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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slaa
그림/삽화
리건
작품등록일 :
2020.11.17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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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9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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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가족 (하)

판타지 소설로 송나라 역사를 배우다!




DUMMY

취병(炊餅)이란 수호지에서 무송의 형 무대랑이 팔던 것과 같은 증병(蒸餅)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수십 년 전 인종 황제가 재위에 올랐는데 그의 이름이 조정(趙禎)이었다. (윗 사람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하게 하려고 같은 글자를 쓰지 못하게 하는 풍습이 있었고 그를 어기면 큰 문책을 받았다. 이때 피해야 할 글자를 ‘기휘(忌諱)’라 했다.)


정과 증의 발음이 비슷해 기휘로 여겼고 그래서 증자를 취자로 바꿔 불렀다. 그 취병이 후세에선 만두(饅頭)로 변했다. (역자 주: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만두는 고기만두나 야채만두를 의미하지만, 중국인들에게 속을 넣지 않고 밀가루 반죽을 둥글게 말아 찐 것만을 가리킴)


반찬이라고는 염장해 두었던 몇 종류의 야채가 전부였다. 한 씨네는 자기들이 길러낸 채소도 싱싱한 상태는 아까워하며 먹지 못했고 대부분은 성안으로 가져가 부잣집에 팔았다.


국수와 취병은 밀가루로 만들었다. 밀을 갈 때 될 수 있으면 많은 양을 얻으려고 껍질도 버리지 않고 갈았다. 그러면 한 되당 아홉 반 홉의 밀가루를 얻을 수 있었다. 백밀가루를 얻으려면 밀 껍질을 깨끗이 벗겨내고 갈아야 하는데 그러면 밀가루 양은 반밖에 안 나왔다. 당연히 아홉 반 홉이 나오게 만든 밀가루는 몹시 거칠었다. 그런 밀가루로 만든 음식이 무슨 맛이 있었을까. 그러나 그것도 하루 두 끼만 먹고 고된 노동을 했으니 하루 중 반 이상은 늘 배가 고팠다.


이때는 거의 모든 집이 그렇게 먹고 살았다. 원래 한 씨네는 부유했던 편이라 열흘 혹은 보름 간격으로 성안으로 들어가 채소를 팔았고 그 돈으로 고기 몇 근과 술을 사서 그동안 고생했던 자신을 달랠 정도는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너무 궁핍했다. 고기는 한강의 몸보신만을 위해 샀고 술은 언감생심 돈 주고 살 생각도 하지 않았다.


한천육은 오늘 예전의 단골 술집이었던 곳에서 술지게미를 공짜로 얻어와 주전자에 담고 뜨거운 물을 부었다. 술 냄새만 나는 물이었지만 아쉬운 대로 입맛을 다실 수는 있었다. 한강의 부모는 거친 음식으로 겨우 허기를 면하면서도, 아들이 기운을 차리고 한 입 한 입 떠먹는 것을 보자 몹시 흐뭇했다. 모처럼 주름진 미간을 펴고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송나라 때는 전쟁 중에 일반 병사가 전사하면 나라는 그 유족에게 금(이때의 금은 청동을 가리킴) 5~6관과 비단 일고여덟 필 정도의 위로금을 주었다. 외지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한강은 그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한천육과 한아리는 그 사실을 모르는 듯했다. 나라에서 나오는 위로금이 관아에 도착하면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면서 물이 모래 사이로 빠지듯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만일 그 위로금을 받았더라면 집안 형편이 지금보다 훨씬 여유가 있었을 것이고 한 묘 반 정도의 밭은 쉽게 되찾을 수 있을 터였다.


한아리는 밥을 벌써 다 먹었는데 한천육은 여전히 대접을 들고 천천히 조금씩 술지게미를 통과해 나온 물을 마시고 있었다.


한강은 밤낮으로 글을 읽고 쓰느라 근시가 생겨서 한천육의 손등에 새겨진 두 줄의 작은 글씨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글씨도 작고 손등에 주름도 있어서 글자들이 희미했다. 겨우 궁(弓)······.수(手)······사(四). 등 띄엄띄엄 몇 글자만 알아볼 수 있었다. 그게 무슨 뜻인지 짐작이 갔다.


그것은 진주의 향병 조직의 번호로 제4 소대 궁수란 의미였다. 섬서성에서는 4명 중 한 명꼴로 궁수를 뽑았다. 그 궁수들이 소속된 부대는 군대 편재 중 가장 하급 부대였다. 한천육은 하급 부대 소속이어서 손등에 그 번호를 새긴 것이었다. 수도를 호위하는 금군이거나 상비군이었다면 소속 부대의 표시를 볼에 새겼을 것이다. 향병이라도 보의(保毅)나 정예궁수처럼 상급 부대 소속이어도 역시 볼에다 새겼다. 한강의 두 형도 볼에 소속 부대를 새겼다.


송나라 섬서 지역의 일반 백성들은 하루 두 끼로 겨우 배를 채우다가 시시때때로 전투에 나가야 했고 전사라도 하면 유족들은 위로금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한천육은 술지게미 물을 조금씩 마시다 말고 그릇을 내려놓으며 한탄을 했다.


“아······. 사람이 재물을 탐할 때는 체면이고 뭐고 없구만. 셋째 병도 다 나아서 밭을 찾아오려 했더니 이나자 그 인간이 전매를 절매로 바꾸자고 야단이네!”


“피! 미친놈 하고는!”


한아리는 젓가락을 밥상 위에 탁 내려놓으며 화를 냈다.


“사람 목숨 구하려고 돈이 급할 때 어째 선뜻 빌려준다 했어. 그런데 어디서 돌팔이 의사만 소개해 주며 돈을 물 쓰듯 쓰게 하지 않았냐고요. 이제 돈은 필요 없게 됐으니 꿈 깨라 그래요! 셋째 병이 다 낫거든 이나자에게 전매했던 밭을 찾아옵시다. 한 묘 값이 생기면 한 묘 되찾고 두 묘 값이 생기면 두 묘 되찾으면 돼요.“


“안 그래도 오늘 이나자에게 그렇게 말했잖소? 강변 채소밭은 반드시 되찾아 와야지.”


“흥! 오늘 이나자에게 내가 욕을 퍼부었을 때 당신은 옆에서 보고만 있었잖아요! 그 작자가 당신을 우습게 봤으니까 감히 공갈치러 온 거 아니에요? 진즉에 마구 패줘서 그딴 생각은 아예 못 하게 해야 하는데. 그 인간이랑 사돈이라는 황대류란 작자도 그래, 여자를 밝힌다고 소문이 자자하더니, 지난번 나루터에서 우리 운낭을 보고 침을 흘립디다! 그때 내 손에 밀방망이만 있었어도 그 인간에게 혹 하나 더 달아줬을 텐데!”


한강은 비로소 낮에 이나자를 만났을 때 그자의 얼굴빛이 왜 그랬는지 이해가 갔다. 이나자는 한강과 만나기 전에 이미 부모님과 만나 채소밭 얘기를 했는데 자기가 그 얘기를 또 꺼내자 얼굴빛이 확 변했던 것이었다. 아마도 부모님은 남쪽 산에 가서 산나물과 약초를 캐서 그것을 성안에 가져다 팔려고 나루터에 갔을 때 이나자를 만났을 것이다.


한강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저 때문이에요. 저 때문에 이나자에게 그런 수모를 당하시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한아리는 고개를 돌리고 아들을 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돈이 들어도 병부터 치료해야지!”


“맞는 말이다. 목숨 구하는데 돈 아까워할 게 뭐 있냐? 자손이 끊기면 저승에 가서 무슨 낯으로 조상을 뵙는단 말이냐.”


한천육은 대접을 들어 아껴 마시던 술지게미 물을 벌컥 마시고 난 후 손등으로 수염에 묻은 물을 닦아냈다.


“셋째야, 다른 생각일랑 아예 말아라. 네 조부께서는 고향인 동경 밀주를 떠나 보부상을 하며 관서까지 오셨는데, 장사 밑천을 다 날려서 땡전 한 푼이 없었다고 하셨지. 가진 거라곤 입고 있는 옷 한 벌이 전부였다고 하셨다. 고향에 돌아갈 여비가 없어서 진주에 눌러앉게 되셨던 거야. 처음에는 남의 밭을 빌려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지만 나중에 돌아가실 때는 나에게 강변의 옥답 3묘 2각 15보를 물려 주셨어. 그 후 20년 동안 내가 백십 묘로 늘렸고······.


지금은 네 할아버지가 관서에 오셨을 때로 잠시 돌아간 것뿐이야. 앞으로 20년 더 일하다 보면 예전처럼 술도 고기도 맘껏 먹을 수 있게 될 거다. 세상 살아가는데 가난을 무서워할 게 아니라 게으른 걸 무서워해야 해. 부지런하기만 하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셋째 너는 글 읽는 사람이라 성현의 말씀을 네 마음속에 다 새겼을 테니 이 애비가 네게 가르칠 건 따로 없고, 그저 네게 물려준 거라고는 부지런하다는 거 하나 아니겠냐. 글공부할 때도 부지런해야 하고 일을 처리할 때도 부지런해야 하고 나중에 관리가 되더라도 부지런해야 한다.”


“아버님 말씀이 옳아요.”


한강은 고개를 숙이고 아버지가 말하는 교훈을 새겨들었다. 한천육은 글을 알지 못했지만 풍부한 경험이 있었다. 한강은 고개를 들고 웃으며 말했다.


“성현께서 일은 민첩하게 하고 말은 신중하게 하라고 하셨어요. 일은 많이 하고 말은 적게 하란 뜻입니다. 아버지 말씀하신 것을 들으니 성현이 말씀하신 도리와 거반 같습니다.”


“성현이 괜히 성현이 아니로구나!”


한천육은 아들의 말을 듣고 몹시 기뻤다. 고개를 똑바로 들고 술지게미를 통과한 물을 또 한 대접 마셨다. 입을 쩝쩝 다시더니 술지게미 물이 든 주전자를 흔들어 보며 또 탄식했다.


“관에서 빚는 술과 다를 게 없구만. 관에서 빚는 술은 한 해 한 해 더 묽어졌지. 가격은 술 값을 받고 내줄 때는 물맛만 나는 걸 주더라. 양식 한 말로 고작해야 물을 서너 배 탄 술 몇 되를 받을 수 있었어.


“그런데도 그 술이 그리 좋다고 마셔댈 땐 언제고요?”


한아리는 또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한천육은 움찔해져서 술지게미가 담긴 주전자에 물을 더 부으며 대꾸는 하지 않았다. 아내의 성질이 대단해서 그는 평생을 양보하며 살았다.


한강은 웃으며 말했다.


“집에서 술을 빚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럼 물 타지 않고도 마실 수 있잖아요.”


한천육은 머리를 흔들며 한숨을 내쉬었다.


“누가 아니라니. 하지만 진주에서 누가 감히 사사로이 집에서 술을 빚겠냐? 그랬다가는 진주 밖 삼천 리 떨어진 곳으로 유배 가게 될 텐데.”


한강은 깜짝 놀라 입을 못 다물었다. 이제까지 꺼내보지 않았던 기억이 튀어 올라왔다. 맞다! 송나라에서 술은 오직 관에서만 담가 팔았지!


송나라 개국 이래 국고가 부족하게 되자 이를 충당하기 위해 옛날 5대 10국 시절 썼던 방법을 도입했다. 전국의 모든 양조장을 관에서 틀어쥐었던 것이다. 관에서 술을 직접 빚던가 아니면 도급을 주었는데 도급을 줄 때는 공개 입찰했다. 술뿐만이 아니라 소금과 철광석도 관 직영이었고 차, 금속(礬:구리, 철, 아연 등의 금속류), 각종 약재 등이 모두 관의 손을 거쳐야 했다.


관의 이익을 가로채는 일을 하면 불법이었는데 만일 그자가 관원이면 벌이 비교적 가벼웠고 민간인이라면 가장 가벼운 벌이 멀리 유배되는 것이고 심하면 목까지도 베었다. 특히 진주는 감시가 더 심했다. 진주는 변경 지역이라 크고 작은 성채가 백열 개 있었다. 그중에 소수민족(蕃部:통칭 번부라 불렀다) 마을과 가까운 곳에서는 번인(蕃人)들과 거래하는 관영 양조장이 있었고, 조정에서는 오로지 주세를 걷기 위한 관원을 따로 파견했다.


‘증류주를 만들어 술을 팔려던 생각은 틀렸군. 목이 날아가게 생겼잖아!’


한강은 혼자 중얼거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사로이 양조장을 만들면 목이 달아나거나 최소한 유배라니! 도급을 받아 양조장을 열었다 치자, 조금만 개선하면 이익이 확 불어날 테고 그러면 관에서 다시 회수하거나 시기 질투하는 경쟁자에게 빼앗길 게 분명해. 보나 마나 뻔해. 그런 일은 아예 하지 않는 게 좋지.


한천육은 한강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고 아들이 출세하기만 바랐다. 물맛만 나는 술을 마시며 또 탄식했다.


“셋째 네가 관리가 되면 좋겠다. 관리만 되면 자기 집에서 술을 빚어 마시든 말든 누가 뭐라고 하겠냐. 오늘도 성안 혜덕루에 나물을 팔러 갔다가 재상댁 심부름을 하는 노병이 양조장에서 술약을 받아서 돌아가는 걸 봤지. 부중에서 사사로이 술을 담그려는 거야.”


“술지게미 술을 마시더니 얘기가 왜 그리로 번져요?”


한아리는 한천육에게 면박을 주고 한강을 돌아보며 말했다.


“셋째야, 네가 아플 때 나와 네 아버지가 이 장군 사당에 가서 참기름 20근을 내고 빌었단다. 그 날 이후로 네가 하루가 다르게 좋아지더구나. 이 장군이 돌보아 주신 덕분인 거야. 그래서 네 아버지와 의논해 봤는데 한 20일 후면 마을에서 보리 심기가 끝날 때가 되니까 그 어간에 좋은 날을 잡아서 이 장군 사당에 제사상을 올리자고 했어. 장군 신령께 감사도 드리고 또 네 몸의 사기도 몰아낼 겸 해서 말이야.”


한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천육과 한아리 모두 좋은 부모였다. 자기들은 못 먹어도 아들에겐 아까워하지 않고 먹였고 자기들은 아까워 쓰지도 못하는 돈은 아들을 위해 아낌없이 쓰는 사람들이었다. 이런 부모를 만나고 보니 한강의 마음에서 저도 모르게 또 다른 세계에 계시는 부모님의 형상이 겹쳐서 떠올랐다.


나뭇가지는 가만히 있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질 않고

효도하려 할 때는 부모님이 기다려주시지 않네.


한강은 두 번째 주어진 삶 덕분에 다른 세계에 계신 부모님께 못다 한 효를 여기서 갚을 기회를 얻었으니,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농사짓는 일은 이윤이 큰 사업이 아니었다. 더구나 한천육처럼 매일 분뇨 냄새를 풍기며 밭에서 돌아오고 싶지도 않았다.


한강은 부모님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하고 자신도 좀 편안하게 살려면 반드시 전력을 다해야 한다는 것만 생각했다. 하지만 돈만으로는 부족했다. 권력이 있어야만 재산도 지킬 수 있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한강이 관직에 오르는 것 외에는 좋은 방법이 없어 보였다.


저자 주석: 묘(苗), 각(角), 보(步) 등은 중국의 오래된 토지 면적 계산 방법이었어요. 60보가 1각이었고 4각이 한 묘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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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비장군 사당 (상) +3 20.11.23 3,530 6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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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문무를 겸한 선비 (상) +4 20.11.20 3,757 63 13쪽
» 가족 (하) +7 20.11.19 3,709 60 13쪽
8 가족 (상) +5 20.11.19 3,831 6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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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재난 후에 만난 세상 +8 20.11.17 6,524 7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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