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배우로 전직을 명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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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운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0.11.27 17:58
최근연재일 :
2021.01.19 21:4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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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27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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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Act 33. 꿈이 무엇입니까?

DUMMY

“정말 이게 맞아?”

“그럼 맞는 거지.”

“오빠는 사인하는 기계로 만들고 동생은 드라마 보는 게 맞아?”

“저번에 사인 안 하고 도망친 벌이야.”


태연하게 대답하는 지현이 덕분에 입에서 한숨이 절로 새어 나온다.

정작 본인은 침상에 앉아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서, 오빠는 사인하는 기계처럼 부리고 있다니.

저번에 병원에 들렀을 때, 촬영장에 가기 전에 사인해 주기로 했던 것을 깜빡했던 탓이다.

덕분에 5장에서 50장으로 늘어났지만, 약속했던 것도 있기에 나는 얌전히 사인을 해주고 있다.


“근데 사인이 이게 뭐냐?”

“사인이 왜?”

“아니, 연예인이면 좀 그럴듯하게, 있어 보이게 만들어야지. 좀 더 예쁘고 멋있게는 안 돼?”

“나한테 바랄 걸 바라라.”


나직이 투덜거리자 지현이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낮게 혀를 찼다.

꼭 잔소리 많은 어르신과도 같은 모습이다.


“이렇게 유명해졌는데 사인도 그럴듯하게 해야지. 나중에 수아 언니한테 말해야겠다. 오라방 사인 좀 멋있게 만들자고.”

“팀장님한테 그걸 왜 말해?”

“이걸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


한참을 툴툴거리던 지현이가 불쑥 태블릿을 내밀었다.

태블릿의 화면 위에 떠 있는 것은 여명의 후예에 대한 커뮤니티 반응이다.


- 와 리태홍 캐릭터 진짜 잘 만들었네. -

- 아, 리태홍 이야기 보는데 왜 눈에서 땀이 나냐. -

- 리태홍도 리태홍인데 김필성 뭐냐? 저 떡대 봐라. 한 대 맞으면 그냥 황천 갈 듯. -

- 오늘부터 제 이상형은 강수연입니다. -

- 맞말추 -


엄청난 화제를 몰고 온 초소의 전투씬을 시작으로 여명의 후예는 말 그대로 탄탄대로를 달렸다.

여명의 후예는 박혜숙이 호언장담했던 평균 시청률 30%를 넘어섰다.

특히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시청률을 보인 것은 바로 리태홍 에피소드로.

해당 부분의 평균 시청률은 무려 32%에 이르렀다.

덕분에 감독인 최성원의 입가엔 미소가 떠나질 않았으며, 박혜숙 역시 스타 작가의 이름을 한층 더 빛냈다.


그중에서도 가장 화제가 된 인물은 역시 나와 연하윤이었다.

압도적인 연기력으로 다른 배우들의 연기력마저 끌어올린 연하윤과 기존 액션보다도 훨씬 더 디테일한 액션으로 몰입감을 끌어 올렸다는 나에 대한 평가가 커뮤니티를 장악하다시피 했다.

개중에는 상범이에 관한 내용도 있었다,


- 형!!! 정말 감사합니다 8ㅁ8 형 덕분에 이번에 소속사에서 난리예요. -


거구의 덩치와는 어울리지 않는 귀여운 이모티콘이 가득한 메시지를 떠올린 것만으로도 또다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단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범이는 임팩트 넘치는 모습과 자연스러운 연기로 호평을 받으며 하루가 다르게 바빠졌다.

다른 작품의 출연 제의도 들어오기 시작했다던데 그간의 고생이 보답받은 것 같아 내가 다 뿌듯하다.


“네가 보기엔 어때? 볼만해?”

“그냥저냥 나쁘지 않던데?”

“그게 끝이야? 다른 거는?”

“내가 무슨 평론가야?”


지현이가 눈살을 찌푸렸다.

자기는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너 전부터 엔플렉스랑 와챠우에 빠져 살았잖아. 그만큼 보면 거의 평론가지.”

“말은.”

“그러니까 한번 제대로 이야기해 줘봐.”

“스토리 괜찮고, 캐릭터도 임팩트 있어서 나쁘지 않아. 오라방이 비주얼은 조금 아쉽기는 한데, 대신 연기력이 좋아서. 전체적으로 괜찮은 수작이야.”


병원에서 거의 하루 종일 드라마와 영화에 빠져 사는 지현이가 하는 말이니, 제법 신빙성도 있다.

거기에 무엇보다도 병실 옆을 기웃거리는 이들의 수가 늘어난 것만 봐도 세간의 반응이 여실히 와닿는다.

그들 외에도 4인실에 있는 다른 환자들까지 커튼을 젖히고 이쪽을 힐끔거리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오라방.”

“왜?”


과자를 우물거리며 태블릿에 푹 빠져 있던 지현이가 대뜸 고개를 돌린다.

마침 사인도 끝났는데 갑자기 왜 그러지?


“저번에 영화 찍었다면서 그거는 어떻게 됐어?”

“영화? 그것도 곧 개봉할 것 같던데.”

“19금 판정받았다면서? 괜찮은 거야?”


나의 첫 출연작이라 할 수 있는 영화 수라.

영화의 관객층을 판가름할 관람등급에서 수라는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인 19세 미만 관람 불가 판정을 받았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차성우가 이것저것 신경 쓰다 보면 기껏 완성된 영화의 본질을 해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주요 장면들을 적나라하게 편집한 탓이다.

그로 인해 청소년층의 관람객은 포기하게 되었지만, 나는 오히려 그 판단이 훨씬 더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괜히 대사나 장면도 어린 애들이 보기에 너무 자극적이어서 그래. 애매하게 그런 부분 다 쳐내고 15세 판정받으면 퀄리티가 훨씬 떨어질 테니까. 차라리 19금이 훨씬 나아.”

“출연자 중에 중학생도 있다며?”


지현이의 물음에 나도 모르게 입가에 고소(苦笑)가 번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수라가 청소년 관람 불가 판정을 받게 되면서 생긴 일인데.

이로 인해 주연 중 한 명인 진소희의 경우 자기가 출연한 작품을 영화관에서 볼 수 없게 되었다.

당사자인 진소희는 굉장히 아쉬워했지만, 별수 있나? 법이 그런걸.

결국 그녀의 관람은 5년 뒤로 늦춰졌다.


“그 영화 언제 개봉인데?”

“오늘.”

“······응?”


지현이의 대답이 한 박자 늦게 흘러나온다.

덩달아 이곳을 뚫어져라 지켜보던 사람들도 얼굴에 물음표를 띄우고 있다.

그제야 깜빡 잊고 있었던 것이 떠올랐다.


“내가 말 안 했나? 오늘이라고.”

“그걸 왜 이제 이야기해!”


병원이 떠나갈 듯한 포효가 고막을 덮쳤다.


***


“그런데 지혁 씨, 정말 괜찮겠어요? 면접까지 오지 않으셔도 괜찮은데. 오늘 수라 개봉하는 날이잖아요.”

“괜찮습니다. 어차피 단역이라 쇼케이스에 초대받은 것도 아닌데요 뭐. 게다가 이왕이면 함께 일할 사람이니까, 저도 같이 보고 결정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지금 내가 있는 곳은 회사에 있는 면접실이다.

여명의 후예에 대한 촬영도 모두 끝난 시점에 오늘 이렇게 회사에 나온 이유는, 바로 앞으로 나와 함께할 스타일리스트의 면접 때문이다.

각종 심사를 거쳐 이제 최종 선발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나는 강석호, 김수아와 함께 면접관으로 직접 참여했다.


“바쁘신데 면접까지.”

“하하, 다 지혁 씨 인품이 좋아서 그래. 남들은 오히려 관심도 없는데 이렇게 같이 일할 사람도 생각하고 얼마나 사려 깊어?”

“그거야 같이 일하는 제가 제일 잘 아는데, 혹시라도 바쁜 와중에 방해될까 봐 그렇죠.”


껄껄 웃는 강석호와는 달리 김수아는 입술을 삐쭉 내밀고 투덜거린다.

행여나 폐가 되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나는 입가에 부드러운 호선을 그리며 강석호의 말을 보충했다.


“앞으로 같이 일할 사람이니까 한번 직접 보고 싶어서 그래요. 마침 드라마 촬영도 끝났고 당분간은 여유도 있으니 괜찮습니다.”

“캬, 우리 정 배우 마인드 봐봐, 얼마나 훌륭해. 이런 모습을 다른 사람들이 좀 보고 배워야 할 텐데 말이야.”


강석호가 뿌듯한 미소로 기분 좋은 미소를 머금었다.

입술을 내밀고 있던 김수아도 강석호의 말은 부정하지 않고 조그맣게 고개를 끄덕인다.


“자, 자 시간도 됐으니까 이제 슬슬 준비하자고. 면접 기다리는 사람도 많으니까 지혁 씨 같은 인재 한번 뽑아봅시다!”


심층 면접까지 올라온 면접자는 총 30명.

이들 중 5명은 AND와 함께하게 될 것이고, 5명 중에서 1명은 나와 함께 일하게 될 것이다.

긴장 반, 설레임 반.

면접자가 아닌데도 심장의 격동이 조금씩 속도를 더한다.

그리고 마침내.


“1번 들여보내 주세요.”


면접이 시작되었다.


***


“후아, 오늘 좀 많이 빡세네.”

“다들 정말 쟁쟁한데요?”

“지혁 씨 덕분에 회사 인지도가 올라가서 그런가? 요 근래 들어서 제일 괜찮은데? 특히 몇 명은 아주 맘에 들어.”


면접장은 면접자들의 열의로 후끈 달아올랐다.

처음 면접장으로 들어올 때, 나를 보고 흠칫 놀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지만, 그 이후에 보이는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사시나무처럼 파르르 떠는 유형, 놀라지도 않고 자신감 있게 정석적인 대답을 늘어놓는 유형, 그리고 미리 준비한 예상 답변을 기계처럼 읽는 유형.

다양한 유형만큼 그들이 스스로를 나타내는 각양각색의 모습에 절로 감탄이 일었다.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다들 대단하시네요. 이렇게 뛰어나신 분들이 지원하셨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심층 면접까지 거르고 거르면서 정말 알짜배기만 남은 거죠.”

“그러니까 더 고민이 되는 거지. 뽑을 인원은 정해져 있는데 이렇게 많은 인재가 몰렸으니. 아이고 두야.”


강석호가 앓는 소리를 내며 머리를 짚었다.

인재가 많은 건 분명 호재이지만, 너무 많은 이유로 더욱 고민이 되는 모양이다.


“1:1 면접이라 시간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30번이면 이번이 마지막이죠? 시간 빠르네요.”

“자자, 마지막까지 힘내고, 면접 끝나면 나가서 밥이나 제대로 먹고 옵시다. 지혁 씨도 왔으니 점심은 내가 쏜다!”

“와, 그럼 오늘 점심은 한우로 가죠!”


강석호가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자 기회를 놓치지 않고 김수아가 재빠르게 말을 덧붙인다.

한우라는 거룩하고 위대한 이름을 듣자 강석호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응? 아, 아니 한우는 좀······”

“자, 30번 들여보내 주세요.”


떨떠름한 강석호의 말꼬리를 단번에 자르며 김수아가 크게 소리친다.

아무래도 기세를 보아하니 어떻게든 한우를 얻어먹을 심산인가보다.

코미디 같은 둘의 모습에 겨우 웃음을 참던 사이.


“아, 안녕하십니까!”


갑작스럽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입구로 향한다.


“···어?”


시선이 마주침과 동시에 무심코 목소리가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엑?”


면접자 역시 마찬가지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녀의 입에서 당혹성이 터져 나왔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녀도 나도, 서로 구면이기 때문이다.


“지, 지혁씨?”

“···김현호 씨 스타일리스트 맞으시죠?”


저번 촬영 당시, 대기실에서 마주쳤던 그녀, 김현호의 스타일리스트다.


“자세한 이야기는 일단 앉아서 들어도 될까요?”

“아, 예! 알겠습니다.”


인사처럼 우렁찬 대답과 함께 그녀는 곧바로 의자에 착석했다.

그와 동시에 6개의 눈동자가 그녀에게로 향한다.


“자, 먼저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아, 안녕하십니까! 30번 27살 박아영입니다. 아까 정지혁 면접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며칠 전까지 배우 김현호 씨 스타일리스트로 활동했었습니다.”


그녀, 박아영은 다시 한번 꾸벅 인사를 건네며 당당하게 자신을 소개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목소리가 조금 떨리는 것이 깨나 긴장하고 있는 모양이다.

짤막하게 소개가 끝나자 이번엔 김수아 대신 강석호가 질문을 건넸다.


“며칠 전까지 김현호 씨 스타일리스트였다는 말은 지금은 그만두셨다는 말씀이신가요?”

“······”

“···박아영 씨?”


서류에 고정되어 있던 그의 시선이 박아영에게로 향했다.

한참 동안 우물쭈물하던 그녀는 씁쓸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네, 며칠 전에 사직서를 내고 나왔습니다.”

“사직서를 내셨던 이유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김현호 씨와 약간의 다툼이 있었습니다.”


대답과 동시에 순간적으로 강석호의 눈썹이 흔들렸다.

다툼이라는 말이 역시 좋지 않게 다가온 모양이다.


이후에도 강석호와 김수아로부터 몇 가지 질문이 이어졌다.

조금 전까지의 긴장된 모습과는 달리 박아영은 자신의 생각을 유감없이 펼쳐 보였다.

여느 면접자들처럼 몇 가지 질의가 오가며 서류에 적힌 내용이 하나둘씩 추가되었다.

한참의 문답 끝에 강석호와 김수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것으로 면접을······.”


그렇게 면접이 끝나려던 찰나.


“잠시만요.”

“지혁 씨?”


처음으로 흘러나온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향한다.

나는 강석호와 김수아의 시선을 피한 채로 박아영을 향해 입술을 달싹였다.


“마지막으로 두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네.”

“아영 씨도 알고 계시겠지만, 김현호 씨와의 다툼. 저는 당시 현장을 목격하였습니다.”


태연한 대답에 강석호와 김수아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커진다.

박아영은 어느 정도 내 말을 예상했는지 조금은 담담한 표정이다.


“자세한 내막까지는 모릅니다만, 당시의 일이 그리 좋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묻고 싶습니다. 만약 회사로부터 김현호 씨 혹은 임원으로부터 사과를 받는다면 본래 자리로 돌아갈 의향이 있습니까?”


순간적으로 박아영의 눈동자가 흠칫 떨렸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순간에 불과했다.

그녀의 눈동자는 금세 초점을 되찾았다.


“솔직하게 말씀드려도 될까요?”

“네.”

“김현호가 당장 여기로 와서 대가리 박고 빌어도 안 갈 거예요.”

“풉!”


당돌한 그녀의 대답에 강석호는 그만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때마침 그는 커피를 홀짝이고 있었는데, 다행히 서류에는 묻지 않았지만, 입에서 뿜어져 나온 커피로 테이블 끝이 젖었다.

하필이면 그 와중에 사례까지 들렸는지 보다 못한 김수아가 그의 등을 몇 번이고 두드린다.

굉장히 흥미로운 답변이지만, 말끔한 대답은 아니다.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김현호 그 인간이랑 저랑 몇 년이나 같이 일했을 것 같아요?”


박아영은 대뜸 내게 질문을 건넸다.

면접관은 나지만, 갑자기 뿜어지는 기세를 보니 도리어 그녀가 면접관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글쎄요?”

“무려 5년이에요 5년! 김현호 걔가 단역, 조연으로 일할 때부터 같이 했어요. 그동안 꿈 때문에 어떻게든 참고 살았지만, 더는 못 참겠더라고요. 그래서 그놈 얼굴에 직접 사직서 던지고 나왔어요. 그런데 이제 와서 사과 한마디 한다고 돌아갈 리가 없죠.”


···그간 쌓인 것이 정말 많은 모양이다.

씩씩거리며 겨우 분을 삭이는 것이, 눈앞에 김현호가 있었다면 뺨이라도 한 대 갈겼을 것 같다.

나는 올라가는 입꼬리를 애써 누르며 다시금 입술을 떼었다.


“잘 들었습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여쭤보겠습니다. 조금 전에 꿈 때문에 어떻게든 참고 지내셨다고 하셨는데, 그럼 그 험한 꼴을 당하면서도 참고 견디게 해준 그 꿈이 무엇입니까?


사실 그때 당시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는 모른다.

그래서일까?

당장 채용 여부를 떠나 알고 싶었다.

저번에 대기실에서 그리 험한 꼴을 당했는데도 스타일리스트 일을 그만두지 않은 이유.

그 힘들었던 나날을 버티게 해준 박아영의 꿈이 궁금했다.

일순간이나마 박아영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만약 대답하시기 불편하시다면 대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뇨. 그게 뭐 어려운 대답이라고요. 말씀드릴게요.”


마침내 박아영의 입술이 열렸다.

그녀는 차분해진 눈동자 너머로 또박또박 말을 이어나갔다.


강석호도 김수아도, 질문을 건넨 나도.

모두가 박아영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최고의 자리에 오른 사람이, 최고의 순간에 입는 옷이 제가 스타일링 한 옷이 되는 게 제 꿈입니다.”


박아영의 눈동자에 아련함이 어렸다.

그러다 문득 그녀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그 꿈을 위해서 지금까지 수없이 도전하고 노력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여기서 자신 있게 말씀드릴게요.”


그 어느 때보다도 확신에 진심이 담긴 목소리.

어느새 그녀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지혁 씨가 최고의 자리에서 맞이하는 최고의 순간에 입는 옷은 제가 스타일링 하게 해주세요. 대신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순간까지 지혁 씨의 모든 스타일링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확신과 자신감으로 가득한 당찬 포부로 가득한 미소가.


***


면접이 끝난 이후 우리는 김수아의 말대로 한우를 맞이하러 나섰다.

김수아는 내가 면접관으로도 참여했는데, 당연히 그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냐며 큰소리치며 근처의 한우 가게로 끌고 간 탓이다.

덕분에 강석호의 얼굴엔 그늘이 졌지만, 그와 반비례로 식탁은 더욱 풍성해졌다.


“대표님 결국 누구 뽑으실 거예요?”

“다들 비슷한 생각 아니야? 나만 그 사람 생각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역시 박아영 씨죠?”


김수아의 질문에 강석호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건넨 마지막 질문 때문일까?

당차고 자신감 넘치는 포부는 강석호와 김수아의 마음을 단번에 휘어잡은 모양이다.


“그럼 아영 씨는 언제부터 함께 활동하게 되나요?”

“글쎄, 아마 다음 촬영 일자에 맞춰서 움직이지 않을까? 마침 시놉도······ 아!”


그러다 문득 강석호에게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뭐 잊어버리신 거라도 있으세요?”

“내 정신 좀 봐. 면접 때문에 지혁 씨에게 그걸 전해준다는 걸 깜빡했네.”

“제게요?”


갑작스러운 한 마디에 김수아와 나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한다.

4개의 눈동자가 자신에게로 향하자 강석호는 슬그머니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

듣는 눈과 귀가 없음을 확인한 그는 입가에 손을 붙이고 다시금 입술을 떼었다.


“사실 이번에 들어온 시놉시스 중에 재미있는 게 있어서. 지혁 씨에게 말해주려고 했거든.”

“재밌는 거요?”

“그동안 지혁 씨가 했던 작품이랑은 달라서, 연기 스펙트럼도 늘리고 괜찮은 것 같은데.”

“어떤 작품입니까?”


의미심장한 대답만이 이어지자 더욱 호기심이 끓어오른다.

호기심 가득한 시선을 즐기던 강석호는 이내 입꼬리를 쓱 끌어올렸다.


“연애물이야.”

“연애물이요?”


김수아의 눈동자가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김수아도 김수아지만 가장 크게 놀란 것은 바로 나였다.

난데없이 연애물이라니.

언젠가는 연애물도 하게 될 거란 생각은 했지만, 벌써 그날이 올 줄이야.

눈에 띄게 당황한 바라보며 강석호는 능글맞은 미소를 건넸다.


“내가 물어봤는데, 상대 배우도 꽤 유명한 배우인 데다 키스 씬도 넣어준대. 어때 지혁 씨, 생각 있어?”

“하, 하지만······”


나는 슬그머니 그의 시선을 피한 채 말꼬리를 흐렸다.


“엥? 항상 자신감 있던 지혁 씨가 웬일로 자신 없어 보이네.”

“지혁 씨 무슨 일 있어요?”

“그래, 꼭 연애 한 번 못 해본 사람처럼 갑자기 왜 그래?”

“저, 그게······”


강석호를 따라 김수아까지 걱정스러운 시선을 던진다.

걱정을 넘어 불안으로 가득한 그들의 시선에 나는 오랫동안 꺼내지 못한 말을 꺼내고 말았다.


“사실 저 연애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 꼭 그런 사람 같······ 에엑?”


태연하게 대답하던 강석호의 말꼬리가 급격하게 흐려진다.

이미 대답을 들은 김수아의 눈빛은 격렬하게 흔들리고 있다.

슬그머니 시선을 피하자, 뒤늦게 정신을 차린 강석호의 입에서 경악이 튀어나왔다.


“지혁 씨 모쏠이었어?”


작가의말

정지혁이 부릅니다.

봄이 좋냐?!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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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Act 7. 오디션 - (2) +19 20.12.01 17,349 332 14쪽
6 Act 6. 오디션 - (1) +13 20.11.30 17,839 330 11쪽
5 Act 5. 뉴스 - (2) +12 20.11.29 18,223 328 12쪽
4 Act 4. 뉴스 - (1) +21 20.11.28 19,279 345 15쪽
3 Act 3. 튜토리얼 - (3) +21 20.11.27 19,549 379 15쪽
2 Act 2. 튜토리얼 - (2) +26 20.11.27 21,580 351 16쪽
1 Act 1. 튜토리얼 - (1) +25 20.11.27 26,036 38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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