 억울함을 호소했다가 기대했던 결과를 얻기는커녕 상황이 더 악화될 수 있었다. 일이 중간에 가로막히고 말면 다행이었고 그것을 구실로 감옥에라도 가게 되면 도리어 자신만 곤욕을 치를 수도 있었다. 한강은 하늘이 공정하고 어쩌고는 애초에 믿지 않았다.


“한 시주님, 현리의 황 반두가 왔는데 어서 나가 보시지요!”


도안 스님이 문밖에 와서 한강에게 말했다. 한강은 순간 속에서 열불이 치밀어 올랐다.


한강은 이나자가 애써 일을 벌인 이유를 진즉에 알았다. 이나자는 한 씨네 밭을 되돌려 줄 생각이 전혀 없었으니까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밖에 없었다.


하나는 현 관아에 있는 땅문서를 조작해서 한 씨네가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도록 만드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한 씨네와 이나자가 전매 계약을 쓸 당시 등록세를 내지 않으려고 관아에 신고하지 않았다. 전매 계약서는 지문과 서명만 사용했고 절매 계약서는 관에서 인정한다는 붉은 인주로 관인이 찍혀야 인정되었다.


관에 등록된 전매 계약서 자체가 없으니 그 위에 관인을 찍어 계약 내용이 바뀌었음을 나타낼 문서 자체가 없었다. 절세 방법으로 왕왕 통용되던 전매 방식이었으나 이나자는 돈 몇 푼 아끼려 그 일을 생략했는데 지금 시점에서 관아에서 보관 중인 땅문서에서 한천육의 이름을 지울 방법이 없었다. 수십 관의 뒷돈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나머지 방법이란 한천육의 수중에 한 푼도 없게 만들어 전매를 되돌릴 수 없게 하는 것이었다. 돈을 다 써버리게 만들려면 이 세상에 차역 만큼 좋은 방법이 없었다. 황대류를 통해 호조의 구실아치만 설득한다면 아전차역 공문 보내는 것은 쉬운 일이었고 그 후 한 씨네가 완전히 빈털터리가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한강은 남의 불행을 틈타 도둑질을 하려는 황대류가 몹시 미웠다. 그런데 그 원수가 이렇게 알아서 제 발로 찾아오다니, 한강이 바라마지 않던 일이었다.


한강은 진주성으로 들어오면서 몇 가지 각본을 생각했는데 이런 상황도 있었다. 다만 황대류의 성질이 너무 급한 나머지 한강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빨리 죽일 듯 달려왔다는 게 의외였다고 할까.


‘좋아. 그럼 일을 좀 시끄럽게 만들어 주지!’


한강은 서늘한 눈빛으로 곁채 방문을 활짝 열어젖힌 다음 밖으로 나갔다. 곁채에서 돌아 정문이 있는 마당으로 나가보니 황대류가 수하 세 명을 이끌고 불당 대전 앞에 서 있었다. 황대류는 살이 찐 얼굴을 잔뜩 치켜들었는데 덩달아 목에 달린 혹도 덜렁거렸다. 그 모양이 흡사 조롱박이 얼굴에 매달린 것 같았다. 황대류는 득의양양한 모습으로 서서 한 씨네 셋째가 머리를 조아리길 기다렸다.


“한 셋째! 황 반두께 인사 올리지 않고 뭐 해!”


황대류의 심복인 류삼이 주인 대신에 꾸짖듯이 말했다. 그는 한강이 그냥 미웠다. 자신의 몸집이 작아서 본래 몸이 건장한 사람을 몹시 질투했다. 게다가 하류 인생을 살아온 류삼으로서는 한강처럼 글 읽는 선비가 가진 품격은 도저히 넘볼 수 없는 거대한 장벽이었다. 그는 그런 인간을 짓밟아 자신의 열등감을 달래려 했다. 한강이 소매가 넓은 청색 도포를 입고 대전 뒤에서 나왔다. 여유로운 걸음걸이 하며 편안한 몸가짐 하며 원숭이가 배울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황 반두 납시었습니까.”


한강은 황대류를 향해 다가선 다음 허리를 굽히지 않고 그저 공수만 하며 인사를 했다.


“제가 뭘 좀 사러 나가는 길입니다. 가는 길에 관아에도 들러 무슨 차역을 해야 하는지 물어도 봐야 하고요. 황 반두께서 저에게 시킬 일이 있으면 가는 길에 말씀해 주시지요.”


말을 마치고 황대류가 뭐라 대답하기 전에 한강은 절의 대문을 향해 걸어갔다. 황대류를 안중에도 두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몹시 무례한 행동이었다. 황 반두의 얼굴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황대류는 성질이 오르면 그의 목에 달린 혹도 검푸르게 변했다. 요 몇 년 동안 관아에서 상급 관리 외에 감히 자기의 체면을 이렇게 구겼던 사람이 있었던가?


“한강! 너 거기 안 서!”


주인이 화가 났다는 것을 안 류삼은 한강을 뒤쫓아 가며 크게 소리쳤다.


한강은 못 들은 척하고 빠른 걸음으로 보수사 문밖으로 나가 큰길 가운데에 선 다음 몸을 돌렸다. 황대류는 얼굴을 잔뜩 구긴 채 졸개들을 데리고 한강을 따라 절 밖으로 나왔다. 한강의 얼굴은 웃는 듯 마는 듯했고 황대류 쪽 네 사람 얼굴은 노기등등했다. 보수사 문밖에서 이런 대치가 이루어지자 금방 길 가던 사람들이 길을 멈추고 구경하기 시작했다.


한강은 병으로 깡말랐으나 책을 읽은 사람의 테가 역력했다. 입고 있는 청색 도포가 문인의 기운을 더 두드러져 보이게 했다. 한강은 황대류를 바라보며 겸손하고 평온하게 웃음을 지었다. 너무나 날카로워 마치 사람을 찌를 것 같았던 눈썹도 웃음과 함께 훨씬 부드러워 보였다.


한강과 대비되어 황대류 쪽 네 사람은 생긴 것도 제각각이었다. 그중에서 착해 보이는 인간은 하나도 없었고 요괴나 마귀가 나타난 것처럼 흉한 몰골들이었다.


“한강, 네 놈이 겁도 없구나!”


류삼은 한강의 코를 가리키며 욕을 퍼부었다. 5척이나 될까 싶은, 젓가락처럼 마른 사람이 6척 키의 한강 앞에 서니 기세가 먹힐 턱이 없었다. 그저 피골이 상접한 성질 나쁜 원숭이 짝밖에 안 났다.


한강은 깩깩거리는 원숭이는 아예 무시하고 황대류 만을 상대해 차갑게 물었다.


“황 반두 나으리, 무슨 가르침을 주시려고요?”


한강을 아래위로 훑어보던 황대류는 사냥감을 노리는 독사처럼 음흉한 눈빛으로 느릿느릿 말했다.


“한 수재, 배짱이 좀 있군.”


“저는 어려서부터 성인의 도를 배웠고 시서를 읽어 온 덕분에 마음속에는 천지의 크고 넓은 기운만 가득하오. 온갖 잡귀신이 저의 청정함을 방해한다 한들 두려워할 게 뭐가 있겠소?”


“네 놈이 입은 잘 놀리는구나!”


황대류는 한강 앞으로 바싹 다가가더니 한강의 귀에 대고 아주 슬프다는 듯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


“그 능란한 혓바닥으로 네 집 양낭을 지켜줄 수 있을지 어디 볼까?”


한강은 그 소리를 듣자 두 눈이 가늘어지며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그게 바로 너였군.’


추측했던 게 마침내 확인되었다. 한운낭을 노린 원흉을 찾아낸 한강은 화를 내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부드럽고 우아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뒤로 반 발짝 물러나 허리를 굽히며 공수하고 나서 의미심장한 권고를 했다.


“제가 뵙기에 황 반두께서는 머리에 군더더기가 많아 반드시 몸속의 기혈이 부족할 것으로 사료 됩니다. 따라서 여색을 멀리하지 않으면 이순의 나이를 넘기기 어려울 듯합니다. 모쪼록 진심 어린 저의 충고를 깊이 생각해 보심이 좋을 것입니다.”


황대류는 한강의 말에 뜨악해졌다가 무슨 뜻인지 겨우 알아차렸다. 한강의 말은 참 고상하게 들렸으나 구경꾼 중에는 일찌감치 한강의 말뜻을 알아들은 사람이 많았다. 순식간에 와하하, 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황대류의 얼굴색은 하얗게 변했고 목은 더욱더 붉게 변했다. 그는 평생 그 같은 모욕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화가 마구 솟구치는 듯 눈을 부릅뜨고 이를 갈며 말했다.


“네 놈이 간도 크지!”


한강은 의도했던 대로 황대류를 자극해 화나게 만드는 데 성공하자, 이제까지 부드럽던 얼굴색을 바꾸고 크게 소리 질렀다.


“내가 간이 크다 한들 황 반두 당신만 하겠소! 우리 집 밭을 탐내서 관아의 문서까지 조작해 단정호인 우리 집에 아전차역까지 배당하지 않았소! 나라를 위한 일이라 이 한 몸 돌보지 않고 기꺼이 받아들였더니, 그것도 모자라 우리 가족까지 넘보고 있으니 욕심이 한도 끝도 없지 않소! 얼마나 간이 크면 우리 가족을 모두 죽여 없애려 하오? 어디 이 한모가 관아로 뛰어가 혈서로 억울함을 호소하는 걸 볼 테요? 나 한가는 횡거 문하에서 수년간 공부해서 동창이며 친구가 많소! 만일 무슨 변고라도 생기면 이 한가의 억울함을 씻어줄 사람 하나 없을 줄 압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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